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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4. 여인
작성일 : 18-12-13 23:31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7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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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은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남직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라커룸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여덟 시 전에 도착을 해서 십 분 정도는 사무실에 있었다. 그때까지 아침반인 두 사람은 늘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남직원은 방송을 켜고 복합기로 쇼카드를 뽑았다.

 같은 건물 일 층에 있는 마트에 가서 그녀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십만 원씩 들어 있는 두 개의 돈 통을 각 금전등록기에 넣는 것이었다. 그 사이 남직원은 마트 바깥에 상품 진열을 하고 컨테이너 트럭을 맞이했다. 트럭에서 저온 물품과 상온 물품이 든 초록색 롤테이너를 내렸다.

 남직원은 전표에 사인을 하고 기사를 보냈다. 상온 롤테이너는 브레이크를 채워 놓고 저온부터 가게로 들여보냈다. 그녀는 남직원과 함께 농산, 수산, 축산, 냉동 상품 상자를 각 코너에 착착 내려놓았다. 물건을 다 진열한 뒤에 남직원은 새 상품의 가격표를 뽑기 위해 PDA로 찍었다. 그가 쇼카드를 뽑으러 간 사이 그녀는 유제품 같은 일일배송 상품의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유통기한이 다 된 상품을 폐기하거나 할인 라벨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문득 그녀는 출입문을 보게 되었다.

 “어?”

 웬 강아지가 가게 안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녀가 관심을 보여선지 강아지가 다가왔다. 하지만 자동문의 센서는 조그만 강아지에게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녀도 더 다가가지 않았다. 둘은 행사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문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았다.

 “어서 돌아가. 주인님이 걱정할라.”

 강아지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저만치 쫄래쫄래 걸어갔다. 가지는 않고 그대로 뒷다리로 주저앉았다. 다시 문을 향해 다가와 기웃거렸다. 짓거나 낑낑거리지는 않았다.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 가까이 가면 센서가 작동하여 자동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개가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다. 다시 내보내면 그만이지만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어서 가.”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인기척을 느낀 강아지는 망설이는 것 같다가 아주머니를 쫓아갔다. 그제야 그녀도 움직였다. 자동문이 열렸다. 강아지는 아주머니를 포기하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윽고 주차된 SUV 때문에 강아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카운터로 갔다. 의자가 있지만 앉는 일은 웬만해선 없었다.

 자동문이 열렸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기계적으로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포스기로 찍고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렸다.

 “팔천오백 원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예.”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아니요.”

 “현금 영수증 필요하세요?”

 “예.”

 “번호 불러 주시겠어요?”

 “공일공…….”

 “여기 천오백 원이요.”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발급기에서 나온 영수증을 발밑의 휴지통에 버렸다. 아침 담당 남직원은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 같은 그로서리 담당이었다. 오후 한 시에 출근을 하는 농산 담당자가 마트의 팀장이었고 진열장 하나가 전부인 축산, 수산 일도 했다. 그래서 그가 없는 오전에는 캐셔인 그녀가 팀장이 할 일을 겸하기도 했다. 주변에 경쟁 슈퍼마켓이나 식자재 마트가 존재하는 칠십 평 정도의 작은 매장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계산해주라.”

 오십대 남자였다. 계산대 위에는 소주 두 병과 백 원이 할인되는 종이 쿠폰 두 장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쿠폰 버튼을 누른 뒤 포스기로 종이쿠폰의 바코드를 찍어 할인이 되게 했다.

 “봉투 필요하세요?”

 “당연한 거 아니냐?”

 “봉투는 오십 원이세요.”

 “뭔 오십 원이야. 이십 원도 안 하겠고만.”

 “그럼 저기에 있는 거 쓰시겠어요?”

 그녀가 농산 코너에서 사용하는 롤형 비닐 봉투를 가리켰다.

 “저건 안이 보이잖아. 검은 봉지 없어?”

 “검은 봉투는 없으세요. 종류가 하나뿐이라…….”

 “씨발 그냥 줘 그러면.”

 그녀는 말없이 봉투를 건넸다.

 “안녕히 가세요.”

 자동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밖에서는 길거리 노점상이 행거에 옷을 걸고 있었다.

 열두 시가 넘어가자 그녀는 배가 고팠다. 그녀는 카운터 서랍에서 빨간 통을 꺼내 유통기한이 지난 추잉검 세 개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한 시 전에 팀장이 도착을 해서 진열된 상품을 살폈다. 그녀는 세 시에 퇴근했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회의감 같은 것이 들었던 것이다. 벌써 서른셋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괜히 인터넷 구인광고 사이트를 검색했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컴퓨터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두었던 월급 명세서를 보았다. 백몇만 원 남짓한 돈이었다. 방값, 각종 고지서 요금, 식비,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목돈 마련에 대한 기대는 이미 버렸다.

 독학사로 학사 자격을 따볼까 생각하여 공부를 하고 있지만 솔직히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공부도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도 검정고시로 했다. 그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대학을 가지 않은 건 미련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을 가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녀에겐 그것을 충당할 발판이 없었다. 그녀는 가족이 없는, 혼자였다.

 밤 열 시가 됐을 때 그녀는 자리에 누웠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 여섯 시가 조금 넘었을 때 그녀는 잠에서 깼다. 괴로워하며 이부자리에서 나와 씻었다. 일곱 시 사십일 분에 집을 나서 여덟 시 전에는 마트 건물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 남직원과 각자의 커피를 타서 마셨다. 지겨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오후였다.

 “이만이천삼백육십 원입니다.”

 “휴지 이거 팔천오백 원 아니에요?”

 가격이 나와 있는 손님용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던 사십대 여자가 화장지를 흔들며 말했다.

 “잠깐만요.”

 민경은 가격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하얀 종이가 들려 있었다. 화장지 매대 앞에 꽂아 두었던 행사 쇼카드였다. 삼십롤 화장지의 행사 기간은 이틀 전까지였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것을 전하자 사십대 여자가 오만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죄송합니다.”

 “계산이나 빨리해줘요!”

 여자가 투덜투덜 화장지를 밀어냈다. 민경은 화장지는 빼고 나머지를 계산했다. 화장지를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서 그녀는 속으로 삭였다. 이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일까. 마트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화를 잘 냈다.

 “봉완 씨.”

 “네?”

 매대 정리를 하던 남직원이 대답했다.

 “이거 가격이 잘못된 거 같아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하며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남직원은 아 하더니 이 층 사무실로 황급히 올라갔다.

 “강아지네.”

 쇼카드를 뽑아 온 남직원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생각나는 게 있어 밖을 보았다. 정말 강아지가 있었다. 강아지는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를 향해 앉아서는 꼬리로 보도블록을 문지르고 있었다. 강아지는 움직이는 것에 곧잘 시선을 뺏겼다. 그녀는 무심코 유리벽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강아지는 이쪽을 보는 것 같다가 사람이 지나가자 신명이 난 것처럼 제자리서 뒤뚱뒤뚱 걸었다.

 그때 출입문이 열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다가 흠칫했다. 모자를 쓴 남자였다. 주로 오픈 후 얼마 안 있어 가게를 찾는 손님인데 늘 올이 풀린 우중충한 색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결과 탈모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상당히 살진 체형이었는데 안경다리가 살에 파묻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부리부리하고 두툼한 눈은 약간 튀어나왔고 큼직큼직한 모공으로 쑥대밭이 되어 있는 코는 딸기코가 되어 짜부라져 있었다. 재킷 안에는 색 빠진 티셔츠가 임부복처럼 배불러 있었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가게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찬거리와 소주 여러 병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어때요?”

 그가 말했다. 몇 겹으로 접히는 턱을 움직였다. 목의 접히는 부분이 번들거렸다. 소매를 걷어 나온 물렁한 살이 하얬다. 안경 안의 찢어진 양쪽 눈에 그녀가 비쳤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입가를 올렸다. 광대가 낙타 등처럼 볼록 솟았다. 두 눈의 자잘한 주름살이 그녀와 비슷한 또래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며 두꺼운 낯에 파묻혔다. 그의 얇은 입술이 침으로 번쩍거렸다. 티셔츠의 늘어진 목 부분에 마치 땅 밑을 기어가는 뱀처럼 빗장뼈가 희미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저기요?”

 “네?”

 “내 말 안 들려요?”

 “그게…….”

 “시간 되냐고요.”

 “아니요, 안 돼요.”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왜 안 되는데요?”

 “바빠서…….”

 “뭐 한다고 바쁜데요?”

 그가 배를 카운터에 걸쳤다. 바늘로 혈관을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할 듯한 통통한 두 팔로 기대서 상체를 지지했다. 흡사 공갈 젖꼭지 같은 커다란 유두가 우뚝 솟아 나왔다. 살짝 누르면 모유가 발사될 것 같았다.

 “세 시면 퇴근하잖아요. 안 그래요?”

 “집에서도 할 일이 있어요.”

 “뭐하는데요? 공무원 준비해요?”

 “약속이 있어요.”

 “집에서 할 일이라면서요.”

 “집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녀가 잠시 후 말했다.

 그가 낮은 콧대로 콧방귀를 뀌었다. 귓불을 짜증스럽게 긁적거리며 쇼핑 물품들을 봉투에 툭툭 담았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가 봉투 손잡이를 두꺼운 손날에 한 번 감았다. 학 부리 모양으로 손가락을 모으고 있으니 마치 족발을 연상케 했다.

 “여기 계산 안 해 줘요?”

 “아, 죄송합니다. 양쪽에 있는 거 다 사시는 거죠?”

 그가 그녀를 붙잡고 있는 사이 손님 두 사람이 기다리게 된 것이다. 둘 중 뒤에 있는 사람은 오줌이라도 마려운 사람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 시에 퇴근 준비를 했다.

 “민경 씨 데이트 신청받았다면서요?”

 사무실에서 물품 발주를 하고 있던 팀장이 말했다. 그는 손님들과 친했다.

 “데이트 신청 아니에요.”

 “인기인이셔. 부럽다. 부러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팀장이 그녀의 속도 모르고 말했다. 그는 두 살 연하였다. 그녀는 점장과 팀장에게 인사를 하고 마트를 나왔다. 가게 앞을 지나면서 오후 캐셔와 눈이 마주쳐 묵례를 했다. 퇴근할 때는 항상 느끼는 거지만 뭔가 트이는 기분이었다. 서른셋하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혼자 많이 움츠린 듯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마흔이었다. 그다음에는? 현실적으로 그녀는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민경은 늘 후드가 달린 옷을 입었다. 지금도 아무 무늬 없는 삼만 원대의 후드재킷 차림이었다. 그녀는 상의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지나가다가 단골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가 웃으며 뭐라고 말을 했고, 그녀는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아닌 척 소심하게 인사를 했다. 집에 돌아가서는 평소와 같은 행동 패턴이었다.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타지인인 그녀에겐 컴퓨터가 유일한 친구였다.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크게 컴퓨터 책상과 TV선반, 세 칸짜리 책장, 플라스틱 서랍장밖에 없는 그녀의 가구만큼이나 휑뎅그렁했다.

 딩동――

 생각지도 못한 초인종 소리에 그녀는 놀랐다. 벨 소리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집을 잘못 찾았거니 하여 그녀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밤쯤에 또 초인종이 울렸다. 초인종에 응답하지 않자 문을 두들겼다. 그녀는 없는 것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쯤 되면 무서워서 그녀는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외시경으로 밖을 보는 것도 안되었다. 현관 센서가 반응하면 밖에서 눈치를 챌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벨 소리가 계속되자 그녀도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중문을 열고 나갔다.

 “누구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밖이 조용해졌다.

 “누구…… 세요?”

 똑. 똑. 똑. 노크가 아주 점잖았다.

 “죄송한데 집을 잘못 찾아오신 거 같아요.”

 그녀는 그냥 그렇게 말했다. 그녀를 찾아올 사람은 애초에 없으니까.

 “민경 씨? 강민경 씨?”

 일부러 만들어 낸 저음이었다. 현관문에 최대한 얼굴을 밀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습하는 공포감 탓에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민경 씨 문 좀 열어 주세요.”

 “누구신데요?”

 밖에서 재차 노크를 했다. 벨을 눌렀다. 시끄러운 소음이 방 안에 맴돌았다.

 “민경 씨.”

 “팀장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네, 저예요. 문 열어 주세요.”

 순간 그녀는 사지를 떨었다.

 “이, 이름은요?”

 밖은 조용했다.

 “팀장님 이름이 뭐예요?”

 “왜 그러세요?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남자의 음성이 복도에서 차갑게 울렸다.

 “가세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진짜 이러기야?”

 “여보세요? 경찰이죠?”

 그러자 밖이 조용했다. 침묵은 오래갔다. 그리고 에이 씨 하며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한동안 제자리서 얼어붙어 있다가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부여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중문에 달린 유리를 통해 현관문이 잠겼나 걸쇠가 걸렸나 몇 번이나 확인을 하면서.

 

 “한 시 반까지 배달 가능하죠?”

 “음, 네. 영수증에 주소와 연락처 좀 적어 주세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문 앞에 두고 가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민경은 남직원이 주는 라면박스에 배달 물품들을 담고 테이프로 영수증을 붙였다. 카운터로 돌아와서는 빨간 통을 찾아 추잉검 세 개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할 일이 없는 모양인지 남직원은 아까부터 매장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과자 매대에 가더니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한 아름 안고 와 PDA로 바코드를 찍었다. 라벨기에서 나온 이십 프로 할인 라벨을 일일이 붙였다. 남은 유통기한에 따라 삼십 프로, 오십 프로식으로 달리했다.

 문득 유리벽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모자를 쓴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가게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더니 뚱뚱하고 짧은 다리로 되돌아왔다. 그는 가게에 들어와서 쇼핑바구니를 집은 상태로 숨을 헐떡거렸다. 그는 컸다. 백팔십삼쯤 되어 보였다. 그는 모자 뒷부분에서 뻗쳐 나온 뒷머리를 솥단지 같은 손으로 쓸어내렸다. 손가락마다 새까맣고 구불거리는 털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오늘 덥지 않아요?”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남직원이 카운터 쪽을 힐끔 보았다. 하던 일을 계속했다.

 “좀 그런 거 같아요.”

 모자의 남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녀의 대답 방식은 비슷했다.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그녀는 붙임성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잘 웃지도 않았다.

 장을 보고 온 모자의 남자는 카운터에 식재료와 소주 몇 병을 올렸다.

 “봉투 필요하세요?”

 “재활용 봉투로 주세요.”

 “포인트카드 있으세요?”

 그녀는 없는 걸 아는데도 물었다.

 “이름이 강민경이네요?”

 그가 그녀의 명찰에서 시선을 뗐다.

 “아, 예……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

 “민경 씨 전화번호가 필요한데요?”

 말을 마친 그는 민경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 위트 있고 재치 있는 농담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녀는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눈치도 없었다.

 “제 이름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녀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걸 감추려 다른 곳을 보았다.

 “제 이름은 중형이에요. 김중형이요. 저도 민경 씨 이름을 알게 됐으니 이제 공평하죠? 그렇죠? 제 이름이 뭔지 다음에 와서 물어볼 거예요. 까먹으면 혼날 줄 알아요.”

 그가 씩 웃었다.

 세 시에 그녀는 퇴근을 했다. 잠을 잘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 중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노래 하나를 반복해서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맑았다. 그리고 날개가 달린 검은 형상이 높다란 건물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마법을 부리듯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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