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첫날이 밝았다.
전날 일찍 잠이 든 덕분에, 눈을 뜨니 해가 뜨기 전의 새벽이었다.
다휘는 하루를 좀 더 일찍 시작하고픈 마음에 가볍게 세수를 한 후, 얇은 가디건을 입고 새벽의 공기를 느끼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시원하네··.” 다휘가 중얼거렸다. “이제 6월··이네.”
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낮과는 온도가 다른 공기의 촉촉함에 좀 더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과음하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오랫동안 마신 탓에 술기운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전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혹시 필름이 끊긴 부분은 없는지 되짚던 다휘는 불현듯 누군가의 고백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예쁜 애가 영화처럼 걸어와서···’
다휘는 기준이 했던 말을 되뇌자, 얼굴 전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기준은 모델 출신이어서 그런지 키가 꽤 컸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더 커서 작아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의 짙은 금발머리는 회색빛 눈동자를 가리지 않았지만, 목은 절반 정도 가리는 길이었다.
어제 그가 입었던 진회색의 바지에 옅은 분홍색의 셔츠는 그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매치였다.
그의 눈동자는 버림받은 소녀처럼 가냘프게 보이면서도 어딘가 독기가 오른 것 같기도, 또는 신경이 날카로워 보이기도 했다.
원래 누군가가 충격적인 발언을 하면 그 당시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더니, 다휘는 기준이 그 말을 한 후에 그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얼굴까지 톡톡히 기억에 남았다.
다휘는 급기야 입고 있던 얇은 가디건을 벗어 팔에 걸쳤다.
어쩐지 기준이 방출했던 열기가 지금 그녀를 덮쳐 오는 기분이 들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새벽 공기에 맡기고, 다휘는 밝은 해가 본관 건물을 모두 비출 때가 돼서야 방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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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후 씻고 나온 다휘는 베이지색의 커튼이 쳐진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음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히 해 뜨는 걸 보고 들어왔는데··’라며 샤워가운의 허리끈을 묶으면서, 그녀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시각이 잘못된 건 아닌지, 창밖에는 햇빛은커녕 침울한 색의 구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 온다는 말이 있었나··?” 다휘가 그 말을 하고서 가벼운 기침을 했다.
그녀는 화장대 위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 주간 날씨를 찾으면서, 화장대 앞의 의자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주말 내내 오네···. 폭우?”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 오는 건 싫은데.”
다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기 예보에 입술을 삐쭉거리면서, 드라이기를 찾아 들었다.
곧 그녀의 방 안에는 드라이기의 모터 소리로 가득 찼다.
* * *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지, 허기진 배에서 나는 소리를 억지로 억누르며 본능적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다휘는 간부 숙소에서 본관으로 가는 도중에 얇은 비가 조금씩 쏟아져서 조금 뛰었다.
그래서 배가 더 고파지는 것을 손으로 문지르며 달래고 있었다.
그녀는 식당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
다휘가 작은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며 들어간 식당 안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 뭐 해. 안 들어와?”
“아, 아뇨.”
그녀에게 퉁명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도담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주말이라 그런 건지, 며칠 전에 야외 훈련장 쪽에서 봤던 모습처럼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사실 지난 주말은 다휘가 본부 생활을 시작한 후 첫 주말이었는데, 토요일에는 철야로 작업을 감행해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일요일에는 늦잠 때문에 아침을 걸렀기 때문에 도담의 주말 차림은 처음 보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도담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은국도 도담과 비슷한 차림이었다.
같은 방향에 앉은 두 사람의 반대편의 자리에 앉는 다휘는 은국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 속은?” 먼저 식사 중이던 은국이 스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휘는 그의 물음에 입을 앙다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적시며 자신의 앞에 있는 물이 든 잔을 들었다.
“쓰리지는 않고·· 조금 배고파요.”
그녀가 쑥스러운 듯 은국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지만, 은국은 신경을 쓰지도 않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은호는 내일 복귀할 예정이었는데, 그쪽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비행기가 못 뜬다더군. ··화요일이나 돼야 올 거야.” 은국이 말했다.
다휘는 은국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행기가 못 뜰 정도면 태풍이라도 온 건가 싶었다.
이어 식당의 구석에서 카트를 끌고 나온 주방장이 다휘의 앞에 시리얼과 우유 한 팩, 그리고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를 내놓았다.
“감사합니다··.”
다휘가 작게 속삭이듯이 말하자, 주방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녀는 허기진 속을 채울 생각에, 본능적으로 입맛을 다시며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다휘의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며 도담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는 다휘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도 않았다.
은호의 대신으로 다휘의 보살피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은국은 다휘의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에야, 도담의 행동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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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다휘는 배가 너무 불러서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조금 부풀어 오른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도담은 손목의 시계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던 와중 은국과 시선이 정면으로 맞았다.
“···.”
“···.”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일종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지, 두 사람의 눈썹이 치켜떠졌다가 내려갔다가, 입꼬리가 움직였다가, 결국 은국이 띤 냉소적인 웃음에 도담의 표정이 한순간 돌처럼 굳어졌다.
“저, 그럼 먼저·· 일어나 볼게요.”
그런 두 사람의 신경전을 두 눈으로 본 다휘가 조심스레 말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담은 다휘에게 할 말이 있는지, 입을 옴짝달싹 거렸다. 하지만 은국이 자신을 째려보는 게 느껴지자, 머뭇거리며 결국 말을 건네지 못했다.
다휘가 식당에서 나가자, 도담이 짜증난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뱉으며, 은국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넌 또 뭐야?” 도담이 말했다.
은국은 그의 물음에 의자를 뒤로 밀면서 팔짱을 꼈다. 뭔가 의심쩍은 시선으로 도담을 보고 있었다.
“···차연호의 ‘그녀’를 위한 행동인지, 백기준에 대한 경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은국이 말했다. “현다휘에게서 눈이 떨어지질 않던데··. 날 제외하고 또·· 누가 알고 있지?”
그의 날카로운 물음에 도담은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도담의 벽이 은국에 의해 금이 갔다. 도담은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 대답을 못 할 정도인가? 답지 않게.”
은국은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담에게서 대답을 들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도담은 은국의 마지막 말에 금이 가 있는 벽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은국이 식당을 나간 후에도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식당의 창문들 뒤로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암울한 분위기의 주말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