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가 재성의 팔을 꾹 찔렀다.
“괜찮아?”
“으? 응.”
아침부터 재성의 인상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든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은 잿빛이고 정신은 딴 데 두고 온 사람 같았다. 불러도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이 교시가 막 끝날 무렵이었다.
“난 사람이 피를 토하는 걸 처음 봤어.”
재성이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도아의 머릿속에서 범식의 얼굴이 범인의 몽타주 스케치처럼 그려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으니 그게 아닌 듯했다.
“우리 할머니가…….”
“계속해.”
“우리 할머니가 많이 아프셔. 폐암 말긴데, 이미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태야. 그런데 할머니는 시커멓게 변한 폐가 걱정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셔. 아마 의사가 그렇게 말한 모양이야. 오늘은 새벽부터 할머니가 밭은기침을 하고 계셨어. 급기야는 요강을 부여잡았는데 각혈을 하시는 거 있지.”
재성은 거의 엎드린 자세로 웅얼웅얼 말하고 있었다.
수업 종이 울렸다. 교사가 교실을 나갔다. 교실이 와 하고 시끄러워졌다.
“할머니 오래 못 살아.”
“힘들겠구나.”
도아가 말하자, 재성은 마치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얼굴을 들더니 혼을 빼앗긴 채 고개를 돌렸다.
점심시간에 도아는 일찍 숟가락을 놓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얼마 먹지도 않았다. 이 층인 급식실 건물에서 내려와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매점에 가 볼 생각이었다. 매점에 들른 그는 아이들이 뭘 샀나 보았다. 그가 보기에 빵도 과자도 라면에 넣는 두꺼운 만두도 불량 식품 같았다. 체감상 급식과 다를 게 없었다. 그는 냉장고에서 캔 음료를 하나 꺼냈다. 겉면에 묻은 물기는 소매로 닦았다.
매점 안에서 연신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기저기 앉아서 라면과 만두를 먹고 있었다. 돼지라도 잡는 듯 꿰에엑 하는 트림 소리는 그를 께름칙하게 만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트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애들이 종종 있었다. 그는 캔을 따며 운동장을 향해 걸었다. 무심결에 화장실 쪽을 보게 되었는데 범식 일행이 있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그중에는 재성도 있었다. 그래서 도아의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그는 가보기로 했다.
“재성아, 씹성아 너 새꺄 우리가 우습냐?”
김민이 재성의 멱살을 움켜쥔 채 마구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성민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거무스름한 입술을 벌린 채 동권이 화장실 문을 옆차기로 팍 열었다.
“어우, 냄새 씨발.”
동권이 인상을 썼다.
“재성아 형이 뭐라고 하든?”
범식이 일부러 만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에 돈이 없어요. 할머니가 아프셔서.”
“오, 할머니가 아프셔? 축하한다. 좋은 데 가시겠네.”
김민이 재성의 목덜미를 잡고 푹 내렸다. 무릎으로 치려다가 동작을 멈추자 재성이 앓는 소리를 냈다.
동권과 성민이 담배를 나눠 피웠다. 범식도 하나를 받고 불을 붙이며 연기를 허공에 후 내뱉었다. 가만히 담배를 피우고 있던 범식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가서는 재성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때렸다. 눈치 차리고 있던 김민이 재성을 뒤에서 붙잡고 있었다. 재성은 눈물까지 흘리며 날아오는 주먹을 맞았다. 범식이 발길질을 하려다 동작을 멈췄다.
“너 기분 좋겠다.”
범식이 말했다.
성민이 재성의 뺨을 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김민은 잡은 몸이 제대로 샌드백 역할을 하게 해주려 자세를 바꿔 주었다. 담뱃불을 끈 동권이 와서 재성의 배에 옆차기를 했다.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재성의 무릎이 바로 구부러졌다. 김민이 잡고 있지 않았다면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재성은 울음을 터트리며 격렬한 기침을 했다. 뒤에서 놓자 자연히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기분 좋겠다, 새끼야.”
범식이 다시 말했다.
“십만 원짜리야, 이게 다. 자, 새끼야. 기어서 나가.”
성민은 말안장에 타듯, 재성의 등에 냅다 올라탔다. 재성의 두 손이 벌써 시커멨다.
“달려!”
성민이 외쳤다.
재성은 팔꿈치로 몸을 의지했다. 재성이 꼼짝도 못 하자 성민이 발로 재성의 옆얼굴을 툭툭 쳤다. 재성의 손이 더러운 타일 바닥 위에서 떨고 있었다. 범식이 그 손을 질근 밟았다. 재성이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좆 같으니까 소리 내지 마라.”
범식이 말했다.
동권이 웃었다. 그러다 충치 안에 낀 오징어 찌꺼기를 느끼고 쯥쯥거렸다. 손가락을 넣어 요란하게 후볐다. 범식은 입에 있던 꽁초를 손가락으로 옮긴 후 실실 웃었다. 기막힌 생각이 난 것이다.
“얼굴에 지지려고?”
김민이 소리 죽여 말했다.
동권과 성민은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성민이 말했다.
“동권이 넌?”
“차라리 팔이나 배때기 같은 데 하자.”
“지랄들은.”
범식이 담배 앞부분에 바람을 불었다. 담뱃불이 용광로처럼 번쩍거렸다. 그는 아직도 조랑말처럼 엎드린 재성의 머리털을 세게 잡아당기더니 눈 밑을 지졌다. 치치칙 소리가 나며 살갗이 타들어 갔다. 담뱃재가 뭉개지며 쇳가루처럼 떨어졌다. 재성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만해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만들 해.”
범식들이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너 이 새끼!”
범식이 누런 앞니를 드러냈다.
도아는 호주머니에 있던 손을 하나씩 꺼내 허리에 붙였다. 손바닥의 피부 결을 따라 미세한 파동이 느껴졌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엄지로 맞부딪쳤다. 딱 소리가 나자 범식의 왼쪽 관절이 꺾였다.
“뭐야 이거?”
범식이 노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또 딱 소리가 나자 이번엔 범식의 다른 다리가 확 꺾였다. 도아가 두 번 연속 딱딱거리자 범식의 팔이 크게 휙 돌아갔고 허리가 앞으로 접히며 푹 엎어졌다.
“뭐야? 씨발, 뭐야?”
성민이 당황해서 말했다.
동권은 다짜고짜 도아에게 덤벼들었다. 도아는 사이드 스텝을 밟듯 물러나더니 엄지와 검지를 연속으로 맞부딪쳤다. 딱딱딱. 동권의 경우에는 마치 한물간 로봇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관절이 모두 따로 놀고 손발이 뒤죽박죽으로 움직였다. 뒷발이 올가미에 잡힌 듯 넘어지더니 파닥파닥하고 팔다리를 꺾었다.
김민과 성민도 뱀처럼 꼬물거리며 제자리서 뒹굴었다. 재성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통증도 잊을 정도로 매료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도아의 손짓에는 겁을 먹었다. 잊어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도아는 그의 베프이지 않은가.
“재성아, 괜찮아? 여기서 나가자.”
재성은 옷을 털면서 도아를 따랐다. 때가 지지 않아 수돗가에서 물 칠을 했다. 그는 푸푸 거리며 얼굴에 사정없이 물을 끼얹었다.
“너 눈을 다쳤구나?”
도아가 말했다.
도아의 손이 다가오자 재성이 움찔했다. 도아의 손이 불에 덴 자리 위에 머물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재성은 알 턱이 없었다.
“나 많이 다쳤지?”
“나쁜 상태는 아닌걸.”
“범식이 형이 내 얼굴을 담배로 지졌어, 담배로……. 그런데 아까 왜 그랬는지 알아?”
범식들이 이상하게 몸을 꺾어댄 걸 말하는 것이었다.
“그 녀석들 말이야?”
“응.”
“무슨 이상한 장난 같은 거 아니었나?”
“장난은 절대 아니었어.”
“그게 뭐가 중요해. 나쁜 녀석들이잖아? 나쁜 녀석들은 한 번씩 미칠 때가 있어. 우리 같이 착한 부류는 나쁜 녀석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교실에 가자.”
교실에서, 재성은 처음으로 벽거울로 얼굴을 살폈다. 긴장을 하고 보았는데 입술만 갈라졌을 뿐 소위 말하는 담배빵은 없었다. 그는 범식이 또 호출하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지만 뒤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절친을 보자 일전에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믿음을 느꼈다.
“야, 택시기사 살인사건 알아?”
“아, 그거? 장난 아니더라. 벌집이 됐다던데.”
“범인, 외국인 아니야? 그렇다고 하는 거 같던데.”
“아니야, 대학생이래. 목격자가 나왔어.”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 근데 그거 목격자 아니야. 그냥 술 취한 아저씨가 쏼라쏼라 한 거야.”
“연쇄살인이란 소문도 있어. 요즘 들어 살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거 같지 않아?”
“칼로 막 후벼 팠대.”
“저게 무슨 소리야?”
도아가 옆에 앉은 재성에게 물었다.
“나도 대략적으로밖에 모르는데 요새 동네가 살인 사건 때문에 시끄러워. 요즘 경찰들이 자주 보이는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야.”
재성이 기적처럼 멀쩡한 눈 밑을 문지르며 말했다.
“큰일이군.”
“정말 큰일이지.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일 가능성이 크대. 그러면 누가 피해자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 당장 우리 중에서도…….”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
“당연하지.”
도아의 시선이 오래도록 재성에게 머물렀다. 도아는 당연하지 라고 말하면서 재성이 지었던 표정을 쉬이 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재성은 등교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범식은 PC방으로 들어갔다. 전용 자리에 중학생이 앉아 총질을 하고 있었다. 범식은 주위를 살피며 다가가 중학생의 헤드셋을 벗겼다. 뭐야 하면서 보는데 인상이 무시무시한 고딩 형이라 중학생은 얼굴이 시커메졌다.
“여기가 네 자리야?”
중학생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네 자리냐고?”
“네?”
“네 자리냐고, 새끼야.”
“예, 제 자린데요. 왜 그……?”
“뭐 이 새끼야? 따라와 봐라.”
범식이 중학생의 어깨 쪽 교복 셔츠를 잡아당겼다.
“죄송합니다.”
중학생이 바로 말했다.
“여기 내 전용 자린데, 새끼야. 비켜 새끼야.”
범식이 손바닥 밑쪽으로 중학생의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머리가 헝클어진 중학생은 금방에라도 울 듯한 얼굴로 여기서는 안 보이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범식은 앉아서 게임을 하다가 전화를 받지 못했다. 게임이 한 판 끝나고 그가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상대편이 씹었다.
그는 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권이 이 새끼 내 전화 씹는다. 내가 보기에 일부러 이러는 거 같은데.”
“내가 전화해 볼게.”
“근데 김민, 너 어디냐?”
“지금 피시방 가고 있어.”
“성민이는?”
“걔는 사고 친 게 있어서 오늘은 집구석에 일찍 들어가야 한 대.”
“아, 그 새끼 그 거는.”
성민이 옆집 여대생 누나를 때린 것이다. 기분 나쁘게 쳐다봐서가 이유였다. 곧 PC방에 김민이 도착했다. 범식과 김민은 PC방이 떠나가라 낄낄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했다. 사람들이 인상을 쓰고 쳐다보지만 아무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동권까지 도착해 삼인방이 되었을 때 그들은 계산을 하고 나가기로 했다.
“얼만데요?”
범식이 턱짓을 하며 말했다.
“여기 컴퓨터 좀 바꿔야 되겠어요. 컴퓨터가 썩어서 뭘 하지도 못하잖아요.”
김민이 주름살을 만들며 말했다. 나이가 많은 알바생은 카운터에 던져진 꾸깃꾸깃한 지폐를 말없이 받아 금전등록기에 넣고 거스름돈을 직접 건넸다. 범식이 트림을 꺼어억 하자 PC방을 나가면서 동권이 큰 소리로 하하하 웃었다. 삼인방의 목적지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골목길이었다.
“야, 저기 온다.”
동권이 범식을 찔렀다. 중학생 몇 명이 오고 있었다. 김민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이리오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빨리 텨 와.”
중학생 셋은 호주머니에 있던 손을 빼고 약속이라도 한 듯 공손하게 앞으로 포갰다.
“형들 과자 좀 사줘라.”
동권이 턱을 비스듬하게 쳐들었다.
범식은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이맛살을 만든 얼굴만 치켜들었다. 중학생들이 보기엔 두 눈의 살기가 오줌을 지리게 만들 정도로 엄청났다. 결국 중학생들은 가진 돈을 탈탈 털렸고 그 돈은 이만 원쯤 되었다.
삼인방은 같은 짓을 몇 차례 더 하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몰이 창법으로 한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다가 배가 고프다는 범식의 말에 길가의 핫도그 가게로 향했다. 핫도그에 소스를 치던 범식은 문득 화장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꼬챙이에 뀐 텁텁한 빵에 케첩이 구불구불 그려지는 게 꼭 그때 꺾였던 자신의 관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뭐였을까?”
“뭐가?”
김민이 말했다.
동권이 쳐다보니 범식의 눈 밑에 그늘이 져 있었다.
“뼈가 부러지는 기분이었어. 진짜 더럽게 아팠다고. 그런데 좆도, 지금은 멀쩡하잖아?”
범식이 팔목을 털었다. 그리고 다리를 만졌다.
“그땐 말이야, 진짜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어.”
동권이 무슨 말인지 알고 답했다. 벌어진 앞니로 핫도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아말감으로 때운 어금니로 옮겼다.
“나도 진짜 무릎 아작나는지 알았다니까.”
김민이 배꼽을 후비며 말했다. 손에 든 핫도그에 케첩을 하도 쳐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범식이 먹던 핫도그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순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거기 학생?”
점원이 말했다.
“뭐?”
동권이 눈을 부라리자 혼자밖에 없었던 대학생 점원은 아니요, 아니요 하더니 괜히 카운터에 걸레질을 했다.
“그 이 학년 새끼 뭔가 찜찜해.”
“이름이 도아였던 거 같은데?”
김민이 동권을 향해 말했다. 동권이 게슴츠레 뜬 눈으로 점원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범식아 어디가?”
“내가 가기는 어딜 가, 새꺄! 용돈 벌러 가야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돈을 많이 번다는 유명한 명언도 몰라?”
점원은 몸을 돌렸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기 때문이다.
“XX공원!”
김민이 우우 거리며 말했다.
“거기 갈까?”
“뭐야, 김범식? 그 생각 아니었냐?”
“거기까지 가기 귀찮아.”
“그럼 골목대장 하러 가는 거야?”
동권이 사타구니를 긁으며 말했다.
그들은 골목을 지켰고, 여덟 명에게 돈을 뜯어냈다. 도합 십이만 사천삼백 원의 수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