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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면진(免震)
작가 : 디비
작품등록일 : 2018.11.2

이해하지 마! 우린 그저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 뿐이야. 누구 하나 몰라도 돼. 아니 몰라야 해.
우리 사훈(社訓)이 면진(免震)이야! 그러나 정세현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업물][경제물][경영물][드라마][성장물]


소설을 처음 써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지명,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PC통신(ATDT 01410)
작성일 : 18-12-12 08:01     조회 : 433     추천 : 0     분량 : 8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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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선호텔 스위트룸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언제나 사람의 눈을 호강시켰다.

 “막내 아가씨?”

 야경에서 시선을 떼어낸 사람은 기획조정실장 고자춘이었다.

 “아저씨, 오셨어요?”

 “회사니까 직급인 부장으로 불러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왜 그러실까? 저 그런 격식 싫어하는 거 아시잖아요.”

 금선호텔의 식음료 서비스부 부장이자 조판규 회장의 막내딸인 조규희가 해맑게 웃었다.

 “어찌 이 늙은이를 다 찾아 주시고.”

 고자춘이 조규희의 비서를 물렸다.

 “업장에 나오셨다기예요. 겸사겸사 얼굴도 뵐 겸. 연락 좀 주시지.”

 조규희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예. 밥 한 끼 하러 나왔습니다.”

 “에이, 거짓말. 비서실장 만나셨다면서요?”

 “참 소문 한번 빠르군요.”

 조규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아저씨? 무슨 말씀 나누셨어요?”

 고자춘이 갑자기 기침하며 옆방으로 물렸던 비서를 호출해서 물을 주문했다.

 “아가씨, 힘들고 어려운 점은 없으십니까?”

 “다 힘들고 어려워요.”

 조규희는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표정만은 신나 있었다.

 “대학 갓 졸업하고 왔다고 누가 깐보고 그러지는 않냐는 말씀입니다.”

 “뭐, 언니랑 엄마 다른 것도 그렇고. 다들 알고 있는 눈치던데요. 뭘. 여기서 수군수군, 저기서 수군수군.”

 조규희는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듯 입가로 두 손을 가져가 새 부리 모양을 만들었다.

 “제게 말씀하세요. 다 혼내주겠습니다.”

 고자춘은 아버지가 딸을 대하듯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별로 신경 안 써요. 지들이 어떻게 깔봐요. 감히.”

 조규희는 심통 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상체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고자춘 앞에서 장난을 쳤다. 구김살이 없었다.

 “그렇죠. 깔봐도 아가씨가 깔보세요.”

 “근데 아저씨?”

 조규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네. 말씀하시죠.”

 “유통 있잖아요? 떼어낸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모이는 누가 물어다 주나요?”

 고자춘이 재미있다는 듯 조규희를 쳐다봤다.

 “뭐, 여기서 수군, 저기서 수군.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있어야죠.”

 “좋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거 할 시간도 모자라실 텐데.”

 “그렇죠? 내가 너무 예민했어.”

 배다른 형제들과 달리 공부 욕심이 있어 한국과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졸업이 늦었지만 갓 29살이었다. 아직 어렸다.

 “그럼 아저씨? 저 이 시간부터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죠? 걱정 없이?”

 고자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귀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어떻게?”

 고자춘의 조심스럽지만 기습적인 질문에 조규희가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I don’t care. 갈 거예요. 언니, 오빠들 눈빛. 으 싫어.”

 조규희가 두 손을 꼭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해요. 뭐 눈치 보러 가나? 아빠 보러 가지.”

 “제가 늦은 시간 너무 시간 뺏은 거 같습니다.”

 “뭘요. 제가 보자고 한 건데. 오늘 일은 비밀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어느 참새가 모이를 물어다 주지 않는다면요.”

 조규희는 고자춘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고자춘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과 복사까지 마쳤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였다.

 

 

 문일섭의 방 안에서 문창주와 석정선은 팔짱을 끼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과학계의 풀지 못한 난제를 푼 과학자의 발표를 기다리는 듯한 비장미와 긴장감이 흘렀다.

 문일섭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게 PC통신이라는 거고요. 아이디하고 비밀번호 치고.”

 문일섭이 엔터키를 치자 굉음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모뎀의 연결음이었다. 술에 취한 문창주와 석정선의 귀에는 흡사 외계인과 접속을 시도하는 괴상한 소리처럼 들렸다.

 “됐다.”

 문일섭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문창주와 석정선은 서로 바라보며 어이없어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었다.

 “뭐가 돼? 야 이리 와봐.”

 거실에서 술상을 치우고 있던 문일섭의 어머니인 정세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왜요?”

 “이게 니가 한 달에 전화비 15만 원에서 20만 원 나온다고 징징거리던 거 맞지?”

 “자기는 지금 왜 이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 나중에 해요. 나중에.”

 “뭘 나중에 해. 너 내가 집에 전화해서 항상 통화 중이면 규섭이나 일섭이가 컴퓨터 한다고 핑계됐잖아? 맞아? 아냐?”

 “석 이사님도 계신데. 나중에 술 깨고 이야기해요. 네?”

 정세희는 몰래 문창주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버지? 이거 보세요.”

 “핵심만.”

 문창주가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이었지만 돈 앞에서는 엄격했다. 이미 문창주는 실망했는지 듣는 둥 마는 둥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낙심했다는 뜻이었다.

 “여기 동호회에 들어가서요.”

 문일섭은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문창주는 이미 관심 밖이었고 석정선도 관심을 보이는 듯했으나 이미 술을 이기지 못했다.

 “일섭아, 괜찮아 보이는데 오늘 아저씨가 조금 그러네. 내일 사무실에 나와서 이야기해 보는 건 어때? 사실 지금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네.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석정선은 문창주를 바라봤다. 문창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하루여서 문일섭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내일 아빠 사무실로 나와. 점심이나 사줄게. 일찍 자고. 이런 거 그만하고. 뭔 전화비가 20만 원씩 나와?”

 “그게 제가 아니라 형이……”

 문일섭의 얼굴만이 아닌 석정선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문창주가 석정선에게 보상차원에서 주기로 한 금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일섭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충청투자가 위치한 종로 3가와 4가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 고리타분했다. 충청투자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생각 외로 너무 낡았다. 찾는 데만 체감상 반나절이 걸린 것 같았다.

 “저기?”

 ‘충청투자’라는 플라스틱으로 된 표식이 붙은 문을 수줍게 노크했다. 여기가 맞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뭐야?”

 문일섭을 험상궂게 반긴 것은 덩어리 중 하나였다.

 “여기가 충청투자인가요?”

 “아. 시발, 이 시끼야. 눈깔은 있냐? 여기 안 보이냐?”

 문일섭은 눈을 제대로 못 맞췄다. 이미 얼어 있었다.

 “이게 그리 어렵냐? 산수는 할 줄 알고?”

 덩어리는 충청글자 표식을 보며 가르치는 선생처럼 열중쉬어 자세로 웃어 보였다.

 “근데 왜? 돈 빌리려고?”

 “아니요. 그게 아니라……”

 “돈 빌리고 못 갚으면 니 좆 대가리 잘라다 우리는 회 쳐 먹는데 그래도 괜찮겠냐?”

 덩어리는 사냥감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 문일섭의 양 사타구니 사이를 움켜쥐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어 댔다. 심심하고 따분하던 차에 잘 걸렸다는 생각이 덩어리의 뇌신경에 도달하기도 전에 덩어리의 턱이 아주 임팩트 있게 돌았다. 덩어리의 등 뒤에서 전광석화같이 날아들었다. 짧은 순간이었다. 비명조차 지를 시간이 없었다.

 휘청하던 덩어리가 벽의 반동을 이용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복부에 뜨거움을 느꼈다. 그 순간 문밖의 복도로 쭉 나뒹굴었다. 문창주였다.

 “사장님?”

 문창주는 덩어리의 턱에 있는 힘껏 꽂느라 그 충격으로 풀려 버린 금장의 손목시계를 흔들어 다시 버클을 채웠다. 문일섭은 문창주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처음 경험해 보는 험한 꼴이었다.

 “잘 찾아왔네. 들어와. 뭘 울어. 이깟 걸로. 사내자식이.”

 문창주는 덩어리를 보며 턱으로 사무실 안을 가리켰다.

 문일섭은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어느새 덩어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열중쉬어 자세로 섰다.

 문창주는 손목시계가 영 불편했던지 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덩어리의 턱이 좌우로 2번씩 돌았다.

 “내가 몇 번 말하냐? 우리 서비스업이라고 했냐? 안 했냐?”

 “하셨습니다.”

 문창주는 덩어리의 가슴팍을 계속 쳐댔다.

 “근데? 고객한테 장난을 쳐? 나이가 어리다고 똥 안 싸냐? 곧 숨 끊어지는 노인네들도 빌리고 싶은 게 돈이야.”

 문창주는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덩어리 얼굴에 가까이 대고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이 시발 개새끼들은 정말. 말할 때 딱 그때뿐이야. 정말 다 죽여 버릴 수도 없고.”

 석정선이 문창주를 말리며 덩어리에게 자리로 돌아가라는 시늉을 했다.

 소파에 앉은 문창주는 더운지 웃옷을 벗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야 물 좀 가져와.”

 경리인 미스 김이 물을 가져오며 문일섭에게 섹시한 윙크를 보냈다.

 물을 마시고 한숨을 돌린 문창주가 문일섭의 얼굴을 보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이리 와서 정중하게 사과해.”

 덩어리가 마지못해 문일섭 쪽을 향해 고개를 까닥 숙였다.

 “제대로 안 해?”

 “미안하다. 아그야.”

 “이 새끼가 아주 그냥. 무릎 꿇어.”

 덩어리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다. 그저 꼬마에게 장난 좀 친 것이 이리 문창주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줄은 몰랐다.

 “제대로 사과드려. 사장님 자제분이셔.”

 석정선이 덩어리를 보고 더 이상 실수는 용납 못 한다는 듯 눈치를 줬다.

 “죄송합니다.”

 문창주가 얼굴을 찡그렸다.

 “따라 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몰라 뵙습니다.”

 “몰라 뵙습니다.”

 “작은 사장님.”

 “작은 사장님.”

 “그래. 앞으로 니들이 모셔야 할 사람이니까. 이제 그만 가봐.”

 덩어리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90도로 문창주와 문일섭에게 인사를 했다. 덩어리는 이런 곳에 아들을 데려오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이리 무서웠다. 그렇다고 덩어리가 충청투자를 나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었다. 독립을 해서 일수를 칠 자본도 그런 배짱도 없었다. 그런 머리가 있었다면 오늘 같은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다. 덩어리는 칸막이가 쳐진 다른 덩어리들이 있는 책상으로 가서 브이자를 그려 보이며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했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은 그새 금방 다 잊은 듯했다. 너무 단순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어제 했던 일 말해봐. 나는 괜찮으니까 여기 석 이사 아저씨가 이해하도록 말해.”

 “저 그게……”

 “세수하고 와. 그런 얼굴로 뭘 하겠다고.”

 문일섭이 복도 끝 화장실로 향하자 덩어리가 문을 열어 웨이터처럼 손으로 안내했다. 몸짓이 장난스러웠다.

 “저 새끼가.”

 금세 장난치는 광경을 본 문창주가 이내 포기했다는 허탈하게 웃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석정선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엿보였다.

 “뭐가?”

 “일섭이 밖에서 볼 걸 괜히.”

 “아냐. 신경 꺼. 어차피 나중에 사무실 분위기며 환경하고 상황 적응하고 겪어야 하는 사업장인데 뭘.”

 문창주도 밖에서 만날 수도 있었으나 아들인 문일섭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괜한 고생시키는 거 아냐? 아니 무슨 컴퓨터로 물건을 팔아? 석 이사 넌 이해돼?”

 “일단 들어 보시죠? 요즘 젊은 애들 감각도 좋으니까.”

 “석 이사 너 때문에 부른 거 알지? 건성건성 듣지 말고 잘 귀 담아 들어봐.”

 문일섭이 화장실에 다녀와 소파에 앉자 경리인 미스 김이 주스를 가져오며 다시 윙크했다.

 “그래. 이제 말해봐.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야?”

 “네. 그게 일단 PC통신이라는 게 있는데. 하이텔하고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가 있고 또 공짜로 쓸 수 있는 게 있는데……”

 “핵심만.”

 문창주는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며 인상을 썼다. 어제의 숙취가 올라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나 보고 말하지 말고. 여기 석 이사 아저씨 보고 말해. 이 아저씨가 이해해야 하니까.”

 “괜찮아. 하고 싶은 말 해봐.”

 석정선은 문일섭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네. 핵심만 말씀드릴게요. PC통신이라고 있는데 거기 동호회라고 있거든요.”

 “서클 같은 건가?”

 “네. 비슷해요. 취미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어요.”

 “그래서?”

 “패션, 10대 등 각 주제 별로 동호회 숫자가 엄청 많거든요. 아까 말씀드렸던 하이텔도 있고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 또 공짜로 할 수 있는 키텔 같은 것도 있고요.”

 문일섭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됐는지 말투가 차분해졌다.

 “사고팔고 장터 같은 곳도 있는데 거기는 좀 그렇고요. 각 동호회에 시솝이라고 있거든요.”

 “응? 뭐? 뭔 삽?”

 “시삽이 아니고 시솝이요.”

 “그게 뭔데?”

 “그 동호회 짱이라고 보시면 돼요.”

 “아 회장? 근데?”

 “그 시솝 하고 접촉해서 싸게 넘기는 거죠. 대량으로.”

 “우리는 우리가 직접 팔아 현금을 만져야 하는데?”

 “공동구매라고 현금으로 하는 조건으로 싸게 넘기면 걔네가 알아서 지들 회원들 모아서 살 거예요. 물론 청바지 줄 때 시솝이 모아 온 현금받고 저희는 청바지만 넘기면 되고요.”

 석정선은 주위를 둘러보며 문일섭에게 조용히 하라는 뜻에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문일섭도 곧 알아차렸다. 그만큼 눈치는 있었다.

 “야.”

 아무런 기척이 없자 문창주가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네. 사장님.”

 덩어리가 다가오자 문창주가 지갑에서 만 원 다섯 장을 꺼냈다.

 “사우나 갔다가 밥들 먹고 와.”

 덩어리는 황송한 듯 넙죽 받아 들었다. 문창주가 눈짓을 주자 덩어리가 경리인 미스 김 책상으로 다가가 미스 김을 끌어당겼다.

 “엄마야. 사장님? 어떻게 같이 사우나를 해요?”

 “너 뭐래냐? 우리가 언제부터 쪽발이들처럼 혼탕 하디? 너도 좀.”

 끌려가는 미스 김을 보며 문창주는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툭툭 쳤다.

 다 나간 것을 확인하자 문창주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흥미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럼 하청 개념인가?”

 문창주는 당사자인 문일섭이 아닌 석정선을 보고 답을 구하고 있었다.

 “그런 셈이죠.”

 “근데 산다는 보장이 있어야지?”

 “정품이고 싸게만 팔면 지금 없어서 못 사는 게 긱스 청바지인데요. 지금 긱스 최고 인긴데.”

 문일섭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었다. 10대와 20대의 감성이 다르듯 세대별로 따르는 감성은 천차만별이었다. 40대 중후반의 문창주가 젊음의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항상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뭐야? 나중에 불똥이 튈 수 있느냐지.”

 문창주는 PC통신에 관심이 없었다.

 “그 뭐랬지. 아까? 뭔 삽?”

 “시솝이요.”

 “응. 그래. 걔네한테 현금만 받고 넘길 수 있다면 좋겠는데.”

 “확실해요. 문제는 오히려 걔네가 저희를 못 믿는 거죠?”

 “왜?”

 “저라도 안 믿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먼저 걔네한테는 청바지 10장씩 그냥 주는 거예요.”

 “그게 얼마치인 줄 알아?”

 “그래야 걔네도 뭐 할 맛이 나죠?”

 “그냥, 돈을 조금 쥐여 주는 건 어때?”

 “공동구매 형식인데 돈보다는 청바지로 주는 게 더 나아요. 어차피 처리해야 하잖아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사장님, 일종에 리베이트라고 생각하시는 게. 지금으로서는 일섭이 제안이 가장 현실성 있습니다. 저도 맘 같아서는 빨리 털어버리고도 싶고요.”

 “참, 사업 어렵다. 매번 기름칠해야 한다니. 그래 그럼 한 번 해봐.”

 문창주는 문일섭을 보며 대견해했다. 석정선도 문일섭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창주는 청바지 건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허기가 밀려오는지 배를 만졌다.

 “아 속 쓰리네. 석 이사 난 짬뽕.”

 석정선이 문일섭을 쳐다봤다.

 “저는 볶음밥이요.”

 문창주가 문일섭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배달원이 껌을 딱딱 짝짝 씹으며 어김없이 기계적으로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을 내려놨다.

 “짜장 하나. 짬뽕 하나. 뽁음밥 하나.”

 그릇 하나하나 내려놓을 때마다 감정이 실려 있었다.

 “아 이 새끼. 또 단무지. 시발.”

 테이블에 단무지가 2개만 놓여 있었다.

 “바빠 죽겠는데 통일하면 안 돼요. 다음부터는 통일해요. 뷔페도 아니고 말야?”

 “이 새끼가 증말? 짱개 집이 니네만 있는 줄 알아? 확 가게 바꿔?”

 “저기요. 사장님. 안 무섭거든요. 저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네요. 바꾸시든지 말든지 제 월급은 고양이 좆물만큼도 변하는 게 없으니까.”

 석정선이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손해 볼 것이 없으면 굽신거리지 않아도 됐다.

 “짜장, 짬뽕, 뽁음밥 해서 7500원요.”

 문창주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석정선보다도 배달원이 더 놀랐다.

 “사장님, 말기 암?”

 “뭔 개 소리야? 빨리 받고 꺼져.”

 “곧 죽나 해서요. 분명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잔돈은 됐고 이제 좀 꺼져라. 밥 좀 먹게.”

 “옛 썰. 2,500원 고양이 좆물은 되겠습니다. 근데 밀린 건요?”

 “이 새끼, 꼭 잘 나가다가 지랄이냐? 그거 답은 알아봤어?”

 “뭘요?”

 “1을 백만 번 곱하는 거?”

 “백만이요.”

 “그래. 그냥 이대로 쭉 살자. 우리. 이제 꺼져. 정말이야.”

 문창주도 배달원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 같았다. 배달원도 기분이 좋은지 문을 걷어차지 않고 나갔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뭐, 우리 일섭이도 한국대 합격하고 이렇게 사무실에서 밥도 같이 먹고.”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럼, 일섭이 니가 한 번 해봐. 청바지라든지 봉고차라든지 모르거나 막히는 거 있으면 여기 석 이사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문일섭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였다.

 “김창록이는?”

 문창주가 짬뽕 국물을 마시다 말고 갑자기 잊으면 안 된다는 듯 석정선을 쳐다봤다.

 “대리점 협의체에서 김창록한테 대금 쏴 준 계좌가 저희 보험금 그 저축은행 계좌더라구요.”

 문창주의 얼굴에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그 계좌도 법원에 압류 신청해 놓겠습니다.”

 “그래. 빨리빨리 해. 다른 놈들 알기 전에. 김창록이 행방은 계속 찾아보고.”

 “네. 알겠습니다.”

 “아참, 깜박할 뻔했네. 이거.”

 문창주가 소파 옆에 있던 서류가방에서 신문지 뭉치를 꺼내 석 이사 석정선 앞으로 밀었다.

 “펼쳐봐.”

 석정선이 신문지를 펼치자 번쩍하고 골드바가 모습을 드러냈다.

 석정선은 입속에 있던 짜장면을 뱉을 뻔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석정선이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래. 열심히 하자.”

 문창주는 석정선이 아닌 문일섭을 쳐다봤다.

 “일섭이 너는 일 처리하면서 아까 그 컴퓨터 삽대가리진 뭐시깽인지가 우리 존재 자체를 모르게 해야 해. 뒤 끝 깔끔하게. 알아? 무슨 말인지?”

 문창주는 문일섭의 어깨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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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Here, I Stand For Money 2018 / 11 / 8 433 0 7497   
16 '돈(豚)됐구만'과 '와룡(臥龍)' 2018 / 11 / 4 434 0 6320   
15 뱃고동 2018 / 11 / 2 423 0 6728   
14 (昌祿實業) 창록실업 2018 / 11 / 2 431 0 6516   
13 충청투자 2018 / 11 / 2 419 0 5439   
12 전화위복 (轉禍爲福) 2018 / 11 / 2 427 0 4854   
11 여왕벌 2018 / 11 / 2 422 0 5947   
10 금선당 2018 / 11 / 2 442 0 6248   
9 지옥의 급행열차(2) 2018 / 11 / 2 418 0 5375   
8 밥상머리 교육 2018 / 11 / 2 450 0 5622   
7 지옥의 급행열차 2018 / 11 / 2 416 0 6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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