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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15. 탐험
작성일 : 18-12-17 21:44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8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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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옆에 있는 재성을 쳐다보았다. 재성은 양쪽 가방끈을 잡고 있었다. 수민은 좀 늦었다. 보라와 소리는 모임에서 빠진 상태였다. 전에 폐공장에서 겪었던 괴현상 때문이었다. 수민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괴현상에 푹 빠진 상태였다. 폐가 몇 군데를 같이 다니면서 도아가 몇 번 서비스를 해주었던 것이다.

 도아는 마지막에 갔던 XX시의 폐가에서 빛을 터트렸었다. 그 빛은 마치 전구를 깨트리고 나와 진폭 하는 빛과 흡사했다. 갈기 같은 것을 휘날리며 백색의 빛은 진동했다. 그리고 펑 터졌다. 그들을 덮친 빛은 폐가의 빈방, 부서진 창문, 문에서 넘쳐 흘러나갈 정도였다. 수민은 그것을 유령의 사인이라 표현했었다.

 한 시간 반 후 그들은 축 늘어진 쇠사슬 앞에 있었다. 땅 주인이 출입구를 쇠사슬로 막아 놓은 것이다. 차는 막을지언정 두 다리가 전 재산인 사람에겐 글쎄였다. 그들은 쇠사슬을 넘거나 밑으로 통과해 폐건물로 접근했다. 폐건물의 진입로에는 험악한 인상의 나무들이 금방에라도 나뭇가지를 휘두를 자세로 음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폐건물은 여느 폐가들의 공통 현상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두웠고 습했으며 말라 죽은 복족류 같았다.

 “으스스하다, 그 치?”

 닭살이 오르는지 수민은 양팔로 안은 상체를 연신 들썩거리며 말했다.

 “조금.”

 재성이 굳은 얼굴로 도아를 돌아보았다. 도아는 두 팔을 내려놓은 채 을씨년스런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마당에는 나무와 길쭉한 잔디가 듬성듬성 깔려 있었다. 건물 입구에는 표석이 있었다.

 “들어갈까?”

 말은 수민이 했지만 앞장을 선 건 도아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쓰러져 있는 표지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이유는 몰라도 누군가 뽑아 와서 복도에 던져 놓은 듯했다. 표지판에는 한자와 한글이 같이 쓰여 있었다. 도아는 그것을 밟고 먼지가 맴도는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누가 다녀간 듯 문이 열려 있었다. 첫 번째 방이었다. 책상이 있었고 누렇게 변색된 서류 뭉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쇠로 된 장의 칸막이는 한 방향으로 휘어져 있었다. 방 전체에서 녹슨 쇠 냄새가 났다.

 다음 방에는 옷가지뿐 아무것도 없었다. 세 번째 방문은 닫혀 있는 것 같았는데 도아가 힘을 주어 밀자 열렸다. 서랍장이 쓰러져 있었다. 책들이 흩어져 있었고 창문에는 반쯤 찢어진 커튼이 달려 있었다. 네 번째 방으로 가는 길목에 흙투성이의 운동화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저게 뭐지?”

 도아가 말했다.

 수민이 비명을 질렀다. 신발이 공중에 두둥실 뜬 것이다. 도아의 장난이었다. 신발이 중력에 이끌려 바닥에 툭 떨어졌다.

 “너희들 봤어? 봤지?”

 수민이 호들갑을 떨었다. 재성은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당황한 연기를 어설프게 했다.

 “뭐였지?”

 도아가 능청을 떨었다.

 수민이 손가락 두 개로 신발을 들어 보았다. 으 하고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살짝 던졌다.

 “다른 방도 가보자. 뭔가 나올 거 같아.”

 수민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하지만 나올 리 없었다. 심심한 방들을 거친 그들은 옥상을 마지막 목표로 했다. 옥상 문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문틀에 거의 걸쳐 있다시피 했다. 도아를 선두로 옥상으로 나갔다. 신선한 공기가 훅 달려들었다. 이렇게 공기 좋은 데 오면 자신도 모르게 기지개를 켜는 사람이 있다. 수민도 그런 부류였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에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슬그머니 바깥을 내다보고는 호들갑과 함께 도아 쪽에 붙었다.

 “왠지 밑에서 귀신이 올려다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건가 봐.”

 “그래? 어디 다시 봐 볼래?”

 수민은 도아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는 입을 텁 막을 수밖에 없었다. 눈에 띄는 나무 중 제일 큰 것이 트위스트 춤을 추었던 것이다. 숱한 가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특히 큰 가지 두 개는 촉수처럼 유연했다.

 “저것 좀 봐.”

 그녀가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나무는 평범한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고, 재성은 수민의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았다. 놀라는 척도 어찌나 어설픈지.

 “잘못 본 거 아니야?”

 도아가 잘생긴 눈을 쓸데없이 예리하게 빛내며 말했다.

 “아니야! 진짜라니깐!”

 “그래?”

 “정말이야, 바보야!”

 “적절할 때 욕을 섞는군. 재밌는 능력이야. 어쨌든 모임에 들길 잘한 거 같아. 귀신이라니!”

 도아가 바지에 손을 찔러 넣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여긴 그렇게 유명하진 않아. 그래도 폐가를 찾는 방랑객이라면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라고.”

 햇볕에 당한 수민이 눈을 찡그리고 말했다.

 이십 년쯤 된 것 같은 양옥집이었다. 거실에는 이가 나간 피아노가 있었고 방에는 책상과 책장이 있었다. 몇 개의 집기는 싱크대 윗부분에 아직 진열되어 있었다. 싱크대 일부는 주저앉았고 흔히 폐가가 그렇듯 물건들이 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피아노 건반은 망치 같은 것으로 때려 부순 것 같았다. 깨진 액자에는 옛날에 살던 사람들의 사진이 있었다. 재성이 그것을 들어서 보자 도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할머니하고 손자가 살았나 봐.”

 재성이 말했다. 집에 있는 할머니 생각이 났다.

 “사진은 좀 찝찝하네. 나는 옛날 사진 보면 그렇더라.”

 도아가 말했다.

 “너도 그런 게 있었어?”

 수민이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벽지가 찢어지고 곰팡이가 슨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광등은 없었다. 구석마다 거미줄이 처져 있었고 장판 일부가 찢어진 곳도 있었다. 벽에 크레파스 같은 것으로 그린 그림도 보였다. 삼 분의 일쯤 열려 있는 창문에는 돌멩이 자국이 나 있었고 조금 찌그러진 창틀에는 유리가 떨어져 있었다.

 창밖의 정경은 역시 풀밭이었다. 마당에는 풀이 길게 자라 무릎 위까지 올라왔다. 잡풀 안에는 절구통과 자전거 바퀴가 파묻혀 있었다. 그녀는 다른 방에 들어갔다. 천장에서 거미줄이 내려와서 해먹처럼 매달려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볕에 먼지들이 그대로 보였다. 창틀 밑에는 물이 흘러 거무스름한 얼룩을 이루고 있었다. 삼 단짜리 나무 책장은 비틀려 있었다.

 “재밌는 곳은 아니군. 탐험을 하기엔 너무 작아.”

 도아가 말했다.

 “쉿! 아, 풀벌레 소리였네! 치, 애들아 여기엔 귀신이 없나 봐.”

 수민의 말에 도아와 재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재성은 눈을 굴리며 웃음을 참았다. 도아는 무표정하게 있을 따름이었다.

 

 재성은 교문을 올려다보았다. 빨간 교문이었다. XX초등학교. 사철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건물은 단층이었지만 두 동으로 되어 있었다. 폐교였다. 운동장에 깔려 있는 모래 곳곳 잡풀이 자라 있었다. 교실 앞 화단에도 풀이 무성했다. 건물은 노란 계통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는데 여기저기 껍데기처럼 칠이 벗겨져 있었다. 금이 간 곳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저기로 가 보자.”

 수민이 이끌었다.

 재성과 눈이 마주치자 도아는 눈썹을 올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복도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엇나간 곳이 많았고 그들의 발이 닿을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삐걱거리며 신음을 냈다. 신발장도 나무였다. 도아는 거기에 손을 얹어 보았다. 빼곡한 신발들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자 조용했던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복도를 뛰는 소년들이 보였다. 교무실에서 교사가 나와 무슨 말인가 외쳤다. 수민이 떠들자 도아의 상상이 뭉게뭉게 사라졌다.

 그들은 교실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앞문에는 희망반이라고 적힌 색바랜 초록색 팻말이 걸려 있었다. 칠판에는 성적인 장난이 되어 있었다. 칠판 위에는 태극기와 급훈 같은 것이 액자 처리가 되어 걸려 있었다. 책상과 의자 몇 개가 아직 남아 있었는데 뒤쪽에 쌓아두고 있었다. 뒤쪽 게시판에는 아이들이 그렸을 그림이 몇 조각으로 찢긴 채 걸려 있었다. 창가에는 연한 살구색 커튼이 처져 있었다. 재성이 가서 들춰보니 유리가 뿌옇게 되어 있었다.

 복도로 나온 그들은 복도 쪽 창문을 통해 교실을 보면서 걸었다. 학교가 작다 보니 학급도 하나씩이었다. 특이점은 없었다. 서무실이 보였다. 텅 비어 있음에도 시골 문방구처럼 작았다. 그다음은 교무실이었다. 유리가 덮인 교사용 책상이 디귿 자로 구도 되어 있었다. 교실처럼 태극기가 액자로 되어 걸려 있었다. 재성은 말없이 가서 제일 가까운 책상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매직이나 볼펜이 굴러 나왔다.

 “별것 없지?”

 수민이 도아 뒤에서 말하기에 재성이 끄덕거렸다.

 교장실에는 커다란 소파 세 개가 교무실의 책상들처럼 디귿 자로 놓여 있었다. 수민과 도아는 그 사이로 왔다 갔다 했지만 하나같이 앉기를 꺼려했다. 그런데 재성이 몸을 던지듯 풀썩 앉았다. 소파 가죽이 푹 꺼지더니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다.

 “선생님한테 일러야지.”

 수민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재성은 마치 진짜 잘못을 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아직은 그녀와의 접촉이 어색한 것이다.

 과학실에서 그녀는 환호를 했다. 실험 기구들이 거의 그대로였다. 그녀는 포르말린에 담긴 양서류의 사체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도아도 혀를 내밀었다. 진짜 싫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었으니까. 재성은 비커나 플라스크 따위를 만져댔다.

 “정말 날씬하다, 얘. 비결이 뭐니?”

 그녀가 한구석에 있는 인체 뼈 모형을 향해 말했다. 도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단상 근처에 있는 책상에서 녹이 슨 칼을 발견한 재성은 조금 놀랐다.

 “이거 식칼 아니야?”

 재성이 말했다.

 “생긴 게 희한하네.”

 도아가 손가락 두 개로 칼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가 생나무로 되어 있었다. 칼날은 두꺼웠다.

 “이런 거 모르니? 식칼인데, 주로 시장 같은 데서 팔아. 칼날도 새카매 원래.”

 “이런 칼을 쓴다고?”

 도아가 시소처럼 칼을 흔들며 말했다.

 “시골에서 이런 칼 많이 써. 할머니들 말이야.”

 “수민이 너희 할머니도 이걸 쓴다고?”

 도아가 수민에게 물었다.

 “우리 할머니는 말고. 요식업을 하던 분이라 일본 거나 독일 거만 쓰셔.”

 도아가 재성을 보았다. 물어보려다가 말을 멈추고 대신 교실의 둘레를 따라 걸어갔다. 수민 혼자서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재성은 이것저것 만져 보다가 칠판에 손바닥을 찍어 보았다.

 과학실을 마지막으로 한 건물의 탐험을 끝낸 그들은 다음 건물로 향했다. 교실들은 비교적 비슷했다. 맨 마지막 교실은 유치원 교실이었다. 바닥에는 카펫이 그대로 깔려 있었다. 담배 구멍이 뚫려 있었고 커튼에도 누군가 불로 태운 흔적이 보였다. 도아는 카펫 위에서 물러났다. 카펫을 밟을 때마다 먼지와 미세한 벌레들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건물을 나온 그들은 잔디밭에 섰다. 파랗고 분홍색에 녹이 슨 놀이기구들이 보였다. 야외 화장실도 있었다. 변기 따위는 없고 무엇이든 뻥 뚫려 있었다. 문은 나무였고 경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남녀 공용이었다. 수민이 치를 떨었다. 도아의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너무 불결했다. 그들은 잔디밭으로 나왔다. 화장실 뒤는 대나무밭이었다. 바람이 불자 대나무가 서로 몸을 촤르르 부딪쳤다. 벌써 주위에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까?”

 도아가 말했다.

 “그러자.”

 수민이 말했다. 재성은 고개만 간단히 끄덕였다.

 도시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도아는 보발의 차를 탔다. 차의 전조등이 검은 밤의 대기를 불태우며 발밑으로 도로를 빨아들였다.

 “오늘 즐거우셨습니까?”

 “그럭저럭 좋았어. 보발은 어땠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발의 눈이 룸미러에 짧게 지나갔다.

 “솔직히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도아는 좌석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말을 듣게 될지 몰랐다는 보발의 말이 도아로 하여금 과거로 회귀하게 만들었다. 그는 시속 육만사천 킬로의 속도로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내리꽂히던 십오 킬로미터 길이의 불덩어리를 떠올렸다. 신의 지팡이가 지면에 충돌하자마자 황, 이산화탄소, 석고 같은 독성 물질이 지구를 뒤덮었다. 해일이 해안을 덮치고 땅은 불길에 휩싸였다. 엄청난 먼지로 인해 햇볕이 차단된 지구에는 끝없는 겨울이 찾아왔다.

 공룡은 멸종했다. 더 옛날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도아는 무엇이든 먹어야 삶을 평화롭게 영위할 수 있었다. 그는 죽은 공룡에게서 살을 뜯어내 배를 채웠다. 마치 지구가 혹독한 배탈에 시달리던 그 옛날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던 지구는 어느 순간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귀의 장애를 안고 산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종은 그에게 있어 만물이 빚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반면에 좌절, 증오, 분노, 배반, 음모, 역병, 혐오감은 배키로 대변할 수 있었다. 배키가 처음 등장한 것은 원시시대 때부터였다. 배키는 인간과 함께 나타났다. 에이즈나 암처럼 끈질기게 인간에게 붙어먹으려 했다. 도아는 배키 사냥꾼을 자처했다. 그렇게 보면 도아는 일종의 의사이자 법관, 악의에 찬 짐승을 모자 안에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때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생물인지 몰랐어. 그렇다고 너희들이 없어지길 바라는 건 아니야. 난 너희들이 제일 좋아. 내 마음의 거의 대부분은 너희들한테 갔으니까.

 “피곤하네.”

 도아가 눈을 비볐다.

 “주무십시오. 제 운전이 거치신지요?”

 “안 자려고. 여기서 자면 집에서 잠이 안 올 거 아니야.”

 “그것도 그렇습니다.”

 순간 도아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앞유리창에 가 있던 시선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보발, 잠깐! 잠깐만!”

 끼익. 차에서 내린 도아는 처음에는 뛰다가 천천히 걸으면서 민경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녀를 앞질러 걸으며 의혹 어린 시선으로 그 얼굴을 보았다. 그가 걸음을 멈추자 그녀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녀가 눈길을 주었을 땐, 그는 열심히 하늘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벨즈…….’

 도아는 보발로 인해 민경이 겁먹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녀는 도련님을 따라 움직이는 검은색 차를 육중한 스토커가 모는 자동차로 오인했던 것이다. 얼마 후 도아는 차가 있는 곳을 알고 모델처럼 일자로 걸어왔다. 보발이 내려 문을 열어 주려는 걸 거부하고 뒤 좌석에 올랐다.

 “벨즈가 숨바꼭질을 한 이유가 있었던 거 같아.”

 “그게 뭡니까?”

 “배키.”

 “배키란 말씀이시지요?”

 “귀찮게 됐지? 벨즈를 본 거 같아. 그녀의 머리 위에 있었어. 그녀를 따라다닌다고나 할까.”

 “그녀의 집을 확인하시고 온 겁니까?”

 “그런 셈이지. 어떻게 알았어?”

 “오래 걸리셨기 때문이지요.”

 

 화수는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그는 학교에 있었다. 도아 일행이 다녀갔던 폐교였다. 그는 과학실에 있었다. 녹슨 칼을 뒤집어 보는 중이었다.

 ‘누가 다녀간 건가?’

 그는 칼로 다른 쪽 손바닥을 두들겼다.

 ‘경찰?’

 칼을 휘두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교탁에 박혔다.

 ‘경찰은 아니지.’

 절대 아니었다. 경찰이 여기를 기웃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는 많은 일을 했지만 한 번도 용의자로 지목된 적이 없었다. 참고인 조사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이방인이었다. 그는 괜히 핸드폰을 꺼내 봤다가 다시 품에 넣었다. 탁자 위에 앉아서 두 발을 흔들었다.

 이 칼은 그의 것이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주운 칼이었다. 집에서 보관하다가 여기에 처박아 둔 것이다. 이 칼은 쓰레기봉투가 불법 투기된 전봇대 밑에서 주웠다. 칼은 검은색 봉투를 뚫고 칼날만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는 홀린 듯 봉지를 찢어 칼을 꺼내려 했다. 그러자 고양이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그는 놀랐다가 돌연 황홀해졌다. 고양이 꼬리를 잡아 올렸다. 머리 없는 목구멍에는 핏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시간 한 번 빠르네.’

 그는 괜히 크게 웃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아니었기에 체력이 달렸다.

 ‘그땐 그랬지.’

 그도 이 칼로 고양이를 죽이고 싶었다. 새벽녘에 시끄럽게 울어대는 그런 놈들로. 하지만 고양이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 분양을 받는다거나 하는 짓은 취미에 없었다. 어찌 보면 사람을 죽이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이었다. 죽이고 싶은 다시 말해 좆같은 인간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테이블 밑으로 다리를 번갈아 가며 흔드는 채로 벌러덩 누웠다. 심심했다.

 

 민경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좀 마음이 가라앉은 것이다. 그녀는 아까 차를 탄 사람이 중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기고 나서 보니 영락없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처럼 된 것이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인터폰을 가만 응시했다. 그러고 있으면 방 전체를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가 훑고 가고 인터폰에서는 빨간 불이 깜박깜박 들어올 것 같았다.

 그녀는 어두컴컴한 베란다를 잠깐 봤다가 방안을 서성였다. 커피 한 잔을 더 끓이려다가 잘 시간인 걸 감안해 마음을 바꿨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보라색 핸드백을 걸어놓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독수리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는 꿈의 내용을 잊어버렸다. 그녀는 일곱 시 사십일 분에 출근을 했다. 지루한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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