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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9. 집
작성일 : 18-12-15 20:35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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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뭐해요? 혹시 자요?

 -응.

 -자고 있는데 카톡은 어떻게 보내요?

 -자려고 누워 있는 거야. 넌 어때?

 -책을 좀 읽고 있었어요. 청소년 동화인데 재밌어요.

 -내 취향은 아니네.

 -오빠 취향은 뭔데요?

 -좀 생각해볼게.

 도아는 거품이 떠다니는 욕조 속에 두 다리를 밀어 넣었다. 머리맡에는 샴페인이 있었다. 그는 한 잔 마시며 발가락으로 거품 장난을 쳤다. 그가 잠수를 했다 나오자 콧잔등과 이마에도 거품이 붙었다. 그는 사팔뜨기처럼 눈을 뜨고 코에 붙은 걸 후후 불어냈다.

 나른함을 느낀 그는 샤워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보발이 끓여 놓은 우유 푼 커피에서 뜨거운 김이 나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걸어 잔을 가져가면서 한 모금 음미했다. 창가로 갔다. 멀리 희미하게 마을 불빛이 아른거렸다. 풀벌레 소리도 아른거렸다. 달빛도. 별빛도. 너무나도 한적한 야경이었다.

 여기 저택에 자리를 잡은 게 거의 사십여 년 전이었다. 천구백칠십구 년 가을이던 그때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그 시기 한국은 가혹한 경제 성장 정책을 펼쳤는데, 경제 개발 오개년 계획이라고 불렀다. 사회 각지의 격차가 심각해졌으며 한 청년은 분신했다. 민주주의는 제삼세계의 것이었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다.

 도아는 한적한 벌판에 지어진 대저택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외국인 선교사라고 믿었다. 한 터전에서 오래 머문 그들이 보기에 도아와 보발은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보발의 연미복이 그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르지만, 불사신들의 입장에서는 천만 다행스런 일이었다.

 문득 유리창에 비친 보발을 발견한 도아였다. 보발은 언제나처럼 정갈한 모습이었다. 도아가 보기에 잠을 잘 때도 보발은 단정하고 우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관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변함없이 깔끔한 숱한 뱀파이어들처럼.

 “보발?”

 “네, 도련님.”

 “요즘 학교가 시끄러워.”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대부분 개인적인 것들이지 뭐. 피곤한 것들. 살인 사건도 있더라고.”

 “살인 사건이라니요?”

 “나도 잘 모르겠어. 살인 사건의 경우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고, 밖에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럴 지도. 근데 벨즈 이 녀석은 대체…….”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발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냈다.

 “그다지 걱정을 하는 건 아니고, 둘만 살기에는 이 저택이 너무 크잖아.”

 “그렇긴 하지요.”

 그렇게 말하며 보발이 물러났다.

 

 “재성아! 재성아!”

 “네, 할머니.”

 밖에 있던 재성은 곧장 할머니가 누워 있는 반지하방으로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머니의 앙상한 두 다리가 이불 위에 있었다. 정강이뼈에 힘없이 늘어진 살갗이 간신히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할머니의 다리를 잡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머리맡에 있는 요강에서 나는 오줌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요강 옆의 작은 그릇에는 틀니가 담겨 있었다. 치과의사가 틀니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 게 벌써 이십 년 전이었다. 낮은 천장은 담배 연기 탓에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TV에서는 연속극이 나오고 있었다.

 밤에 재성은 밖으로 나갔다. 근처 여중학교였다. 그는 인적이 드문 시간이면 자주 여중학교에 와서 운동장에 있는 그네를 탔다.

 “후…….”

 그는 한숨을 쉬며 그네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올 때 발을 굴렀다. 속도가 느려지며 그넷줄이 삐걱거렸다. 그리고 그의 몸이 빙글 돌았다. 그넷줄이 꼬였다. 그넷줄이 꽈배기처럼 꼬일수록 어지럼증도 커졌다.

 “학교 가는 게 너무 싫다.”

 그는 속에 담은 말을 했다.

 “너무. 너무.”

 꼬였던 줄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그는 일어났다. 그는 운동장을 걸었다. 발밑에서 모래가 서걱서걱 소리를 냈다. 마치 사포로 비비는 것 같은 소리였다.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 탓에 발이 땅에 끌려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달이 밝았다. 별은 많았다. 파란색별이 강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습관처럼 북극성을 찾았다. 북쪽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운동장 한 바퀴를 터덜터덜 걸은 그는 다시 그네에 앉았다.

 “후……!”

 그는 학교를 생각했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하나?’

 첫째로 범식들이 무서웠지만, 무단결석으로 인해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것도 두려웠다. 교무실로 불려가 수치를 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여러 버전으로 계속 생각났다. 할머니한테도 계속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아침이면 집을 나가 배회하다가 점심 무렵에 귀가해서는 오전 수업을 했다고 거짓말을 쳐왔던 것이다.

 “재성아 너 할머니 호강시켜 드릴 거잖아. 꼭 성공해야 하잖아. 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도 가고 좋은 데 취업해야지! 너 키워준 할머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해! 남보란 듯이 성공하자! 꼭 그러자!”

 그는 스스로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학교에 갈 자신이 없었고, 집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도아는 침대에 누워서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을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응시했다. 학교생활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커튼도 덩달아 이리저리 끌려갔다. 그가 팔을 들자 선반에 있던 것들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덜컹거리며 떨어져 나와 허공을 날았다. 책이 파르르 펼쳐지며 금속 장식물들과 함께 마치 공전을 하듯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가 동작을 멈추자 그 상태에서 바닥에 휙휙 떨어졌다. 그는 한숨을 쉬고 오른쪽 팔 안쪽으로 눈을 가렸다.

 

 재성은 일어나 세수를 했다. 일주일이나 사용한 수건에 머리의 물기를 닦았다. 반지하방의 천장은 제자리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낮고 사방의 벽은 방 한가운데서 팔을 뻗어 한 걸음씩만 가도 끝났다. 천장에서 시작한 곰팡이는 아무리 닦고 긁어내도 사라지지 않더니 급기야 방 전체를 먹어치웠다. 그는 때 얼룩이 진 교복을 입고 늘 그러는 것처럼 아침밥을 굶었다. 한동안 입지 않으면 이 교복에도 곰팡이가 스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는 책이 많이 든 가방을 멨다.

 “이거라도 먹고 가.”

 할머니가 머리맡에 있는 죽그릇을 가리켰다. 잇몸과 소화기관이 좋지 못한 할머니는 거의 쌀죽만 먹었다.

 “아니에요, 할머니.”

 “뭐라도 먹고 가야 공부를 하지.”

 “학교에서 편의점 도시락 먹어요. 제 친구 중에 편의점 알바 하는 애가 폐기 상품 가져오거든요.”

 그는 뻔한 거짓말을 하며 상체만 일으킨 할머니를 다시 눕혀 주었다. 할머니는 거의 누워서 생활을 했다. 움직일 때는 앉은 채로 엉덩이를 끌었다. 멀지 않은 곳에 갈 때는 재성이 업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가 자물쇠 단 자국이 가득한 헐렁한 나무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앞에 벗어놨던 신발이 밀려났다. 신발을 신은 그는 물기 탓에 발을 털었다. 어제 빤 신발이 마르지 않아서 걸을 때마다 숨풍숨풍 소리가 났다. 버스정류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버스는 등교하는 아이들과 직장인들로 인해 미어터질 것 같았다. 버스가 커브를 돌거나 갑자기 속도를 올릴 때면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재성은 숨이 막혀서 고개를 쳐들었다.

 삐.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뒷문이 열렸다.

 “안 내려요?”

 허여멀건 하고 안경 쓴 버스 기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무도 안 내려요?”

 잠시 후 하차 문이 닫혔다.

 “잘못 눌렀으면 잘못 눌렀다고 해요! 왜 말을 안 해요!”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사가 차를 세웠다. 앞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어디 가는 버스인지 물어보았다.

 “예! 예! 아, 빨리 좀 타라고요.”

 부아가 치밀어 못 견뎌 하는 버스 기사의 모습이 재성은 못마땅했다. 정의감 있는 누군가가 나서주기 바라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가 섰고 재성은 기다렸다가 맨 뒤에 내렸다.

 

 재성은 담임과 면담을 끝냈다. 오들오들 떨었던 것과는 달리 짧은 면담이었다. 그는 할머니를 방패 삼았다. 그의 가정 형편을 모르지 않는 담임은 수긍했지만 따끔한 주의는 아끼지 않았다. 사실 담임은 줄곧 재성의 집에 전화를 걸었었다.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을 수밖에. 왜냐면 재성이 전화기 코드를 빼놨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퇴 생각도 했었다. 무책임하고 어이없게도 자신이 한 짓으로 인한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매질도 어떤 처벌도 없었다.

 한시름 놓게 되자 비로써 그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나란 인간은…….’

 “됐어. 가 봐.”

 담임이 말했다.

 재성은 묵례를 하고 상담실에서 나왔다. 복도 반대쪽에서 삼 학년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탓에 그는 긴장했다. 하지만 눈대중으로 살핀 결과 범식 일행은 없었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선배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발걸음을 뗐다.

 

 일 교시 수업이 끝났을 때 재성은 다시 긴장했다. 범식의 지령을 받은 누군가가 그를 강제로 끌고 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아랫배가 아팠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사 교시가 끝나고서도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급식실에도 제일 늦게 간 그였다. 굶을까 했지만 자퇴를 하지 않는 이상 언제 어디서든 범식 일행을 만나게 되어 있는 건 불변의 진리여서 매 맞는 기분으로 밥 먹으러 온 것이다. 기가 막히게도 급식실 계단을 내려오며 라이터를 칙칙거리던 범식과 마주쳤지만, 놀랍게도 XX고교의 제왕은 관심도 주지 않았다. 재성은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으로 급식실에 앉아 밥알을 입안에 떠 넣었다.

 

 도아는 식판에 있는 걸 쓸어다 버렸고, 급식실 밖에서 뜨거운 물을 한 잔 마셨다. 운동장으로 나온 그는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성이는……?”

 그는 구석진 자리로 걸어가서 담 위로 올라갔다. 외줄 타기를 하듯 걸었다. 그러면서 저기 아래에 용암이 흐른다고 가정했다. 재미도 없었고 영양가도 없었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미온일 것이다. 보나 마나 시답잖은 소리였다. 그는 담 밑으로 뛰어내렸다가 발바닥에 찌릿한 감각을 느끼고 눈을 찡긋했다. 문득 매점 쪽을 보다가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 범식이었다. 범식은 침을 뱉고 돌아섰다.

 

 오 교시가 끝났다. 여느 때처럼 뒷담화, 연애, 해설, 야설, 내가 내다 하는 식의 담론들이 교실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추격전이 벌어지고 남녀 갈등에 가끔 이종격투기가 횡횡하는 교실은 그야말로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까 그 녀석 봤어.”

 “그 녀석이라니?”

 재성이 말했다.

 “너한테 해코지하던 그 누구더라.”

 “범식이 형……?”

 재성의 심장이 그의 콧구멍만큼이나 벌렁벌렁 뛰었다.

 “맞아. 범식이.”

 “도아 너한테 뭐라고 했어?”

 “멀리서 봤어. 나를 알아봤을까?”

 “도아 너도 조심하는 게 좋아. 그 형 무서운 사람이야.”

 “내 눈엔 그렇게 안 보이던데?”

 “그 형 진짜 복수 같은 거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

 “내가 뭘 했는데?”

 재성은 화장실에서의 미스터리한 일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너 근데 진짜 어떻게 한 거야?”

 “글쎄.”

 “어떤 속임수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재성은 속임수가 아님을 직감했다.

 “저절로 팔이 꺾이고 몸이 뒤틀렸어.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

 “그런가.”

 도아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웃음을 해 보였다.

 “넌 보통 학교 끝나고 뭐해?”

 도아가 화제를 돌렸다.

 “집에 가…….”

 “나돈데.”

 “도아 너도? 도아 넌 인기 많잖아?”

 “그런 거 없어. 내가 뭐 인기라는 게 있겠어.”

 “도아야, 우리 집에…… 갈래?”

 재성이 말했다. 얼떨결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럼 너도 이제 결석 안 할 거지?”

 도아의 말에 재성은 고개를 숙였다. 재성은 갑자기 때가 진 소매를 의식하게 되어서 다른 손으로 감췄다. 그러자 때가 낀 손톱이 드러났다. 그는 살며시 주먹을 쥐어 주부습진을 달고 사는 손가락을 감췄다.

 “약속이다? 좋아, 가자.”

 도아가 답했다.

 

 재성의 집은 단독 주택에 딸린 반지하방이었다. 도아가 키가 커서가 아니라, 초등학생 전용인 듯한 작은 문이라 열고 들어갈 때 고개를 한참 숙여야 했다. 문에는 못 자국이 많았다. 재성의 말을 빌리자면 도둑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 주인이 자물쇠를 단 흔적들이었다. 부엌은 밖에 있었다. 가전은 중고였고 소음이 심했다. 부엌에 있는 싱크대 찬장 한쪽도 누가 버린 걸 주인아저씨가 재활용한 것이었다.

 문밖의 운동화 두 쌍. 둘 중 하나는 삼십만 원이 넘었다. 다른 신발은 발이 들어가는 곳에 구멍이 뚫려 헤져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도아가 말했다.

 “어, 그래. 어서 오너라. 재성이 친구구나?”

 도아가 들은바 할머니의 발음이 좋지 않았다. 가감 없이 말해 이상한 냄새도 났다. 사실 그녀는 몇 주마다 아니면 달마다 속옷이든 뭐든 갈아입곤 했다. 방에는 이불 여러 장이 펼쳐져 있었는데 끄트머리의 하얀 이불보에는 점점이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도아까지 있으니 방이 너무 좁았다. 리모컨 TV는 컸다. 화면이 큰 게 아니라 덩치가 컸다. 벽에는 못으로 옷들이 걸려 있었다.

 “재성아 나 목말라.”

 “잠깐만 기다려.”

 곧 재성이 플라스틱 물컵을 가져왔다. 양치 컵 같은 물컵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도아는 반쯤 비우고 또 남은 반을 마셨다.

 “시원하네.”

 도아가 말했다. 친구의 기분을 덜어 주기 위해 일부러 맛있게 마신 감이 없잖아 있었다.

 TV에서는 동물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재성이 옆에서 일일이 할머니에게 전달하거나 설명을 했다. 사자가 물소에게 쫓기는 장면이 나오자 할머니가 즐겁게 웃었다. 물소가 물을 먹다가 악어에게 공격을 당하자 할머니는 왜 불쌍한 소에게 그러냐며 악어 욕을 했다.

 도아는 친구가 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는 걸 가만 보다가 자기도 한쪽을 잡고 거들었다.

 “할머니가 시골 분이셔서 소한테 애정이 많으셔. 시골에서는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가족 행사나 다름이 없거든.”

 “그래?”

 “우리 일어날래?”

 재성이 말했다. 둘이서 거의 한 시간이나 할머니 다리를 주물렀다. 그 사이 할머니는 잠이 들어 있었다. 재성은 그네 타기를 제안했고 도아도 찬성했다. 그전에 먼저 그들은 낡은 건물들이 붙어서 있는 다세대 주택가를 나와 여중학교에서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다. 차임벨이 울리자 알바생이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라고 말했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용돈이라도 벌 겸 억지로 일을 하게 된 백수 이 년 차 남자 알바생은 안경 안에 손을 넣어서는 깨알 같은 눈을 비비며 일이 하기 싫어 한숨을 픽픽 쉬었다.

 “뭐 마실래? 내가 살게.”

 도아가 말했다.

 “그럼 콜라로 할게. 목이 말라서.”

 “나도 콜라가 좋겠다.”

 도아는 다이어트 콜라를 집었다. 차임벨 소리가 났다. 불현듯 도아는 싸한 기운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알바생이 양쪽 손바닥을 보이게 든 채였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는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다시 보니 공업용 커터 칼이었다. 남자가 손가락을 밀어 올리자 드르륵 소리를 내며 칼날이 길어졌다.

 “금고에 있는 거 다 꺼내. 씨발 거 딴 생각하지 마라. 진짜 좆 되는 수가 있으니까.”

 남자가 으름장을 놓았다.

 알바생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금전등록기를 만졌다. 완전히 잠이 깼고 뽕이라도 맞은 듯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중이었다. 땡 소리가 나며 금전등록기의 문이 열렸고 알바생이 돈을 아무렇게나 집어 카운터에 내놓았다. 그리곤 눈을 내리깐 채 뒤로 물러났다. 그의 몸통 박치기에 맞은 담배 매대의 높으신 분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쓸데없는 짓 하면 죽는다. 응? 모가지에, 응?”

 남자가 칼을 한 번 휘둘렀다.

 “돈, 돈만 가져가세요.”

 알바생이 움츠리며 말했다. 속으로 개새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도아야……?”

 재성이 낮게 속삭였다.

 도아는 입가를 삐죽 올리고는 재성을 힐끔 보았다. 마치 지금의 현장과는 동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여유만만한 표정이었다. 도아는 재성을 보는 상태로 손만 들었다. 그러자 손에 있던 알루미늄 캔이 떠올랐다. 즉시 남자를 향해 빙글빙글 날아가 칼 든 어깨를 퍽 때렸다.

 “아얏! 뭐야?”

 칼을 놓친 남자는 신음하며 주변을 살폈다. 다시 칼을 집은 그는 카운터에 있는 나머지 돈을 거머쥐고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내가 가만있으라고 했지?”

 그 말을 하던 남자는 재성을 찾아냈다. 네가 그랬구나 하는 동시에, 재성의 머리 위로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음료수 캔들을 발견했다. 캔과 페트병은 흡사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둥실 떠올라 더 날아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를 했다. 재성은 침을 꼴깍 삼켰다. 남자가 자신을 향해 뭐라고 하면서 칼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환타 캔 하나가 공깃돌처럼 휙 날아갔다. 남자는 몸을 낮추어 그것을 피했다. 환타 캔은 알바생이 등지고 있는 담배 수납장을 부수면서 오렌지색 액체를 분출하며 떨어졌다. 이번에는 패트병이 물로켓처럼 날아갔다. 남자의 주변에 희고 투명하고 검고 파란 색색의 이백오십 밀리, 일 점 오 리터, 삼백오십오 밀리, 오백 밀리 포탄들이 연속해서 쉬윅 쉬윅 떨어졌다.

 도아는 키득대면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냉장고 안에 있던 물건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었다! 남자로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창고 문까지 열리며 재고 상품들까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수백 개의 음료수 대열에 합류하여 간격을 유지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치기도 하며 카운터로 부웅 날아갔다.

 남자는 즉시 도망을 쳤다. 하지만 문을 열려고 하는데 밖에서 먼저 문을 열었다. 차임벨 소리가 뒤늦게 들리고 밖에 서 있는 순찰차도 한 템포 느리게 발견이 되었다. 그리고 남자를 공격했던 음료수들은 대공포의 빈 탄피처럼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도아와 재성은 남자가 경찰에게 연행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카운터로 갔다. 도아가 캔 두 개를 카운터에 올리고 계산을 했다. 알바생은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뒤늦게 사색이 되어 진심에서 우러나온 눈물을 훔쳤다. 뒤처리는 언제나 알바생의 몫이었던 것이다.

 

 도아가 먼저 그네에 앉았다. 그의 시선에 일단의 여중생들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게 보였다. 여학생들이 도아를 가리키며 속닥거렸다. 하늘에서 비행기가 빨간 불을 깜박거리며 지나갔다. 교문에서 기다리던 학부모가 딸을 데리고 갔다. 재성은 그넷줄을 가만 만져보다가 그네를 탔다. 몸을 젖히자 그네가 앞뒤로 움직였다.

 “재성아 학교는 왜 빠트렸어?”

 “그냥 그런 일이 좀 있어가지고…….”

 “그 녀석들 너희 집 알아?”

 “응.”

 “찾아온 적은 있고?”

 “아직까지는…….”

 “제대로 혼내줘야지 않아?”

 “누구를? 범식이 형을? 그게 가능할 리가…….”

 재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두 발이 단단한 모래 바닥에 질질 끌렸다.

 “왜?”

 “나 박재성이야. 내가 어떻게 하겠어. 난 그냥 찌질이일 뿐인데.”

 그넷줄을 잡은 재성의 손이 미끄러졌다. 손가락이 짧은 두 손이 무릎에 있다가 다시 그넷줄을 잡았다.

 “혹시 내가 도와주길 바라는 거야?”

 “아니. 아니야.”

 재성이 또 고개를 저었다. 정곡을 찔린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아에게 폐를 끼치기 싫은 것도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다.

 “도아…… 역시 넌 대단한 애구나. 엄청난 능력이었어. 슈퍼 히어로같아.”

 “그다지 놀라지 않네?”

 “나도 그런 점이 신기해.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잖아.”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너도 인정한 것일지도 모르지.”

 “설마!”

 재성은 도아의 의견에 완전 반대했다. 도아는 평범한 인간으로 봐도 최고의 능력치를 가진 아이였고 자신은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라 어딜 가도 최하위의 인간이라고 여겨졌다.

 “그만. 더 이상 말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그냥 콜라나 마시자.”

 도아가 말린 이유는 재성이 자괴감에 빠질 거라는 예감에서였다. 그는 재성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둘은 콜라를 마셨다. 순간 재성이 사레가 들려 괴로워했는데 걱정은커녕 도아는 웃기 바빴다. 웃음 전염 현상 때문인지 재성도 피식거리다가 결국 웃음이 터졌다. 둘은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웃고 또 웃다가 결국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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