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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17. 폭증
작성일 : 18-12-18 07:51     조회 : 305     추천 : 0     분량 : 8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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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해? 답장 좀 줘.

 화수는 핸드폰으로 머리를 두들기며 다른 손으로는 달력에 엑스 자 표시를 했다. 검은 펜으로 엑스를 그은 것은 조용했다는 표기였다. 한 마디로 칼을 쓰지 않은 날이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의자를 발로 세게 밀었다. 쾅하며 책상과 부딪치자 그 위에 있던 녹차가 넘쳐흘렀다.

 아! 전화벨 소리!

 그는 전화를 받았다.

 “자기야 미안해.”

 그녀가 대뜸 말했다.

 “미안할 게 뭐 있어? 오늘 시간 돼?” “으, 응.”

 “목소리가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자기한테 할 말이 있어. 시간 돼?”

 “만나서 얘기하자.”

 그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둘은 단골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화수는 의자를 엉덩이로 밀고 앉았다. 약속 시간에서 오 분 정도 지난 뒤 그녀가 도착했다. 그녀를 발견한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깨를 드러낸 여친의 모습이 예뻤다.

 “어서 와.”

 그녀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간단하게 말하고 갈게.”

 “간다고?”

 “자기야.”

 그녀는 그가 봐주기를 바랐다.

 “보경아…… 너 표정이 왜 그래?”

 “우리 그만하자. 이쯤에서 헤어져.”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버버 했다. 그녀의 두 눈은 증오심을 담뿍 담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그래, 내가 잘못 했지? 평소에 잘못을 하고 살았어. 마음대로 네 연락을 모조리 씹은 적도 있었고…….”

 “그게 아니야. 솔직히 말할 게. 나 남자 생겼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딴 거 없는 거 알아.”

 “미안하지만 사실이야.”

 “거짓말!”

 “믿기 싫지? 난 자기한테 질렸어. 정말 질렸다고.”

 그가, 일어나서 돌아서는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 그녀가 뿌리치며 도끼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그녀의 냉소에 그는 얼어붙고 말았다. 그가 뒤늦게 카페 밖으로 쫓아갔지만 이미 그녀를 태운 택시는 뒤꽁무니를 뺀 상태였다. 그는 마음을 추스르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녹음된 자동 음성이 들렸다. 배터리를 분리한 게 틀림없었다.

 그는 발작적으로 웃으며 터덜터덜 걸었다. 사람들이 그를 피해 갔다. 손이 간지러웠다. 순간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했다.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며 굽어졌다.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나한테 이럴 거야?”

 그는 타일 벽을 주먹으로 쳤다. 손이 까져서 시렸다. 피를 닦으면서 세면 거울을 보았다. 물 얼룩 진 거울 속에 남자 친구가 아니라 살인자가 있었다. 그는 칼을 들고 멋대로 휘둘렀다. 그러다가 놓쳐서 칼을 던지게 되었다. 칼은 화장실 문에 느슨하게 박혔다가 타일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집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메시지 네 개를 더 보냈지만 역시 답변은 오지 않았다. 그는 초인종을 눌러 보았다. 벨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그는 얼른 숨었다. 차 한 대가 굴러 오더니 그녀가 내린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부모와 함께였다. 새로 생겼다던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훅훅 숨을 솎아내다가 그들 앞에 나섰다. 보경을 잔뜩 노려보면서. 그러고 보니 그녀의 왼쪽 손가락에 커플링이 있었다. 아주 멋들어지게도 값싼 다이아까지 박혀서는 킬킬거리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 뭐가 더 박혔을까. 그는 혀로 메마른 입술을 쓸었다. 어디에 뭐가 더 박힐 거리가 있을까.

 그는 이 느낌, 이 기분을 알고 있었다. 알고 보면 아주 오래전의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고모에 의해 강제로 아빠 면회를 갔다. 아빠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천사처럼 상냥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아빠를 죽이기로 결심했다(어떻게?). 하지만 대업은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가 다녀간 이후 아빠는 쓰레기 비닐 봉투를 꼬아 만든 줄을 이용해 목메 자살했다. 고모도 아빠의 결정에 동의했던 것이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데려갔던 것이다. 그 씨발년이. 아이러니하게도 머지않아 고모도 간암 투병을 하다 죽었는데, 그는 죽어가는 그녀의 얼굴에 대고 네가 잘못 산 이유를 찬찬히 설명했다.

 지금 화수는 그때의 간극을 느끼고 있었다. 죽이고 싶은 새끼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는 그 간극을.

 “누구니?”

 귀부인처럼 생긴 중년 여자가 딸에게 물었다.

 “친구야.”

 보경이 간단하게 말했다.

 화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 주먹이 갑자기 쫙 펴졌다. 그녀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나 잠깐만 밖에 있다 들어갈게.”

 보경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중년 부부에게 묵례를 했다. 중년 부부가 들어가는 걸 끝까지 지켜본 그는 불같은 것이 치미는 것 같기도 하고 꽁꽁 얼어붙는 것 같기도 하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보고 싶었어.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어? 우리 사이…….”

 “구질구질해.”

 “구질구질?”

 그는 처음 듣는 외국어인 것처럼 되뇌었다.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잖아. 자기랑 끝이라고 말했잖아!” “그랬지. 아무렴.”

 “그런데 왜 왔어? 여긴 왜 왔냐고!”

 그는 이가 갈렸다. 아까까지는 왠지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보았다. 자신이 정말 싫었다면 이렇듯 시간을 내지 않았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가만있어 보라는 듯 큰 동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자기야!”

 “자기야?”

 그의 얼굴이 굳었다.

 “나 지금 너무 짜증 나는 거 있지. 그 찌질남 있잖아. 전 남친! 걔한테 스토커 기질까지 있었나 봐. 어, 지금 같이 있잖아. 몰라. 짜증 나.”

 네 목이 그리 길었었나? 이햐, 맛있겠다. 그는 군침을 삼켰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의 멱을 따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단순히 생명을 끊기에 편리해서 만이 아니었다. 문 자리서 꿀렁꿀렁 빠져나오는 핏물을 빨아 마시며 얼마나 흥분했을까. 그 광폭! 그는 유혹에서 이겨나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뭐야?”

 그 주먹에 그녀가 과하게 놀랐다. 그녀의 전화기에서 낯선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말을 듣고 나온 격한 반응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주먹인데 뭐.”

 그가 히스테리적인 미소를 지었다.

 “날 때리고 싶다고? 그런 거였어?”

 그녀의 핸드폰에서 불이 꺼졌다. 귀에 대자 다시 불이 들어왔다.

 “그건 아닌데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건 절대로 아니야.”

 그의 음성이 끈적거렸다. 밤하늘에 있어야 할 보름달이 반 틈 쪼개져서 눈구멍 양쪽 깊숙이 박혀 있었다.

 “아니면! 아니면 뭔데? 소름 끼쳐.”

 “소름이 끼친다라…….”

 “그래! 내 앞에서 사라져 줘!”

 그녀가 허벅지 쪽으로 손을 내리자 핸드폰에서 다시 불이 꺼졌다. 핸드폰 반대편의 남자는 구구절절이 뭐라고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화수가 듣기에 그 개새끼라고 한 것도 같았다. 개새끼가.

 “보경아 날 좀 봐줘. 내 내면을! 보이지 않아? 여기, 여기! 우, 여기!”

 그의 내면에서 킥킥킥, 뭔가가 사악하게 웃었다. 그는 목에 힘을 주었다. 핏줄이 튀어나왔다. 손이 강시의 팔처럼 번쩍 들리려고 하는 것을 그는 이를 악물어 버텼다.

 “내면? 바로 그게 싫은 거야! 난 자기랑 사귀면서, 나중에는 즐거웠던 적이 거의 없었어. 자기는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만 행동했잖아? 자기 기분이 안 좋으면 나 같은 거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기다리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고! 내가 연락 씹으니까 어때? 어땠어?”

 “보, 보경아.”

 어땠기는, 씨발년이. 어려운 질문만 하고 있어. 걸레 같은 게.

 그는 오른쪽 손을 왼손으로 강하게 붙들었다. 오른손도 왼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려 했던 것이다. 마치 로봇 만화의 로켓 펀치처럼 그녀의 울대를 향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는 간신히 손을 달래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다. 그러자 바지 속에 있는 칼이 재잘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를 만나는데 굳이 칼까지 가져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고 칼이 묻는 것 같았다. 그는 습관일 뿐이라고 항변하고 팠는데 그게 그만 입으로도 튀어나왔다.

 “정신병, 뭐 그런 거 흉내 내는 거야? 어쩐지! 정신병자였어?”

 “난, 난 그냥 네가 보고 싶었어.”

 그가 미쳐버린 손을 다른 손을 이용해 복부에 꽉 붙들면서 말했다.

 “정신병자 맞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렸다.

 “잠깐……!”

 그도 쫓아갔다. 대문까지 다다른 그녀의 등판에 하마터면 날아 차기를 할 뻔했다. 대신에 그는 헤헤 웃으며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파랗게 질렸다. 달빛 아래서도 그게 그리도 선명했다. 그녀의 입에서 침을 흘렀다. 다리를 굴렸다. 손톱으로 전남친의 손을 할퀴었다. 눈깔을 파려 함인지 그의 눈썹을 더듬었다.

 “너 뭐야! 여보! 여보!”

 그녀의 엄마였다. 순간 그도 정신을 차렸다. 그가 손에서 힘을 풀자 그녀가 넘어갔다. 찰나였지만 그는 생명의 활기가 손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나는, 나는…….” 그는 절규를 삼키며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빵빵거리는 차를 무시하고 자전거를 탄 사람을 밀어 넘어트린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눈앞에서 넘어진 배달 오토바이를 지나쳐 가로수와 가로등 그리고 시공간을 넘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방 한가운데에서 두 눈을 뒤집은 채였고 이전의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아빠라는 새끼를 직접 죽였어야 했다.

 

 중형은 눈앞에 벌어진 잔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지는 무릎까지 접고 소매도 팔꿈치까지 접고 있는 그는 세면기 아래에 있는 배수구를 보았다. 물이 빠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끼고 아끼는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그는 수챗구멍을 채운 머리카락을 손톱으로 긁어냈다.

 그는 작업으로 돌아와 도막을 셌다. 모두 스물두 개였다. 도막을 비닐 봉투에 담은 그는 손에 비누를 칠하고 흐르는 물에 댔다. 붉은 기가 도는 물이 흘러내렸다. 대충 묶은 봉투를 밖으로 가서 무단 투기를 했다. 원래 같았으면 외딴곳에 버리거나 하루 이틀 보관했겠지만 오늘은 귀찮았다. 돌아오면서도 주위를 잘 살폈다.

 그는 냉장고를 열고 소주를 깠다. 한 잔 가득 따라서 안주 없이 마셨다. 그때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그는 가만 귀를 기울였다.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그는 귀를 팠다.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아직도 설치네, 이것들이.”

 이런 게 바로 노총각 히스테리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는 웃음을 머금었다. TV에서 보거나 과거에 있었던 우스운 일들이 생각이 나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고양이를 칼로 도막 낼 때도 그는 힘이 들지만 웃고 있었다. 웃음은 좋은 것이다. 모든 것의 활력소가 되니까.

 다음 날 그는 마트에 들렀다. 하지만 카운터에 있는 건 민경이 아니었다. 주둥이가 튀어나온 삼사십대 여자였다.

 “민경 씨는요?”

 그가 뚱하게 물었다.

 “민경 씨 오늘 휴무 날이에요.”

 그는 기분이 나빠져서 장바구니를 도로 놓고 마트를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캐셔가 말했다.

 그는 등 뒤로 인상을 팍 썼다. 안녕히 가기는 뭘 가라는 것인가 싶은 것이다. 꼭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갈 길을 가던 중에 갑자기 배가 아팠다. 그는 화장실을 찾아 한 빌딩에 들어갔고 당장에 화장실로 달려들었다. 바지를 내리자마자 설사가 펑펑하고 터졌다. 순간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마치 바로 앞에 고양이가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그는 뒤를 닦고 온 사방에 휴지 뭉치를 던져놓았다. 근심 탓에 인상이 좋지 않았다.

 야옹――

 그날 저녁에는 몸살이 난 것처럼 오한이 들고 열이 났다. 그는 잠을 자면서도 몇 번이나 깼다. 열 때문에 더웠지만 이불을 푹 덮었다. 그날 꿈에서도 고양이가 나왔다. 아침 늦게 일어난 그는 뜨거운 물을 연거푸 마셨다. 하루 자고 나니 좀 살만했다. 고양이 소리도…….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민경은 걸음을 멈췄다. 매일 지나가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왠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뒤쪽을 쳐다보았다. 혹시 중형이 있지 않나 했던 것이다. 사람이 있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빌라에 들어서자 또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현관문 앞에서 그녀는 시간을 끌었다.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왔다. 그녀를 지나 위층 계단으로 향했다. 그제야 그녀는 마음 놓고 번호 키를 눌렀다.

 그녀가 샤워를 하고 나오는 기막힌 타이밍에 핸드폰이 울려댔다. 이상한 예감을 받았지만 김빠지게도 스팸 전화에 불과했다. 순간 그녀는 놀라 베란다 문을 휙 보았다. 뭔가가 쓱 지나간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베란다 문을 열었다.

 ‘독수리?’

 독수리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독수리가 착지한 곳은 그녀가 사는 건물의 옥상이었다. 독수리는 총총 걷다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반원을 그리면서 땅에 떨어졌는데, 땅에 발을 내린 것은 고양이였다. 그러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중형의 눈에 띄었다.

 “이리 온. 나비야, 이리 와.”

 중형이 자세를 낮추자 옆구리가 타이어처럼 볼록해졌다. 푸르뎅뎅한 수염 자국과 깎이다 만 잔 수염으로 덮인 턱살이 접혔다.

 “이리 오라니깐!”

 그가 손을 내어 흔들었다. 극약을 넣은 음식이 없는 이상 고양이를 잡기는 불가능한 게 사실이었다. 독약을 먹고 죽어가는 고양이를 내려다볼 때의 쾌감이란! 그가 이리저리 가지고 놀아도 꼼짝도 하지 못하는 털북숭이 달리기 선수. 그를 그토록 괴롭히던 고양이가 아니었던가. 그는 일어섰다. 자세를 낮춘 고양이가 황록색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저게 감히!”

 그는 입만 움직였다. 고양이가 도망갈 수 있기에 큰 동작은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갔다.

 “가만있어라.”

 고양이는 꼬리를 휘휘 저었다. 검은 점박이가 있는 고양이였다. 털이 곤두선 꼬리는 검었다. 고양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학 질을 했다. 그가 삼 미터까지 다가갔는데도 고양이는 도망을 가지 않았다. 대신에 발톱을 내어서 헛발질을 했다. 그는 내밀었던 손을 얼른 거뒀다. 갑자기 고양이가 달아났다.

 그는 엉금엉금 고양이를 쫓았다. 왜 쫓고 있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두 발로는 안 되어서 택시를 탔다. 고양이가 사라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왜 택시를 타고 있는지도, 어떻게 내렸는지도, 정신이 없어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숨을 헐떡이면서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머릿속이 맑아졌을 무렵에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어느 다세대 주택가의 골목이었다. 건물의 벽만 있지 창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믿기지 않은 형상이 있었다. 오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만취를 했는지 헛구역질을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가만있다가 남자 쪽으로 몇 발 걸어갔다. 남자는 옆구리를 누르고 있었다. 손목이 이상했는데 다시 보니 끈적끈적한 피 때문이었다. 입고 있는 셔츠의 소매 안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봐요?”

 중형이 말했지만 자신의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사람 살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중형은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재현 프로그램이나 방송에서 보던 사람 살려 라는 말을 직접 들으니 웃겼다. 그럴 진데 유명인을 직접 보면 기분이 어떨까. 짱이지, 뭐.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건물주라고! 애비, 애미는 이혼을 하고 각자 살림을 차리고 산다네! 이거 먹고 떨어지라고 사 층 건물의 대장 자리를 하사했다네!

 “칼에 맞았어요. 구급차 좀…….”

 남자가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손목이 턱밑에서 구겨졌다.

 하지만 중형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거기 일일구죠?”

 구급차를 부른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다렸다.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핥으면서,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죽어가는 과정이 재밌어서 뒈지는 거까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건만 남자는 질겼다. 금방에라도 죽을 것 같은데 답답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기어이 구급차에 무사히 실렸다. 이 일을 계기로 중형은 몇 번이나 경찰서를 다녀가야 했다. 남자는 죽지 않았지만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할 것들이 생겼다. 어쨌든 남자가 입을 놀릴 수 있는 까닭에 중형은 용의자 같은 것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경찰서를 나오면서 중형은 모자를 꽉 눌러 섰다. 남자를 발견했을 때를 생각하자 서늘한 감정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좋았다. 고양이를 토막 낼 때와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전이가 전신을 감쌌다. 어쨌든 이제 경찰서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양쪽 입가가 확 벌어졌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돼지 새끼! 돼지 새끼가!”

 화수가 벽을 발로 찼다. 그는 씩씩거리며 가서 칼을 집어 들었다.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그의 뇌리는 중형의 혐오스런 몰골로 가득했다. 그는 전문가이기에 오십대 남자를 위한 수술이 완전하지 않음을 칼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돼지 새끼 하나가 뚜둥하고 등장하는 것이다. 돼지 새끼는 어딘가 덜떨어진 놈이라 킬러를 미처 보지 못했지만 그는 보았다. 그리고 재빨리 숨었다가 조용히 달아났다.

 “돼지 새끼!”

 그는 허공을 훅훅 찔렀다.

 “돼지 새끼야!”

 그는 헉헉거리면서 개켜 놓았던 이불 위에 쓰러졌다. 그는 마치 칼잡이들이 맹세를 하듯 칼을 높이 쳐들었다. 이것으로 돼지 새끼의 뱃가죽을 뒤집는 상상을 했다. 쭉쭉 찢을 것이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돼지 새끼 너는.”

 그는 중형과의 재회를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돼지 새끼. 돼지 새끼야!”

 위에서 층간 소음을 냈다. 그는 화답하는 의미로 거세게 소리쳤다. 돼지 새기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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