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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두 번째 첫사랑(화양연화)
작가 : 정연일
작품등록일 : 2018.11.15

6인(人) 6색(色)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건실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었던 강하늘. 대우조선 사태로 정리해고를 당하고 방황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
‘나는 가정이 있는데….’

유명 사립대 교수로 젊은 나이에 성공과 실패를 맛본 김미영. 좌절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
‘난 친구보다 가벼운 연인이 필요해….’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일을하며 가정을 꾸려가던 신수아. 오직 남편과 아들, 가족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그녀에게 닥친 또 다른 시련.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방황하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윤명희.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아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외도는 크나큰 죄악이야….’

아빠의 부재가 늘 안타까웠던 아들 강 산. 어느 날 아빠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고 아빠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 한다.
‘내게 여동생이 생겼다고?’

그리고 2049년의 그의 딸 강하영.

여섯 명이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가족의 이야기.

 
2부. 그녀의 이야기(11화)
작성일 : 18-12-12 17:40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8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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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이유야 어찌 됐건 갑자기 생긴 외손녀가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우신가 보다. 낮에는 젖 먹일 때만 빼고는 거의 엄마가 안고 업고 다니신다. 해 질 무렵이면 나는 하영을 데리고 방으로 숨어든다. 아직, 아빠와 오빠와는 마주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주말이 되고 아빠도 오빠도 집에 있는 아침. 나는 조용히 방에서 아침 식사를 했고, 하영이도 젖을 배불리 먹었다. 잠시 후, 엄마가 들어오셔서 하영을 안고 나가신다. 거실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좀 곱게 안아줘 봐요. 일이야 어찌 됐건 당신 외손녀 아니요. 당신 핏줄.”

 

  엄마가 아빠에게 하영을 안겨주시려는 모양이다.

 

  “거, 참... 생긴 건 예쁘긴 하네.”

 

  아빠는 마지못해 받아 안으신 모양이다.

 

  “우리 미영이 애기 때랑 똑 닮았죠?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하니.”

 

  들뜬 엄마의 목소리.

 

  “이름이 하... 뭐라고?”

  “하영이요. 하. 영.”

  “하영이라...”

 

  무슨 뜻일까? 생각하시는 듯한 아빠의 되뇌임.

 

  “너도 한 번 안아줘라. 니 조카 아니냐.”

 

  오빠를 향한 엄마의 목소리.

 

  “전 됐어요. 이쁘기는 하네요. 미영이 고 가시내가 지 인물값은 했네요. 참나.”

 

  화가 풀린 듯한 오빠의 목소리.

  그렇게 집안에 가득 차 있던 팽팽한 긴장감과 냉기가 하영으로 인해 조금씩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그에게 톡이 들어온다.

  『사랑하는 미영씨 보세요.

  편지를 썼으나 붙일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산후조리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보낸 것이 가슴에 자꾸 밟힙니다.

  하영이는 잘 있겠죠? 부모님과 언니 오빠와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많이 혼나셨을 거라. 아니 아주 크게 야단을 맞으셨을 거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그래도 쫓아내지는 않으셨겠지요. 갓 난 하영이도 있는데...

  그래도 혹시라도 가족들 때문에 힘들다면 언제라도 돌아와요. 저는 언제나 당신과 내 딸 하영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갑자기 떠나버린 당신이 많이 야속했지만, 생각 해보면 미영씨의 결정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당신과 하영의 사이에서 많이 혼란스러워하며 어느 한쪽으로도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한 채 헤매었을 거예요. 그렇게 되었다면, 어느 쪽도 건사하지 못하고 양쪽 다 잃었을지도 모르죠. 두 마리 토끼를 쫓던 사냥꾼처럼. 미영씨 덕분에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을, 가야 할 방향을 찾게 됐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이미 전에 말씀드렸듯이 아내와 헤어지고 미영씨와 가정을 이룬다 해서, 가족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을 생각은 없어요. 전(前) 남편이겠지만, 아내와 아들에게 좋은 친구이자 아버지로서 할 역할과 도리를 다할 생각입니다. 이 점은 미영씨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내는 안 그런 척하지만, 이별을 앞두고 많이 아파하는 것 같더군요. 시간을 좀 주고 안정을 되찾으면 그때 같이 법원에 갈 생각이에요. 그래서 시간이 조금 필요할 거 같아요. 저는 당분간 일에 전념할 겁니다. 원래 가진 것도 별로 없었지만, 이혼하고 나면 완전히 빈털터리가 될 테니. 집을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특근, 야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돈을 모아야죠.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어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당신도 하영이도 항상 건강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하기를. 보고 싶고, 사랑해요. 하나님의 지켜 보호하심과 축복이 항상 당신과 하영과 함께하기를 빌며.

  2016. 10. 22 당신의 벗 하늘.』

 

  ‘나와 하영은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난 오히려 하늘씨 당신이 걱정이라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이 오죽하겠으며, 추워지는 날씨에 특근과 야근까지 몸은 또 얼마나 피곤하냐고.’ 답을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직 그와 아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헤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그를 흔들지 않기로 한다.

 

  다음 날 아침. 소식을 듣고 언니가 찾아왔다. 부모님께 인사만 드린 후, 바로 내 방으로 들이닥치더니 인사도 없이 하영이부터 살펴본 다음 속사포같이 질문을 쏴댄다.

 

  “그 사람 누구니? 뭐 하는 사람인데?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 몇 살이니? 집을 어디 살아? 잘생겼니? 키는 커?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자식은 있어? 왜 별거 중이라니?......”

 

  난 언니의 질문을 자르고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해 준다.

 

  “친구. 중장비기사. 말할 수 없어. 마흔. 부산. 못생기진 않았어. 커. 건강해. 열여덟 살 아들 하나. 말할 수 없어.”

 

  난 더는 답하지 않고 한 손을 들어 올려 언니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걱정되고 궁금한 마음 이해해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사양할게. 만약 그와 내가 인연이 되어 맺어진다면 언젠가 만나 볼 수 있을 테니, 그때 직접 보고 물어도 봐. 하지만 우리가 인연이 안된다면 언니가 그 사람을 알 필요가 없어. 영원히 만날 일 없을 테니까.”

 

  나의 말에 언니는 기가 찬다는 표정이더니, 마지막이라며 물었다.

 

  “왜 하필 유부남이니?”

  “우린 그냥 친구였어. 서로를 유혹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불륜 관계 같은 걸 맺으려고 했던 것도 아냐. 그냥 서로 의지가 되는 친구 관계에 잠깐의 열정과 우연이 겹쳤던 것뿐이야.”

 

  칼로 자르듯 딱 잘라 답하는 나를 언니는 잠시 말없이 바라만 보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 사람이랑 맺어질 수는 있겠니?”

 

  난 휴대전화를 켜고 어제저녁, 그에게서 톡으로 보내져 온 편지를 열어 건네준다.

 

  “읽어봐.”

 

  그의 편지를 다 읽어본 언니는 별말 없이 물러선다.

 

  “.... 나쁜 사람 같지는 않네, 하지만.... 아니다. 그래 좀 기다려보자....”

 

  한 달이 조용히 흘러갔다. 집안에 돌던 냉기는 하영으로 인해 많이 따듯해졌고, 가족들과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별다른 마찰 없이 잘 지낸다. 그에게서는 매주 꾸준히 톡으로 편지가 보내져 온다. 내용은 언제나 비슷비슷하다. 나와 하영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그리움을 말하고 축복과 안녕을 빈다. 난 언제나 고만고만한 그의 편지를 꼼꼼히 여러 번 읽는다. 나도 그만큼이나 그가 그립다. 하지만 답은 하지 않고 참고 또 기다려본다. 하영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바라보고 꼼지락거리고 잘 먹고 잘 잔다. 정기검진에서도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저녁 식사 후 아빠가 내방을 찾아오셨다. 책상의자에 걸터앉은 아빠는 조용히 입을 여신다.

 

  “네 엄마한테 대충 이야기를 듣긴 했다만, 계속 이러고 있을 거냐? 앞으로 어쩔 생각인 거냐? 이야기 좀 들어보자.”

  “아직, 정확히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사람한테 연락은 오는 게냐?”

  “네.”

  “뭐라고 하던?”

  “협의이혼 준비 중이라고...”

  “그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긴 하냐?”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기다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사람 혼자되면 같이 살 자신은 있고? 그만큼 좋은 사람이냔 말이다.”

  “제가 만나본 남자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안타까워요. 저 때문에 그 사람도 그 사람 가족들도 불행해질 거예요.”

 

  이 말에 아빠는 ‘발끈’ 화를 내신다.

 

  “그럼, 니 인생은 망쳐도 좋단 말이냐? 그쪽 일은 네가 상관할 바 아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너랑 니 애 걱정이나 해라.”

 

  그렇게 아빠와의 대화는 끝났다.

 

  삼 주가 더 흘러 그에게서 온 편지.

 

  『그리운 그대 보세요.

  겨울비가 오네요. 미영씨도 보고 있겠죠. 예보에는 어젯밤부터 온다더니, 아침까지 화창해서 한창 작업준비를 하는데 갑작스레 쏟아지기 시작하네요. 준비하던 작업을 대충 다시 정리해두고 일찍 퇴근을 했답니다.

  오늘 같은 날, 우리가 함께 있었다면 비 오는 날 먹기 좋은 간식거리를 사 들고 깜짝 퇴근을 해서 미영씨와 하영이와 함께 내리는 비를 눈과 귀로 즐기면서 편안하고 행복한 여유를 즐길 텐데... 하는 공상을 해 봅니다.

  겨울비를 맞으니 괜스레 감성적이 되면서 그리움이 깊어집니다. 당신과 하영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혹시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나요? 저는 그렇게 상상했거든요.

  그대도 가끔 내 생각하시나요? 살짝 궁금해지네요. 설마 못 본 지 좀 됐다고 보고 싶지 않으신 건 아니겠지요? 시간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모든 것을 흐려지게 만든다는데, 저는 어째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이 사무치고 짙어만 갑니다.

  혼자 있으니 입맛도 없고 식욕도 없어, 퇴근길에 사 온 부침개 두 장으로 식사를 대신합니다. 한동안 생각이 안 나던 술이 간절해 지지만 미영씨가 곁에 있다, 생각하고 꾹 눌러 봅니다.

  언제쯤 저의 글에 답을 주실 건가요? 이혼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실 참인가요? 설마 아직도 제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저는 이미 결정을 내렸고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설령 이제 와서 당신이 영영 내게 돌아오지 않겠다 하더라도 아내와의 결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아내에게 이미 너무 큰 죄를 지었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아내와는 다음 주에 법원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접수하고 심리하고 하면 한 달의 숙려기간이 주어질 테고 다음 달이면 모든 절차가 끝날 거 같아요.

  미영씨도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으리라 믿어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요. 저도 사람이고 마음이 여린 연약한 남자일 뿐이랍니다. 저도 힘든 거 아픈 거 느낀다는 거예요. 잊지 말아요.

  2016.12.14. 쓸쓸한 당신의 벗 하늘.

 P.S. 방 두 칸짜리 집으로 계약해 놨어요. 아기가 있으니 아무래도 원룸보다는 방이 따로 있는 조금 큰 집이 나을 거 같아서요. 이달 월급 들어오면 이사할 생각인데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의미 없는 물음이겠죠. 알아서 할게요.』

 

  그는 바쁘고, 슬프고, 힘든 와중에도 나와 하영을 맞이할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내 마음을 꿰뚫듯 알고 있는 그이기에 답글은 마음속으로만 쓴다. 나 역시 마음의 준비는 다 끝났다. 그가 홀로 남게 된다면, 다시 돌아가 그와 가정을 이룰 것이다. 혼인신고도 하고 미뤄두었던 하영의 출생신고도 해야지.

  지금 이 남자에게 이 상황의 ‘주범’인 내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는데, 그 말이 그에게 무슨 위로와 격려가 되겠는가. 그저 그의 글을 확인하는 거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내 마음을 전할밖에.

 

  다음 주 월요일 저녁. 법원에 다녀온 그에게 톡 편지가 왔다.

 

  『미영씨 보세요.

  오늘 법원에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본 아내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어 가슴이 칼에 베이는 듯했어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 말을 전하는 이유는 미영씨도 제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주길 바라서예요. 비록 서류상으로는 남이 되겠지만, 그녀는 언제까지나 저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내 아들의 엄마일 거예요. 그것이 미영씨에게 마음의 짐이 된다 해도 변하지 않을, 그리고 변할 수 없는 진실이에요. 저는 이토록 조용히 날 보내준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는 거 미영씨가 이해해 주길 바라요. 물론 저는 미영씨와 우리 딸 하영을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동시에 아내와 아들도 마음속에 품고 있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마음이 많이 아픈 당신의 벗 하늘.

  P.S. 숙려기간 끝나고 서류정리 완료되면 돌아오실 거죠? 하루하루 성실히 그날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 달 후 웃으며 볼 수 있기를 바라요.』

 

  그에게 그리고 그를 보내준 그의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 그 마음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더라도 그의 아내와 아들을 인정할 것이며, 원하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 얼마든 그를 가족에게 보내줄 것이다. 비록 영영 보내지는 못하겠지만.

 

 나도 이제 그에게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며칠 후 일요일. 모든 가족을 불러모았다. 부모님과 언니, 오빠까지.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사실대로 간략히 설명했고, 다음 달 그가 데리러 오면 그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 것이라 말씀드렸다.

  엄마만이 ‘다행이다. 잘됐다.’ 하셨고, 나머지 가족들은 별말이 없다. 하지만 반대 의사를 표하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않고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다. 아마도 하영을 안고 있는 날 보며 이미 되돌릴 수 없음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이니 나와 하영의 행복을 빌어 달라고, 그리고 남편이 될 그를 좋게 보아주고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잘 대해 줄 것도 부탁한다. 언니는 앞으로 내가 잃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들을 안타까워했으나 ‘그는 나와 하영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내 말에 더는 토를 달지 않았고, 아빠 역시 침묵으로 승낙의 뜻을 밝혔다. 특히, ‘그놈을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던 오빠도 아빠의 무언 승낙에 토를 달지 못했다.

 

  난 이제 더는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지 않는다. 하영과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엄마와 함께 시장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가족들의 저녁 식사에 요리를 해서 올리기도 한다. 불었던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그에게 돌아갈 준비를 하며 한 달의 시간을 보낸다.

 

  삼 월의 마지막 주. 아침부터 진눈깨비 같은 것이 흩날리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남녘에선 보기 드문 제법 많은 양의 눈이다. 하영은 난생처음 보는 눈이 신기한지 계속 창가를 바라본다. 춥지 않게 담요로 감싸 안고 베란다로 나가 눈을 손에 만져주니 ‘까르르’ 웃는다.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톡이 들어온다. 직감적으로 느낌이 온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확인을 해보니 역시 ‘이혼절차가 완료되었으며 내일 만나기를 원한다.’는 그의 메시지이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건다.

 

  “내일 언제쯤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

  “알았어요. 내일 봐요.”

 

  짧은 통화였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슬픔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나의 어떠한 말로도 지금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함을 잘 알기에 길게 통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 그가 잘 견디어 내길 조용히 기도한다.

 

  다음날.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꽃단장은 아니지만, 머리를 빗고 오랜만에 화장도 살짝 해본다. 하영을 늘 품에 안고 다니다 보니 얼굴에 화장을 잘 할 수 없었다. 보여줄 사람도 없었고, 그리고 그는 나와 화장 안 한 민낯이 더 예쁘다고 했었다. 그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집 앞 커피숍일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는다. 역시 예상대로 거기란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모습이 반가워 미소가 올라왔으나, 그의 담담한 표정을 보자 ‘아차’ 했다. 생각이 짧았다. 어제 아내와 이별한 그의 심정이 오죽할까. 급히 미소를 감춰보려 했으나 마음과 얼굴이 따로 논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선다.

  그가 나를 안으려 했지만, 표정에 신경 쓰던 내가 ‘움찔’하자 그냥 의자만 당겨주고 만다. 아닌데... 피할 생각이 아니라, 도리어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는 나와 하영의 안부부터 묻고,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다. 나는 나와 하영은 잘 지냈고, 가족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낸다고 답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어제 그가 보낸 글이 떠다닌다. ‘법원 다녀왔어요...’ 어색하게 미소짓는 그를 바라고 있으니 그의 쓰라릴 마음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온다.

  그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할 때, 맺혔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기쁨과 슬픔, 고마움과 미안함. 만감이 교차한다.

  울고 있는 내게 그가 말한다. ‘내 탓이 아니라’고, ‘죄책감 갖지 말라’고,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남아있다. 그에게 ‘당신이 직접 부모님을 찾아뵙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부모님의 뜻을 전하자, 그는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한다. 주말로 약속을 잡으며 그에게 ‘그의 어머니는 어떠신지?’ 물었으나 ‘시간이 좀 더 필요하실 것’이란다. 각오했던 바였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어지기 전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를 있는 힘껏 껴안아 주었다.

 

  집에 들어와서 곧바로 거실에 계신 부모님의 앞에 앉았다.

 

  “아빠, 엄마 주말에 그 사람 인사드리러 올 거예요. 저랑 하영이 데려가겠다고.”

 

  엄마는 반색하며 물으신다.

 

  “그 사람 정리는 다 한 게냐?”

  “네. 정리 다 끝냈고 지금은 혼자예요. 집도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겼고 준비는 다 해 뒀대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랑 하영이 때문에 많은 것을 잃고 포기한 사람이에요. 아직 마음이 편치 않을 거예요. 모질게 대하지 마시고, 잘 대해주세요. 좋으나 싫으나 이제 사위 될 사람이니 잘 부탁드릴게요.”

 

  아빠는 대꾸 없이 연신 헛기침만 하시고, 엄마가 계속 말을 잇는다.

 

  “그래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 어머니도 한 번 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어머님이 며느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대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천천히 하자고 하네요. 그 사람이.”

  “에휴... 축복받으며 시집보내도 모자랄 너를, 이렇게 보내려니... 에휴...”

  “죄송해요. 하지만 전 그 사람이면 족해요. 하영이도 있고요.”

 

  내가 애써 웃음을 보이자. 엄마도 근심스러운 얼굴을 거두고 말씀하신다.

 

  “그래, 니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아라.”

 

  엄마는 그렇게 승낙을 표했고, 아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지만, 나는 기운차게 답했다.

 

  “네. 그럴 거예요. 열심히, 잘 살 거예요. 그럼, 저 이만 들어가 볼게요.”

 

  주말 오전. 그가 찾아왔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서. 난 그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그의 긴장한 모습. 부모님 앞에서 큰절부터 올린 그는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인사가 늦었노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에게 아빠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지만, 반대할 의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쉬운 마음에 ‘나를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임을 난 알고 있다. 결국, 그는 엄마에게서 허락을, 아빠에게서는 침묵의 허락을 받아내고 ‘내일 데리러 올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 약속하고 돌아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와 하영의 짐을 싸기 시작한다. 완전히 이사를 가야 하는 우리 짐은 트럭을 불러야 할 만큼 많았기에 내일은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겨가기로 한다. 나머지는 따로 차를 불러 가져가기 위해 정리만 해둔다.

 

  이튿날 아침. 그와 함께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집을 나와 그의 집. 아니 이젠 우리 집인 그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그와 나 그리고 하영. 우리 세 식구의 진짜 신혼생활이 시작됐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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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부. 나의 이야기(9화) 2018 / 11 / 28 327 1 8944   
9 1부. 나의 이야기(8화) 2018 / 11 / 28 310 1 8415   
8 1부. 나의 이야기(7화) 2018 / 11 / 26 318 1 8070   
7 1부. 나의 이야기(6화) 2018 / 11 / 24 338 1 7340   
6 1부. 나의 이야기(5화) 2018 / 11 / 23 318 1 6054   
5 1부. 나의 이야기(4화) 2018 / 11 / 22 314 1 8966   
4 1부. 나의 이야기(3화) (1) 2018 / 11 / 20 350 1 6297   
3 1부. 나의 이야기(2화) 2018 / 11 / 19 339 1 6247   
2 1부. 나의 이야기 (1화) 2018 / 11 / 18 334 2 6082   
1 인사, 목차, 프롤로그 2018 / 11 / 17 510 1 3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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