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니? 어서 오너라.”

　“안녕하세요, 할머니.”

　도아는 방에 들어가 앉았다. 가방을 먼저 내려놓은 재성이 도아 것도 받아주었다. 재성은 할머니의 다리를 자신의 양반다리 위에 올리고 주물렀다. 도아도 다른 쪽 다리를 주물렀다. 도아의 입장에서는 다소 해괴한 경험이었다. 친구 집에 올 때마다 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싫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운동 개념이었다.

　할머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 그거 건강에 해로워요.”

　도아가 말했다.

　“열일곱 살 때부터 피우던 건데 지금 끊는다고 나아지는 게 있겠니. 나도 내일모레면 팔십 셋인데.”

　“그것보다는, 담배를 끊으면 몸도 덜 아프지 않을까요?”

　“잠깐 끊어 봤는데 살만 찌지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더라.”

　도아는 낙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재성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재성이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머니는 절대 남의 말을 안 들으셔.”

　재성이 말했다.

　도아가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쭈글쭈글한 입에서 담배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도아는 담배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을 참았다.

　“도련님?”

　도아는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평선 위로 풍성한 황금빛의 뭉게구름이 가라앉아 있었다. 새 떼가 서쪽으로 날아갔다.

　“도련님?”

　보발이 점잖게 말했다.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에서 윤기가 흘렀다.

　“응? 보발.”

　도아는 하늘을 보는 채로 말했다.

　“이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발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가야지.”

　도아는 차에 탔다. 보발이 문을 닫아 주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도아는 팔꿈치를 열린 차창 바깥으로 걸쳤다.

　“보발은 몇 살이지?”

　“마흔셋입니다.”

　“진짜 나이 말이야.”

　의아스러워하는 보발의 두 눈이 룸미러에 나타났다. 도아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오백사십 셋입니다.”

　보발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벌써 그렇게 됐군.”

　“시간이란 덧없는 거 같습니다.”

　“가끔은.”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곧 죽을 거 같아.”

　“누가 말이지요?”

　“재성이 할머니.”

　초능력으로 그녀를 치료해 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삶을 예로 들자면, 도아가 할 수 있는 건 약간의 재생 능력이었다.

　“재성 군이라면 도련님의 짝 말이군요.”

　차가 우회전을 했다. 가로등과 노파, 어린 손녀, 수레를 끄는 남자, 중년 여자가 울고 있는 전화부스가 지나갔다.

　“그래.”

　도아의 손짓에 차내 등이 켜졌다. 도아가 손을 왔다 갔다 하자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며 깜박거렸다. 차의 라디오가 켜졌다. 주파수를 몇 개 거치다가 꺼졌다. 차 안에 침묵이 찾아들었다.

　“보발?”

　“네, 도련님.”

　“보발은 피곤하지 않아? 매일 내 수발을 들어야 하잖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보발이 섭섭해집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

　“저도 압니다. 그리고 도련님의 시중을 드는 일은 제겐 무엇보다 기쁜 일입니다. 벌써 오백 년이 넘도록 해오던 일이 아닌지요?”

　“그랬지. 시간이 참 빨라.”

　도아는 천구백삼십삼 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때는 미국의 대공황 직후였다. 실직자는 수백만 명에 달하고, 빵을 배급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은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 시기에 《킹콩》이 개봉했는데, 지금도 도아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다.

　미니어처를 이용한 스톱모션 기법과 블루 스크린을 이용한 방식으로 창조한 괴수 영화는 관객들을 경악시켰고 거기엔 보발도 있었다. 도아는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보발을 발견하고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이후에는 어떤 영화를 감상하더라도 보발은 세상 편하게 되었다. 특히 도아의 기억에 남는 건 미녀를 한 손에 쥔 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기어오르는 킹콩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제일 강렬한 기억은 보발의 우스꽝스런 표정이었지만.

　“도련님 요즘 많이 힘드십니까?”

　“왜, 그렇게 보였어? 힘든 거 하나 없어. 그냥 몇 가지를 좀 생각해봤을 뿐이야. 그중에 보발도 있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해봤어. 보발이 자유로워지면 어떻게 될까 하고.”

　“저는 이미 자유로운 몸입니다.”

　“그래?”

　“물론이지요.”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알았어.”

　“감사합니다.”

　“내가 고맙지.”

　일요일 날 아침, 도아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동안 보기만 했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을을 향해서였다. 보발의 차를 타도되지만 왠지 걷고 싶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우뚝 멈춰 섰다. 길옆에 개국 마을이라고 나무 표지판으로 되어 있었다. 길을 따라 들꽃이 피어 있었다. 마을 주위에는 논밭이었다. 뒤에는 산이었다. 집은 몇 채 되지 않았고 기와가 있는 지붕이며 거의 비슷했다.

　그의 이목을 끄는 것이 있었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큰 건물이었다. 사 층이나 오 층 정도 되어 보였고 산기슭에 있었다. 폐건물 같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선 그는 대나무밭을 지났다. 그는 마을에 나 있는 비좁은 콘크리트 길을 따라 걸었다. 집들엔 대게 감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높이가 이 미터가 채 안 되는 페인트칠한 벽 밖으로 가지 하나가 새치처럼 삐져나와서 늘어져 있었다.

　개 소리가 들렸다. 외양간이 가까운 데 있어 짐승 냄새가 났다. 할머니가 볕을 쬐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혹시 나를 알아본 건가 했지만, 옛 처녀 중 하나였던 노파는 수십 년 후에도 여전히 십대 소년인 낯선 청년에게 호기심이 들었을 뿐이었다. 아무렴 젊은이는 시골에서 주목을 받는 법이다.

　“안녕하세요?”

　그가 말했다.

　“학생인가?”

　“음, 네. 고등학생이요.”

　그가 굳이 말했다.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게야?”

　“아니요.”

　“길을 잘못 든 겐가?”

　“아니에요.”

　“그러문?”

　할머니의 뽀글 파마가 그에겐 재밌었다.

　“저기에 살아요, 전.”

　그가 손가락질을 했다. 대저택도 거기서는 조그맣게 보였다. 할머니는 가만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다가 말했다.

　“도시에서 왔니?”

　“저 집에서 살아요.”

　“도시에서 왔어?”

　“저 집이요.”

　할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학생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남? 우리 집에 가서 전구 좀 갈아줘. 불이 나갔는데 부탁할 사람이 없어.”

　그는 할머니를 따라갔다. 마루에는 파리가 덕지덕지 붙은 끈끈이가 늘어져 있었다. 그는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갔다. 방에서 노인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나서 그는 조금 힘들었다. 마루에서 본 마당은 풀밭에 가까웠다. 오래된 장독대가 보였다. 그 옆 수돗가에는 물이 반쯤 담긴 양동이가 있었다. 세숫대야에도 물이 있었다. 수도의 물이 제대로 잠기지 않아 한 방울씩 양동이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손짓을 하자 동심원을 그리던 물길이 잠잠해졌다.

　그는 나무 의자에 올라가 형광등을 갈아 끼웠다.

　“고맙네, 고마워.”

　그는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가 한 양옥집을 지나칠 때 밀짚모자를 한 노인이 얼음 땡 놀이를 하듯 동작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이윽고 도아는 폐건물이 있는 데까지 다다랐다. 건물은 사 층이었고 창문이 여러 군데 깨져 있었다. 발밑에는 잡풀과 큰 돌멩이 천지였다. 예전에는 단단했겠지만 지금은 철문이 있으나 마나 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열린 철문이 삐걱거렸다. 그는 한동안 건물을 보기만 하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도아는 새삼 놀랐다. 삼 학년 네 명이 괴한에게 공격을 당해 셋이 죽고 한 명은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김범식, 이동권, 강성민, 김민이었다. 그중 범식, 성민, 김민이 비명횡사를 했고 동권이 병원에 있었다. 원래부터 넷은 학교에서 유명 인사였다. 학교의 지배자이기에 일 학년까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아침부터 경찰이 학교에 다녀갔다. 물론 관련 사건 때문이었다. 아이들 몇이 교사가 보는 앞에서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중에는 재성도 있었다. 재성은 경찰이란 말에 어쩔 줄 모르다가 범식 일행이 죽었다는 말에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범식들의 사고는 온종일 학교를 시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도아는 수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할 말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게 뭘까 하다가 그도 잊어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가 먼저 다가왔다. 도아는 앉은 채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등장에 재성은 다소 난감해 했다. 시끄러운 교실. 주번이 흐느적 가서 칠판을 닦았다. 누가 장난을 치는지 고무줄이 날아다녔다.

　“도아야 우리 모임에 가입해 줄래?”

　“모임이라니?”

　도아가 재성을 보았다. 재성은 책상만 보고 있었다.

　“이름하여 폐가 탐험대! 농담이고 폐가 체험하는 모임 같은 거야. 그런 거 많이 들어봤지? 전국의 소문난 폐가들을 체험하는 거지. 나 진짜 하고 싶어. 도아 넌 어때?”

　“근데 왜 내가 필요하지?”

　“필요한 게 아니라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녀의 친구가 그녀 옆에 와 팔짱을 꼈다. 친구의 표정으로 보아 모임과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피곤한 일 같은데.”

　“절대 아니야, 절대!”

　“남자들의 역할은 짐꾼이잖아?”

　“아니야! 여긴 남녀평등의 공간이라고! 도아 넌 무조건 우리 모임에 들어야 해! 주최자인 내가 강력 추천하는 인재란 말이야.”

　“재성아 넌 어때?”

　“나?”

　재성은 필요 이상으로 놀랐다. 재성이 난처해 하며 말을 돌리려 했다.

　“잘됐다. 재성이 너도 우리랑 같은 모임에 들어. 너희 둘 친하지? 같이 하면 되지 뭐.”

　재성의 얼굴이 빨갰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 버렸는걸.”

　도아가 말했다.

　“회원 모집 끝!”

　그녀가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볼 일 없다는 듯 돌아갔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폐가 탐험 주최자가 되기로 한 이유 중 큰 부분에는 도아가 있었다. 공포 체험이라는 순수한 목적이 사 점 오고 도아와 친해지려는 목적이 오 점 오였으니.

　방과 후에 교문을 나서는 길이었다. 도아는 재성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말 못했는데 경찰이 뭐래?”

　도아가 물었다. 재성이 말해주었다.

　“너 놀랐겠네.”

　“솔직히 충격적이야. 그 형들이 죽다니.”

　“그래도 한 명은 살아 있잖아.”

　“넌 놀라지 않네.”

　놀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도아는 심드렁했다. 만약 상대가 도아가 아니었다면 너 사이코패스 아니냐고 재성은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게. 별로 놀랍지가 않아. 넌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그냥 무서워서. 기분이 이상해. 불쌍하기도 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칼에 찔렸대.”

　이 학년 여학생이 미처 앞을 못 보고 둘 사이로 부딪히며 지나갔다.

　“집에 가면 또 할머니 다리부터 주무를 거야?”

　도아가 분위기를 바꿨다.

　“그래야지. 요즘 할머니가 많이 좋아지신 거 같아.”

　“잘됐네.”

　교문 위에 까마귀가 앉았다. 도아는 벨즈가 아님을 바로 알았다. 그는 웃을 뻔했다. 세상에는 재성이도 많고 벨즈도 많았으니. 누가 돌멩이를 던지자 까마귀가 깍 하고 날아갔다.

　“네 덕인가?”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할머니가 널 좋아하셔.”

　“고맙다고 전해줘. 직접은 말고. 간접적으로.”

　“응, 해볼게.”

　도아는 짐짓 놀란 듯 재성을 보았다. 대답을 들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아는 전화를 끊었다. 수민이었다. 그는 오늘 처음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그녀는 진작 그의 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모임에 대해 열성적이었다. 반면에 그는 전화를 끊고 난 뒤에야 모임에 대해 제대로 생각했다.

　‘재밌을까?’

　다음 날 학교에서 그녀의 따짐을 받는 도아.

　“어쩜 남자애가 전화를 그렇게 받니? 그러면 여자한테 좋은 점수 못 받아요.”

　“매너를 논하는 건가? 난 최선을 다했는데?”

　그의 말에 그녀의 친구들이 웃었다.

　“너 걔랑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일 학년에 걔.”

　“미온이?”

　“잘 안 되지?”

　“어떻게 알았지?”

　“네가 하는 것만 봐도 딱 알지.”

　그녀가 땅콩을 놓는 시늉을 했다.

　“난 최선을 다하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웃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 같지가 않은데요?”

　그녀의 말에 그는 눈썹만 위로 움직였다.

　“그건 그렇고 우리의 첫 폐가는 어디가 좋을까? 생각해 둔 곳 있어?”

　“그런, 갑자기 나한테 물으면.”

　“어쩌라는 거지? 걱정 마, 다 생각해 놓은 데가 있으니까.”

　그녀가 그의 말을 대신 받은 뒤 덧붙였다.

　그는 양 손바닥을 내보였다.

　“멤버는 누구야?”

　“나랑 너, 재성이, 사 반의 이보라, 일 반의 장소리 이렇게 다섯 명이야.”

　“꽤 많네.”

　말을 하면서 그는 옆에 앉은 재성을 보았다. 재성은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만지며 줄곧 듣고만 있었다.

　집에 가는 길. 차 안.

　“도련님이 그런 걸 하시겠다고요?”

　보발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왜 이상해?”

　“그런 건 아닙니다만 어울리지 않기는 하군요. 하지만 저 보발은 기쁩니다. 교우 관계도 원만하신 듯하니 말입니다.”

　“이제껏 의심했던 거야?”

　그가 진심과는 상관없이 엄하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보발 이러기야?”

　둘은 웃었다.

　첫 폐가 탐사는 대구에 있는 양말 공장이었다. 도아는 셔츠 위에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재성과는 약속 장소에서 만나 대구까지 버스를 탔다. 보발의 차는 일부러 타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수민 일행을 만났다. 이보라는 키가 컸고 장소리는 작았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마지막으로 택시를 탔다.

　“공장 찾는 기제?”

　택시기사가 말했다. 택시기사는 익숙한 듯 차를 몰아서 도착지에 세워주었다. 차에서 내린 다섯은 잠깐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했다. 그들 앞으로 폐공장이 있었다. 꼭 시골에 있는 학교 건물 같았다. 밖에서부터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바람이 불자 쇠 냄새 같은 것이 났다. 건물 안에는 깨진 유리와 자재 더미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보라의 발에 밟혀서 유리가 잘게 깨졌다.

　“안 다치게 조심해.”

　도아가 팔을 아래로 휘두르며 말했다.

　머리 위로는 일정한 간격마다 기다랗고 녹슨 못이 솟아 있었다. 원래 천장이 따로 있었는데 일부러 뜯어냈거나 한 것 같았다. 온통 거미줄투성이였다. 저쪽에 양말이 애벌레 산처럼 모여 있었는데 오래된 먼지 냄새가 지독했다.

　“여기서 귀신이 그렇게 자주 나온대. 목격담 진짜 많아. 혼자 있으면 귀신이 우는 소리도 들리고 그런데.”

　수민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겁을 먹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도아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아닌 척하지만 재성은 정말로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보라와 소리는 서로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앞에서 먼지가 부옇게 날아다녔다.

　“진짜라니깐.”

　수민이 노려보며 말했다. 발밑의 패널을 밟았다. 도아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미끄러질 뻔했다. 원정대는 수민과 도아, 보라와 소리, 재성 순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재성은 눈을 굴리며 그들과 떨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기름때가 잔뜩 끼고 거미줄로 세수를 한 낡은 자재들이 유령 경비병처럼 그들 옆에서 지나갔다.

　창문이 깨진 곳에는 유리가 비뚤비뚤한 송곳니처럼 솟아 있었다. 그 밖에서 길쭉한 풀들이 바람결에 억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도아는 개국 마을에서 보았던 폐건물이 생각났다. 오래돼서 겉칠이 벗겨진 알루미늄 캔을 밟은 그는 발로 쓸어내서 치웠다.

　순간 무슨 둔탁한 소리가 났다. 보라가 비명을 질렀고 소리는 제자리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공장 전체의 창문에서 유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양말들이 막 건져 올린 그물 속 물고기처럼 천장까지 튀었다. 공중에서 나풀나풀 떨어져 내렸다. 도아만 빼고 모두 밖으로 도망쳤다. 도아는 그런 줄 알았는데 재성이 뒤를 쳐다보는 자세로 멈춰 서 있었다.

　“도아 너지?”

　재성이 말했다. 얼굴은 거의 울상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