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다 하마터면 다리를 접질릴 뻔한 민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길가에는 러닝머신 여러 대가 있었다. 오픈 예정인 헬스장으로 인부들이 나르는 중이었다. 순간 중형을 발견한 민경은 걸음을 빨리했다. 그는 같은 건물 이 층에 있는 PC방에 갔다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의 축 늘어진 젖가슴이 회색 티셔츠 밑에서 덩실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목이 몇 겹으로 접히게 되었고 족발 같은 빵빵한 손에 신발은 잠수함 같았다.
“어! 민경 씨! 민경 씨!”
그녀는 무시하려고 했는데, 결국 잡혔다.
“어디 갔나 오는 길이세요?”
“그냥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어디 갔다 왔는데요? 잠깐, 잠깐, 저기 헬스장 보이죠? 운동하고 싶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공짜로 하게 해줄게요.”
그녀는 헬스장이 들어설 예정인 삼 층을 보았다.
“중형 씨가……?”
“제가 하는 데가 아니라요, 제가 건물주예요. 여기 건물이 제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오픈할 헬스장이 제 건물에 세 드는 거죠. 헬스장이 세 드는 데가 제 소유의 건물이라고요. 공짜가 아니라, 공짜가 아니라요, 저하고 같이 운동하자고요. 저도 운동을 해야겠더라고요. 여자들은 이런 몸 싫어하잖아요? 저는 평균은 되는 남자지만. 그렇죠, 민경 씨? 민경 씨, 여기 제 건물이에요. 저 건물주예요.”
중형이 건물주를 강조하며 장황하게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는 과장된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가만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집에 가는 거예요? 시간 되시면 어디 좋은 데 가서 차나 한잔할래요? 저희 집 구경 할래요? 제 건물이거든요. 저 건물주라서 한가해요. 이 건물 제일 위에 혼자 살아요, 제가. 아직 한 번도 여자를 집에 들인 적이 없는데, 민경 씨가 최초네요. 자, 가요.”
“미안해요. 시간 없어요.”
과도하게 적극적인 그의 모습에 그녀는 겁을 먹었다.
“……네.”
중형이 갑자기 명랑함을 버렸다. 그는 크게 몸을 들썩였다. 씨름 선수와 같았다.
“좀 걸을까요?”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움직였다. 어쩔 수 없이 그녀도 천천히 뒤따랐다. 그는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마치 놀리듯 쿡쿡거렸다.
“민경 씨 왜 그래요?” “제가 왜요?”
“표정 말이에요. 표정이 왜 그래, 에이.”
그가 와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아프지 않았지만 그녀는 어깨를 감쌌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은근슬쩍 방귀를 뀌었다. 예상치 않게 냄새가 독해서 먼저 빨리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오늘도 색 바랜 모자를 쓰고 있었다. 통 넓은 청바지의 밑단이 뒤꿈치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저 페라리 살까 봐요. 민경 씨 페라리 어때요?”
“비싼 차잖아요?”
“저 건물준데요?”
또 방귀를 뀌는 바람에 그는 입을 닫았다. 괜스레 신발을 끌듯 걸으며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가 괜히 현수막 글자나 지나가는 차에서 본 것을 과장하여 말했다.
둘은 건널목 앞에 섰다.
야옹.
그는 황급히 왼쪽 귀를 막았다.
야옹.
그녀의 반응을 본 뒤 귓구멍을 팠다.
야옹. 야옹.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볼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고양이가 사는 곳은 그의 머리통 속이었으니까.
“민경 씨.”
“네?”
“민경 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저 그런 거 없어요.”
“딱 보고 이 사람이다 하는 스타일?”
“그냥 느낌이 좋은 사람이면…….”
“얼굴은요? 못생겨도 상관없나?”
“내면이 중요하잖아요.”
그녀가 완전한 진실을 말한 건 아니지만 남자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건 진심에 가까웠다.
“휴, 다행이네.”
그가 자신의 젖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젖꼭지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는 엉덩이가 엄청나게 컸다. 바지 안에 방석 몇 장을 넣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대단한 통뼈인 손목을 비틀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흥얼거림은 삼십 초 뒤에 끝났다.
“민경 씨 공부는 어때요, 잘 되고 있어요?”
“그게 나름하고는 있는데…….”
그는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의 어깨높이보다 약간 작았다.
“민경 씨 마트에서 계속 일할 거예요? 나쁜 뜻은 아니고, 목표하는 것이 따로 있나 해서요.”
“솔직히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는데 우선은 독학사부터 합격을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가요?”
“네.”
“민경 씨, 건물주…….”
“네?”
“아니에요.”
잠시 후 그가 다시 말했다.
“민경 씨? 저기 혹시 저 어떠세요?”
“중형 씨요?”
“네, 저요. 어때 보여요? 제 외모도 솔직히 평균은 되잖아요? 호남형에 늠름한 곰돌이 같은 스타일에다 키도 이만하면 됐고. 게다가 건물주고요.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어디 가도 꿀리진 않을 거 같은데.”
“좋으신 분 같아요.”
그녀가 시간을 끈 후 말했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죠? 그런 대답밖에 못 하겠죠?”
그가 빈정댔다. 한 번도 침을 뱉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어설프게 침을 모아 걸쭉하게 뱉었다. 안경이 화산 분화구 코에 걸쳐져 있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서 다시 쓰며 쯥쯥거렸다.
“집 아니까 데려다줄게요.”
“아니에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데려다줄 거라고요!”
그녀는 이면도로를 생각지 못하고 진짜 자기가 사는 빌라 앞에서 그와 헤어졌다.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간 뒤에야 빌라까지 이끈 건 그였다는 걸 알았다. 샤워기에서 쏟아진 찬물 때문인지 소름이 와르르 돋았다. 중형이 현관문 앞에서 빌어먹을 고양이 우는 소리 때문에 귀를 때려대는 소리는 듣지 못한 채.
깜박 잠이 든 것 같았다. 민경은 탁상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밤 열 시였다. 이를 닦을 생각이었는데 피곤했던지 방도 모자라 욕실과 부엌 불까지 켜놓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딩동――
순간 그녀는 잠이 확 달아났다. 안 나가고 버티려고 하다가 결국 중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그녀가 바깥을 향해 말했다. 켜졌던 현관 불이 꺼졌다. 그녀가 움직이자 다시 켜졌다.
띵동――
“누구……?”
초인종 소리가 멈췄다. 대신.
똑똑.
용기를 낸 그녀는 현관문 외시경에 눈을 갖다 댔다. 누군가의 상체가 보였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상대방의 키를 가늠해보았다. 문에는 걸쇠가 걸려 있었다. 그걸 믿고 그녀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서 옆으로 물러났다.
“누구예요?”
그녀가 다시금 말했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손이 불쑥 들어왔다. 컸다. 통통한 손등이 문 옆 부분을 잡아당겼다. 걸쇠가 걸려 있기에 당연히 더 열리지 않았다. 다리 한쪽이 열린 문틈에서 나타났다. 탱크처럼 커다란 운동화였다. 그리고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중형 씨?”
그녀가 흠칫했다.
중형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럼 이제껏 저희 집 초인종을 누른 게 중형 씨였단 말이에요?”
“오해예요, 오해. 상습범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아니라고요?”
“당연하죠. 민경 씨 저를 어떻게 보고 그러는 거예요? 절대 아니지. 아니고 말고요.”
“그럼 저희 집은 어떻게 알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지나가던 길에 들른 거예요. 어떤 빌란지도 아는데요, 뭘.”
“그렇다고 쳐요! 몇 층 몇 호인지는 모르잖아요?”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솔직히 아까 민경 씨를 따라왔어요. 민경 씨만 모르는 거예요. 복도에 불이 켜지니 몇 층인지 아는 거고, 삐삐삐 키 누르는 소리 하고 문 팍 닫는 소리가 들리니 몇 호에 사는지 알 게 된 거죠.”
그녀는 싫고 무서워서 할 말을 잃었다.
“빌라 출입문 비밀번호는요?”
“민경 씨, 민경 씨, 저 목이 말라서 그런데 물 한 잔만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민경 씨? 민경 씨?”
“가세요. 미안해요.”
“아이, 그건 지나가는 초딩한테 물어서 알아요. 그러지 말고, 물 좀요.”
그녀가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양보를 하지 않아 문틈에 손가락이 끼게 되었다. 살찐 손가락이 돼지고기처럼 하얗게 도드라졌다. 그가 필요 이상으로 악 소리를 질렀다. 앞 호실에서 문을 열어서 밖을 확인하더니 괴물이라도 본 듯 바로 닫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물만 줘요.”
그의 안색이 별로였다. 그는 불쌍한 얼굴로 아픈 손을 주물렀다.
“기다려요.”
그녀는 물을 가져왔다. 컵을 주려면 걸쇠를 풀어야 했다. 그녀는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풀었다.
“고마워요. 민경 씨한테 얻어 마시는 거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물맛이 끝내주네요. 그런데 민경 씨?”
그가 현관문을 잡아챘다. 그녀는 물러섰다. 그는 현관으로 들어와 섰다. 불이 꺼졌던 현관 천장에서 다시 불이 켜졌다. 그는 등 뒤로 문을 닫았다. 그녀는 방으로 쫓겨났다. 그는 발을 흔들어 신발을 벗고 그녀를 따랐다.
“민경 씨 사랑합니다.”
그가 그녀를 덥석 안았다. 그녀는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제 맘 그렇게 모르겠어요?”
그가 그녀를 안은 채 반 바퀴 빙글 돌았다.
“모르겠냐고!”
그녀의 옆얼굴에 침이 몇 방울 튀었다. 그의 까슬까슬한 턱이 그녀의 이마를 눌렀다.
“전 사랑해요, 민경 씨를 정말 사랑한다고요.”
그가 바깥다리를 걸어 그녀를 넘어트렸다. 그녀는 꺅 소리를 내며 등으로 떨어졌다. 그는 즉시 그 위로 몸을 낮췄다. 그녀가 사정없이 때리고 꼬집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저항하는 양팔을 잡은 뒤에 그녀의 머리 위로 올렸다.
“민경 씨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는 강제 입맞춤을 시도했다. 그녀가 고개를 거칠게 흔드는 바람에 콧구멍을 혀로 후벼 파게 되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양 볼을 무자비하게 비볐다. 그 바람에 모자챙이 들려 훌러덩 직전인 머리털이 드러났다. 그가 코털 몇 개가 삐져나온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입가에서는 침이 한 줄기 쭈욱 늘어져 나왔다.
“민경아!”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트이지 않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현 상황이 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손이 자신의 가슴에 엄청난 악력을 가하자 그녀는 몸을 격렬하게 비틀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무릎이 그의 엉덩이로 날아갔다. 두 사람 모두에게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그의 몸이 살짝 떴다. 그녀는 위에 있는 뚱뚱한 허벅지를 잡고 일어서려는 시도를 하면서 다시 무릎을 날렸다. 정확히 그의 부자지에 먹혀들었다. 그가 울부짖으며 나가떨어질 때를 틈타 그녀는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주차장의 차 뒤에 몸을 숨겼다. 신발을 신은 기억도 없었는데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쿵쿵 소리가 났다.
“민경 씨?”
아랫도리를 움켜쥔 중형이 주위를 서성였다. 그녀는 차창 너머로 그가 저리 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차를 돌아 나왔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현관이 열려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걸쇠를 걸었다. 책상에 둔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저장을 하지 않았지만 중형의 번호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처음 두 번은 받지 않았다가 사십 분 후에 세 번째 전화가 걸려왔을 때 받았다.
“여보세요.”
그녀가 싸늘하게 말했다. “민경 씨, 정말, 정말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제가 미쳤었나 봐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그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네, 맞아요. 중형 씨는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요.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한 거죠?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물론이에요. 하세요. 제발 해주세요.”
그는 거의 체념한 듯한 인상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을 않았다.
“민경 씨, 미안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 정말 경찰에 신고를 할 생각인가요?”
“몰라서 물어요?”
“민경 씨…….”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일일이를 눌렀다가 도로 지웠다. 그리고 양팔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렸다.
민경은 유리벽을 통해 밖을 보았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지나가는 사람들, 건물, 하늘, 표정들을 보았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반대쪽 인도에서 강아지를 발견한 것이다. 강아지는 차가 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멈췄다. 그리고 왔던 데로 되돌아갔다. 차가 올 때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기어코 이쪽 인도로 건너오는 데 성공했다.
강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쫄래쫄래 쫓아가는 것 같다가 되돌아왔다. 그리고 마트의 출입문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나가자 문이 열렸다. 강아지는 제자리서 뛰어오르다가 가만 앉았다. 그녀가 유리벽을 두드렸다. 그녀를 찾은 강아지는 해맑은 눈빛으로 고개를 이리 기울였다가 저리 기울였다가를 했다.
“안녕?”
알아들었는지 강아지가 한 번 짖었다.
“어쩌다 혼자가 되었니?”
문득 그녀는 저 강아지를 내가 키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금세 회의적이었다. 한 생물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혼자 살기에도 빡빡한 살림이었다. 강아지는 그녀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사라졌다. 그녀는 부랴부랴 밖에 나갔다.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뭔가가 그녀의 얼굴 위에서 휙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손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커다란 날개를 가진 날짐승이었다.
‘독수린가?’
독수리는 공중에서 빙글 돌더니 반대편 건물 첨탑을 꽉 움켜쥐고 앉았다. 독수리는 양쪽 날개를 퍼덕이며 중심을 잡았다. 다름이 아니라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그녀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 독수리가 강아지를 낚아채서 하늘 높이 날아가는 불쾌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다. 독수리는 날개를 이용하여 옥상으로 뛰어 내려왔다. 날개를 퍼덕이며 옥상을 따라 사뿐사뿐 걸어가더니 이윽고 하늘로 힘차게 도약했다.
그녀는 매장으로 복귀했다. 남직원이 카운터를 대신 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에요.”
남직원이 말하며 마치 매장 깊숙한 곳에 차원의 문이라도 있는 것처럼 들어가 사라졌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물건을 바코드기로 찍고 인사를 하는 일을 반복했다. 문이 열리면 자연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돌연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민경 씨 안녕하세요?”
중형이었다. 그는 손을 이용해 모자의 뒷부분을 눌렀다.
“네, 네…….”
그녀가 목소리가 꺼졌다.
“그런 일도 있었는데 불쑥 찾아오다니 참 뻔뻔한 놈이죠?”
그의 말에 그녀는 아무 말 안 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듣기만 했다.
그는 거듭 사과를 하며 장바구니를 들었다. 곧 장거리를 들고 나타나 카운터에 올려두었다. 상품들이 삑삑 소리와 함께 바코드기에 찍혔다. 그중에는 커피음료도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가 커피음료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그녀는 외면해 버렸다.
“저 민경 씨…… 앞으로도 민경 씨 계속 보러 와도 될까요? 안 된다고 하면 전 정말 괴로울 거예요. 민경 씨?”
민경은 딴 일을 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민경 씨.”
그는 내키는 대로 알아들으며 카운터에 임신 몇 개월 치의 뱃살을 올렸다. 둥그스름한 콧구멍에서 연신 뜨거운 콧김이 슝슝 나왔다. 찢어지고 작은 눈에서 검은자가 반짝였다. 넓적한 코에서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눈웃음을 짓고는 펑퍼짐한 엉덩이를 흔들며 매장을 나갔다. 남직원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봉완 씨 이거 드세요. 손님이 준 건데 저는 속이 쓰려서 못 먹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