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때가 잔뜩 묻어 더러운 바닥의 벽돌들은 본래 고급스러운 특유의 빛깔을 잃어버린 채였다. 낮이면 활기가 넘치지만, 밤이면 색기가 흘러 넘치고 질 낮은 농이 오가는 거리에서 우릴 감아오는 시선은 더럽기 짝이 없었다. 파란 빛깔의 그의 눈, 그리고 잿빛인 그의 빗자루 같은 머리 위에는 내가 언젠가 훔쳐다 씌워주었던 파란 모자가 자리했다. 조명은 약했지만, 그 사이에서도 그의 눈물어린 눈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난 가야했다. 품 안에는 나의 딸이 안긴 채였다.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는 그와 나에 아기는 곧 깰 것이고, 불만스럽지만 난 아이를 사랑했다. 나의 사는 이유의 전부, 아이를 끌어안고 단호하게 내뱉었다. 난 가겠어, 가야만 해.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연신 손으로 닦아 내리며 끅끅거렸다. 마음이 아려왔다.
이래서, 몰래 가려고 했던 건데.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맞아, 그랬다. 나는 그의 뮤즈였다. 너무나 별난 너는, 애정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는 내 삶을 사랑했다. 나의 표정 하나하나는 그의 영감이었다. 내 손짓은 그의 그림이 되었고, 아무도 사 주지 않는 그림을 본인만 만족해하며 너덜너덜한 벽에 걸었다. 단 한번도 사랑한다 소리 내어 말한 적 없지만, 그리고 너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모두 사랑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지만.
“응. 알고 있어.”
알고 있다. 너라면 나를 정말로 도와줄지도. 유별나고 무모한 너가 너의 세계를 전부 깨부수어 가며 지키고자 할 거 란걸.
' 너한테 바란 적 없다고 했잖아 '
' 난 바래. '
' 내가 어떻게 널…. '
' 알아. 전부 알아. '
그래서 내가 가는 거야. 안녕, V. 짧은 내 인사와 함께 난 돌아섰다. 문득 너무 서글퍼, 걸치고 있던 더러운 숄로 눈가를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