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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18. 보발
작성일 : 18-12-18 07:52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8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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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발은 이 층으로 올라가는 도아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의 머리 위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수정처럼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를 우렸다. 쓰디쓴 커피를 마시면서 비가 내리는 창가로 다가갔다.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렸다.

 그는 천장을 슬쩍 쳐다보았다. 도아는 지금쯤 잠이 들었을 것이다.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더니 며칠 사이 잠을 잘 자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유리창에 그의 얼굴과 웅장한 저택의 실내가 반사되었다. 넓이가 삼 미터쯤 되는 나무 계단이 샹들리에의 불빛을 분출하고 있었다.

 “도련님 우리가 만났을 때도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아련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가, 오백 년 전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오백십삼 년 전 그가 서른 살 때였다. 그는 한 종교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종교를 일컬어 역병을 부르는 사악한 힘이라고 했다. 종교의 이름은 사람마다 다르게 불렀으나 통용되던 명칭은 르와였다.

 먹구름이 낀 한 날 밤이었다. 붉은 수건을 두른 일단의 사람들이 제단 위 철망 상자에 봉헌물을 바쳤다. 철망 상자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지만 신의 존재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사람들이 북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가운데 제사장이 염소의 목을 잘랐다. 그 피는 제사에 모인 사람들에게 뿌려졌다. 보발은,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신경발작을 일으키며 불 주위를 빙빙 도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다.

 제사는 황혼 무렵에 시작되는데 정령들이 힘을 되찾는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배키!”

 제사장이 외쳤다. 춤을 추던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배키는 괴물을 뜻하는 것이었다. 배키는 만물에 깃들어 있는 원천적인 악이었다. 그들은 배키가 르와 신이 낳은 사생아로 믿었다. 배키가 실체를 갖게 된 건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다. 인간들은 더 많은 걸 가지기 위해 전쟁을 했고 살육을 했으며 파괴를 일삼았다. 그것이 한낱 악몽일 뿐인 배키를 실제 하게 한 힘을 준 것이다.

 그러나 재차 명확하게 할 점은 그들에게 배키는 악이자 신의 사생아였다. 그들이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배키에 있었다. 배키를 소환하는 것으로 차츰 신과 가까운 곳에 가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이 인간을 버린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버림받은 자인 배키는 르와 교리에선 일종의 그리스도 개념이었다.

 보발은 제사장이 부르는 노래와 북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제사장의 호리병박이 미친 듯이 흔들렸고 거의 벌거벗은 남자들이 혼을 뺏긴 것처럼 툭툭 쓰러졌다. 여자들은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춤사위에 미쳐 불 주위를 맴돌았다.

 “배키!”

 제사장이 다시 외쳤다. 사람들이 일시에 오 하고 탄성을 질렀다. 겁에 질린 사람도 있었다. 보발은 힘차게 몸을 내지르며 불 주위를 돌았다. 그때였다. 숨어 있던 왕국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사단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베고 썰었다. 순식간에 제단은 피로 물들었다.

 보발은 겨우 도망을 쳤지만 제사장이 단칼에 머리가 달아나는 장면을 본 탓에 며칠이고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 며칠은 그에게 지옥 같았다. 그들이 살던 터전은 불살라졌고 악마라고 하여 갓난아기까지 도륙을 당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도망쳤다. 깊은 강물에 뛰어들었고 야생 식물을 잘못 먹고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밤중에 산을 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다음날 그는 햇무리를 보며 정신을 차렸다. 기적이 작용한 것인지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아침에 다시 보니 낮은 절벽이었지만 삼 미터는 거뜬히 되었다.

 흙구덩이에 뿌리를 내린 나무 밑에 숨어서 기사들을 피한 다음 날이었다.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아 긴장을 하고 숨어 있던 그의 눈에 한 무리의 들개가 보였다. 개들은 컹컹거리거나 짖으며 거리를 좁혀 왔다. 그는 온몸을 긁혀가며 급하게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개들이 밑에서 뱅뱅 돌았다. 앞발로 나무를 긁거나 하늘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보발은 멀리 내다보이는 들판을 보았다. 개도 개지만 추적자들의 눈에 띄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멀리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사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냥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도 들개들만큼이나 굶주려 있었다. 잠도 문제였다. 어느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렸고 추위는 그를 더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가. 저리 가.”

 그는 혼잣말을 했다. 크게 말을 하면 개들이 그 말을 알아듣고 더욱 공격성을 내비칠 것 같았다. 개는 다 해서 다섯 마리였다. 세 마리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앉아 있었고 한 마리는 나무를 중심으로 빙빙 돌았고 다른 개는 귀를 흔들며 멀리서 들리는 사람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나뭇가지에 힘없이 걸터앉은 그도 멀리 내다보았다. 만일 기사단에게 발각된다면 그는 꼼짝없이 죽게 된다. 높은 나무의 과일을 따듯 긴 창으로 쑤셔대거나 활을 쏠 것이 분명했다. 아예 나무 밑동에 불을 지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손수 나무를 타고 기어 올라와 칼질을 할지도 모르고. 어떤 방식이 되었든 그에겐 끔찍하기만 했다.

 순간 그는 일어섰다. 열 서넛으로 보이는 형제를 발견한 것이다. 소년들은 장난을 치면서 서로를 쫓고 있었다. 나무와 지형 탓에 형제는 개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냄새와 소리를 들은 개들은 이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자연히 보발의 얼굴이 잿빛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 오지 마. 여기로 오면, 오면 안 돼!”

 그는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이러면 보일까 하여 팔을 크게 휘저었다. 그 힘에 의해 나뭇잎이 개 머리 위로 떨어졌다. 흡사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개 두 마리가 주둥이를 흔들며 움직였다. 세 마리가 짖었다. 그리고 뒤따랐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나무를 잡고 내려갔다. 마지막에 가서는 미끄러져서 거의 화상을 입었다. 그는 손바닥에 나무껍질이 박힌 줄도 모르고 돌멩이를 주워 던졌다.

 “얘들아 위험해! 들개가 있어! 도망가!”

 그가 외치며 연신 돌을 던졌다. 개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지럼증에도 불구하고 돌을 주워들고 최선을 다해 달려갔다. 르와 신의 가호가 있었는지 아이들은 무사히 도망을 가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들개 다섯 마리 위에 맹금류 한 마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들개들은 뒷발로 일어서기도 하고 뛰어오르기도 하지만 당연히 맹금류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들개에게 발각당한 것이다. 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왔다. 그는 돌멩이를 쥔 주먹을 꽉 쥐고 격투 자세를 취했다. 개가 뛰어들 때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돌멩이 탓에 그의 손가락 네 개가 까졌지만 개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크게 맞은 개는 턱이 빠져서 캑캑거렸다. 그는 한번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돌을 찾았다. 아까의 돌멩이는 충돌할 때의 충격 탓에 날아간 상태였다.

 두 마리는 맹금류에게 온통 관심을 쏟고 있었지만, 한 마리가 각을 재며 걸어왔고 다른 개는 젖은 땅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대고 있었다. 턱이 빠진 개는 꼬리를 쫓는 고양이처럼 빗속에서 빙그르르 돌고 있었다.

 “만만하게 보지 마라.”

 말만 그렇지 보발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떨고 있었다. 찢어진 살갗의 고통이 느닷없이 느껴졌다. 그는 숨을 내쉬며 주먹을 단단히 말았다. 두 마리였다. 한 마리를 어쩐다고 해도 다른 개가 있었다. 그건 당장의 승부고, 그다음에도 두 마리가 더 남았다. 만약 또 한 마리를 때려눕혔는데 운이 좋아 서열이 높은 개체라면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었다. 기껏해야 머리가 나쁜 짐승이 아닌가. 그러나 한 번이라도 물리는 날에는! 그 뒤부터는 살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그는 절망했다. 비상이었다. 다른 두 마리도 맹금류 대신에 손쉬운 먹잇감인 그에게 집중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끝이구나 싶었다. 가혹한 운명은 끝내 그를 가족과 친구의 품으로 돌려보내려 하고 있었다.

 개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팔과 다리에 각각 하나씩, 송곳니가 그의 살갗에 박히려는 찰나였다. 어딘가에서 큰 돌멩이가 날아와 개들을 때렸다. 개들은 깽깽거리며 땅바닥에 내꽂혔고 구르기도 했다. 그가 보는 앞에서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여러 갈래로 쩍 갈라져 작살처럼 하늘을 포위했다. 들개 퇴치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났다. 긴장이 풀린 보발은 스르륵 무너졌다.

 꿈에서 그는 불 앞에 있었다. 제사장이 염소의 머리를 잡고 목을 그었다. 핏물이 흐르자 사람들이 서로 몸에 바르려고 엎치락뒤치락했다. 북소리가 컸고 노랫소리도 컸다. 그는 귀를 막았다.

 이거 먹을래? 배키란다.

 제사장이 피 묻은 손으로 염소의 머리를 건넸다.

 배키란다.

 그리고 그는 잠에서 깼다. 침대 위였다. 선뜻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는 높고 큰 베개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이불을 발로 밀어냈다. 침대 밑으로 두 다리를 내려놓은 그는 눈을 감았다. 햇빛 탓에 눈이 부셨다. 커튼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가 뒤로 물러섰다. 독수리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독수리가 어두운 빛이 도는 날개를 퍼덕이며 계단의 난간에 앉았다.

 “깼어?”

 도아가 계단을 올라오며 말했다.

 “누구십니까?”

 보발이 말했다.

 “하도아라고 해. 그냥 도아라고 불러. 저기 저 녀석은 벨즈. 너는?”

 “저는 신앙심 깊은 신자일 뿐입니다.”

 “무슨 소리야?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

 “보발이라고 합니다.”

 보발이 나른하게 말했다.

 “그런데 어떤 종교지?”

 도아가 물었다. 딱히 흥미가 있어서 물은 것은 아니나 답변으로 들려오는 보발의 말에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르와입니다.”

 “사악한 종교군.”

 “사악하다니요!”

 “정확히 말하면 르와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배키 소환만큼은 충분히 악한 일이지. 누가 뭐래도 악한 일이라고. 그 악한 일을 르와는 하지. 한 달에 한 번 있는 제사 때마다 배키를 세상에 내놓는 게 르와야. 그것이 제사장의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지. 너를 위협했던 그 들개 중 한 마리도 사실 배키였어. 배키가 개의 몸에 들어가 있었지. 그 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 거 같아?”

 “얼마나 됩니까?”

 “스물일곱 명이야. 대부분이 아이들이지.”

 “그 말을 어떻게 믿지요?”

 “벨즈는 배키를 느낄 수 있어. 나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지만 벨즈에 비하면 약과지. 벨즈가 배키를 찾고 나는 처리해. 한 마디로 우리는 배키를 쫓고 있어, 르와 교도.”

 보발이 갑자기 주저앉았다.

 “따지고 보면 르와가 멈추는 게 순서였지. 불상사를 막으려면 말이야. 배키를 말하는 거야. 하지만 이젠 다 옛일이 되어 버렸군. 좀 쉬어.”

 “충분히 신세를 졌습니다. 가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자존심 한 번 멋지군, 르와 교도.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갈 데도 없잖아. 르와 교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도 알고 있다고. 그렇지, 벨즈?”

 보발이 난간을 잡고 일어났다.

 “우리는 같은 날에 태어났어.”

 도아가 벨즈를 보며 말했다. 독수리는 박쥐처럼 날개로 온몸을 안았다. 그러자 그 크기가 확연히 줄어들더니 난간 위에 있는 것은 놀랍게도 다람쥐였다. 다람쥐는 난간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사라졌다.

 “르와?”

 보발이 말했다.

 “틀렸어, 정령 같은 게 아니야. 르와 교도.”

 “제 말을 알아들은 겁니까?”

 “그래, 방금 네가 생각한 건 부두교의 르와였잖아. 그 정도 구별은 한다고 나도, 르와 교도.”

 보발은 뭔가 분한 듯한 표정이었다.

 “왜 그래?”

 “말끝마다 르와 교도를 붙이는 건 나를 조롱하기 위함입니까?”

 “설마.”

 “당신들의 정체는 뭐지요? 당신도 분명 평범한 인간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의 힘! 나를 구한 그 힘의 근원은 대체 무엇입니까?”

 “눈치챘어? 그래, 내가 널 구했지. 들개들에게서.”

 보발은 밭은기침을 하며 쓰러졌다.

 “이봐, 괜찮아?”

 보발이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그것이 그들의 정식 대면이었다. 그 후부터 보발은 도아와 함께 했다. 오십 년이 지났지만 머리가 세고 조금 늙었을 뿐이지 놀랍게도 보발은 노인이 아니었다. 그즈음 또 다른 배키를 만났다. 배키는 황소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배키는 벨즈에 의해 발견이 되었고, 도아가 제거했다.

 그때까지 보발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십 년 전에 소환된 배키가 야생에서 이제야 발견이 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백 년이 지났다. 도아는 벨즈가 숨바꼭질을 한 이유가 배키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배키의 힘을 사용하는 제사장, 즉, 주술사는 모두 죽고 없었다. 그건 절대적으로 분명했다.

 옛 생각에 빠졌던 보발은 비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탓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식은 커피를 마시면서, 르와 신자를 찾기 위해 떠났던 여행들을 생각했다. 도아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기 몇십 년 이후 그는 확고한 결론을 내렸다. 르와 교도들은 그날 기사들에 의해 모두 도륙당하고 불태워졌다.

 문득 보발은 오랜 친구인 벨즈를 생각했다. 옛 시기 벨즈는 그들의 사륜마차를 따라다니는 충직한 경호원이었다. 당시 그가 보기에 벨즈는 변신의 귀재였다. 물론 벨즈의 실체를 주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도아는 “네가 보고 있는 게 벨즈야. 벨즈는 벨즈일뿐이지.” 라고 말했다.

 보발의 입장에서는 벨즈의 정체가 도아의 정체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왜냐면 도아야말로 완벽하게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도아는 세상이 존재하면서 나타난 존재였다. 복잡할 것 없이 그것이 바로 도아와 벨즈의 정체였다. 그가 그 해답을 얻기까지 몇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와 처음 만났을 당시부터 도아는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부는 현재까지도 유효했다. 초능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들이 많아지는 만큼 그의 부도 자연스럽게 불어났을 뿐이었다. 그는 넓은 땅과 광산, 가축, 보석, 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바탕이 되어 현재도 막대한 돈을 가지고 있었다. 대저택의 지하에 수 톤의 금괴가 저장되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주인이 학생의 신분으로 확고하게 산 것은 백 년 정도 된 일이었는데 주기가 있었다. 매번 이상한 전학생이 되어 학교에 간 것은 아니란 소리였다. 주인은 배키와 더불어 움직였다. 배키 척살이야말로 도아의 소원성취라 할 수 있었다. 도아는 배키로부터 비롯된 많은 참상을 겪었고 그 전쟁터를 이겨내며 강해진 인물이었다.

 그중에는 중세시대 서유럽에서의 일도 있었다. 도아는 어디서든 친구 한 명은 있었는데 열한 살인 베로니카가 그런 아이였다. 양쪽 볼과 코에 주근깨가 있고 병자처럼 창백했던 베로니카는 도아를 오빠라고 생각하며 따랐다. 흑사병이 유럽 인구 수천만 명을 저승으로 내몰기까지.

 보발은 부모와 자식이 불신하고 이웃끼리 감시하며 죄 없는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던 그 시기의 참극을 잊지 못했다. 흑사병이 배키에 의해 시작된 것을 안 도아는 노발대발했고 즉시 색출에 나섰다. 한 살인자의 사형 집행일을 손꼽아 기다렸던 구경꾼들은 오줌을 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함이 있었는지 채 준비도 안 되었는데 위에서 칼날이 떨어져 와, 사형수의 머리를 단두대에 밀어 넣던 사형집행인의 양손을 댕겅 썰어 버렸던 것이다. 사형수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 땅에 떨어졌을 때 기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사형집행인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치 공포심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선지 사형장을 지키던 병사들의 검들이 공중에서 부딪혀 챙챙거리더니 사형집행인을 일격에 분쇄 시켰던 것이다.

 그 이후 배키에 의한 흑사병은 중지되었지만, 십자군 병사들이 동방에서 얻어온 흑사병 씨앗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했다.

 현실로 돌아온 보발은 순간 창가에 어린 인영을 발견하고 뒤돌아보았다.

 “도련님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 눈은 피곤한데 머리는 화창해.”

 도아가 하품을 했다.

 “따뜻한 차라고 한 잔 끓여 드릴까요? 도움이 되실 겁니다.”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지요.”

 보발은 금방 차를 타왔다. 먹기엔 뜨거워서 도아는 눈높이에 맞는 곳에 놓아두었다. 손잡이가 큰 크리스털 잔이었다.

 “뭐 하고 있었어?”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나하고 비슷하네.”

 “생각이 많으셨나 봅니다. 생각을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지나친 것은 안 좋습니다.”

 “맞는 말이야.”

 도아가 샹들리에 불빛을 받으며 섰다. 천장은 매우 높았다. 그는 컵을 가져와 마시려다가 코를 찡긋했다. 아직도 뜨거운 것이다.

 “벨즈와 만나게 될 거야. 느낌이 와.”

 “잘 됐습니다. 안 좋은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래.”

 도아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솔직히 느낌이 좋지 않아.”

 도아의 말을 들은 보발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왜 그래, 보발?”

 “도련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배키라고 하셨지요.”

 “배키…….”

 도아가 차를 한 번에 마셨다. 목이 아팠다. 그는 손가락을 끼고 있는 잔을 빙글 돌리다가 떨어트렸다. 잔이 와장창 깨졌다. 그는 잠시 그것을 보고 있다가 뒤늦게 인지한 듯 허둥댔다.

 “미안. 내가 치울게.”

 “제가 하겠습니다. 그냥 두시지요.”

 보발이 움직였다.

 “보발.”

 “말씀하시지요, 도련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도련님?”

 보발이 정중하게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보발은 기지개를 켜며 이 층 계단을 올라가는 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영원히 소년으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보발은 생각했다. 밤하늘에 번개가 갈라졌다. 세상이 일시에 밝아졌다가 검어지며 천둥소리가 났다. 그는 어질러진 걸 치웠다. 그러면서 나 역시 영원한 중년이군 하고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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