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는 마우스를 까닥거리다가 스크롤을 내렸다. 그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다. 희생자는 서른아홉의 택시기사. 그는 식은 녹차를 마시면서 리플을 읽어내러 갔다. 악플이 더럽게 많았다. 질투심 때문인가? 슈퍼스타의 삶이란.
시간을 확인한 그는 플라스틱 수납장에서 꺼낸 수건을 들고 세수를 하러 갔다. 앞머리를 대충 손가락으로 빗고 책장 제일 위 칸에서 꺼낸 야구 모자를 썼다. XX고등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이번에 그는 골목길만 골라서 다녔다. 학생들이 모일만한 곳. 응당 학교 뒤쪽에 그런 곳이 많았다. 얼만 동안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데 저기서 일단의 학생 무리가 나타났다. 범생이들 같아서 그도 안심하고 말을 붙일 수 있었다.
“저기, 말 좀 물어도 될까?”
운을 그렇게 뗀 그의 머릿속에 많은 말이 돌아다녔다.
학생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부탁할게.”
그의 설득에 단구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XX고교 일 학년들이었다.
“혹시 이런 소문 들은 적 있어? 공원 같은 데서 돈을 뜯는 뭐 그런 무용담 있잖아? 꼭 불량학생이라는 건 아니고, 아무튼…… 그런 비행을 저질러서 돈을 벌었다 하는 식의, 응? 쉽게 말해 돈을 뺏는 애들 말이야. 이런 데서 자리 잡고 있다가 지나가는 애들 뭐 있잖아.”
아이들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눈빛에는 뭐야 이 사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승현이 이야기 아니야?”
이번에도 단구의 아이였다.
“걔에 대해서 말 좀 해줄래?”
“어떤 말요?”
상대적으로 키가 큰 아이가 말했다. 중간쯤 되는 아이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
“생김새랄지.”
단구의 아이가 무슨 말인가 하려 하자 키 큰 아이가 만류했다.
“생김새요? 어떤 생김새요?”
화수는 눈치를 채고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내 주었다. 키 큰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많이는 못 주고, 만 원씩들 가져. 그냥 말만 해주면 되는 건데 힘든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키 큰 아이였다.
“승현이 걔 학교 근처에서 자취해요. 얼굴은…….” “잠깐만.”
키 큰 아이가 만류했다. 또 돈을 달라는 거다.
‘싸가지 없는 새끼야, 칼 줄까? 찔러 줘?’
화수는 분을 삭였다.
“좀 봐 줘라. 형도 대학생이야. 돈이 없다고.”
그는 그냥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중간 아이가 키 큰 아이의 팔을 찔렀다. 키 큰 아이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단구의 아이에게 떠넘겼다.
“우리 이야기는 비밀이에요.”
단구의 아이가 친구를 팔기 시작했다. 그 생김새 묘사에 순간 화수는 내가 찾고 있는 녀석이 맞나 긴가민가했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그는 행동하기로 했다. 교회를 확인하고 그 뒤 골목으로 들어갔다. 실제로 대문이 없는 집이 있었다. 그는 들어갔다. 비슷한 문들이 주위에 빙 둘러 있었다. 전부 승현인가 뭔가 하는 녀석처럼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목표물의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골목 쪽에 창문이 나 있는 집은 대문과 가까운 집 하나뿐이었으니까.
화수는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잠겨 있었다. 그는 문에 난 삼십 센티미터 정도의 불투명한 유리창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안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세요?”
안에서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뭐야 씨. 누군데요?”
“김승현이라는 학생이요. 맞죠?”
“네, 제가 김승현인데요.”
어느새 둘은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화수는 정보 제공자에게 했던 말과 유사한 말을 했다. 안에서는 잠시 조용했다. 그래서 화수는 문 밑으로 지폐 두 장을 연이어 밀어 넣었다. 안에서 마치 ATM 기계에서 나온 현금카드를 슬쩍하듯 쓱쓱 빼갔다.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화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녀석이 아니었다.
“혹시 저 아세요?”
승현이 말했다. 발치에 여러 가지 신발이 많았지만 다른 사람은 없었다.
화수는 힘이 빠졌다. 그는 눈을 아래로 뜨고 콧잔등을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 학교에서 소문 같은 거 못 들었어? 여러 명이서 짜고 지나가는 행인의 돈을 갈취한다거나 하는.”
“경찰이에요, 뭐예요?”
승현이 화수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자신이 멍청한 말을 했다는 눈치였다. 경찰치고는 너무 젊었으니까.
“그런 애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죠.”
“아는 애들 중에서도 있어?”
화수는 녀석들의 생김새를 설명하다가 말을 멈췄다. 벌써 기억이 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긴 애들이 한둘이어야죠.”
“그게 무슨 말이야?”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 생각은 안 드는데?”
승현이 몇 명의 후보를 말했다. 화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사진 좀 볼 수 있을까?”
“아 씨,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헛걸음하긴 싫거든.”
“그럼 두 장 더 줘요. 아, 빨리요. 모기 문다고요. 컴퓨터는 방에 있어요. 아 씨, 까고 말해서 형이 필요한 거지 제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알았어. 형 아가리 봉쇄했다.”
화수는 돈을 건네고 방으로 들어갔다. 승현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속옷을 손으로 그러모아 이불 밑에 감췄다. 그리고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린 채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화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니야.”
“그럼 얘는요?”
“아니야.”
“그럼 얘는 어때요?”
“걔도 아니야.”
“이 형은요?”
화수는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런다고 다른 사람이 같아질 수는 없었다.
“아니야.”
“얜요?”
“아니야. 더 없어?”
“이게 단데요.”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멍청한 짓 할 만한 애들은 다 보여줬어요.”
화수는 볼이 볼록해질 정도로 쉰 바람을 불어내고 자리를 털고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개새끼 소새끼 하며 승현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맞짱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는 슈퍼마켓에 가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곤 빈 병은 길가에 세워놓았다. 그는 괜히 PC방 세 군데를 둘러보고 나왔다.
너덜너덜한 기분으로 버스를 이용해 공원까지 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벤치와 나무, 밤하늘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졌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던 순간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심장이 펌프질을 했다. 저만치 있는 벤치에 누군가 있었다. 풀냄새와 풀벌레 소리. 거무스름한 형상을 노려보는 그의 콧구멍에서 쉰 소리가 났다. 느닷없이 떨리기 시작하는 손을 바지에 집어넣었다.
“거기.”
그가 말했다.
하지만 검은 형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거기?”
그가 바지 속에서 버튼을 눌렀다. 칼날이 마치 처녀성을 파괴한 페니스처럼 좁은 틈을 비집고 튀어 올랐다. 그의 발톱이었다. 그는 벤치 앞에 우뚝 섰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믿음이 없었다. 녀석이 아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누구요?”
남자가 벤치에 누운 채 말했다. 신문지를 얼굴에 덮고 있었다. 화수가 신문지의 끄트머리를 잡고 치웠다. 비루한 형색의 얼굴이 눈을 깜박이며 머리를 들었다. 사육사에게 혹사당한 늙은 침팬지를 연상케 하는 남루한 얼굴이었다.
“노숙자잖아!”
“노숙자라니!”
화수는 분을 삭이려는 생각에서 돌아섰다.
“내가 어딜 봐서 노숙자냐? 한때는 사업도 크게 했고, 회장 소리도 들었던 게 나야! 누구더러 노숙자라는 거냐! 야! 어딜 보냐? 야! 마!”
“예. 예. 사람을 잘못 본 거 같네요.”
화수가 갈 길을 가려 하자 노숙자가 와락 달려들었다. 거의 뒤에서 안은 자세였는데 후끈거리는 입김을 하하 불어대는 통에 징그러운 건 둘째 치고 화수는 치욕까지 느꼈다.
“그러지 말고 돈 있으면 돈 좀 주라.”
“놔요. 돈 없어요.”
화수가 이를 갈았다.
“야, 그러지 말고.”
“없다니까!”
“그게 싫으면 야, 술 좀 사주라. 응?”
“씨발 귓구녕이 처 막혔나! 돈 없다니까!”
화수가 강하게 떠미는 바람에 노숙자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노숙자는 기침을 하며 일어서면서 한번 해보자고 달려들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내가 왕년에……!”
화수가 주먹을 던졌다. 손에 칼이 들어온 걸 몰랐던 것이다. 노숙자의 더러운 볼을 뚫고 칼날이 번쩍 튀어나갔다. 하마터면 노숙자의 혀가 산산조각이 날 뻔했다. 반대쪽 볼 안쪽에서 걸린 칼날이 누런 앞니에 묻은 이똥을 긁고 나와 피를 토했다. 욱욱거리는 노숙자를 뒤로하고 화수는 달아났다. 언제 칼을 빼 들었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어느새 이, 십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칼날이 자신의 분신이 되었던 것이다.
화수는 중문, 욕실, 붙박이장, 베란다 창을 열어 놓은 채 어두운 방 안을 서성이며 핸드폰을 놀렸다. 카톡이 왔다. 보경이다.
-뭐 해?
그는 카톡을 보냈다. 답장이 바로 올 줄은 몰랐다.
-엄마랑 얘기하고 있었어.
-무슨 얘기? 내 얘기?
-자기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왜 이제 연락하는 건데?
-좀 봐 줘. 사정이 있었어.
-나한테 말해도 되잖아. 그 사정이란 거.
-개인적인 거야.
-자긴 항상 그래.
-미안.
-그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야.
-미안. 미안.
그리고 카톡이 끊겼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방의 불을 켰다. 선반 위에 있는 헝겊으로 싼 칼을 들었다. 헝겊을 한 꺼풀씩 벗기자 칼날이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그는 베란다 창에 비치는 자신의 형상을 노려보았다. 씨익 웃으며 칼로 허공을 벴다. 칼날에 형광등의 백색 불빛이 찌익 지나갔다. 방의 명암이 약간 어두워졌다. 형광등 세 개 중 하나가 나간 것이다.
그 짓을 하다가 그는 방구석에 누웠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돌아누워서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거의 대부분이 피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못 잔다 싶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깼을 때는 새벽이었다. 그는 머리 옆에 두고 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두 시였다. 뭘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뭐에라도 쓰인 듯 대충 옷을 입고 외출을 했다. 택시에서 내린 그는 곧장 공원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3333333333333삼……!
2222222222222222이……!
111111111111111111일!
그의 입매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그는 자세를 낮춰 나무 뒤에 숨었다. 헉헉거리며 칼을 가슴 앞에서 양손으로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칼 손잡이를 잡은 손가락 밑에서 살갗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만큼 강하게 부여잡고 있었다. 그가 숨을 훅훅 쉴 때마다 칼날에 입김이 쪼개졌다.
아, 신이시여!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칼의 신이시여, 피의 신이시여!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씨발놈아.”
범식이 말했다.
“무릎을 꿇고 빌더라니깐.”
동권이 말한 뒤 가래를 뱉었다. 범식에게 욕을 먹은 데 대한 분풀이이기도 했다.
성민이 낄낄댔다.
“밟아 죽여 버리지 그랬냐?”
김민이 코를 파며 말했다.
“하려다가 말았지.”
동권이 담배를 물었다. 연기를 후 내뱉었다. 양쪽 콧구멍에서도 소독차처럼 쏟아졌다.
화수의 가슴이 급하게 오르내렸다. 그는 오금이 저렸다. 사타구니에 힘이 풀렸다. 딸딸이를 연이어 네 번은 친 듯이 나른했다.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희열! 그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가 주목한 목소리는 범식과 동권의 것이었다. 틀림없이 녀석들이었다. 귀여운 녀석들, 놓칠 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도아 새끼는 어쩌지? 본때를 보여줘야지 않아?”
김민이 말했다.
“그 새끼 뭔가 수상해.”
“개좆같은 새끼긴 하지.”
범식이 동권을 향해 말했다.
넷이 화수가 숨어 있는 나무쪽으로 걸어왔다. 화수가 보기에 마치 네 마리의 수사슴 같았다. 방어할 수 있는 큰 뿔이 없는 수사슴. 가지고 있는 건 도망을 갈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뿐인데, 차디찬 금속의 발톱 앞에서는 발동할 수 없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잔잔히 움직여 칼날을 슉슉 찔러 넣을 것이다. 네 명. 슈슈슈슉. 배나 등, 가슴에 한 번씩 빠르게 찔러 기동성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한 명씩 끌고 다니며 난도질을 할 속셈이었다. 피를 튀기는 칼날은 달빛에 빛날 것이다. 달도 피로 물든다.
“범식아 왜?”
“무슨 소리 못 들었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동권이 귀를 팠다.
화수가 그들 뒤에서 나타났다. 그의 각도에서 보면 일렬로 서 있는 희생자들을, 한 번씩 칼로 찔렀다. 그리고 머리카락, 팔, 멱살, 등을 움켜쥐고 칼날을 박았다. 아, 시나리오대로였다. 찌르고 쑤시고 또 찔렀다. 양손이 미끈거렸다. 입에 튄 것을 자신도 모르게 삼켰다. 아, 삼켰다. 그는 웃음을 삼키며 아, 삼키면서 소리 없이 포효했다. 아, 울부짖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