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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3. 학교
작성일 : 18-12-11 21:31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8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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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아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눈을 감은 채 눈을 위로 올리면 어지럼증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좋을 리 없었지만 몇 번을 더 그렇게 했다. 꼭 눈알이 뇌를 꾹꾹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원목 테이블로 손을 뻗었다. 컵이 잡혔다. 잔에 든 것은 진하게 탄 커피였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입안에 남은 맛을 되새기며 컵을 내려놓았다. 이제 뭐 할까 고민하면서 컵 위에 대고 손가락을 휘젓자 진갈색 액체가 물결을 일으켰다.

 일요일이었다. 그러니 물론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는 기지개를 켜며 벌떡 일어섰다. 벽에 붙은 커다란 TV가 켜졌다. 온통 눈살이 찌푸려지는 사건투성이였다. 그는 한쪽 눈썹을 올렸다. 사십대 남성이 괴한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 뉴스였다. 관련 사건을 학교에서 들은 기억이 났던 것이다. 학교가 있는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별일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도아는 멍하니 쇠고기 수프를 은수저로 젓고 있었다. 수프에 반사된 샹들리에 불빛이 흩어졌다. 수저가 접시에 부딪혀 창창 소리가 났다. 바짝 익힌 스테이크는 한 번 썰어 즙만 확인하고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오목한 잔에 담긴 찬물을 마시고 냅킨으로 입가를 더듬었다.

 “입에 안 맞으십니까?”

 언제 나타났는지 보발이 연미복을 입은 팔에 하얀 수건을 걸치고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도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식당을 나가려다가 멈췄다.

 “있잖아, 보발?”

 “말씀하시지요, 도련님.”

 “나도 운전을 해 볼 수 있을까? 배워볼까 하는데 그거 배우기 힘드나?”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도련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말입니다. 다만, 도련님은 아직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십니다.”

 “농담도 그런 식으로 하는군.”

 도아가 말을 하면서 하품을 했다. 그는 머리 뒤로 양손을 댄 채 걸어갔다. 문득 기원후 팔십일 년의 일이 생각났다. 그는 콜로세움에 있었다. 사 층 원형 경기장의 방사상으로 설치된 계단식 오만 개의 관람석은 만석이었다. 모래가 깔린 경기장에서 전쟁 포로가 바닥 문에서 튀어나온 맹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티투스 황제는 일 층의 특별석에서 포도를 뜯고 있었다. 원로원은 겉으로는 점잖은 척했으나 맹수에 의해 두꺼운 몸통에서 사지가 뜯겨 나가는 걸 보니 발기가 되어 참을 수 없었다. 귀족, 로마 시민권자들은 연신 킬킬거리며 환호했다. 사 층 제일 후진 자리에 있는 노예, 빈민층은 두려움과 함께 찌릿 거리며 번지는 의뭉스런 감정을 견딜 수 없었다.

 우――

 도아는 들썩거리는 원형 경기장 밑 지하실에 있는 검투사 대기실에 있었다. 배키를 쫓다가 노예상인에게 잡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배키가 변장한 까마귀 떼와 싸우다 그만 고운 얼굴에도 불구하고 복장이 말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도망치는 데 문제 없었지만, 저 순진무구한 고대인들에게 겁을 주고 싶어서 그는 지하에서 인내했다.

 그가 거들먹거려서 순번이 빨리 왔다. 다행스럽게도 경기장에 있는 건 배키였다. 사람들은 삼 미터나 되는 호랑이를 통째로 삼키는 악어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악어는 도막 난 사채들을 닥치는 대로 꿀꺽꿀꺽 넘겨대면서 짧은 다리로 창과 검이 꽂혀 있는 모래 위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경기장에 입성한 도아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는데 실은 창도 그렇고 방패도 그렇고 염력을 받은 거였다.

 “아직 싸울 나이가 아냐!”

 같이 경기장에 들어선 검투사가 외쳤다. 불행히도 거기서 유일한 생존자는 도아밖에 없었다. 검투사는 시종일관 도아를 보호하려 했는데, 도아의 입장에서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 도아가 초능력을 시전하려고 하는 모습을 검투사는 어떻게 오해했냐면, 공포에 이성을 잃은 도아가 얼어붙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검투사의 팔꿈치에 도아가 쓰러지면서 바닥에 있던 수십 개의 병기가 번쩍하는 속도로 요격 미사일처럼 하늘로 날아가 사라졌다. 검투사는 악어의 밥이 되어 아그작 아그작 씹혔다.

 염력을 동원한 도아가 평범한 인간인 척 연기를 하며 배키를 물리쳤을 때, 검투사의 한쪽 발목만 건질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미스터리한 경기는 오랫동안 로마 시민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도아는 저택을 나갔다. 그가 지나가자 정원의 나무들이 팝콘을 튀기듯 나뭇잎을 퍽 하고 날렸다. 여기에는 그와 보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마을이 있었다. 물론 단 한 번의 교류도 없었다. 집은 점점이 흩어져 있었는데 몇 가구 되지 않았다.

 그는 발밑에서 돌멩이를 주웠다. 그것을 주물럭대다가 던졌다. 돌멩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풀밭에 떨어졌다. 그 주위에서 뭔가가 부스럭거렸다.

 토끼였다.

 “벨즈?”

 그는 쫓아갔다. 하지만 평범한 토끼에 불과하단 걸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허공에 걸려 버둥거리는 토끼는 도아의 주문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멀리 달아났다.

 

 영어 시간에 재성이 지명을 받았다. 세 줄가량의 지문 해석이었는데 재성은 어쩔 줄 모르고 얼굴만 벌게졌다. 안 되자 짝인 도아가 호명되었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해냈다.

 “잘했어, 하도아. 재성이 너는 새끼야 서 있어라. 나이도 어린놈이 눈 밑에 그게 뭐냐? 밤이슬 밟고 다니냐?”

 재성은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수업 내내 서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라 다행이었다. 다음 수업은 음악이었다. 음악실은 뒷 건물 삼 층에 있었다. 두 건물은 철골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리 중간에서 동권이 난간에 배를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밑에서 지나가는 일 학년들을 향해 침을 뱉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도아를 보지 못했다.

 음악실에서 도아는 맨 뒤에 가 앉았다. 오늘은 실기 날이었다. 외국 민요를 부르는 거였다. 문득 그의 눈에 긴장한 티가 역력한 재성이 들어왔다. 재성은 몇 자리 앞에 앉아 있었는데 다리를 심하게 떨어 대서 근처의 여학생에게 노골적으로 눈총을 받고 있었다.

 분위기 탓에 도아도 익히 예상을 했는데, 재성의 발성은 가히 최악이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성의 양 귀가 빨겠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오르간 소리에 묻힐 때도 있었다. 교사의 주의를 받으면 그때만 다를 뿐 계속 작아졌다. 반면에 도아의 노래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자기네끼리 작게 떠들던 아이들도 집중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도아는 목소리가 매우 좋은걸.”

 교사는 마치 아이들이 들으라는 듯 교실을 휘 둘러 보며 말했다.

 “대박. 대박.”

 똥머리의 여학생이 말했다.

 도아가 자리로 돌아갈 때 여학생들이 힐끔거렸다. 수민이 쿡 웃었다.

 점심때, 도아는 좀 느긋했다. 솔직히 범식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막상 식판을 들고 있으니, 피곤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범식 일행과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밥을 먹은 그는 모래 먼지가 피어나는 운동장을 거닐었다. 학교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가 파릇파릇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운동장에서는 이 학년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농구장은 일 학년 차지였다.

 “뭐 보고 있니?”

 도아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수민이었다. 그녀는 렌즈 탓에 더욱 커진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그냥 아무거나 보고 있어.”

 그녀가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관리가 잘 된 머리카락이 물결을 일으켰다.

 “왜 혼자야?”

 “그냥 뭐…….”

 그의 입장에서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평소에는 재성이랑 어울리더니. 점심때는 꼭 혼자더라 너. 밥도 혼자 먹고.”

 “편하니까 그런가 봐.”

 “그게 편해? 친구 없이 다니는 게?”

 문득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혹시라도 이제부터 같이 점심을 먹자라고 제안한다면 거절할 심산이었다. 그녀가 뒤꿈치를 세웠다. 봉긋한 가슴이 그를 향해 기울어졌다. 그는 고개만 뒤로 뺐다.

 “너 향수 뿌리니?”

 그녀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니, 왜?”

 “너한텐 늘 좋은 냄새가 나. 꽃 냄새 같은 거.”

 그녀가 다시 꽃 냄새 하더니 웃었다.

 “너 어떻게 하다가 이런 데 전학 오게 됐니?”

 “이상한 곳인가?”

 “좋다고는 생각이 안 들어.”

 “왜지?”

 “학교에 다니면서 느낀 점이야. 나쁜 애들이 너무 많은 거 같아.”

 그녀가 눈썹과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우스운 표정을 했다.

 “그런가?”

 도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 세기 전부터 많은 학교에 다녀봐서 알고 있었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 개 이상의 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동북아시아인의 모습에 가깝지만 흐릿하게 유럽인의 이목구비가 남아 있었다. 왜냐면 몇 세기 전만 해도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노르웨이, 스페인 등지를 떠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때는 금발에 초록색 눈의 서양 사람에 가까운 외모를 하고 있었다. 먼 훗날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인의 얼굴을 잃을 터였다. 자주 쓰면 더 강해지는 근육이나 서서히 습득되는 반복 기술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이라 본인 스스로도 어느 날 감쪽같이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익숙해진 뒤일 것이다. 아무튼, 어느 시기 어느 때에도 불량학생은 존재했다. 심지어 불량학생은 자기 과거를 미화하고 만행을 잊은 채 꼰대가 되어 젊은이들을 비뚤게 보고 단점만 꼬집을 것이다.

 “많아, 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뭐.”

 “넌 애 아냐?”

 “나? 그건 왜 물어?”

 “왜 대답을 못 해?”

 그녀는 웃음이 많았다.

 “나도 애겠지. 아직까지는 고등학생이니까.”

 “애겠지?”

 공이 축구 골대를 맞고 휙 날아갔다. 골키퍼가 투덜거리며 공을 주우러 갔다. 차량이 주차된 위쪽에는 매점이 있어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싸움은 나빠.”

 그녀가 말했다.

 “표현이 그렇다는 거야. 나도 싸움은 싫어.”

 그의 눈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서너 명의 여학생이 보였다.

 “수민아!”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하나같이 옅게 화장을 하고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바른 상태였다. 하얀 이가 드러나는 미소만큼이나 웃음소리도 컸다.

 “바이.”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그도 작게 말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 것인지 그녀들은 도아를 돌아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공이 매트를 넘었다. 상대편에서 순차적으로 리시브를 하고 토스를 한 뒤 스파이크를 때렸다. 키가 큰 두 명이 뛰어올라 블록을 했지만 공은 선 안에 내리꽂힌 뒤 튕겨 나갔다.

 “괜찮아?”

 도아가 재성을 향해 말했다. 재성이 어딘지 혼이 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 어, 괜찮아.”

 다음번에도 상대편의 서브였다. 공은 쑤욱 날아와 도아의 손에 튕겨 올랐다. 태수가 공을 받았고 정인이 상대 팀으로 넘겼지만 블록에 가로막혔다. 여학생들은 발야구를 하고 있었다. 상대 팀 쪽에서 공이 날아왔다. 재성이 뒤뚱거리며 그것을 받으려 했지만 그의 능력을 벗어났다. 다행히 공은 라인 바깥에 떨어졌다.

 재성이 서브를 하기 위해 공을 안고 라인 뒤에 섰다. 그가 손으로 공을 때렸다. 공은 매트에 걸렸다. 승부욕이 강한 도진이 신경질을 냈다. 체육 교사가 호루라기를 불자 상대 팀에서 공이 날아왔다. 태수가 양손으로 공을 받아 올린 것을 도아가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상대의 라인 안에 공이 쐬기처럼 내리꽂혔다.

 “오.”

 도진이 놀라워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도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리로 옆걸음질 쳤다. 각 팀에 배정된 인원은 배구 규칙보다 일 점 오 배는 많았다. 공이 회전을 하며 매트를 넘어왔다. 그 방향에 재성이 있었다. 재성은 공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두 손은 어정쩡하게 하늘을 향해 있었다. 공은 재성의 머리를 향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을 따라갔다. 공이 재성의 얼굴을 강타하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도아가 주먹을 뻗어 막아냈다. 공이 코트 밖으로 날아갔다.

 “정신 차려, 인마.”

 정인이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미안.”

 재성이 멋쩍어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다가 또 한 번 비슷한 일이 발생하자 도진이 화를 냈다.

 “아씨! 재성이 너 뭐하는 거야? 너 때문에 계속 점수를 잃잖아.”

 도아는 도진의 반응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저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도진은 체육 시간일 뿐인 지금에 대단한 명예라도 걸린 것처럼 구는 것이다. 그 후부터 재성이 공을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공은 재성만을 노렸다. 그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만큼 이상한 자세로 공을 받았다. 그의 주먹에 맞은 공은 골대 기둥을 맞힌 축구공처럼 튕겨서 도진의 왼쪽 눈 위를 쳤다. 도진은 폭발하고 말았다.

 “야!”

 도진이 재성을 향해 돌진했다. 아이들이 막아섰지만 흥분한 도진은 몸부림까지 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잠깐 발야구를 보고 있던 체육 교사가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왔다.

 “미, 미안해.”

 재성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어?”

 도진이 아이들의 머리 위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다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순간 동작을 멈췄다. 갑자기 배구공이 펑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덩달아 여학생들도 비명을 질렀다. 공이 파열된 소리가 너무 커서 모두 소음의 원인을 인지하지 못하고 눈만 껌벅거렸다.

 

 도아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청소 시간에 재성이 불쑥 꺼낸 말 때문이었다. 둘은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교실 담당이었다. 걸상은 뒤집혀서 책상에 걸려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었지만 교실 내부에는 먼지가 풀풀 날렸다. 칠판을 지우지 않아 아직 수업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 할 말이 있는데 혹시……, 근데 여기서는 안 돼. 학교 마치고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물론이지.”

 “고마워. 큰 나무 있잖아. 그 운동장, 뒤에서 봐…….”

 “재성아?”

 처음에 재성은 말을 못 알아들었다.

 “재성아?”

 “어?”

 “괜찮지?”

 “응.”

 그런데 종례 후에는 재성이 보이지 않았다. 도아는 팔짱을 낀 채 나무 뒤에 서서 기다렸다. 좀체 재성이 오지 않아 혹 가버린 게 아닐까 의심마저 들라는 찰나였다. 재성이 언 호수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 소극적인 행동에서 도아가 짐작건대 한두 번 정도는 생각이 바뀌었던 모양이었다.

 도아는 일부러 양쪽 입가를 올렸다.

 “많이 기다렸지? 서무실에서 불러서, 미안해.”

 “괜찮아. 여기 우리 둘밖에 없는 거 같은데, 까짓거 국가기밀 정도는 누설해도 상관없을 거 같단 말이야. 그래, 할 말이란 게 뭐야?”

 “괜히 말을 꺼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재성이 눈을 내리깔았다.

 순간 재성의 가방에서 신발 자국을 발견한 도아였다. 그가 말을 꺼내자 재성이 확인하고 서둘러 털었다.

 “꼭 말해야 돼?”

 “난 괜찮아.”

 “응?”

 “재성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부담 가질 필요는 없거든. 나는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여기에 있는 것뿐이니까.”

 도아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주억거리는 재성을 바라보았다. 이곳과는 달리 운동장은 왁자지껄했다. 아이들이 운동장을, 교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둘, 셋, 많게는 대여섯이 화기애애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 나 괴롭힘당하고 있어.”

 “괴롭힘? 가방에 있는 발자국도 그거구나? 누가 괴롭히는데?”

 도아가 생각해보건대 적어도 반에서는 그럴만한 인물이 없었다.

 재성이 머뭇거렸다.

 “……삼 학년 선배들한테.”

 “뜻밖인데.”

 “범식이란 형이 있는데, 같은 중학교에 다녔었어. 범식이 형한테 돈을 뺐기고 있어. 돈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맞아. 이유 없이 맞을 때도 있는데, 형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 솔직히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얼마 전에는 길에서 망신을 주더라. 정말 죽고 싶었어. 능멸당하고 조롱당하는 데 지쳤어. 막 사람들도 비웃고…….”

 재성이 횡설수설했다.

 “그 이야기 다른 사람한테도 했어? 선생님한테는?”

 문득 도아는 일전에 칠판 장난을 치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학교폭력신고상담센터의 전화번호를 칠판에 새겼다면 그 역시도 재성을 가지고 노는 인물로 비춰졌을 것이다.

 “못 했어.”

 “말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다고 달라질까? 선생님한테 일렀다는 이유로 괴롭힘만 심해질 텐데. 솔직히 선생님은 별로 도움이 안 돼. 화해하라고 할 거야. 내 잘못도 있다고 할 거야. 나만……, 나만…….”

 “누구한테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야?”

 “그랬던 것 같아.”

 도아는 마음에 있던 뭔가가 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쓸데없이 감격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사람이 왜 나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겁을 산 불사신임에도 감정을 논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너무 배키랑만 논 탓이다.

 문득 도아는 페이지가 생각났다. 페이지도 재성처럼 말하는 친구였다. 입양이 된 아이지만 그의 양부모는 그를 친아들처럼 아꼈다. 그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는데 도아를 만나고부터 동성애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싫지 않아?”

 “그다지.”

 “나는 네가 날 피할 줄 알았어, 도아.”

 페이지는 유독 병약했는데 그래서 또래보다 왜소했고, 목소리마저 가늘어 여자라고 오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가는 턱선과 불그스름한 입술에 더군다나 머리를 기르길 좋아해서 도아마저도 가끔은 옆모습만 보고 페이지의 여동생인 릴리와 헛갈릴 때가 있을 정도였다.

 페이지는 도아를 안으려다가 싫어할 걸 안다는 듯 외면하고 돌아갔다. 도아는 그것이 친구와의 마지막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페이지는 쇼핑몰에서 만난 삼십대 남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페이지는 목이 졸려 죽은 후에 참수되었다. 그 상태로 구강성교를 당했고 솥에 들어가 삶아지기까지 했다. 그의 일부분은 살인마의 뱃속으로 들어가 똥이 되었다. 살인마는 천구백구십일 년 칠월 이십이 일 미국 밀워키에서 체포됐다.

 살인마는 밀워키의 식인종으로 알려진 제프리 다머였다. 그는 쇼핑몰에서 만난 페이지를 유혹해 자기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마취제를 탄 음료수를 마시게 한 뒤에 수갑을 채운 뒤 유린했다. 십대에서 삼십대 남성 열일곱 명을 살해했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게 페이지였다. 페이지의 사체는 도아가 나서기 전까지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발견된 뒤에도 제프리 다머의 희생자로 판명되지 못했다.

 재성을 응시하는 도아는 친구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친구. 이 순간 너무 확실하게 다가와 부담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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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밤 2018 / 12 / 13 276 0 8770   
4 4. 여인 2018 / 12 / 13 269 0 7592   
3 3. 학교 2018 / 12 / 11 295 0 8839   
2 2. 살인자 2018 / 12 / 11 287 0 8567   
1 1. 소년 2018 / 12 / 11 474 0 1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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