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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5. 밤
작성일 : 18-12-13 23:32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8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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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바지 속에 있던 손이 스르륵 나왔다. 오래도록 쪼그리고 앉아 있어선지 다리가 아팠다. 그는 나무 뒤에서 나와 공원을 걸었다. 걸어오면서 벤치 등받이를 발로 찼다. 녀석들 중 하나가 있던 곳이었다. 그는 벤치에 털썩 앉았다. 잭나이프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칼날이 튀어나왔다. 오월의 달빛이 반사되어 어렴풋하게 빛났다. 그는 그것으로 허공을 스윽 그었다.

 “뱃가죽이야.”

 상상 속에서 지방질이 갈라지며 피가 쏟아졌다.

 “까뒤집어 주지.”

 그는 마치 연달아 병따개를 놀리듯 손을 움직였다. 상상 속에서 옥수수 알갱이 같은 누런 지방이 썩다가 만 잼처럼 흘렀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핏속에 골수가 섞였다. 그는 벤치를 이용하여 칼날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이십 분을 더 기다렸지만 그가 기다리는 인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공원에서 나온 그는 밤거리를 배회했다. 네온사인이 윙크를 했다. 가로등 불에 날벌레들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밑에서 거미줄이 흔들렸다. 나방 몇 마리가 하얗게 둘둘 말려 있었다. 거미는 없었다. 가로등에서 찌잉 소리가 났다. 하지만 상상일 뿐이었다. 형광등 불이 들어오면 나는 그런 소리. 어쩌면 신선한 살을 자르는 소리. 뼈에 칼날이 박히는 소리. 냉동고기 톱 회전하는 소리.

 ‘응?’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앳된 목소리였다. 그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씨발, 나래가 너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더라.”

 “장난으로라도 그딴 좆병신 같은 말 하지 마, 개새야!”

 화수는 조용조용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고등학생들이 뭐지 하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곁눈질을 슬쩍하면서 학생들 옆을 지나쳐 갔다. 만약 녀석들이었다면 보물찾기에 성공한 것이었을 테다. 다 포기하고 있는데 돌멩이를 들추니 나오는 보물 종이. 그러나 그런 즐거운 우연은 없었다. 그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 학생들을 마주했다.

 “저기 혹시…….”

 그는 혹시나 하여 녀석들의 인상착의를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넌 아냐?”

 “나도 몰라.”

 화수의 눈에 PC방이 보였다. 그는 이유도 모른 채 그리로 들어갔다. 밤이 늦은 탓에 미성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투명한 부스 안에는 살에 짓눌려 눈코입이 겨우 형태만 갖추고 있는 거대한 여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는 구석 자리로 가려다가 마음을 바꾸고 카운터 근처에 앉았다. 인터넷에 접속해 이것저것 해보는데 재밌는 것이 딱히 없었다. 그러다가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무심결에 검색어를 하나둘 입력해 보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역 신문의 인터넷 기사를 살폈다. 딱 감이 오는 기사는 없었다.

 ‘꾼들은 아니란 건데.’

 아니라는 법도 없었다. 녀석들이 못돼 먹은 상습범인데 신고 조치가 제대로 안 돼 잠잠한 것일 수도 있었다. 밤중이라 다른 피해자들이 녀석들의 얼굴을 못 봤을 수도 있다. 큰 피해가 아니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남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그도 파출소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었다. 왜냐면 직접 잡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순간 그는 XX공원 폭력이라는 엉성한 검색어를 선택했다. 역시나 이렇다 할 것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계산을 하고 PC방을 나왔다. 복도에 있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았다. 벽에 볼펜으로 상스런 욕설이 적혀 있었다. 대강 범인은 중고생처럼 보였다. 청소년도 열 시 넘어서까지 게임을 하게 해달라는 투정이었다. 그런데 물때가 잔뜩 진 거울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대변기 쪽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 밑으로는 발 하나가 구부정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속을 엿보았다. 회사원 하나가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좌변기를 베고 자고 있었다. 얼굴은 취기로 빨갰고 양쪽 볼이 밤빵처럼 반들거렸다.

 화수는 일자로 섰다. 얼굴은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뒤로 물러섰다가 복도 쪽을 살폈다. 조용했다. 엘리베이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화장실 가운데로 돌아와 바지 안에 손을 넣었다. 버튼을 누르자 길지 않은 칼날이 나왔다.

 “아저씨?”

 칼날이 안감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콧구멍으로 나른한 숨을 내뱉었다.

 “혹시 녀석들을 만나게 되면 나한테만 살짝 전해달라고요.”

 그 말을 남긴 채 화장실을 나온 그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화수는 잠에서 깬 뒤에도 천장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안 좋은 꿈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가서 세수만 하고 커피를 끓였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보경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그는 또 카톡 메시지만 보냈다.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우리 통화 좀 해.

 -카톡으로 해도 되잖아.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커피가 달았다. 그 감이 좋지 않았다.

 -자기야 난 괜찮아. 자기도 어서 떨쳐 내. 더 나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어.

 그는 메시지를 보낼까 망설였다. 다시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처음에는 자기가 경찰한테 왜 모른다고, 기억이 안 난다고만 했는지 궁금했어. 화가 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자기한테도 생각이 있겠지. 아니면 정말 걔들이 기억 안 날지도 모르고. 사실 나도 너무 놀라서 걔들 얼굴이 생각이 나지 않았거든. 자기도 힘들었을 텐데 미안해.

 -난 괜찮아.

 -전화 좀 받으면 안 돼?

 -다음에 하자. 내가 연락할게. 지금은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미안.

 그녀의 답장은 없었다. 아마 울고 있을 것이다.

 그는 미련이 남아 쓸데없는 것들을 검색했다. 당연히 녀석들에 대한 단서는 손톱만큼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커피를 개수대에 버리고 모자와 긴소매를 입었다. 그는 버스를 이용해 공원으로 향했다. 환한 대낮에 공원을 방문한 건 이로써 두 번째였다. 처음 사건이 일어나고 셋째 날에 처음 방문을 했다. 사건 다음 날은 건설현장에서 온종일 쇳덩이를 옮기고 난 이튿날처럼 몸이 말이 아니었다. 데미지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힐긋 보면서, 녀석들이 내 얼굴을 기억할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경찰과 짜고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냄새를 맡고 도망가 버리면 어쩌지? 막장 새끼들이라 담력이 작을 거 같지는 않은데.’

 아니다. 경찰이 개입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때 이쪽으로 걸어오는 학생이 보였다.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번뜩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는 XX공원 근처 학교 하고 즉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몇 개가 떴다. 당연히 여자 학교와 초등학교는 배제였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늦은 오후까지 기다렸다. 버스를 탔다. XX학교 근방에서 내렸다. 그리고 근처 PC방을 찾았다. 몇 개가 보여서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발길이 닿는 대로 향했다. 처음부터 수소문을 해도 되지만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그는 PC방을 전반적으로 둘러보고 난 뒤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는 자리를 물색했다. 마침 하나가 비어 있었다. 헤드셋이 아무렇게나 있는 걸 보면 금방 계산을 하고 나간 모양이었다. 그는 인간 도청장치를 자처하기로 했다.

 “야, 대박 사건!”

 XX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단신의 아이가 달려와 친구가 앉은 의자 머리받이를 잡아당겼다.

 “왜? 뭔데?”

 “너 김덕시 아냐?”

 “걔 오 반 아니야?”

 “미친, 사 반이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걔 삼 학년 누나한테 고백했대!”

 “누구? 누구?”

 무시.

 화수의 옆자리는 유인원처럼 생긴 남학생이었다. 교복을 보아하니 모두 같은 학교였다. 유인원은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옆자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기다려. 같이 쳐들어가. 좆밥새끼야, 같이 가자니까!”

 유인원이 바쁘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겼다.

 무시.

 흡연부스가 열리고 삼십대 두 명이 들어갔다. 그 안은 금방 너구리굴이 됐다. 뒤쪽에서 음료수를 땄다. 바코드로 비회원카드를 찍는 삐삐 소리가 났다. 남중생이 냉장고 문을 열고 콜라와 소다 음료수 사이에서 망설였다.

 “살인자 새끼!”

 어딘가에서 소리쳤다. 화수는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다시피 해서 주위를 살폈다.

 “아! 살인자 새끼야!”

 그의 자리에서 반대쪽이었다.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다리를 움직였다. 사람들의 옆통수 너머에서 녀석들의 뒷머리와 앳된 옆모습이 보였다. 두 명 내지 세 명 같았다. 그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상상 속에서는 누가 보든 말든 냅다 뒷덜미에 칼날부터 집어넣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우선 얼굴만 확인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야, 그게 재밌냐? 그럴 시간에 랩업이나 해라, 인마.”

 화수는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NPC를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살인자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거였다. 그는 녀석들의 얼굴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얼굴은 몽타주와 달랐다. 그는 일행을 찾는 척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갔다.

 그는 밤 열 시가 못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이십구 분이었다. 오래 앉아 있었던 탓에 엉덩이가 아팠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는 인상을 썼다. 발에 미끄덩한 감촉을 느꼈던 것이다. 누군가의 가래침이었다.

 ‘고삐리 새끼들.’

 건물을 나온 그는 도로 맞은편의 불 켜진 간판들을 보았다. 그중에서 분식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떡볶이와 순대를 시켰다. 벌겋게 나온 떡볶이는 별로였고 순대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혼자 사는 남자란 음식 쓰레기만 아니면 거의 다 먹는 잡식성이니까.

 떡볶이집 사장은 사십대 주부로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가게 안에 있는 TV로 뉴스를 보며 지금까지 떠들어 대고 있었다.

 “……세상 무서워서. 어쩜 저럴 수 있을까?”

 그녀가 다른 사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뉴스에서는 부모에 의한 아동범죄를 말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화수를 제외하고 두 테이블이 더 있었다. 그녀의 목표물은 그녀 또래의 남자였다. 단골인 듯 보였고 우연히 하는 말을 들어보니 집배원 같았다.

 “옛날에는 일 끝마치면 늦게까지도 운동을 했는데 지금은 무서워서 못 한다니까요.”

 “퇴근하고 헬스장 가는 거예요? 거기 어딘데요? 나는 저기 목욕탕 건물 이 층에 있는 XX헬스장인데.” “아니, XX공원에서 운동을 했어요.”

 순간 화수는 숨이 막혔다. 그는 떡을 어금니로 갈아 씹으며 맛도 없는 것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다.

 “거기서 왜 깡패 같은 애들이 나온 대잖아요. 피해자가 몇몇 돼요, 지금. 크게 다치거나 한 사람은 없는데 밤에 그런 일을 당해 봐요. 얼마나 무섭겠어요.”

 “돈을 노리는 거예요? 경찰은 뭐하고?”

 “뭐 수사를 한다나 만다나 하는 이야기가 있었나 봐요.”

 말을 멈춘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걔들 XX고등학생이래요. 삼 학년이라는데.”

 “확실해요?”

 남자가 말했다. 그 이후로 불평이 쏟아졌다. 그 정도 신상 내역이 나왔으면 경찰서로 잡아들여야 하지 않은가 해서였다.

 “그놈들 엄한 사람 건들지 말고 나한테 걸려 봐라. 내가 가만두나!”

 “어머, 근육 좀 봐.”

 그녀가 남자의 알통을 쓰다듬었다.

 화수는 계산을 하면서 녀석들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엿들은 것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점심 무렵에 그는 XX고교 근처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학생들의 흡연장인지 천지가 담배꽁초였다. 생각대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그는 처음에 얼굴만 쓱 잠깐 보았다. 그 뒤에는 일절 학생들을 보는 일이 없었다. 이쯤 됐으면 녀석들이 어딘가에서 걸려도 걸릴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금세 시들해졌다. 밤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화수는 공원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꾸만 그때의 수치심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씨발 새끼들.”

 그는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웅얼거리며 공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무심코 밤하늘을 보는데 유성이 떨어졌다.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인가? 이 시간에 십대가 드나들 곳은 마땅치 않았다. 상습범이라면 돈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손쉬운 돈벌이가 또 어딨겠는가. 수로 밀어붙이면 게임 끝.

 “나타나라, 나타나. 형이 기다리잖아.”

 그는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작은 소리만 나도 고개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연인들이 지나갔다. 남자가 괜히 혼자서 욕을 하며 센 척을 했다.

 “왜? 짜증 나?”

 여자가 말했다.

 “그냥 갑자기 그러네. 비가 올 것 같아서, 찝찝해서 그러나.”

 남자가 말했다. 그러면서 화수 쪽을 신경 썼다. 화수는 속으로 싱긋 웃었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자기야 뭐해?

 -집에서 책 읽고 있어.

 -내일 시간 있어?

 -좀 그런데.

 -모레는?

 -왜?

 -보고 싶으니까 그러지.

 -조금만 시간을 주면 안 될까?

 한참 답장이 없었다. 그는 카톡 메시지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결국 답장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는 포기하고 핸드폰을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씨발놈들아, 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이 날 조졌다고.”

 순간 풀밭에서 뭔가가 부스럭거렸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것인가. 하지만 길고양이일 뿐이었다. 고양이는 눈을 한 번 빛내곤 다시 풀밭으로 뛰어들었다.

 “도대체가 너희들 어딨는 거야? 응?”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잭나이프를 꽉 쥐었다. 얼굴에 차가운 것이 떨어졌다. 그는 얼굴을 훔치며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이 달까지 먹어치운 상태였다. 구름 속에서 번개가 소리 없이 갈라졌다. 쏴아아. 비가 쏟아졌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공원을 빠져나가 택시를 잡았다.

 “어디까지 가세요?”

 작고 빼빼한 기사가 물었다. 묻는 중간에 트림을 하는 바람에 화수의 신경을 건드렸다. 룸미러에는 금박을 입힌 연꽃이 매달려 있었다.

 화수는 거주지의 중요 건물을 말했다. 차가 달렸다. 미터기의 말도 달렸다. 화수는 버릇처럼 기본요금을 눈으로 확인하고 창밖을 보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 조금이지만 마음이 평온해졌다. 택시가 신호를 받고 섰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건널목을 급하게 뛰어갔다. 앞 차의 후미등이 붉게 번졌다. 와이퍼가 앞유리창을 삐쩍삐쩍 쓸고 갔다. 신호가 바뀌었다. 택시가 출발했다.

 “학생이세요?”

 기사가 대뜸 물었다. 룸미러에 기사의 움푹 들어간 안와가 지나갔다.

 “아니요.”

 그렇게 답하며 화수는 창밖의 정경을 좇았다.

 “회사원이겠네요?”

 “네.”

 화수가 답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신상명세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가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곤 했다. 이 경우에는 휘발성 대화라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많이 힘들겠네요. 많이 힘들죠?”

 “다 그렇죠, 뭐.”

 순간 택시 안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느낌이 다가 아닌 것이 이쯤이면 목적지에 도착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차가 향하는 쪽은 시외 방향인 것 같았다.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저씨?”

 “너 죽으려고 이 차 탔지?”

 순간 화수는 공포감과 함께 피가 끓어올랐다.

 “아저씨 차 돌리세요.”

 그의 목소리가 커졌고 말이 빨랐다. 그는 조수석 머리받이에 부딪혔다. 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한 것이다. 그러더니 주먹이 날아왔다. 화수도 주먹질을 해보지만 속사포처럼 날아드는 주먹에 대응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기사는 삐쩍 곯은 몸과는 달리 주먹이 매서웠다. 주먹질이 끝난 것은 화수가 축 늘어졌을 무렵이었다. 차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순간에야 그도 차가 멈춘 걸 제대로 인지했다.

 그는 문이 열리는 순간 발로 차려고 했다. 하지만 잘못 맞은 데가 있는지 처음에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그의 다리를 잡고 차 밖으로 끌어냈다. 빗소리가 시끄러웠다.

 “씨발놈들이 진짜……!”

 화수가 말하며 택시기사의 가슴을 찼다. 고삐리들로 모자라서 택시기사한테까지 모욕을 당하고 있는 좆같은 실정에 분노가 치밀었다.

 “씹새끼가!”

 택시기사가 다시 달려들었다. 화수의 양쪽 다리를 먼저 안더니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격렬히 저항한 화수는 다시 발길질을 하는 데 성공했다. 주먹을 던지려던 기사가 뒤로 밀려나며 문틀에 뒤통수를 박았다.

 “악……!”

 기사가 뒤통수를 안은 채 악악거렸다. 화수는 차 밖으로 기어나갔다. 뭔가를 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칼날이 쑥 들어오자 기사는 풀밭에 있는 돌멩이 위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화수가 앞발로 밀자 기사가 양손으로 막았다. “잠깐만! 잠깐만! 우리 말로, 말로 하자.”

 기사가 애걸하듯 말했다.

 화수는 주위를 살폈다. 인가는 멀리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목격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동이 꺼지지 않은 택시는 부르릉거리며 기사가 지금 그러는 것처럼 배기가스를 북북 뿜어댔다.

 “언제는 영어로 대화했나?”

 “너 인마, 칼은 왜 들고 다녀, 왜?”

 기사가 손을 떨었다. “너 강도 같은 거야? 영업 택시를 위장하고 다니는 그런 놈? 아니면 택시는 부업인가?”

 “이해 좀 해 줘. 나도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야. 진짜 처음이라고.”

 “다들 그렇게 말하지. 처음이라고.”

 “정말이야. 믿어줘.”

 “나를 믿어라.”

 “응?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의 대화에 빗소리가 파고들었다. 빗발은 금세 거칠어졌다. 주위에는 온통 논밭이었고 멀찍이 비닐하우스 몇 채가 줄지어 있었다.

 “나를 믿으라고.”

 “믿어.”

 기사가 고개까지 끄덕였다.

 “네 뱃가죽을 까뒤집어 놓을 거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뭐랬어? 믿으랬지?”

 “믿는다니까.”

 “그래. 이제 네 뱃가죽을 까뒤집을게.”

 “자, 잠깐만!”

 “어서 끝내야 해. 비 오잖아. 따로 씻겨주지는 않을 거야. 비가 오잖아, 그렇지?”

 칼날에 맞은 빗방울이 산산조각이나 튕겼다. 화수는 칼을 든 팔을 흡사 피스톤처럼 뒤로 당겼다가 강하게 앞으로 내질렀다. 그는 악을 썼고 택시기사는 비명을 질렀다. 칼날은 쩍쩍 소리를 내며 크게 회전했고 또 크게 회전한 뒤에는 속사포로 북북 갈겨대기 바빴다. 기사의 얼굴과 가슴, 등에 빼곡하게 물구덩이가 생겼다. 육십 킬로쯤 되는 고기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질을 거듭하던 화수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밤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개씨발! 개! 좆! 같! 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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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폭력 2018 / 12 / 14 293 0 6800   
5 5. 밤 2018 / 12 / 13 277 0 8770   
4 4. 여인 2018 / 12 / 13 269 0 7592   
3 3. 학교 2018 / 12 / 11 295 0 8839   
2 2. 살인자 2018 / 12 / 11 288 0 8567   
1 1. 소년 2018 / 12 / 11 474 0 1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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