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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2. 살인자
작성일 : 18-12-11 21:30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8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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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는 한 번 두 번 신발 밑창을 연석에 문질렀다. 보행 습관 탓에 바깥쪽이 많이 닳아 있었다. 신발 바닥에 붙은 껌이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강하게 쓱 문지르다가 무심결에 카페 전면 창을 보았다. 순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에 닿는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그것을 놀렸다.

 “저 죄송한데요.”

 그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성이었다. 길을 물어 오는 것이었다. 그는 갑자기 그 방향이 생각이 나지 않아 멈칫했다가 이내 설명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남성의 말에 그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만약 선교를 하려는 목적의 종교인이었다면 멱을 따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누군들 어렵지 않게 말을 걸 수 있을 만큼 부담이 가지 않는 아주 평범한 인상이었다. 특별히 눈에 남는 특징이 없었던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범한 회사원 상. 그도 그게 좋았다.

 오후쯤 됐을 때 그는 다시 남성과 마주쳤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남성은 길모퉁이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화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잭나이프의 버튼을 눌렀다. 칼날이 성기처럼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칼날의 표면을 손톱으로 문질렀다. 문득 그는 처음 칼을 만졌을 때가 생각났다. 궁극적으로 그를 칼잡이로 만든 그때가. 당시 그는 평범한 열여덟 고등학생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자정이 넘은 밤이었다. 당시 그는 홀로 사는 할머니 댁에 잠시 내려온 상태였다. 할머니가 자살한 까닭이었다. 인구 삼만이 사는 소도시였다. 유흥가 쪽은 밤늦도록 시끄러운 건 여느 동네와 같았다. 거기서 벗어나면 기막히게 고요하다는 것도. 그는 길바닥에 쓰러진 취객을 숨어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호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장지갑 때문이었다.

 장어구이집 앞에 있는 연탄 통에서 이빨 나간 칼을 발견한 그는 얼른 주워들었다. 칼 때문에 용기가 난 것도 있지만 지갑을 본 이상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맞았다. 백 킬로그램에 육박한 남자는 나시를 입고 있었는데 어깨와 팔 쪽에 무수한 칼자국이 나 있었다.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전형적인 과시용 칼자국이었다. 집구석에서 아파 죽겠다고 욕을 하며 그걸 만들고 앉았을 걸 상상하니 우스워 죽을 것 같았다.

 그는 살덩이 앞에 조심스럽게 앉아서 지갑에 손을 얹었다. 대충 봐도 문신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묵직한 것이 거의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남자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느, 므하는 새기이이……?”

 남자는 인사불성임에도 악력이 대단했다. 화수는 오줌을 찔끔했다. 지갑에 앞서 자신의 신변이 위험했다.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남자는 겨울잠에서 막 깬 회색곰처럼 느릿느릿 재정비를 하며 넙대대한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이었다.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렷해진 눈으로 악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화수는 얼른 이면도로에 세워진 차 뒤로 몸을 숨겼다. 거칠게 숨을 솎으면서 자신의, 그 짧은 순간에 두 번을 찌른 자신의 스피드에 감탄했다.

 더욱이 거의 쫄지도 않았었다. 더 중요한 건 칼 손잡이를 잡을 때 소매로 잡았다는 것이다. 야식배달원의 오토바이가 남자 앞에 서는 걸 확인한 화수는 신을 벗어 맨발로 자리를 이탈했다. 아무리 귀 기울여도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야식배달원이 살인자로 몰려 형이 집행되었고 고맙게도 감방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일 처리가 완벽하게 되었으니까.

 화수는 비스듬히 섰다. 고개를 젓이고 주변을 살폈다. 남성의 뒷목을 움켜쥔 뒤 무대뽀로 골목을 향해 끌고 가면 그만이었다. 뭐라고 지껄인다면 즉시 칼맛을 보게 될 것이다. 푹 찌르고 쭉 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의 손등 위로 시큼한 피가 펑펑 쏟아질 테다. 순간 화수는 정신을 차렸다.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그가 말했다. 방향을 다른 곳으로 바꿨다. 자연히 남성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자기야, 어디야?”

 “밖이야. 바람 좀 쐬려고.”

 “우리 볼까?”

 “지금?”

 “왜 바빠?”

 “바쁘지는 않은데 음, 그냥 있어.”

 그는 고개를 돌려 남성을 힐끔 보았다. 통화를 끝낸 남성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뭐가 좋은지 실실 웃었다. 그 모습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낮게 엎드리는 육식 동물처럼 눈을 치켜떴다. 위아래 이가 닿을 듯 말듯 스윽 갈렸다. 콧속에서 나른한 숨이 빠져나왔다. 하지만 수화기를 통하는 그의 음성은 놀랍도록 다정했다.

 “무슨 대답이 그래?”

 “지금은 좀 그렇지 않아?”

 몇 걸음 앞에 전화부스가 보였다. 그는 그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성을 노려보았다. 남성은 픽 웃더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물었던 담배를 손으로 옮기고 힐끔 보더니 땅바닥에 버렸다.

 “자기야? 자기?”

 “어, 보경아?”

 그는 정신을 차렸다.

 “무슨 말 했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래?”

 “진짜 나 완전 무시당하고 있네.”

 “그런 게 아니라, 새가 날아가더라고.”

 “새?”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큰 새였어. 무진장 크더라.”

 “비둘기를 잘못 본 건 아니고?”

 “아니야. 진짜…… 큰 새였어.”

 남성이 보이지 않았다. 화수는 귀에서 핸드폰을 뗐다. 순간 굳었던 그의 얼굴이 펴졌다. 남성이 편의점 안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남성은 가게를 나오면서 또 담배를 물었다. 희뿌연 연기를 뿜어대며 꺾어지는 이면도로로 들어갔다.

 “밤에 봐. 일곱 시쯤에.”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CCTV를 찾는 동작이었다. 그런 게 있다고 해도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화부스에서 나가면서 하나를 발견했다. 도로를 향해 있었다.

 “그렇게 할까? 알았어. 그럼 카페에서 보기로 해. 우리가 자주 가는 거기 있지?”

 “알았어.”

 “쪽.”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며 끊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바삐 길을 따라갔다. 두리번거리지 않으려 노력을 하는 데도 그게 잘 안 됐다. 그러다가 남성을 골목에서 찾았다. 남성은 꽁초를 휙 던지면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화수는 숨을 참으며 남성에게 사뿐사뿐 다가갔다.

 그는 슬그머니 손바닥으로 눈 아래를 감싸고 눈을 움직였다. 감시카메라로 보이는 건 없었다. 전봇대가 나타났다. 각종 전단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나타나는 주택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처져 있었다.

 “저기요.”

 화수가 말했다.

 처음에 남성은 듣지 못했다. 아니면 무시를 하는 것이었다.

 “저기요. 이거 가져가셔야죠.”

 그제야 남성이 뒤돌아보았다. 불만스런 표정이었다.

 “나요?”

 “이걸 떨어트리시더라고요.”

 남성이 뒷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아마도 지갑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잠깐 여기 좀요.”

 화수가 구토물이 말라붙은 전봇대에 붙어 섰다.

 남성은 잠시 서 있다가 다가왔다.

 “얼굴은 왜 그래요?”

 남성이 말했다.

 여전히 화수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요.”

 “뭔데요?”

 화수의 목소리를 눈치챈 것인가? 남성은 의심쩍은 눈초리였다. 화수의 눈이 왼쪽 오른쪽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는 남성에게 크게 한 걸음 다가가서 바로 팔을 잡았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명치 부분을 푹 쑤셨다.

 “이것 때문이야.”

 그가 남성의 귀에 대고 말했다. 칼로 뱃가죽을 그어 내렸다. 그리고 쓰러진 남성의 머리통을 뛰어넘어 달아났다. 남성을 끌어다 전봇대에 앉혀 놓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시간을 끌다가는 들킬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서 손을 닦았다. 그리고 칼도 닦았다. 둥글게만 티셔츠는 집까지 가지고 가 검은 봉투에 넣은 다음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그는 미리 틀어 놓은 물소리를 들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드니 물줄기가 변기까지 날아갔다. 샤워기에서 나온 물방울이 세면대에 두두둑 떨어졌다. 잭나이프에서 묻어나온 묽은 핏물이 물감처럼 세면기 밑바닥에서 퍼졌다.

 

 화수는 버스에서 내렸다. 카페는 한 블록 지나 바로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얼굴에 특이점이 없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각질이나 뭐 그런 것 때문이었다. 손을 씻으려는데 세면대에 붙어 있는 누런 가래가 보여 인상을 썼다. 그는 셔츠 안에 입은 티셔츠를 손질하다가 하의 지퍼가 열린 걸 확인하고 잠갔다.

 잠시 화장실을 갔다가 온 사이에 보경이 와 있었다. 그는 그녀 앞에 앉았다. 눈과 입술이 큰 그녀는 귀염상이지만 때로는 섹시했다. 눈 밑 살과 코 밑 점 때문인지도 몰랐다.

 “많이 기다렸어?”

 그녀가 말했다.

 “나도 방금 왔어. 화장실 갔다가 오니까 네가 있네.”

 “에이, 시간도 얼마 안 됐네.”

 그녀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카페의 벽걸이 시계는 그녀 뒤쪽에 있었다. 그들은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셨다. 카페를 나와서는 얼마 정도 길을 걷다가 피자 전문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계산을 할 때 쿠폰도 사용했다. 스무 살 연인의 데이트란 대게 이런 식이었다.

 “으아, 배부르다.”

 그가 콜라를 마신 후 말했다.

 “나도.”

 가게를 나선 둘은 동시에 창밖을 보았다. 사람들 사이로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지나갔다. 그는 계단을 먼저 내려오다가 멈췄다. 두 단 정도 아래에 있자 키가 얼추 맞았다. 그는 그녀를 안았다.

 “자기야 왜 그래?”

 “뭐 어때.”

 문득 그는 자기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그런 호칭은 나이가 좀 있는 커플들의 용어라고 생각했다. 둘은 스무 살 동갑이었다. 그는 그녀가 마치 어디 불편한 곳이라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손목을 잡고 건물 밖으로 이끌었다. 둘은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걷는 거 오래간만이다, 그 치?”

 그녀가 말했다.

 “그런가?”

 그는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손을 놓고 그의 앞에 섰다.

 “그거 알아? 내가 자기더러 자기라고 하면 내 친구들이 소름 돋아 하는 거?”

 “아무래도…….”

 “뭐?”

 “그런 호칭을 하기엔 우리가 좀 어리긴 하잖아.”

 “치, 그런 게 어딨어.”

 “있고말고.”

 그가 그녀를 잡아당겨 팔을 둘렀다. 그녀의 샴푸 냄새가 좋았다.

 “별 많다.”

 그가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어, 정말. 난 왜 모르고 있었지?”

 “빠져 있으니까.”

 “자기한테?”

 “다른 걸 생각은 해봤는데 적당한 게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그가 어리둥절 말하자 그녀가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둘러 있는 그의 팔을 내리고 거기에 팔짱을 끼며 매달렸다.

 “자기랑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 같아.”

 그녀가 그의 팔에 완전히 의지하며 말했다.

 “몇 신 줄도 모르면서.”

 “그런 거 알아서 뭐해.”

 “알 필요는 없지.”

 그가 말했다. 하지만 할 말이 더 있는 거 같았다.

 “무슨 고민 있어?”

 “고민은 무슨.”

 “남에게 말 못할 일이야? 나한테도?”

 “그런 거 없어.”

 “에이.”

 “없다니까 그러네.”

 “정말?”

 공원이 보였다. 둘은 자연스럽게 거기에 들어갔다. 잠시 말없이 걷기만 했다. 문득 그는 어떤 기척을 느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뒤가 신경이 쓰이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마침 귀신을 생각했었다. 그 숱한 시체…….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 때는 허투루 넘겼다.

 “우리 저기 앉을래?”

 그녀가 벤치를 가리켰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둘은 거기에 앉았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는 그녀의 체온을 느꼈다. 뜨끈뜨끈한 혈액으로 인한 발열이 그녀의 보드랍고 얕은 피부 아래에 계곡처럼 깔려 있었다. 갑자기 그의 가슴이 뛰었다. 그는 곁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자긴 꿈이 뭐야?”

 그녀가 몇 번을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문득 아빠가 생각났다. 그가 일곱 살 때였다. 밤이었고, 오늘처럼 공원에 있었다. 엄마는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아빠가 휘두른 골프채를 막다가 부러진 것이다. 아빠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해소했다. 처음에는 온갖 욕설을 하며 엄마를 때리지만 끝에 가서는 부드럽게 말을 걸며 볼기짝을 때리고 허벅지를 뒤꿈치로 밟았다.

 아주 어렸을 때지만 아빠가 던진 수석에 엄마의 종아리가 터진 일이 있었다. 그때 찢어진 곳에서 물컹거리는 것이 쏟아져 나왔는데 자다 깬 어린 화수는 동생이 태어나는 건 줄 알고 기뻤다.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일곱 살짜리도 느낄 정도였으니 엄마가 얼마나 겁을 먹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을 일이었다. 거실에는 아빠가 술상 앞에 양반다리로 앉아서 현관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안주로 동물의 내장을 즐겨 먹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키우던 강아지가 뱃가죽이 벌어진 채 나동그라져 있는 걸 먼저 발견한 건 화수였다.

 “시끄러! 시끄럽다고!”

 아빠는 술상을 엎고 일어나 화수를 차서 고꾸라트렸다. 그리고 아들의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화수는 게거품을 물며 눈을 뒤집었다. 엄마가 일일구에 신고를 하는 것까지 가만 지켜보던 아빠였다. 그런데 주방을 다녀온 뒤에 무슨 심경의 변개가 있었는지 다짜고짜 엄마의 머리채를 채 잡더니 발을 획 걸어 넘어트리는 것이다.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왔을 때는 전두엽이 크게 손상된 일곱 살짜리 어린이와 술을 퍼마시고 있는 중년 남자밖에 없었다. 세탁실의 문이 열려 세탁기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소리만이 소음의 전부였다. 세탁실 밖으로 나와 있는 다리를 발견한 구급대원 중 하나가 달려갔고 곧바로 비명으로 이어졌다. 구급대원은 하얀 가루 칠갑인 세탁기를 열어 볼 수밖에 없었다. 중년여성의 배 속에 있어야 할 창자는 표백제 한 통을 부어 넣은 물속에 있었다.

 “자기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보경이 그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좀 그런 생각. 사실 어제 꿨던 꿈 생각을 하고 있었어.”

 “무슨 꿈이었기에 그래?”

 “그게 생각이 안 나서……, 근데 보경아.”

 “어?”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렸는데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 있었다. 솔직히 그는 신경 쓰였다.

 “이제 돌아갈까?”

 “조금만 더 있자. 가까이 붙어 있으니까 따뜻해.”

 멀리서 담뱃불이 타올랐다.

 “가자.”

 그가 일어났다.

 남자가 뒤에서 따라 왔다. 화수의 걸음이 빨라졌다.

 “나 힘들어.”

 그녀가 칭얼댔다.

 저기서 벤치가 보였다. 그리고 벤치에 누워 있던 인영이 일어났다. 한 패인 듯했다. 화수는 잘못 걸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인영은 똑바로 서서 커플을 기다렸다. 담배 냄새가 났다. 그만큼 쫓아오던 남자와 가까워진 것이다. 담뱃불이 반딧불이처럼 휙 날아올랐다.

 “그림 좋은데?”

 뒤쪽에서 말했다.

 앞쪽에서 킥킥거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사지?”

 “대대손손 전해질 명대사 아니냐?”

 커플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주고받았다.

 앞의 남자는 후드재킷의 호주머니에 양손을 끼우고 있었다. 뒤에 남자는 머리에 쓰고 있는 비니를 만졌다.

 “아이고, 형님. 이 동생들이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차비 좀 빌립시다.”

 앞에서 말했다.

 앞뒤에서 거리를 좁혀 왔다. 달빛 아래 얼굴이 드러났다. 체격은 성인과 진배없었지만 앳된 느낌이 드는 것이 고등학생 같았다. 뒤에서 화수의 목덜미를 잡았다. 뒤쪽에서 얼굴을 화수의 볼 옆으로 내미는 통에, 화수는 어렵지 않게 상대의 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을 주면 되는 거지?”

 “말이 통하는 형님이네.”

 앞에서 말했다.

 뒤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역했다. 화수가 지갑을 꺼내려는데 뒤에서 낚아챘다. 앞에서 걸어왔다. 그리고 코앞에서 보경을 내려다보았다.

 “언니 예쁘네.”

 그녀가 움츠리며 화수의 팔을 꼭 잡았다.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앞에서 킥킥거렸다.

 “지금 누구 놀려?”

 뒤에서 말했다.

 “왜?”

 “전 재산이 삼만 원이란다.”

 지갑이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우리 누님도 있는데 뭘.”

 “보경이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화수가 콜록거리며 엎드렸다. 앞에서 화수의 배에 주먹을 꽂은 것이다.

 “야, 우리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대사 아니냐? TV에서 씨발아.”

 뒤에서 말했다. 물론 화수를 향한 욕이었다.

 “언니는 얼마 가지고 계실까?”

 앞에서 그녀의 턱을 어루만졌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자기야 괜찮아?”

 그러나 뒤에서 화수의 등을 밟는 통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돈을 꺼내.”

 앞에서 말했다. 하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그녀의 핸드백을 낚아챘다. 그녀 역시도 몇만 원이 다였다. 앞에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돌렸다. 다른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름이 보경이야? 보경이는 보…….”

 앞에서 욱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거꾸러트렸다. 화수가 밑에서 달려든 것이다. 그는 다리를 잡고 상대의 몸 위로 기어올랐다. 그녀도 덩달아 주저앉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 새끼가!”

 뒤에서 화수를 끌어내리며 발길질을 시작했다. 앞에서도 욕을 하며 일어나 화수의 머리를 걷어찼다. 화수는 침을 뿌리며 엎어졌다. 화수는 머리만 양손으로 부여잡은 채 얻어맞았다.

 그래 이 머리가 문제야. 이 머리가 문제였어. 내 머리가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 내가 아니야. 살인 지시는 오로지 뇌가 하는 거지. 뇌가 없다면 인간은 고기나 다름없지. 반 틈으로 갈라서 푸줏간의 쇠갈고리에 걸어놓는 거야. 썰어서 팔면 인육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알아도 모른 체할 걸. 꾸역꾸역 인육을 사러 오겠지. 그것도 다 뇌가 시킨 걸 테니까. 내가 이런 사고를 하게 된 건 다 뇌를 다쳤기 때문이야.

 화수의 전신에 온통 흙발이 남았다. 그녀는 오열했다. 뒤에서 겨우 손 정도를 뒤꿈치로 찍어 누르고 있었지만 하도 얻어맞아서 화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제 네 여친 차례야.”

 앞에서 말했다.

 “야, 하려고?”

 “당연하지, 새끼야.”

 앞에서 벨트를 푸는데 환한 불빛이 등 뒤에서 후광처럼 비췄다. 경찰차였다.

 “여기요! 아저씨 도와주세요!”

 그녀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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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살인자 2018 / 12 / 11 288 0 8567   
1 1. 소년 2018 / 12 / 11 474 0 1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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