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
 1  2  3  4  >>
 
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16. 과정
작성일 : 18-12-17 21:45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903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도아는 원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우편물 도착 스티커가 붙은 입구 문은 고장이 나서 열려 있었다. 외부인인 그가 쉽사리 들락날락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백이 호 앞으로 가서 외시경에 눈을 대보았다. 그런 상태로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그는 미온에게 답 메시지를 보낸 뒤 건물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나 건물 밖으로는 나올 수 없었다. 덩치가 큰 남자가 입구 전체를 막고 서 있었던 것이다.

 “비켜 줄래요?”

 도아가 예의 있게 말했다.

 “그럴 순 없지.”

 중형이 도아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했다. 중형이 살진 얼굴을 들어 올리자 뒷목에 땀으로 번들거리는 비곗살이 접혔다. 짧은 손가락이 손바닥 안으로 말렸다. 그는 호빵 같은 주먹으로 벽에 기댔다.

 “너 누구야? 누군데 이백이 호 앞에서 서성인 거지?”

 “오호, 그것까지 봤다고요?”

 “그래 봤다.”

 “그냥 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랬죠.”

 도아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건방진 새끼, 웃지 마.”

 중형이 위협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입술이 그의 젖꼭지만큼 튀어나왔다. 터질 것 같은 손으로 벽을 툭툭 쳤다. 방금까지 물어뜯었던 탓에 손톱이 거의 남아나질 않았다. 도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꽤 심각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죠?”

 “너 몇 살인데?”

 “열여덟 살.”

 도아가 다시 말했다.

 “고등학교 이 학년이에요.”

 “열여덟? 그럼 한번 말해 봐라. 그녀하고 무슨 사이지? 동생은 아닐 거 아니야? 네까짓 게 그럴 수 없지. 존엄부터가 달라. 그녀는 내 거라고. 여신이라고.”

 ‘네까짓 게? 존엄? 내 거? 여신?’ 도아는 어이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요?”

 “뭐? 너 스토커야?”

 “스토커요? 그 말을 하면서 왜 눈빛이 흔들리죠?”

 “닥쳐! 네가 알 게 뭐야?”

 “스토커는 그쪽이 아닌가?”

 “뭐어, 아닌가? 이 새끼! 내가 왜 스토컨데?”

 중형이 침을 튀기며 말했다. 뱃살에 가죽 벨트가 파묻혀 있었다. 입 전체에 시퍼런 수염 자국이 있었고 입가에는 하얀 이물질이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비켜줄래요?”

 도아가 다가오며 말했다.

 중형이 두 팔을 뻗어 도아의 양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비키는 게 신상에 좋을 걸요.”

 위에서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내려왔다. 중형은 자리를 비켜 주었고 남자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갔다. 도아를 잡고 있던 중형은 자세를 바꿔 도아 뒤로 갔다. 그리고 한 팔로 목을 감았다. 힘을 주자 자연히 도아의 두 다리가 공중에 떴다. 도아는 캑캑거리며 중형의 팔을 찰싹 때렸다. 중형이 씩 웃었다. 하지만 금세 비명으로 바뀌었다. 도아가 슬리퍼를 신은 그의 발을 세게 밟아 버렸기 때문이다.

 “아저씨 완전 미쳤군.”

 상대하고 싶지 않아 도아는 왼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며 건물을 나갔다.

 “죽여 버릴 거야!”

 중형이 양팔을 뻗으며 빠른 걸음으로 쿵쿵 다가왔다. 젖가슴이 덜렁거렸다.

 “그대로 있어!”

 도아의 음성이 마치 동굴 속처럼 진동했다. 정체 모를 힘이 중형을 날렸다. 중형은 계단까지 특제 피자 판처럼 훅 날아가 부딪혔다. 계단 밑으로 구른 중형은 아파 죽겠다며 지랄발광을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떨어트린 안경을 주워 쓰다가 안경다리에 눈이 찔렸다. 그리고 비명을 깩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찔린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도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통이 가라앉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그는 현실 파악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무슨 초능력이라도 쓴 거야?’

 그는 누가 봐도 수상쩍은 얼굴로 계단에 있다가 한참 만에 이백이 호로 향했다. 문손잡이를 건드려 보았다. 민경이 마트에 있을 시간임을 앎에도 그랬다. 그는 손가락을 질겅질겅 씹었다.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급한 마음 탓에 마트로 가는 길에 크게 엎어졌다. 그걸 보고 웃음 많게 생긴 여자아이가 폭소를 터트렸고 그는 웩 소리를 질러 웃음을 울음으로 바꿔버렸다.

 막상 마트까지 왔지만 주변에서 뺑뺑이만 도는 그였다. 그는 오후까지 기다렸다가 그녀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마트에 들어갔다.

 “안녕하…….”

 민경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잠시 후 중형은 뜨거운 콧김을 훅훅 뿜으며 카운터 위에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계산을 하는 것을 뚫어지라 보면서 돈을 지불했다.

 “민경 씨 혹시 시간 되세요?”

 중형이 말했다. 싸움을 거는 듯한 말투.

 “아니요.”

 그녀가 눈을 내린 깐 채 냉담하게 말했다.

 “민경 씨 만나는 사람 있어요?”

 그녀는 대답을 안 했다.

 “고등학생 만나요? 미성년자요?”

 남직원이 카운터 쪽을 슬쩍 보다가 팀장을 발견하고 안심했다. 되도록 곁눈질을 자제하며 재고 조사 하던 걸 계속했다.

 “무슨 일이세요?”

 이 층 사무실에서 내려온 팀장이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중형이 말하며 물건들을 쓸어안고 마트를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민경 씨?”

 욱하는 기질이 있는 팀장이 열이 올라 물었다. 그녀가 사정을 대강 말했다.

 “잊어버려요, 뭐.”

 팀장은 그 말에서 그치지 않고 어쩌고저쩌고 쏟아내다가 세 시가 되자 그녀를 보내주었다. 이백이 호 문 앞에서 그녀가 번호 키를 눌렀다. 문을 닫고 들어가자마자 가스보일러를 켜고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했다. 머리를 묶은 그녀는 컴퓨터 책상에 앉아 독학사 책을 폈다. 끼고 있는 헤드셋에서는 남성 그룹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커피가 떨어질 때가 공부를 마칠 때였다. 그래도 한 시간가량은 책을 붙들었다.

 그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를 따라 들어온 나비 한 마리가 천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비는 마치 종이접기로 만든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났다. 그녀가 모를 만큼 베란다 문이 사르륵 열리더니 나비가 날아나갔다. 나비는 원룸 건물 밖 이면도로에서 흡사 물풍선에 물을 채운 듯 순식간에 자라난 두 발로 섰다. 도아였다.

 “벨즈, 오, 벨즈야.”

 그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향해 말했다.

 

 교탁에 선 담임은 음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말했다.

 “재성이가 며칠 안 나올 거야. 할머님이 어제 새벽에 돌아가셨다는구나.”

 담임의 계속되는 말을 아이들은 주의 깊게 듣고 있었지만 도아는 아니었다. 도아는 순간 실의를 느꼈다. 학교가 파하자 그는 보발의 차를 타고 재성의 집으로 향했다.

 “이젠 혼자 갈게.”

 “그렇게 하시지요, 도련님.”

 도아는 가정집의 대문을 열고 머리를 숙이며 들어갔다. 나무문 앞에 구겨 신은 단화와 구두 여러 켤레가 있었다. 도아는 나중에 알았지만 재성의 몇 되지 않는 삼촌들이었다. 재성은 도아의 방문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장례식은 속전속결이었다. 낡은 버스를 빌려 화장터로 가서 하루 만에 할머니를 화장하고 큰 삼촌이 뼛가루를 산에 뿌렸다.

 “난 네 힘이 부러워.”

 도아는 재성 쪽으로 눈을 돌렸다. 새파란 하늘을 같이 보고 있다가 재성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난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해. 그냥 바보 병신이야. 누가 때려도 맞기만 하고 내가 했던 말을 대놓고 과장하고 왜곡해도 아무것도 못 했어. 할머니가 없으니 이젠 진짜 고아야. 보육원에 있던 나를 키워준 친할머니는 이제…….”

 “그렇지 않아.”

 “몰랐구나? 나 고아야. 어렸을 때 부모님도 화재로 돌아가시고 그 반지하…….”

 “그럼 내가 뭐가 돼? 네 친군데. 베프 아니었던가?”

 도아의 말에 재성은 당혹스러워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진심이야.”

 “알아.”

 “거짓말이 아니라고.”

 “고마워.”

 재성이 눈물을 쏟아냈다. 할머니를 보내는 동안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강인한 아이였는데.

 “재성아?”

 삼촌이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영구차와 맞닥뜨렸다. 재성이 탄 버스는 띄엄띄엄 앉아도 반을 못 채웠지만 영구차를 따르는 차량은 많았다. 길 위에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재성은 차바퀴 밑으로 날아 들어가는 나뭇잎을 보았다. 시간이 걸릴지언정 언젠가는 거기서도 생물이 날 것이다. 꽃이 되었든 나무가 되었든 피어날 것이었다.

 삼촌들이 반나절 만에 모두 돌아가자 재성은 도아와 남게 되었다.

 “이 방이 이렇게 넓어 보일 줄이야.”

 재성이 썰렁해진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도아는 재성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중고 매장에서 들인 백팔십구 리터짜리 냉장고가 웅 하고 우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 컸다. 할머니가 누웠던 자리에 앉은 도아의 손에는 재성이 끓여 온 커피가 들려져 있었다. 하지만 도아는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다.

 “밖에 나갈까?”

 도아가 갑갑함을 못 이겨 말했다.

 

 도아는 그네에 앉아 있었고 재성은 밤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재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늘에 할머니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이다. 자연계의 힘이 지지직 지지직 서로 잡아당기면서 온화한 할머니의 웃음을 되찾아 준 것이다. 그것은 전류로 만든 도아의 작품이었다. 파란 빗금들이 빛을 내며 쉼 없이 밀치고 붙잡으며 할머니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저거 보기보다 무서워. 만지면 아야 하는 것만으론 안 끝나 거든.”

 도아가 말했다.

 “그런 말은 안 해도 되잖아.”

 웃고 있는 재성을 보자 도아도 기분이 좋았다. 두 사람의 얼굴은 전류에서 방사된 파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에 있던 사선들은 몇 분을 더 그렇게 지글대다가 아침이슬처럼 서서히 사그라졌다.

 “고마워 도아야. 기분이 훨씬 좋아졌어.”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생활 같은 거 말이야. 지금까지 무슨 돈으로 살았던 거야?”

 문득 도아는 병든 조모와 손자가 어떤 돈으로 먹고살았는지 관심 없었던 자신의 무신경이 놀라웠다.

 “달마다 정부보조금이 나와. 가끔 알바를 하기도 하고…… 보통 미성년자한테는 알바를 안 시켜주지만 운이 좋을 때가 있거든.”

 도아가 보기에 재성은 아직도 울적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까진 도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심리 치료사도 행복전도사도 아니었다. 이윽고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한 도아는 가로등 밑으로 걸어갔다.

 

 재성은 이틀 뒤에 학교에 나왔다. 수민은 재성을 보자마자 대뜸 힘내라고 열렬히 응원했다.

 “고마워, 수민아.”

 재성이 우물쭈물 말했다. 그런 재성에게 수민은 팔짱을 꼈다. 재성의 뺨이 붉었다. 도아는 자기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수민은 재성을 이끌고 도아 앞으로 왔다.

 “미션이야.”

 수민이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말했다. 팔짱을 아직 끼고 있어서 재성과 머리를 거의 맞댄 거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건넨 핸드폰 화면에는 도아도 아는 장소가 있었다.

 “이거 개국 마을에 있는 그 건물이잖아?”

 도아가 핸드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어? 아는 곳이야?”

 수민의 눈이 커졌다.

 “알지. 우리 집 근천데.”

 수민은 손뼉을 치기 위해 재성의 팔에서 손을 뺐다.

 “박수 좀 그만 쳐.”

 도아가 책상 밑으로 다리를 쭉 뻗으며 말했다.

 

 맹금류 한 마리가 마치 썩은 고기를 발견한 것처럼 창공을 뱅글뱅글 맴돌았다. 단단한 깃털이 박힌 긴 날개로 바람을 갈랐다. 새는 마치 꼬리 끊긴 가오리연처럼 뱅그르르 돌아서 건물 옥상에 착지했다. 강력한 발톱으로 옥상의 끄트머리를 움켜쥐고 차와 사람이 오가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맞은 편 아래에는 마트가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민경이 나왔다.

 이 층의 민경이 복도를 걷는 것이 검은 유리벽을 통해 보였다. 새는 날갯짓을 몇 번 하면서 사뿐사뿐 옆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건물에서 나오자 새도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비행선처럼 떠오른 독수리는 검은빛이 도는 날개를 몇 번 털더니 다람쥐를 쫓듯 그녀를 따라갔다. 빛을 쐰 박쥐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았다. 이윽고 그녀는 빌라로 들어갔고 맹금류는 전봇대 위에 외발로 섰다.

 다음 날 새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날개는 몸속으로 들어가고 대신에 앞발이 나왔다. 부리는 주둥이로 바뀌었다. 몸통이 길어졌고 귀가 뾰족해졌는데 긴 꼬리는 털로 뒤덮여 있는 둥근 형태였다. 붉은 여우는 잡목 너머로 걸어 들어갔다. 도아의 저택이 멀지 않은 장소였다. 여우의 이런 행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거였다.

 같은 시간에 도아는 책을 읽고 있었다. 고전 소설이었는데 퍽 읽는 재미가 있었다. 도아의 도서 방법도 재밌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책은 공중에 떠 있었다. 그가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속도에 맞춰 책장이 넘어갔다. 그는 머리맡에 있는 큰 컵을 입으로 가져가며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졸리지만 자기는 싫었다.

 그는 고급 호텔의 로비에 비견될 만큼 으리으리한 거실로 나갔다. 서재. 그가 하품을 하자 벽과 천장 끝까지 꽂혀 있는 구천이백 권의 책들이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나왔다 들어갔다가를 했다. 소설책이 둥실 떠올라 제자리를 찾아들었다. 그는 게으르게 거실로 돌아가 벽난로 앞 흔들의자에 털썩 앉았다.

 “잠이 안 오십니까?”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야?”

 보발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부터입니다.”

 “잠이 안 와서.”

 “그래도 잘 수 있도록 해야지요. 지각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까.”

 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도로 앉았다.

 “한 번도 지각을 해 본 적이 없네. 한번 해 봐?”

 “그 의견엔 반대하겠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도아가 일어났다.

 “양치질은 하셨습니까?”

 “네, 네. 엄마.”

 도아는 욕실로 갔다. 욕실 문은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욕실은 거의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다. 욕조에 있는 꼭지는 새것인 양 번쩍번쩍 빛이 났다. 그는 손도 대지 않고 치약을 칫솔에 짰다. 칫솔이 날아다니며 그의 치아와 혀를 닦았다.

 

 재성은 할머니가 없는 집이 익숙하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밤길을 걷는 습관이 생기게 한 원인일 것이다.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는 혹여 이 소리를 사람들이 들었나 해서 두리번거리며 배를 문질렀다. 빵가게, 커피숍, 패스트푸드점의 은은한 불빛이 좋았다. 커피콩 냄새가 났다. 그는 입가를 쓰윽 문지르곤 오천 원짜리 지갑을 열어 보았다. 몇천 원이 그가 가진 재산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세어 보다가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건널목에 선 그의 옆에 일반 브랜드 제품과 명품을 적절히 섞어 온몸을 휘감은 연인이 있었다. 초라해진 그는 고개를 숙이고 멀리 떨어졌다. 문득 도아가 같이 있어 줬으면 하고 그는 생각했다. 도아는 멋진 아이였다. 친구라고 소개를 할 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랐다. 함께 있으면 자신감이 생겼다. 선생님, 친구들,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도아의 환심을 바랐다. 재성은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그의 생각이 도아가 부리는 신비스런 마법으로까지 미치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혹시 외계인일까?’

 재성은 웃고 말았지만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마법을 부리는 소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에. 신호가 바뀌자 그는 건널목을 건넜다. 맞은편에 만두집이 있었고 그 주변 일대가 먹거리 촌이었다. 삼겹살집의 정문에는 대패삼겹살 일인분에 얼마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안을 쓱 쳐다보며 지나가면서 그는 군침이 넘겼다.

 그는 바지 옆 부분을 만졌다. 앞에서 또래 남학생들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재성을 지나쳤다. 핸드폰대리점, 약국, 이불가게, 통닭집, 당구장, 옷가게, 도시락전문점 같은 간판을 보면서 그는 침울해졌다. 저들은 모두 자신의 밥벌이가 있었다. 커서 어른이 되면, 과연 자신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는 암울하기만 했다.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 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받아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모퉁이를 돌았는데 갑자기 개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는 깜짝 놀랐다. 목줄을 끌고 다니는 거로 봐서 주인을 잃은 모양이었다. 주인은 금방 나타났다. 그는 생각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개를 데리고서 주인을 기다릴까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개 도둑으로 오인을 받았을 터였다. 도아라면 길 잃은 개를 돌봐주는 멋진 소년으로 보이겠지만 자신은 영락없이 개도둑 상이 아니던가.

 개 주인은 여대생 같았고 위아래 한 벌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문득 그는 체육복을 입은 수민이 생각났다. 수민도 여대생 못지않게 예뻤으니까. 수민과는 일 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다. 수민은 항상 남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아이와 모임 활동을 하는 것이 꿈만 같았다. 이것도 다 도아 덕분이 아닐까. 그 생각에 이르자 그는 못난 자신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도아는 미술에서 체육까지 모든 것을 완벽히 소화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과 비교하는 자체가 도아에겐 모욕일지 모를 일이었다. 집에 돌아간 그는 라면을 끓였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인상 좋은 연예인이 쇼프로에 나오고 있었다.

 

 중형은 땀을 뻘뻘 흘리며 냄비에 담긴 것을 입에 욱여넣었다. 라면, 탕수육, 만두, 떡볶이, 사이다 일 점 팔 리터짜리를 거의 흡입이다 할 정도로 먹어대고 있었다. 러닝셔츠가 몸에 짝 달라붙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냄비에 얼굴을 갖다 대자 안경에 김이 서렸다. 그는 안경을 다시 쓰며 볼록 솟아오른 오른쪽 뺨을 오물거렸다.

 “넌 내가 가질 거야.”

 그가 말하며 한쪽 엉덩이를 쳐들었다. 커다란 방귀 소리가 났다. 냄새가 독했다. 그는 큭큭 웃으면서 만두를 탕수육 소스에 찍어 한입 물었다.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그의 앞가슴에 떡볶이 양념이 져 있었다. TV에서 떠드는 것은 현재 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에 대한 것이었다.

 “나라면 저런 놈들에게서도 널 구할 수 있다고.”

 그가 또 힘차게 방귀를 뀌었다. 뭐가 좋은지 웃다가 트림까지 했다. 떡볶이를 숟가락으로 크게 뜨며 그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나도 이젠 결혼할 땐데 말이야. 이만한 외모에 이 정도 되는 키! 게다가 건물주라고! 건물주! 결혼해야 돼. 딸만 다섯 명을 낳을 거야. 딸 다섯 아빠가 되는 거지! 말 안 들으면 한 명 한 명 방귀를 먹여 줘야지. 얼마나 귀여울까.’

 요즘 그는 민경과 결혼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사실 결혼의 주된 주제는 성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런 상상은 그를 기분 좋게 했다. 그는 만두를 라면에 넣고 휘휘 저어서 면발과 함께 후루룩 먹었다. 아내가 생긴다면 꼴사납게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마주 보고 앉아서 방귀도 신나게 뿡뿡 뀌어 줄 것이었다. 민경은 배가 아플 때까지 웃겠지.

 “강민경, 넌 내꺼야.”

 이참에 그는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때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그는 씨 소리를 내며, 일어나기 위해 무릎 위에 두꺼운 팔을 얹었다. 고양이들이 싸우고 있었다. 귀에서. 나하고 또 한바탕 하자는 건가. 귀에서. 그는 베란다 쪽을 보았다. 칼은 거기에 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6 26. 끝 2018 / 12 / 20 264 0 5292   
25 25. 오후 2018 / 12 / 20 268 0 6974   
24 24. 목요일 2018 / 12 / 20 294 0 7183   
23 23. 겨냥 2018 / 12 / 20 273 0 8004   
22 22. 발톱 2018 / 12 / 20 331 0 8562   
21 21. 연쇄 2018 / 12 / 19 269 0 9131   
20 20. 배키 2018 / 12 / 19 267 0 10515   
19 19. 폐가 2018 / 12 / 19 293 0 7911   
18 18. 보발 2018 / 12 / 18 270 0 8599   
17 17. 폭증 2018 / 12 / 18 305 0 8581   
16 16. 과정 2018 / 12 / 17 269 0 9030   
15 15. 탐험 2018 / 12 / 17 292 0 8234   
14 14. 가출 2018 / 12 / 17 266 0 8099   
13 13. 통제 2018 / 12 / 16 280 0 7964   
12 12. 모임 2018 / 12 / 16 274 0 7544   
11 11. 모자 2018 / 12 / 16 273 0 7369   
10 10. 해갈 2018 / 12 / 15 280 0 6021   
9 9. 집 2018 / 12 / 15 277 0 9716   
8 8. 패거리 2018 / 12 / 15 269 0 6472   
7 7. 스토커 2018 / 12 / 14 291 0 8029   
6 6. 폭력 2018 / 12 / 14 292 0 6800   
5 5. 밤 2018 / 12 / 13 276 0 8770   
4 4. 여인 2018 / 12 / 13 268 0 7592   
3 3. 학교 2018 / 12 / 11 294 0 8839   
2 2. 살인자 2018 / 12 / 11 287 0 8567   
1 1. 소년 2018 / 12 / 11 472 0 1153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