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돼"
충격적이다. 나와 동등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우선, 선생님의 말씀해 주신 정보에 따르면 나와 같이 만점받은 아이는 분명 내 반 바로 옆반이 확실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감히 만점을 받아내? 두고 봐, 반드시 증명해주겠어.
중학교 첫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재빨리 옆반으로 뛰어갔다. 아직 종이 친지 몇 분 밖에 지나지 않은 터라 여자얘들이 반에서 북적이고 있었다.(아..제발 빨리 좀 나갔으면)그나저나 도대체 누구지?
"아."
그때 수 많은 여자얘들 사이에서 유독, 자기 자리에서 혼자 열심히 무언가를 필기하는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아직 내가 다가간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쇄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앞머리가 없었으며, 두 눈은 마치 아기 강아지를 연상게 하는 순한 눈매였다. 확실히 나와는 정반대 스타일였다. 혼자 있는 걸 보면 아직까지도 친구를 사귀지 못한 듯 하다. 순간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동정심?)
"혹시 네가 이번 쪽지시험에서 만점 받은 얘 맞니?"
말을 걸자 그 아이는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안녕! 반가워. 실은 나도 이번 쪽지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거든. 그런데 우리 학년에서 만점자가 우리 둘 밖에 없나 봐, 그러니까..이것도 인연인데..괜찮다면 혹시 나랑 친구해 줄래?"
최대한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보면서 수줍게 얘기하는 척 연기해 보았다. 보통 이렇게까지 말을 걸면 십중 팔구는 넘어오기 일쑤였다. 특히나 혼자있는 얘들은 무조건 넘어온다.
"응..좋아! 고마워. 나..나도 사실 친구가 없어서 난처했거든."
역시나, 제대로 먹혀들었다.
"나야말로 고마워! 나도 친구가 없어서 꽤 곤란했거든~ 맞다, 넌 이름이 뭐야?"
"나는.."닻별". 김닻별이라고 해! 나도 잘 부탁해."
그 이후로 우리들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다행히 서로가 마음이 잘 맞았기에 덕분에 한달도 채 되지않아 같이 등하교를 할 정도로 급 속도로 많이 친해졌다.(옆에서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할 정도.)
같이 다니면서 닻별이는 어디에서도 볼 법한 전형적인 모범생이였다. 항상 오답노트와 책을 들고 다녔으며 방과 후에는 담당 과목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 상담 받기도 하였다. 게다가 의지 또한 보통 대단한 게 아니여서 모르는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 날은 아주 작정하고 밤샘까지도 한다고..(결국 풀었다고 한다.)
처음에 내가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자 그 당시 닻별이는 엄청 부끄러워했었다. 칭찬에 엄청 약한 타입인 듯 했다. 그래서 틈만 날 때 마다 칭찬을 해줬는데 닻별이는 손사래를 치면서 사실은 어릴 적에 1 더하기 1도 잘 못 풀어서 부모님께 많이 혼나 그때서 부터 열심히 공부한 거라고 얘기해줬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비웃을 뻔 했다.(물론 나는 그런 것쯤은 이미 거뜬히 다 하고도 남았지만.)학교를 마치고 하교를 하던 도중 평소처럼 별 시덥지 않는 얘기를 하는데 문뜩 닻별이는 주제와 맞지 않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있잖아..만약, 반 얘들이 너를 싫어한다면 어떨 것 같아?"
영문없는 소리에 잠시 당황하였지만, 곧 그 말의 의미를 깨닭았다.
"..왜? 반에서 너 싫어하는 얘들 있어?"
정곡에 찔린 듯 닻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숨을 크게 쉬더니
"응..아무래도.. 계속 내 얘길 하고 있었거든."
"정말? 무슨 얘기를 했었는데?"
"엿 들은 거라 전부는 못 들었지만.. 저런 얘가 만점을 받는다더니, 사실은 뒤에서 몰래 답안지를 베끼고 문제를 푼 거 라고, 정말 뻔뻔하다하고..재수 없다고도 말하고.."
그 말에서 닻별이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흡"
아차,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안되지 안돼. 잠시 숨을 들이켜다 내쉬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와, 지네들이 뭔데 멋대로 판별하고 난리야? 허, 나 참; 이래서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남 헐뜯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해요. 안그래?"
최대한 눈과 눈썹을 찡그리고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 뺏긴 생선가게 주인장처럼 어이없는 톤으로 대꾸하였다.
"이건 절대 네 탓이 아냐. 알겠지? 이것들이 아주 그냥 뚫인 입이라고..주둥아리들을 콱!"
내가 때리는 시늉을 하자 그제서야 닻별이는 진정된 듯 큰소리로 웃어됬다.
"하하, 고마워. 너 덕분에 괜찮아 진 것 같아. 역시 너 밖에 없어. 넌 정말 나한테 있어 생명의 은인이야!"
"뭘, 이런 걸로 가지고..친구끼리 당연한 거잖아?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이 온니한테 와! 다 혼내줄게! 알긋나?"
"응! 언니~"
그렇게 서로한테 내일보자는 말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정말인지,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
"ㅅ..."
"싫어!!"
순간적으로 차가운 소녀의 손을 뿌리쳤다.
"도대체 뭐야? 방금 건 뭐냐고! 어떻게 한거야? 너 마녀야? 아아 - 마녀 맞지? 이 마녀자식! 어..어서 불타 죽어버려!"
패닉에 빠져버린 나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목이 쉴 정도로 고함을 질렸다.
"마녀? 맞아. 난 마녀야. 그리고 넌 선량한 아이를 마녀로 몰아세운 괴물같은 녀석이고."
"뭐?!"
그 말에 그만 욱한 나머지 소녀의 왼쪽 뺨을 세게 때렸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시끄러워! 그러니까 죽을거야! 죽을 거라고!! 이제 전부 필요없어!"
이내 나의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마구 긁어내기 시작했다. 아파. 아프다고. 그런대도 괴로워, 괴로워 죽을 것만 같아. 분명 너무 아픈데 - 왜,왜, 속이 더 아파서 미칠 것만 같아..제발..
"계속 이럴거야?"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차가운 손이 또 다시 나의 두손을 붙잡았다. 손 끝에는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화를 내야 해? 변명을 해야 해? 도망쳐버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한테 갈 곳은..아무리 미친듯이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빨리 -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또 혼나고 말거야..이제 그런 건,
"혼 안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소녀는 대답했다.
"난 네 부모님처럼 혼내지도, 네 선생님처럼 협박하지도, 배신자라고도 하지 않을게. 그러니 안심하고 말해줘."
"정..말?"
처음이다.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사람이..
"처음이 아니잖아?"
"..우욱..."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사람이..나를..나를..끝까지 걱정해준..
"으앙 -!!"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안해요,미안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닻별아..흐윽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한없이 눈물을 흐르는 나와 그 앞에 서 있는 소녀는 한없이 울어대는 내 앞에서 미소를 지을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