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는 앞의 두 좌석의 사이로 몸을 숙였다.
“본부에서는 블립스가 For Luciano와 대적하고 있다는 걸 최근에 입수했습니다. 사실 For Luciano는 본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높으신 분들은 블립스의 존재를 꺼려하고 있고, 현재 처분 명령이 내려 온 상태입니다.” 휴가 말했다.
연호는 손을 들어 인중에 갖다 댄 채, 생각에 빠진 건지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암흑 상태였기 때문에, 민환과 휴는 그를 알지 못했다.
“알고 계시듯이, 본부에서 원하는 방향과 다른 체제는 모두 처분되고 있습니다.” 휴는 어둠 속에서 연호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지치기라고 부르지?”
“··· 네.”
연호가 옅은 코웃음을 치며 묻자, 휴가 두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민환은 ‘가지치기’라는 단어에 자신이 어린 은호와 blood bones에 있을 때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겪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과분한 기억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민환은 자신이 겨우 찾은 보금자리가 사라지는 건 이제 싫었다.
“완전한 모습을 위해서 못난 것들은 모두 자릅니다.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습니다. For Luciano가 민간 기업으로 탈바꿈중인 건에 대해 말씀하셨죠. ··· 그건 본부에서 주도하여 시킨 것입니다.” 휴가 말했다. “사실 거의 동맹을 맺기 직전입니다. For Luciano에서 블립스의 처분을 권유했고요.”
연호는 휴의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최근 For Luciano와 blood bones의 동향이 겹치는 것 같더라니. 동맹은 의외의 정보였다.
유 환은 자신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니, 다휘의 일을 핑계로 아니 어쩌면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호는 자신들이 이번에도 한 걸음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는 이어서 계속 말했다.
“전 본부에서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명령도 3달 안에 수행해야 합니다. 블립스의 영향력이 적은 편이 아니라 3달의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 더 강해져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For Luciano를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지금 본부는 블립스에서 첩자를 심은 것을 모릅니다. 이제 패를 사용할 타이밍을 재십시오.”
연호와 민환은 동시에 단 한 명의 남자를 떠올렸다.
6년 째 유 환의 신임을 얻어서 최근 비서로 승진한 한 남자, 지 도하.
연호는 침으로 메말라가는 목을 축였다. 자칫하면 도하는 물론, 자신들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일이었다.
“··· 고려해보겠습니다. 내일 본부에서 나오는 훈련 일정에는 지장 없는 거죠?” 연호가 말했다. 그의 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어둠 속에서 전해지는 공기가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네.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애초에 오늘 본부의 목적은 위협 정도이니, 앞으로 더 독하게 마음을 먹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훈련은 제가 진행할 예정입니다.” 휴가 말했다.
그가 뒷좌석에서 양옆의 암막 커튼을 걷었다.
햇빛은 구름에 가려져 없었지만, 그래도 밝은 빛이 내부를 비추었다.
“그리고 앞으로 본부로 올리는 보고서는 실적이나 수익 등의 부분에 있어서 거짓으로 부탁드립니다. 하향해서요.”
휴가 들어오는 빛을 통해 민환과 연호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의 아주 청명한 푸른색의 눈동자가 감겨지는 눈꺼풀에 숨었다.
그는 입고 있는 정장 자켓의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서 연호에게 내밀었다.
“훈련 일정과 블립스 처분 시 간부들의 처리에 관한 서류입니다. 그리고··· 대체 현다휘가 누굽니까? 블립스에서 가린 정보로는 전 간부였던 남자의 동생이란 정보밖에 안 나옵니다만, For Luciano의 보스가 언급한 이름이라고 하더랍니다.” 휴가 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의문을 담은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와는 반대로 연호와 민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 내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저희가 보호 중입니다.” 연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러자 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차에서 내리려는 듯 손잡이를 잡았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호의 인사에 휴는 별 거 아니라는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였다.
차에서 내린 휴는 그가 있던 골목으로 곧장 향했다.
민환은 연호의 눈치를 살피며, 빛에게서 차를 감추던 장치와 커튼을 모두 열어젖혔다.
연호는 좌석의 가죽 등받이에 몸을 편하게 기댔다.
암살부의 간부들을 포함한 모두의 바램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코앞에 닥치게 되었다. 그러나 두렵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창밖에 내리는 빗속 풍경을 바라봤다.
저 멀리 보이는 번화가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평화롭고 안전해 보이는 분위기에 그는 함께 마음이 안정을 찾는 기분이 들었다.
“민환아.”
“네, 형님.”
연호는 고개를 반대로 돌려서 민환의 두 눈을 바라봤다. 항상 예쁘다고 칭찬하던 민환의 눈은 지금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500명이 넘는 조직을 이끄는 보스야.”
“·· 예.”
“하지만 한 번도 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가족 같아.”
“··· 네.”
“그래서 나는 이성적이여야 해. 내 판단 하나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니까.”
“·· 네. 하지만··· 너무 부담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간부들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형님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민환은 연호의 두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연호의 입꼬리는 호선을 그렸다.
답을 정해놓고 말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민환은 그런 충신이었다. 그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두 눈을 감았다.
민환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옆에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커다란 나무이다.
“출발하겠습니다. 본부로 바로 가실건가요?”
민환이 차에 시동을 걸면서 그에게 물었다.
“··· 아니. 근처 디저트 가게에 들렀다가 가자.” 연호가 말했다.
* * *
bloody ellipse의 본관은 중앙의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양 옆의 복도가 있다.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의 복도와 오른쪽의 복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무실과 집무실이 늘어져 있다.
연호의 집무실은 본관 꼭대기 층의 오른쪽에 위치했고, 도담의 집무실은 꼭대기 층의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도담의 집무실은 -간만에 자리를 비운 연호 덕에- 간부들이 있었다.
“내가 다 모이라고 하지 않았나? 백기준은 어디 갔어.” 도담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면서 모두를 둘러봤다.
연호의 집무실과는 달리, 긴 다리의 책상과 의자에 앉은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담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앉은 호수가 생각났다는 듯이 짧은 탄식을 흘렸다.
“아. 선배라면 다휘 누나에게 가 있습니다.”
“··· 왜지?”
“누나가 불렀다고 그러던데. 그리고 자기는 회의에 별 필요 없을 것 같대서요.”
그의 이름처럼 깊은 눈매를 가진 호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도담은 무언가 신경에 거슬리긴 했지만, 다휘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장 상석에 앉아서 서류를 넘겼다.
“그럼 시작하지. 가장 먼저 너희 셋 출장 다녀온 거. 진탁이 보고하기로 했지.”
“아, 어. 일단 여기 보고서··. 그리고 살펴보기로 한 조직은···”
이어서 진탁의 긴 설명이 시작되었다.
그의 말에 간간히 우목이 부가 설명을 덧붙였고, 로이드는 회의 일지를 쓰고 있었다.
호수는 지루한 시선으로 진탁과 우목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멍 때리고 있기도 했다.
최근 일이 없어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선우는 허리를 꼿꼿이 핀 자세를 유지하면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이 넘게 흐르면서, 회의는 길어지고 있었고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가 도담의 집무실을 향하고 있었다.
벌컥 하고 열린 문 사이로 은국이 들어왔다.
“···?”
그는 비를 몽땅 맞고 온 건지, 홀딱 젖어있었다. 은국은 물기가 떨어지는 걸 신경 쓰지도 않는 건지 곧장 도담의 곁으로 걸었다.
“홍도담.”
“왜?”
도담은 은국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회의는 잠시 중단되었고, 모두의 시선은 은국을 향해 있었다.
그가 입은 정장의 곳곳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아···. 차연호, 어디 갔어.”
“본부에서 나온 놈한테 For Luciano 정보 들으러. 서민환이랑 같이 나갔다. 왜?”
도담의 대답에 은국은 정장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물기로 가득한 손으로 종이를 펼쳐 그의 앞에 올려놓았다.
“이게 뭔··· ···.”
도담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었다.
“blood bones의 칙령이 내려올 때 쓰는 저 도장. 내용은 bloody ellipse의 처분 명령. 그게 왜 15위인 조직에서 발견되었을까?” 은국이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종이를 부라리고 있었고, 앙다문 입술에서 그가 숨기고 있는 분노가 느껴졌다.
은국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bloody ellipse의 연호를 제외한 간부들은 모두 blood bones에서 전입되어 왔기 때문에, 본부에 대해서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국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눈엣가시로 여겨서 16대 보스이자 연호의 삼촌인 차 근혁의 암살을 유도했고, 이제는 17대 보스로 부상한 연호의 입지가 점점 커지자 제압하려 드는 것이었다.
그것이 본부의 방식.
“··· 그리고, 현다휘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었어.”
이어지는 은국의 보고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집중되었다.
“로이드. 현다휘의 정보를 기밀로 올린 거 맞아?” 은국이 고개를 돌려 로이드를 바라봤다.
로이드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부 수장이 되자마자 바로 처리했고, 보스께서 휘원에 대한 것도 지시하셔서 같이 기밀로 올렸어요.” 로이드가 대답했다.
도담은 칙령서를 들어 올렸다. 아무리 봐도 그 명령은 본부에서 직접 15위의 조직에게 내린 게 확실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우목을 바라봤다.
“··· 당장 차연호에게 연락 해. 상황 설명을 간단히 하고, 최대한 빨리 복귀하라고.”
“·· 응.”
우목이 핸드폰을 손에 쥐고, 도담의 집무실을 나갔다.
비는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모두 저마다의 생각에 골치를 겪고 있었다.
bloody ellipse는 가시밭에 놓인 좋은 먹잇감으로 인식되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