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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1년 만에 수업 들으려니까 죽겠다”
“내 말이... 9월인데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더워?”
아영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졸리다.. 난 오늘 수업 끝났지롱. 이나 너는?”
“나 오늘 풀강이야.. 먼저 집 가 있어”
“그래 이따 맥주나 한 잔 하자. 유나가 동아리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 소개시켜 준댔어.”
“오케이”
1년만의 복학
계절은 그대로 여름과 이어져 가을이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더웠고, 학교도 그대로였다.
나와 아영이만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채 학기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벌써 2학년 2학기였고, 제법 선배 소리가 어울리는 분위기가 풍겼다.
나와 아영이는 이번 학기부터 같이 살기로 했다.
아영이가 자취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우리 집에서도 교통비랑 비교하면
비슷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후문에서 15분 정도 거리의 원룸을 하나 얻었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학교에서 멀어질수록 가격이 저렴해지는 반비례 법칙에 순응할 수밖에.
그래도 독립했다는 기분, 친구와 함께 사는 두근거림과 이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
밤새 술 먹고 놀아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다는 자유와 해방감에 복학하고 일주일은 술판이었다.
오늘 아영이가 졸리다고 비틀거리는 것도 어제 집들이랍시고 유나, 수연이까지
넷이 밤새 놀았기 때문 일거다. 사실 집들이를 일주일 째 하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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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난 후에 책을 두러 집에 갔더니, 마침 아영이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으며 나오던 참이었다.
“어? 시간 잘 맞췄네. 연락하려고 했는데, 가자 미니펍으로 오래”
“응응 유나 톡 아까 봤어. 너 근데 얼굴 좀 부었다? 잤어?”
“어... 3시간 정도..? 숙면!!”
아영이 손가락을 브이자로 들어 보인다.
“아 부럽다~~ 난 수강신청 망했어.. 무슨 3시간짜리 수업을 5시 45분에 끝내 주냐.
그것도 오늘 5분 일찍 끝내 준거라고 생색내더라.. 윤 교수님..”
“저번 달만 해도 윤 교수님 수업 들어도 좋다고 했던 게 어디의 누구시더라”
“취소”
“너 다크써클 목까지 내려온 듯”
“젠장.. 사람은 모름지기 첫인상이 제일 중요한데”
“얼씨구? 누구한테 잘 보이시려고? 수빈이한테 일러야겠다”
“에헤! 왜 그러시나 강아영님 죄송...”
수다 떨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근처 맥주 집에 도착했다. 유나와 처음 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쏭~ 여기 여기! 얘들아 인사해. 나랑 동기인데 휴학했다가 이번에 복학 했어”
유나는 손을 흔들며 우리를 부르랴 새로운 신입생들에게 우리를 소개하랴 정신없었다.
“안녕하세요.”
곳곳에서 들려오는 인사 속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이나랑 아영이 오랜만이네~ 휴학하고 뭐 했어?”
성호 오빠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하게 아영이한테 말을 걸 수 있지?
표정 관리 안 되는 아영이 쌩 까고 멀찍이 앉아서 신입생들에게 말을 건넨다.
나도 성호 오빠에게 대충 고개만 까딱이고는 아영의 옆으로 갔다.
“얘들아~ 안녕”
“안녕하세요.”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우리가 선배라고 얼어 있는 게 웃겼다.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자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아영이가 성호 오빠 쪽 테이블에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김준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민준이 인사 싹싹하게 잘 하는데? 맘에 들었어. 누나 이름은 알아?”
알 리가 있나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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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나 또라이야. 애들을 그렇게 먹이면 어떡하냐”
“지는.. 자기소개 계속 시켰잖아. 덕분에 이름 다 외움”
술자리가 끝나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 있었던 일 얘기로 여념이 없다.
“야 윤성호 새끼 누가 불렀냐?”
갑자기 아영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니까. 유나가 오늘 우리한테만 신입생 소개 시켜준다고 한 거 아니었어?”
“나도 그런 줄. 오늘 동아리 개티하는 줄 알았다”
“하여튼 윤성호 걔도 참 뻔뻔해. 너한테 계속 말 걸더라”
“오히려 찔리는 게 있어서 더 그러는 거 아냐? 짜증나 죽는 줄 알았어.
두고 봐 내가 지금 증거 모으고 있다. 조만간 조진다 내가“
“나 꼭 불러라 구경하게”
“근데 쏭 너 왜 자꾸 민준인가 하는 애한테 찝적거리냐?”
“내가 언제. 귀여워서 그냥 먹인 거지. 술 잘 먹던데? 걔 귀엽지 않니 내 타입”
“아니 전혀, 내 취향은 아님”
“아 왜애~~ 잘 생겼자나아~~~~”
“야 지금 새벽 3시거든? 조용하고 문이나 열어봐”
“웅.. 잠깐만.. 열쇠가..”
가방을 뒤적거리다 불빛이 반짝거리는 휴대폰이 보였다.
“아 맞다 오늘 술자리에 너무 집중하느라 폰도 못 봤네.. 헤헤”
수빈 오빠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1통이 왠지 쓸쓸하게 찍혀 있었다.
“야 쏭! 문 열으라고~!!”
“지금 연다. 지금!!”
문이 열리자마자 쓰러지듯 누운 우리는 정신없이 잠 들었다.
수빈 오빠의 부재중 전화는 희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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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사면 되나?”
“봐봐 술 뭐 샀어?”
나는 카트를 들여다보았다. 데꼬리 2병, 막걸리 5병, 맥주 피쳐 6병..
“야 안주는 왜 다 과자야. 어떻게 먹으라고”
“돈 없어 이거면 충분해”
“하긴, 츄파춥스로도 먹는데 뭘”
오늘은 동아리에서 친해진 몇몇 사람들을 불러서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일주일 째 이어졌던 집들이는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근데 우리 집들이 언제까지 해?”
“우리 집 처음 오는 사람 있으면 다 집들이야”
근거 없는 아영의 말에 나는 묘하게 수긍했다.
유나, 수연, 준영, 민준, 지민이에 나와 아영이까지 7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자취방은 좁았다.
유나가 처음 소개 시켜 준 미니펍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준영, 민준, 지민이는
우리보다 학번은 하나 아래였지만, 같은 학년이었고 무엇보다 술을 좋아해서
어쩌다보니 종종 어울려서 노는 무리가 되었다.
“배고픈 사람”
“언니 저요!!”
지민이가 손을 번쩍 든다.
“언니가 특제 비빔밥을 만들었지 먹거라”
나는 밥통 째 테이블에 올려놨다.
“어? 맛있다! 맛있어요 언니!! 뭐 넣은 거예요?”
지민의 말에 너도 나도 숟가락을 들고 모여든다.
“참치랑 참기름, 고추장 끝. 계란후라이도 넣으면 환상인데 계란이 없다”
돈이 별로 없는 자취생들의 단골 메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때는 밥통 째로 비비기도 했다.
간만에 복작복작한 자취방 현관에는 신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오 이 신발 예쁘다. 야 이거 누구 거야?”
나는 현관에서 헐렁헐렁한 운동화를 신고 물어봤다.
“그거 제 거요”
민준이 입 안 가득 밥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와 신발 좋은 건가봐? 되게 푹신하다 신기하네”
나는 작게 퐁퐁 뛰어보았다.
“아 누나 그거 얘 깔차..ㅇ 읍읍”
민준이 준영의 입을 황급히 막는다.
“아하~~ 괜찮아 민준아 남자의 자존심이지 누난 다 이해해”
나는 큭큭 웃으면서 준영이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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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사온 술은 거의 다 마셔가고 유나와 지민이는 이미 뻗어 있었다.
“으 너무 쓰다”
민준이 소주가 반 쯤 담긴 종이컵을 힘겹게 내려놓는다.
“써?”
나는 민준의 잔에 막걸리를 콸콸 부어주었다.
술 때문에 빨개진 민준의 얼굴이 막걸리처럼 하얗게 질린다.
“아 누나 이건....”
“왜? 쓰다며, 이제 연해져서 맛있을걸. 막잔하고 끝내자 짠~”
“누나...”
민준이 도리도리 고갯짓을 했다.
“마셔”
민준은 눈을 질끈 감고 잔을 다 비우더니 반쯤 풀린 눈으로 말했다.
“누나 저 더 이상 못 머그부우웨에에엒”
“으아악 누나 휴지!! 휴지!”
준영이 황급히 일어나며 소리쳤다.
앉은 채로 오늘의 안주를 다 보여주는 민준과 함께 그 날의 술자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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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머리 아프다...”
나는 겨우겨우 일어나 출석만 하고 동아리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혼자 누워 있었다.
끼익 하고 동방 문이 열린다. 누구지... 나는 담요 사이로 눈을 살짝 떴다.
소파 바로 앞 테이블 때문에 들어온 사람의 얼굴은 안 보이고 아래 신발만 보였다.
어.. 저 신발... 민준이구나... 나는 일어날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자는 척 그대로 계속 있었다.
신발은 문 앞에서 어물거리다가 다시 나가버렸다. 뭐야.. 왜 들어온 거야?
곧 다시 문이 열리고 민준이 들어오는 것 같더니 바로 나간다.
“에이씨 잠 자긴 글렀네”
뭉그적거리며 일어나니 테이블 위에 사과주스가 놓여 있었다.
뭐야, 서민준 귀엽네
나는 피식 웃으며 사과주스를 바라봤다. 가슴 한 쪽이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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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시 깡통포차에서 모이는 거다?”
10월 1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수업 끝나고 동방에 갔더니 왁자지껄했다.
생일파티 주최자인 유나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묻는다.
“쏭 오늘 너 생파 알지?”
“당근~ 아 민준이도 온대?”
“걔? 못 온다는 것 같던데?”
“왜? 오늘 민준이 동방 왔어?”
“아까 뭐 가지러 잠깐 들렀는데, 방금 나갔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장 달려 나갔다.
“민준아~!!”
멀리서 친구들과 걸어가던 민준이 돌아봤다.
“누구?”
나를 보고 민준의 친구들이 민준에게 묻는다.
“아, 동아리 선배, 너네 먼저 가고 있어. 이나 누나 왜요?”
“오늘.. 내 생일인데.. 이따 와?”
“아.. 죄송한데 전 못 갈 것 같아요”
“왜애? 왜? 왜 안 와~”
“저 과제가 있어서.. 죄송해요”
“내 생일인데! 고작 과제가 중요하냐!!”
“......”
“진짜 안와?”
“조별과제라서 못 가요. 죄송해요”
“..진짜로 안 올 거야? 나 생일인데!! 와라~”
민준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생일인데....
“너무하다 진짜. 누나 생일인데... 알았다!! 조별 과제 잘 해!”
홱 돌아서서 다시 동방으로 가는데 눈물이 났다.
민준이 못 오는 게 그렇게 서운할 만한 일인가?
아 왜 이딴 걸로 눈물이 나고 난리야 고작 후배 하나 못 오는 건데,
신경 쓰지 말자 오든지 말든지, 너 없어도 재밌게 놀 수 있다 뭐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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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깡통포차. 안에 자리가 좁아서 그냥 바깥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다들 즐겁게 내 생일을 축하하며 먹고 마시고 있는데 나는 왠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걸려온 수빈 오빠의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전화에는
슬그머니 짜증도 울컥 올라왔다.
오빠가 있기만 했어도 내가 서민준 따위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서민준 그 자식도 감히 선배가 부르면 네 하고 와야지!!!
1학년 주제에... 아, 나도 1학년이지 참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억지웃음으로 앉아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영이 나를 툭툭 쳤다.
“야 서민준 오늘 안 온다고 하지 않았냐?”
“응 과제 한대. 개놈새끼..”
“저거 서민준 아냐?”
아영이 가리킨 손끝에 커다란 곰인형이 보였다.
민준이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건물 뒤편으로 뛰쳐나갔다.
놀란 아영이 따라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나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정체 모를 눈물이 계속 나와서 나도 당황스러웠다.
“아영아.. 나 어떡해..”
“응? 뭐가. 아까부터 계속 우울해보이더니 갑자기 왜 울어”
“어떡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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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민준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빈 오빠의 전화를 받기 싫었다.
싫었다기보단 어떤 목소리, 어떤 태도로 오빠와 통화해야 할지 어려워졌다.
처음 민준에게 느낀 감정은 그저 호감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동방에 갈 때 민준이 있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술자리에서 어쩌다 옆에 앉게 되면 괜히 두근두근했다.
그래서 괜히 술을 먹이며 괴롭혔던 것 같기도 하다.
간질간질했던 마음은 생일날 걸어오는 곰인형을 보고 확실해졌다.
나는 민준이 좋다. 민준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그럼 수빈 오빠는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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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나 수업 갔다 올게”
“너 11시 수업 아니야? 지금 9시야”
“들를 데가 있어서. 갔다 올게!!”
아영이가 뭐라고 묻는 것 같았지만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학교로 가지 않고 나는 민준의 방으로 향했다. 민준이도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콩콩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콩콩콩
“민주나..”
작은 목소리로 불렀더니 안에서 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문고리를 돌리자 문이 열린다. 아직 침대 안에 있는 민준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야아~ 서민준 문도 안 잠그고 자고 있음 어떡해”
“왠지 오늘 누나가 올 것 같아서요”
민준이 배시시 웃으며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부스스한 민준의 머리가 귀엽다.
침대에 살짝 걸터앉았더니 민준이 내 무릎을 베고 눕는다.
민준은 빤히 나를 쳐다보더니 뜬금없이
“누나 뽀뽀해도 돼요??”
하고 묻는다.
“되겠냐??!! 나 수업 가기 전에 잠깐 와 본거야 아침은 먹었어?”
나는 당황해서 말을 돌렸다.
“아침 말고요. 누나랑 뽀뽀하고 싶은데”
민준의 눈빛에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백해 버렸다.
“민준아 우리 사귈래?”
“네?”
민준이 멈칫한다.
“우리 사귀자.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 누나 남자친구 있다면서요”
“네가 더 좋아. 헤어질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왜? 너도 나 좋아하잖아. 아니야?”
“저도 누나 좋아요. 그래도 뭔가 이건...”
“...내가 헤어지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나는 당연히 민준이도 그 자리에서 좋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는데, 방금 전까지 뽀뽀해도 되냐고 묻던 놈이
갑자기 어정쩡한 태도로 발을 빼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창피했다.
“나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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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긴 어딜 가. 밥 안 볶아?”
“여기 주문이요~”
지혜가 잽싸게 직원을 부른다.
“강아영 안 먹냐?”
“난 닭발 싫어해 극혐. 볶음밥은 먹을 거야”
“야, 근데 우리 요즘 매주 술 마시는 것 같다?”
매워서 얼굴이 빨개진 지혜가 한마디 했다.
“송이나 안주거리가 흘러넘친다. 아주”
아영이 내 어깨에 손을 걸치며 말했다.
“하긴, 옛날 얘기가 술안주로 딱이지”
“현실이 너무 팍팍해서 그래.. 나 오늘도 사표 쓸 뻔했다니까?”
지혜가 울상을 하고 말한다.
“넌 또 왜. 부장이 또 서류 던지디?”
“말도 마. 서류는 그냥 줍고 말지. 오늘은 지가 커피를 바닥에 쏟아 놓고는
나보고 닦으라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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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의 이야기가 술안주가 되어버릴 만큼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느낀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나는 그 때 왜 곰인형을 보고 눈물이 났을까?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쏟아져버린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담으려고 버둥대봤자 번질 뿐이지.
위태롭게 담겨있던 새로운 사랑은 그 날 쏟아져 버렸고,
나는 두개의 사랑을 두고 선택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