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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7. 스토커
작성일 : 18-12-14 20:56     조회 : 291     추천 : 0     분량 : 8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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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의 아침 식사는 두유와 바나나 두 개였다. 매일 그렇게 먹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세 시까지 굶다가 퇴근을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좀 특별했다. 미역국에 여러 가지 반찬을 한 것이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휴일이기도 했다. 밥을 먹은 그녀는 녹차를 마셨다.

 그녀는 중고매장을 이용해 산 독학사 책을 폈다. 잡념이 많은 탓에 글귀가 온건히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삼십 분 이상을 억지로 책을 붙잡는 데 썼다. 그녀는 책을 덮은 다음 선반에 올려놨다. 난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짜증이 났다. 이렇게 사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었다. 그녀의 계획은 이번 해 안에 독학사를 따고 내년부터는 정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틈틈이 독서량도 늘릴 생각이었다.

 그녀는 일어나 빨래바구니에 있는 옷을 세탁기에 쏟아 부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빨래가 끝날 때까지 노래를 들었다. 대게 지나간 가요였다. 빨래가 끝났음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빨래 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베란다 창문을 미세하게 열어 놓았다.

 ‘이제 뭐 하지?’

 그녀는 방바닥에 있는 이불을 보았다. 그녀는 이불을 개어 놓지 않고 그냥 반으로 접어놓고 살았다. 필요시에 펴고 바로 잠을 자는 것이다. 그녀는 이불을 펼친 후 그 위에 누웠다. 항상 쉬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지만 막상 쉬게 되면 따분했다. 만날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거울로 얼굴을 살핀 후 간단한 외출복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 생각이었다. 빌라를 나서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조절했다. 평일이라 길거리에 그녀 또래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불현듯 버스를 타고 G시에 갔다가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G시는 그녀가 사는 도시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다가오는 버스정류장을 지나치기가 싫었다. 지갑을 가져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한참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다가 그녀가 그냥 갈까 하는 생각을 품었을 때 나타났다. 그녀는 뒷자리로 갔다. 뒷문과 가까운 곳이었다. 그녀는 창가에 앉았다. 버스가 흔들흔들 움직였다.

 그녀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창밖 풍경이었지만 점차 머릿속에 차오르는 상념에 시력을 빼앗겼다. 흔히 진상이라고 일컫는 부류부터 마트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생각이 났다. 어제는 팀장이 남직원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팀장이 주로 담당하는 농산 코너, 쌀 가격을 바꿨다는 것이 이유였다.

 “봉완 씨,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요?”

 팀장은 흥분해서 목까지 시뻘게졌다. 팀장은 이렇듯 사소한 것에 화를 잘 냈다. 참을성 많은 남직원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버스가 섰다.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버스에 탔다. 한 명은 앞에 보이는 대로 자리에 앉고 나머지는 통로를 따라 걸어왔다. 버스가 덜컹하며 움직였다. 차창 너머에서 중고차 매매장이 지나갔다. 차내 방송에서 이번 정거장과 다음 정거장을 말했다.

 사십 분 정도가 걸려 그녀는 종점 앞 G역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가 가는 양쪽마다 옷가게가 즐비했다.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화장품 가게와 핸드폰 매장 밖에서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분수대가 보였다. 여대생 몇이 거기에서 사진을 찍었다.

 불현듯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그녀는 들고 있는 휴대폰의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낯선 음성이었다.

 “누구세요?”

 “민경 씨, 이러기예요? 지금 농담하는 거죠?”

 당연히 스팸 전화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전화 건 이 남자는 바로 김중형이었다. 이미 눈치챘지만 그녀는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모르겠어요, 저는.”

 “나예요, 나.”

 “누구……?”

 “맞추기 전까지 말 안 할래요. 직접 듣고 싶어요.”

 “팀장님?”

 “아니에요.”

 “봉완 씨?”

 “연기하는 거 아니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전화번호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가 약간 신경질을 냈다.

 “저 단골이에요. 그렇담 손님이란 얘기죠? 저 힌트 많이 줬어요.”

 “혹시 중형 씨?”

 “딩동댕! 맞았어요!”

 “아…….”

 “뭐 하고 있어요?”

 “G에 왔어요.”

 “왜요?”

 “그냥 좀 일이 있어서요.”

 “그때 가게에서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요. 그럼 차로 데려다줬을 텐데. 이거 제 전화번호예요. 저장해 놓을 거죠?”

 “근데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진짜 섭섭하네. 직접 말해놓고 기억이 안 나요?”

 그녀는 기억이 났다. 그때도 그가 카운터를 떠나지 않는 바람에 손님들이 줄을 섰었다. 그래서 그를 빨리 보내기 위해서 번호를 말해준 것이다. 다른 번호를 가르쳐 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그러지 못했다.

 “치, 나 삐졌어요. 민경 씨 오늘 밤에 약속 있어요? 저하고 데이트 어때요? 제가 좀 즉흥적이죠? 너무 갑작스러운가? 민경 씨? 왜 말을 안 해요? 민경 씨?”

 “죄송해요. 지금 바빠서.”

 “밤에 만나자니까요. 이러기예요? 에이, 애인 없는 거 알고 있는데, 나도.”

 “할 게 많아요.”

 “뭔데요?”

 “개인적인 거라서.”

 “그런 게 어딨어요. 뭔지 말해 줘 봐요. 그래야 내가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거 아니에요.”

 “미안해요, 끊을게요.”

 “민경…….”

 뚝.

 그녀는 또 전화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탑승한 뒤에도 핸드폰은 잠잠하기만 했다. 그녀는 창가 자리를 선호했다. 안쪽 자리에 앉으면 꼭 연필통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그녀의 지난 세월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것들을 보게 된다.

 벌써 서른셋이었다. 그녀는 혈관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느꼈다. 언제까지 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당장 독학사 공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노력이란 걸 얼마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걱정만 많았다. 그래서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장벽처럼 가로막혔다. 집에서 밥을 차려 먹을 때가 하루 중 가장 춥게 느껴졌다. 심적 동향이 있을 것이다.

 

 여자 손님이 껌 한 통을 내밀었다.

 민경을 가격을 말하고 돈을 건네받았다. 잔돈을 주고 나서 인사를 했다. 손님들이 연이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손님 하나가 물건이 다른 곳보다 비싸다고 빈정댔다. 또 지루한 하루의 반복이었다.

 손님이 빠져나가고 한가한 시간을 틈타 그녀는 나물을 팩 포장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이 오면 남직원이 대신 계산을 해주었다. 카운터로 돌아온 그녀는 계산일을 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답을 해 주는 손님도 있었다.

 수십 명이 가게를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한가한 시간이 찾아왔다. 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유리벽 너머를 응시했다. 문득 그 강아지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졌다. 주인이 강아지를 찾는 데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동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양손을 앞으로 한 채 말했다.

 “우유 어딨어?”

 백발의 할머니가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민경은 카운터에서 나와 안내했다. 할머니가 우유 두 종을 차례로 짚더니 유통기한을 물었다. 그녀가 말해 주자 할머니가 선택했다.

 “빵은 어딨어?”

 그녀가 또 안내했다.

 “어떤 게 인기가 있어?”

 “저는 안 먹어 봐서 모르는데 이게 잘 나가요.”

 그녀가 추천했다.

 “딱딱한 건 아니지?”

 “딱딱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가 만져보고 말했다.

 계산을 하는데 할머니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가씨 예쁘게 생겼네.”

 그녀는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출입문이 열리고, 졸린 눈의 젊은 손님이 쇼핑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얼마간 바쁘다가 가게가 썰렁해졌다. 그녀는 담배 진열대 뒤의 유리벽을 보고 섰다. 잘못 본 것일까. 뭔가를 봤다고 생각하는 찰나 실제로 부메랑 같은 것이 훅 지나갔다. 보도블록 위를 수직으로 긋고 날아가는 그림자는 조류의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 크기라면 독수리일 것이다. 그녀의 생각이 틀리지 않은 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민경 씨 퇴근 안 해요?”

 언제 왔는지 오후 캐셔가 말했다. 오후 캐셔는 세 남매의 젊은 엄마였다. 백오십 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아담한 체구라 그녀를 볼 때마다 한 번씩 민경은 출산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지금 하려고요. 수고하세요.”

 이 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는 민경도 독수리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시선이 느껴져서 보니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 끔찍한 시도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가만 보니 사람이 아니라 새였다. 대형 맹금류가 신화에 나오는 악마처럼 검고 잿빛의 날개를 안은 채 옥상 끄트머리에 앉아 있었다. 새는 사람처럼 일어나 제자리서 큰 날개를 퍼덕거렸다. 순간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독수리의 두 눈에서 선홍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새는 우주선처럼 수직으로 날아오르더니 글라이더처럼 슈욱 내려와 그녀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녀는 새가 사라지고 나서도 좀처럼 제자리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눈앞에서 UFO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들떴지만 어떤 약이든 약발이 영원하지는 않은 법이다. 집에 돌아가 독학사 책을 펼치고 나서부터 그녀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상념 탓에 글 읽기가 수월치 않았다.

 밤이었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컴퓨터 책상에는 독학사 서적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헤드셋으로 노래를 들으며 문제를 풀었다. 집중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몇 주 동안 본 책인데 틀리는 문제가 반이 훨씬 넘었다.

 딩동――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음은 먼지처럼 일시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다시 시작되었다. 노크와 초인종의 패턴 탓에 예의 그 사람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밖에서 뭐라고 말까지 하는 것 같은데 웅웅거리는 소리라 그녀에게 온건히 전달되지 못했다.

 “누구세요?”

 현관으로 다가가는 그녀의 음성이 떨렸다.

 밖에서는 노크만 할 뿐이었다.

 “누구세요?”

 똑똑똑.

 그녀는 불안감에 젖어 물러섰다.

 “방 잘못 찾았어요.”

 “제대로 찾은 거 같은데요?”

 밖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거의 제대로 그녀에게 전달되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일부러 목소리를 다르게 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까지 미치자 너무 가능성이 많아졌다. 이런 장난을 칠만한 사람이 누구라고 꼭 집긴 힘들지만 그 누구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가주세요.”

 그녀는 다시 경찰 카드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밖은 이미 조용했다. 그녀는 불안해하며 의자에 앉았다.

 

 민경은 담배 매대에 담배를 채워 넣었다. 그녀는 상념이 많았다. 원래 같으면 지겹다와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주된 고민거리였을 테지만 근 며칠 사이 새로운 걱정거리가 탄생했다. 누굴까?

 그녀는 매장을 한 바퀴 쓸었다. 남직원이 대걸레 두 자루로 매장을 닦았다. 그녀는 카운터에 있는 커피포트에 생수를 넣고 끓였다.

 “봉완 씨 커피 드실래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녀는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를 풀어 입으로 가져갔다. 너무 달았다. 남직원이 바지를 뒤졌다. 점장의 전화였다. 점장의 요청대로 PDA로 물건 몇 개의 바코드를 찍어 확인했다. 남직원이 매장을 나가는 동시에 중형이 들어왔다. 그는 안경 너머로 그녀를 응시하며 장바구니를 들었다. 앞을 연 후드 재킷을 양쪽 어깨에 걸치듯 올려 입고 있었다. 얼마 후 그는 장바구니를 카운터에 툭 내려놓았다. 그녀와 그의 부리부리한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그가 소리 없이 웃었다.

 “민경 씨?”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물건들을 찍고 있었다. 삐 소리가 나며 소주 세 병의 가격이 모니터에 떴다.

 “민경 씨 있잖아요. 혹시 말인데요, 혹시 오늘 시간 있어요?”

 “시간은 왜요?”

 그녀는 무시할까 하다가 물었다.

 “혹시라니까요. 혹시 말이에요. 사실 한가하죠?”

 “할 일은 있어요.”

 “뭔데요? 없는 거 알고 있어서 묻는 거예요.”

 “공부해요, 저.”

 “무슨 공부요?”

 “독학사요.”

 “그게 뭐예요? 시험 일이 언젠데요? 내일 해도 되는 게 공부잖아요.”

 그녀는 말을 못했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이! 매번 말하지만 종량제 봉투로요. 이십 리터요. 민경 씨도 참 너무하지.”

 그가 연기 톤으로 말했다.

 그녀가 주었다.

 그는 물풍선 같은 손으로 물건을 담는 중에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손가락 네 개가 봉투 손잡이를 헐렁하게 잡았다. 공처럼 볼록 솟은 손등으로 봉투를 말았다. 그는 안경을 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평평한 미간에 주름이 졌다. 넓적한 콧방울이 벌렁거렸다. 면도를 안 한 지 며칠 지난 듯 까만 샤프심 같은 콧수염과 턱수염이 삐뚤삐뚤 자라나 있었다.

 “민경 씨. 민경 씨?”

 “네……?”

 “저 귀찮아요?”

 “아니에요. 그런 건.”

 솔직히 그녀는 귀찮았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거였다.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성미 때문이었다.

 남직원이 매장에 들어왔다. 카운터의 상황을 슬쩍 보며 지나갔다.

 “미안해요.”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민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모자를 앞머리 쪽으로 누른 뒤 까슬까슬한 턱을 훔쳤다. 멋있어 보일 거라는 지레짐작에서 나오는 행위였다.

 “저 때문에 민경 씨가 난처해졌잖아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수고해요, 민경 씨.”

 가게를 나가다 말고 그가 우뚝 섰다. 그는 자신의 귀를 때렸다. 남에게 말하면 믿지 않겠지만 가끔 고양이 소리가 들리곤 했다.

 민경은 유리벽을 통해, 저리로 가는 중형을 바라보았다. 그가 신경 쓸 거리를 남겨두고 떠난 것이다. 그녀는 일하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자신이 했던 표정과 말투, 행동을 되새겨 보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세 시에 그녀는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건물을 나왔다. 늘 같은 누추한 옷이라 집에 갈 때까지 부끄러움이 뒤따랐다. 다행히 그녀의 집은 가게에서 멀지 않았다. 문득 그녀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연실색하게도 중형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당황하는 것 같다가 이내 장난기 가득하게 웃었다.

 “민경 씨 아니세요?”

 그녀는 간신히 표정을 다스리며 어색하게 묵례를 했다.

 “어디 가세요? 집에 가는 길이에요?”

 “아, 네.”

 “저는 볼 일이 좀 있어서요. 그런데 가는 길이 같은 거 아니에요? 어딘데요? 집이?”

 “조금만 가면 있어요.”

 “나도 조금만 가면 있는데. 아, 친구 집이에요. 제가 친구가 좀 많거든요. 수백 명은 돼요. 되게 많죠? 저 마당발이에요. 전국구요. 무슨 일 있음 저한테 말만 하세요.”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 옆에 섰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그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그녀는 거의 정신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민경 씨 만나는 사람 진짜 없어요? 민경 씨 같은 여자가 남자가 없다니!”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걷기만 했다.

 “저는요?”

 “네?”

 “저는 여자 친구 있을 거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에이, 맞춰 봐요.”

 “있어요?”

 “글쎄요.”

 그가 큰 몸을 획 틀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연히 그녀를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없어요.”

 그가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뒷걸음으로 걷더니 다시 그녀의 옆에 왔다.

 “민경 씨 몇 살이랬죠?”

 “서른셋이요.”

 “적은 나이는 아니죠?”

 “그래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독학사로 학위 받은 뒤에 학사편입으로 대학을 갈까 아니면 대학원을 갈까 고민 중이에요.”

 하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결혼을 생각해 볼 나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둘은 공원 주차장과 상가 건물 사이의 도로를 건넜다. 초록색 그물이 쳐진 축구장 바깥의 트랙에서 초등학생들이 자전거 레이싱을 벌이다 할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렇지 않으세요?”

 중형이 채근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공원 너머 가파른 아스팔트 길 뒤쪽에 여러 채의 빌라가 보였다. 그녀가 사는 빌라도 거기에 있었다. 당연히 중형에게 자신이 사는 빌라 건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도롯가에 있는 건물임에도 무시하고 이면도로 앞에서 갈라지기로 했다. 이면도로를 걸어 올라가다 이만 하면 됐겠지 하고 다시 내려온 그녀는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중형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그는 씩 웃더니 갈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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