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우리가 사랑한 우주에서 (3)

　#11. 앞장면의 시각을 바꾼 연속

　 죽는다는 것, 그것은 ‘불완전 지성체인 인간의 생명 활동이 완성에의 진입을 시작한 경지’일 수도 있다고 말한 이는 우리 신천지호의 재생 의료담당 전문가인 파란눈 간디 가계의 어떤 선대였다.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음에서 되살려 낸 간디 계통의 인물이 그러한 말을 한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하거니와, 매번 죽음에 임할 때면 겪는 가슴앓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기분을 말함일까’ 하고 되새겨 본다.

　 죽음, 특히 영원한 죽음을 지향해 온 지도 여러 세기가 흘렀다. 마감했는가 싶으면 어느새 되살려 있는 자신의 생명을 짐스러워 하곤 했던 생애가 한두 번이었던가. 코넬095가 되기까지 살아온 아흔 네 번의 생애는 어느 한 차례도 원해서 태어난 적이 없는 타의의 삶의 연속이었다.

　 이만 행복했으니 그 행복을 간직한 채로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매번 죽음에 임할 때면 떠오르곤 했었다. 하룻밤 잠을 자고 깨어나는 것 같은 죽음과 그 죽음으로부터 재생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하룻밤 잠’에 불과한 죽음이 뜻밖에 편안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많아지며 영원한 잠에 대한 동경은 신념처럼 확실한 염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 차례의 죽음을 맞을 때마다 꿈을 꾸곤 하였다. 끝을 알 수 없는 먼 길을 걷거나, 너무나 편안하여 다시는 변화하고 싶지 않던 어떤 품속의 경치에 있거나, 생전에 겪었던 전란을 연결하여 다시 치르거나 하는 등으로 매번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나는 죽음 저편의 세계는, 생애의 끝을 맞아 온갖 잡사를 버리고 싶어질 때면 매번 이상향으로 새김질되곤 했다.

　 어떤 생애를 마감할 때 우연히 임종을 지켜 주던 간디 가계의 누군가에게 그러한 뜻을 전했을 때 그는 말했었다.

　 “그 꿈이 진실한 그대의 삶일 걸세. 우리가 삶이라고 믿고 있던 이생의 모든 경험이야말로 한 토막 악몽이었는지 모르지.”

　 악몽을 꾸기 위해 되살아난다. 재생이란 유쾌한 행사가 아니었던가. 하기는 태어나기를 재촉하여 손짓해 부르는 이생의 빛이 싫어 자궁을 나온 태아는 통곡을 한다지.

　 우리의 재생도 통곡 속에 시작하곤 했었다. 새로운 악몽을 치르게 된 두려움으로 재생 때에 되도록 눈뜨는 일을 늦추곤 했던 것이 한두 번이던가. 그랬었군. 죽음의 꿈과 삶의 꿈이 편안함과 두려움으로 대별되는 이유는 주어지는 것과 스스로 치르는 것의 차이에 있었어.

　 탄생은 무량겁의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 속에서 인간이 되기도 힘들거니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이생에 태어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인연이라고 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태어나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 나라는 존재를 자각하는 인연이란 엄청난 선업을 쌓지 못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필연의 결과라고 했다.

　 우리 스스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살려내는 재생 행사는 어떤 인연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우리의 신분이 해적이고 우리의 하는 일이 약탈 행위인데 그러한 악업의 연속으로도 매번 재생되는 생애에는 필시 어떤 필연의 이유가 있을 법한데…… 우리를 해적선 신천지호의 승무원이라는 신분에 놓고 끝없이 재생시키는 이면에 얽혀 있는 인연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어지러움을 품고 있기에 매번 우리의 삶을 이토록 한스럽게 만드는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한때 삶의 목적으로 삼았던 그 행사의 덧없음을 깨달은 후에도 우리는 분신을 나누어 우주의 세류에 휩쓸려 들었다.

　 이유는 하나, 우리 중의 꿈을 이루지 못한 누군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시작이 타이탄의 지하 갱내 강제 노동 현장에서였고, 그 지옥 같았던 광산에서 중간물질 인드라의 해독으로 죽어가던 우리의 생명을 구해 준 동료의 은혜를 갚기 위해 탈출과 우주행의 모험에 참가했었다. 그 과정에서 타이탄의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의 여주인 중의 하나로 뛰어난 미인으로 꼽히던 샤넬 가계의 여성과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동료의 한풀이 행사에 동조하여 우주로 날아오른 후에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새로운 적의 상륙 있을 것이라는 예고가 들어왔다. 적은 외로이 남은 해적 말류를 대접하려고 전투병의 대군을 보내왔다. 공간에 가득한 황금함대의 대군, 이래야 싸울 맛이 나지. 그런데 이번의 적은…… 나는 내 새로운 적들을 대하는 순간 종말을 예감했다.

　 은하연방 제일의 명문 류우가(家)의 인물이 적 함대의 사령실에 있었다. 공간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적의 총수 류우408이 입가의 근육을 일그러뜨려 우리의 최후를 비웃고 있었다.

　#12. 앞장면의 시각을 바꾼 연속. 해적선 신천지호

　 죽음의 별에 상륙한 전투병들의 모습은 모두 한 가지였다. 코넬096. 똑같은 형상을 한 자신의 모습에게 죽임을 당하는 코넬096의 표정은 당혹 그대로의 것이었다. 해적선 신천지호의 재생의료 전문가 간디066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 숱한 전투 중에 우주 안팎에 널리 흩어졌을 우리의 세포 조각에서 유전자를 취해 저런 괴물들을 만들어 낸 모양이군.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인간이 아닌 전쟁 로봇들을. ‘죽음의 별’을 노리고 대군을 보내 온 이유도 같은 목적 때문이겠지. 간디066은 신천지호의 선장 김진욱093에게 통신을 열었다.

　 “적은 ‘죽음의 별’에 있는 우리의 동료들을 노리고 있는 듯싶네. 또 다른 복제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 때가 되었다고 생각될 경우, 최종 해결을 주저하지 마시게.”

　 통신을 하고 있는 김진욱093의 면전에 코넬096을 살해한 복제 코넬들이 로마군단의 진용을 펼치고 다가오고 있었다. 김진욱093은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빛에서 류우408이 숙적인 자신에게 보내는 증오의 크기를 읽고 서둘러 할 일을 결정했다.

　 성간연맹 측 용병들이 김진욱093을 중심으로 모여 로마군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김진욱093이 해적 출신 용병들을 주축으로 ‘송곳 끝’부대를 만들어 류우408의 사령선을 향해 진군을 시작한 것은 잠시 후였다.

　 “적의 주력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망 스크린을 통해 전황을 살피던 작전 참모의 보고였다. 류우408은 다시 한 번 입가의 근육을 일그러뜨렸다. 이제 끝낼 때가 되었어. 물론 승자는 내가 되겠지만……

　 은하연방군의 황금전함 함정들이 다시 용병들의 새로운 집단을 우주로 내보냈다. 성간연맹군의 선두에 섰던 김진욱093은 마주 달려오는 황금전함 측 용병들의 면목을 확인하고 전율이 가중됨을 느꼈다.

　 코넬이 있었고, 알렉산더가 있었고, 오신과 오덕양이 있었다. 눈빛이 초점을 잃은 점만 다를 뿐 자신들과 똑 같은 모습을 한 적이 각기 한 단위부대를 이루어 달려오고 있는 양을 본 해적 출신 용병들은 악몽을 꾸는 듯 몸서리를 쳤다.

　 해적들은 생각했다. 이런 형식의 꿈은 항상 결말이 좋지 않았어.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는걸.

　 전투가 벌어지고 해적 출신 용병들이 자신을 복제한 은하연방군의 용병들에게 차례로 희생되기 시작했다. 전투력이 같은 닮은꼴끼리의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고 비정하기까지 한 황금전함 측 용병들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해적 출신 용병들은 목표로 정했던 은하연방군 사령선에 당도하기도 전에 전멸의 위기를 맞았다.

　 “최종 해결을! 이런 식의 예술이 없는 전쟁을 우주 안에 남아 있게 해서는 안 되네!”

　 김진욱 093이 최후를 맞기 직전에 본선인 신천지호의 지휘부를 지키고 있던 간디066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죽음의 별’이 폭발하고 있었다. 블랙홀의 예비 단계에 있는 백색왜성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중력을 우주에 방기하기 시작했다.

　#13. 어느 시대의 어느 우주. 어느 해적의 독백

　 우리가 홀연 이곳에 던져진 이유를 우리 중의 하나는 ‘우주의 울부짖음’ 탓으로 돌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는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이고 우리는 그 한 세포인데 스스로 행동을 하는 병든 세포임으로 우주가 고통으로 울부짖는다고 하였다. 우리가 이곳에 던져진 이유는 우주가 병든 세포를 외따로 격리시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죽음의 별’을 파괴한 이후 그 엄청난 중력 방기 현상에 휩쓸려 들어 온갖 차원을 여행한 끝에 우리는 이곳에 왔다. 탄생이 있었고 소멸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을 미래에 되살리려는 꿈이 있었다. 우리는 특히 네 번째 조건인 사랑의 꿈을 찾아 그리움의 격랑이 넘치는 세류 속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한 여인을 지적하여 말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약해 보이는 분이지?”

　 또 다른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답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랬어. 무언가 마음고생이 큰 모양이야.”

　 우리 중의 누군가는 생각했다. 보호해 주어야 한다. 저렇게 약한 여인에게는 우리처럼 강한 남성이 곁에 꼭 붙어 있어서 쓰러질 때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야 한다.

　 보호의 대상이 끝내 쓰러졌을 때 우리는 그녀의 영혼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미래에는 병들지 않는 몸을 만들어 살려 낼 수 있는 시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견해를 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막연한 꿈에 불과한 미래에 의지해야 현상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살려내고자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뜻과 같이 풀리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 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우리 중의 누군가는 재생 의료학을 공부하는 의사였다. 그의 노력과 우리들의 의지로 또 다른 우리 중의 하나가 사랑하던 한 예인의 시신에 우리의 꿈의 여인의 영혼의 한 조각을 불어넣는 시술이 행해졌다. 그런데, 그랬는데……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낳았을 뿐이었다.

　 살아난 예인에게는 두 개의 지성이 공존하고 있었다. 본래의 예인의 것과 우리가 주입한 영혼이.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유로 예인을 떠났다. 우리 중의 또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반쪽 영혼인 본래의 예인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주로 쏘아 올린 영혼을 찾아 되살려 내어, 우리만의 온전한 사랑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기왕에 만들어진 인연은 현실에의 도피만으로는 지워지지 않았다. 예인은 어느새 반쪽 영혼의 사랑을 전체 영혼의 사랑으로 발전시키고 있었고, 떠나버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본래의 자신을 사랑하던 우리 중의 또 다른 하나를 떠나 우주로 날아올랐다.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비극의 별 타이탄에서였다. 우리는 죽음의 돌 인드라를 캐는 강제노동 수용소의 유형수였고 그녀는 한 술집의 춤추는 여인이었다. 예인을 뒤따라온 우리 중의 또 다른 누군가의 질투가 어우러져 우리의 사랑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우리는 다시 떠났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유로. 우리가 우주로 쏘아 올린 영혼을 찾아 나눔이 없는 사랑을 엮고 싶었기 때문에. 반쪽 영혼의 사랑을 전체 영혼의 사랑으로 발전시킨 여인을 연적의 세력권 속에 남기고.

　 우리는 끝없는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 과거의 꿈을 미래에 되살려 보겠다고 혼돈의 우주를 헤집고 다닌 업화를 끝없는 어두움 속의 방황으로 되받고 있었다. 일찍이 우리를 나누어 떠난 우리의 분신들이 우리를 안타까워하여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생애, 또 한 생애를 전체인양 산들 다 부질없는 짓일세. 탄생 이전에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다네.”

　 무엇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일까. 꼭 이루어야 할 사랑을 찾아 600년 이상의 세월과 수십, 수백세대의 재생을 이루며 우주를 떠돌았던 일들이 겨우 전생의 삶을 답습한 부질없는 일에 지나지 못했다는 뜻인가.

　 “더 가보게나. 깨닫게 되겠지.”

　 어디로? 무엇을 찾아서? 우리를 나눈 우리의 분신들이 반쪽 영혼의 사랑을 전체 영혼의 사랑으로 발전시킨 여인의 진지함에 감동해서 안주해 버린 그 변화 없는 세계를 향해서? 그곳에 당도한다고 해도 또 다른 우리를 나누어 또 다시 떠나게 될 소지가 우리 중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우리가 그 변화 없는 세계를 떠나올 때에 나누어 온 반쪽 영혼의 실체가 끝없는 방황 끝에 회한 속에 이곳에 도착한 우리일진대, 우리 중의 또 다른 한쪽이 나뉘어 같은 방황을 하지 않는다고 어찌 보장할꼬? 안주하고 싶은 우리로부터 떠나고 싶은 우리가 분리되어 나왔듯이 현재의 우리에게서 또 다른 우리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수 없음이고 보면, 그때의 우리가 회한을 짓씹으며 고향을 찾을 즈음에는 우리의 영혼이 또 다른 갈등을 잉태하여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이것이었는가. 그곳에 안주한 우리가 방황하는 우리에게 말한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은?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여전히 신천지호였다. 우리는 어느새 한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장소는 태양계 외곽 우주였고 우리 배는 중간물질 인드라의 안정성을 이용하여 만든 상온에서의 핵융합 동력을 추진력으로 삼아 아광속으로 날고 있었다. 아직 인드라의 효용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 그렇게 떠나 왔지. 우주의 무한한 어두움 속으로 무작정 뛰어든 치기의 시절. 태양계 안에서는 찾지 못했지만 은하 우주 안에서야 설마 찾아내지 못하겠느냐 하고 떠나 왔지만 그 ‘설마’의 크기를 전혀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우리 배가 가진 속력으로는 영원을 달려도 끝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차원 밖의 세계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도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해서 ‘설마’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을 뿐 그 무한한 시공의 크기에 온갖 차원이 작용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조화의 결과들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웠으니까. 그랬는데……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여전히 신천지호였다. 우리는 해적이었으므로 추적해 온 정규군과 싸웠다.

　 그래, 저렇게 싸우며 팔 힘을 키웠고 도망치며 다리 힘을 키웠지. 힘을 키우면서 악명도 얻었고, 힘을 키우면서 자신감도 키웠고. 바라지도 않았던 절망도 따라서 키워 왔지만……

　 우주는 우리가 생각한 ‘설마’의 크기를 뛰어넘어 무한과 무궁의 세계를 끝없이 중첩시키고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우리 밖의 차원에 우리 이상의 크기를 가진 우주가 무한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절망. 우리가 찾는 영혼이 어느 차원이건 갈 수 있다고 볼 때, 우리의 능력은 절망 이외의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하찮은 것이었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우리가 이생에 머물러 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찾고자 하는 영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세계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취해야 할 무엇이 이 세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싸우고, 도망치고, 회의를 품고 고민하고, 자포자기식 전투를 벌인 끝에 이생을 하직하고. 그러한 절망의 세계에도 미련을 품을 무엇이 있었던가? 길들인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하더니, 악몽도 자주 꾸면 고향처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가.

　#14. 어느 우주의 어느 공간. 우주선교선 장미13호

　 -무얼 본 걸까요?

　 -우리와 연계된 멀지않은 훗날, 우리의 예정된 최후. 그 중의 한 장면쯤이 아닐까.

　 -왜, 저런 경치가 현재에?

　 -우주는 탄생부터가 불가사의라고 하네. 우리도 우주의 말류, 불가사의의 하나로 불가사의한 사연의 한 꼭지쯤 겪는 게 이상할까.

　 -우주선교사인 내가 선택된 이유가……

　 -신께 변명하고 싶었던 거야. 최선을 다했지만 당신이 만들어놓은 숙제는 풀지 못했다고.

　 -…….

　 -인간에게는 사랑하는 것의 최후를 책임지려는 본능이 있다네. 옛 지구별에서는 그 자기 파괴의 행사에 신을 들러리로 동원하는 경우가 예삿일처럼 많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