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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면진(免震)
작가 : 디비
작품등록일 : 2018.11.2

이해하지 마! 우린 그저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 뿐이야. 누구 하나 몰라도 돼. 아니 몰라야 해.
우리 사훈(社訓)이 면진(免震)이야! 그러나 정세현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업물][경제물][경영물][드라마][성장물]


소설을 처음 써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지명,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축! 합격!
작성일 : 18-12-02 04:15     조회 : 406     추천 : 0     분량 : 8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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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돈됐구만’의 아르바이트생이 인사를 했다. 정세현이 일을 그만둔 후 새로 뽑힌 친구였다. 초저녁이라 그런지 손님은 두 테이블이 전부였다.

 “삼촌, 아직 안 나왔는데.”

 TV를 보고 있던 주방 아줌마가 안쓰럽다는 듯이 정세현을 쳐다봤다.

 “오늘도 하루 종일 앉아 있다 갈 거야?”

 정세현도 아무 말 없이 TV가 놓여있는 바로 아래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이 6번짼가? 맞지?”

 “네.”

 “아휴, 삼촌도 참. 그냥 일한 거 빨리빨리 줘 버리지. 왜 그렇게 뭉그적거리나 몰라.”

 주방 아줌마는 정세현과 있을 때만 여포였다. 정작 ‘돈됐구만’사장과 있을 때는 말 한마디도 못 거들었다. ‘돈됐구만’사장은 정세현이 돈을 받으러 올 때마다 돈이 없다며 다음에 준다며 돌려보내려고 애썼다. 근로계약서 작성과 노동청에 임금체납 신고는 1998년 그 당시에는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였고 오히려 을이 갑을 위하는 시대였다. 정세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돈됐구만’사장이 약속한 날에 나와 돈을 받아 가는 것이었다. 6번의 방문 때마다 매번 중간에 사장이 들어왔으나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나가 버려 영업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때마다 정세현은 영업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돈은 쉽게 자리를 뜰 수 없는 돈이었다.

 6번째 약속을 한 날은 어제였다. 정세현은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정세현에게 자기 몫인 병 콜라를 컵에 따라 대접했다. 무언의 응원이었다. 기대에 저버리지 않게 항상 식당에서 취급하는 콜라는 펩시였다. 아르바이트생도 어느 정도 눈치는 있었다. 이 싸움에서 정세현이 이겨야 자기의 승리도 담보할 수 있었다. 정세현의 상황을 보고, 제때 아르바이트비가 지급이 안 된다고 판단해 여기서 그만두면 여태껏 일한 대가를 못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본보기가 바로 앞에 있었다. 정세현이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 다시 시작됐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돈됐구만’사장이었다. 정세현을 보자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활짝 웃으며 반기는 눈치였다.

 “어? 세현아. 오래 기다렸어? 어제는 왜 안 왔어?”

 “네?”

 정세현, 주방 아줌마, 아르바이트생 모두 미친놈 쳐다보듯 했다.

 “약속한 날 어제 아니었어? 얼마나 기다렸다고? 난 무슨 일이 있나 했네. 걱정했다 야.”

 정세현은 상황을 파악하느라 멍해 있었고 주방 아줌마와 아르바이트생은 사이코패스를 보듯 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모, 오늘 우리 문 조금 일찍 닫죠. 세현이 환송 겸 회식하게.”

 회식을 하면서 미친 사이코패스의 정체가 드러났다.

 “자 많이 먹어. 이모 이거 투플? 맞죠?”

 주방 아줌마는 말없이 웃었다. ‘돈됐구만’에서 취급하는 돼지의 등급은 1등급 투 플러스가 아니었다. 영세 업소였다.

 “다들 잔 채우고. 자 건배 한 번.”

 맥주잔을 들었다.

 “정세현을 위하여.”

 “위하여.”

 뭔지는 몰라도 일단 다들 정세현을 위했다.

 “자 일단 박수.”

 손뼉은 쳤지만, 아직 다들 ‘돈됐구만’사장이 왜 이러는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세현아, 한국대 입학 축하한다.”

 ‘돈됐구만’사장이 대견하다는 듯 정세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국대? 공부 1등만 간다는 한국대?”

 주방 아줌마는 세현의 빈 맥주잔을 채워 주며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한국대였어요? 어쩐지.”

 아르바이트생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쩐지 틀리더라고. 다른 애들에 비해 끈기도 있고 일도 잘하고.”

 주방 아줌마는 정세현과 러브 샷을 하려고 팔을 감으려다 정세현이 눈치가 없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자 가볍게 잔만 부딪쳤다.

 “이모, 그렇죠? 나도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쏙 들더라고. 더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

 ‘돈됐구만’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상황에서 아르바이트생만 생각이 많아졌다. 한국대라는 이유만으로 사장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한국대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정세현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정세현 부모님 생각은 달랐다. 합격자 명단을 직접 보고 싶어 해 대자보가 붙은 한국대 대운동장으로 직접 가기를 원했다. 저녁에는 합격 축하 외식을 했다. ‘돈됐구만’사장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였다. 정세현은 ‘돈됐구만’사장이 알 정도면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전화번호부 안의 모든 이들에게 전화를 돌렸겠다고 짐작했다. 물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야기 도중 은근슬쩍 정세현의 한국대 합격 소식을 흘렸을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고급 스킬이었다.

 정세현의 환송회는 맛없는 1등급 투플로 끝났다. ‘돈됐구만’사장이 만원뭉치를 들고 하나하나 셌다.

 “자 그동안 고생 많았고. 내 오늘 특별히 차비도 넣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정세현은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나중에 잘 되면 오늘 잊지 마.”

 ‘돈됐구만’사장은 얄밉게 웃고 있었다.

 정세현이 ‘돈됐구만’사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농담이야. 농담. 너무 진지한 거 아냐?”

 정세현은 지갑을 꺼내 돈을 집어넣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넣는 투명 아크릴 포켓에 어제 한국대 합격자 대자보가 붙은 대운동장에서 부모와 같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코팅된 채 넣어져 있었다.

 “즉석이네. 어제 찍은 사진이야?”

 “네. 카메라를 안 가져가서요. 마침 사진사 아저씨들이 완장 차고 돌아다니더라고요.”

 “좀 보자.”

 정세현은 어차피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사진을 꺼내 ‘돈됐구만’사장에게 건넸다.

 “뒤에 사람들 왜 이리 많아? 다들 보러 간 거야? 전화로 확인 못 해?”

 “전화로 해도 되는데 한꺼번에 몰려서 그런지 연결도 거의 안 되고 부모님이 평생에 한 번이라면서 꼭 직접 가셔서 봐야 한다고 하셔서.”

 “아버지?”

 “네.”

 “근데 어디 아프셔? 너무 마르셨네. 표정도 그렇고. 기쁜 날 아냐?”

 정세현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매일 같이 살 비비며 사는 식구들은 가족의 신체 변화를 체감하기가 어려웠다. 정세현은 ‘돈됐구만’사장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돈됐구만’사장에게 다시 사진을 받아 들고 지갑에 넣었다. 코팅된 즉석 사진 안의 여러 많은 인파 중에 문일섭의 가족도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만세!”

 문창주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누가 보면 조국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한국대 대운동장에 모인 독립투사 중 하나로 착각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문일섭 만세!”

 문창주는 기쁨에 겨워 손을 어깨 위로 들어 위아래로 흔들었다. 문일섭의 어머니인 정세희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문일섭의 형인 문규섭은 고개를 숙이고, 겨울이라 딱딱하게 굳은 운동장을 애꿎게 발로 찼다.

 “자기야, 우리도 사진 한 장 찍자.”

 정세희가 만세삼창을 막으려는 듯 문창주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문창주가 어깨에 걸쳐 멘 자동필름카메라를 만졌다.

 “아니. 저기.”

 정세희가 가리킨 쪽을 보니 큰 깃발이 여러 개가 세워져 있었다. 전문 사진사 여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벌써 대기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자리가 좋았다. 멀리 관악산과 합격 대자보가 절묘하게 매치가 되는 장소였다. 반대편은 한국대의 상징인 정문이 배경이었다. 명당이었다.

 “이걸로 찍으면 되지 뭔 돈을 들여?”

 “그래도 자기야. 남들 다 찍는데 안 찍을 거야? 저거 봐. 카메라 빵도 틀려. 더 크잖아.”

 문창주는 마뜩잖았지만, 문일섭의 표정을 보고 마지못해 줄을 섰다.

 문일섭 가족의 차례가 되었다.

 “자 일단 총 두 번 찍습니다. 한 장은 학생 가슴에 이름 붙이고. 다 찍고 저기 가서 이름 쓰시고 옆에 주소 쓰세요. 그럼 나중에 현상해서 보내 드려요. 액자 하실 거죠?”

 사진사가 가리키는 쪽에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사진사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자가 앉아 접수하고 있었다. 그 밑에 종이상자를 오려 붙인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 위에 쓰인 가격표는 잘 안 보이게 조그만 글씨였다. 사진을 찍고 이동하면 꼼짝없이 당하는 가격이었다. 가격에 불만이 있어도 사진을 찍은 후 거절하거나 항의할 부모는 없다고 보면 됐다. 생애 최고로 기쁜 날이기도 했고 웬만하면 모든 것을 용인하고 넘어가는 날이기도 했다. 아주 노련한 상술이었다. 다행히 문일섭 가족은 아직 찍기 전이었다.

 “아니 뭐가 이리 비싸? 완전 도둑놈 심보네. 이거?”

 사진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기야, 왜 그래. 그냥 찍어.”

 정세희가 낮게 읊조리며 문창주의 소매를 잡아 내렸다.

 “아니, 놔 봐.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냐? 그냥 즉석이나 한 장 찍어.”

 “즉석 한 장 찍을 거예요?”

 이미 사진사는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돈이 안 되는 물건은 빨리 치우는 편이 낫다는 듯 사진사는 재빨리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이거 한 1분간 흔들어요. 자 다음 분.”

 문창주는 즉석 사진을 받아들여 한 손으로 흔들면서 메고 있던 자동 필름 카메라를 사진사에게 넘겼다.

 “흔들 동안 그걸로 한 장 찍어줘요. 1초도 안 걸리니까.”

 “아니 당신 뭐야? 영업 방해하는 거야 뭐야? 어? 이거 때려 부수기 전에 빨리 안 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이었다.

 “부숴봐. 못 부수기만 해 봐. 그럼 네 대갈통도 같이 깨지는 거야. 니 눈깔은 앞으로 영영 카메라 구멍 못 보는 건 덤이고. 알았어?”

 문창주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흔들던 즉석 사진만 연신 흔들었다. 정세희와 문규섭, 문일섭은 어쩔 줄 몰라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과 어느새 소문을 듣고 왔는지 주위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불구경, 싸움 구경에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아 이 새끼. 너 뭐야? 죽고 싶어?”

 “아이 시발. 진짜. 욕할 시간에 찍었으면 우리 아들 졸업사진까지 찍었겠다. 안 그래?”

 문창주의 눈빛을 본 사진사는 기가 조금 죽은 듯했다. 주위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오늘은 대목이었다. 이런 대목을 놓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찍어 주면 다음 사람도 요구할 게 뻔했다. 이미 사진사도 독이 바짝 올라 있어 같은 요구가 관철되려면 문창주보다 더 깡이 쌔야 했다. 문창주를 욕하면 욕했지 사진사를 위로할 게 뻔했다. 사진사로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에이 시발, 오늘 일진에 왜 이래. 빨리 서.”

 문창주는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 후 등허리 뒤로 즉석 사진을 계속 흔들었다.

 사진사는 마지못해 문창주의 자동필름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의 초점은 정세희의 다리에 정확히 맺혔다. 정세희의 각선미가 이뻤다. 문창주는 눈치가 빨랐다. 카메라를 받아 들자마자 뒤에 줄을 서 있던 이름 모를 합격생에게 넘겼다.

 “학생, 학생이 다시 한 번 찍어줘.”

 같이 있던 이름 모를 합격생의 부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고 학생은 머뭇거렸다.

 문창주가 자동필름카메라를 다시 돌려받아 직접 찍으려 자세를 잡았다. 문창주는 사진에 같이 안 나오는 것이 섭섭했지만 문일섭이 우선이었다. 관악산을 배경으로 한 장 찍고 정문을 배경으로 찍으려던 찰나였다.

 “아니 시발.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너 뭐 하는 새끼야? 응? 남의 영업장에서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내가 그리 우습게 보이냐?”

 문창주는 무시하고 마저 찍었다. 어느새 주위에 사진사들이 모여들었다. 각자 개인적으로 영업을 하더라도 다들 형 동생하는 사이 같았다. 이런 경우는 뭉치는 것이 맞았다. 흡사 꼬마 카르텔 조직 같았다.

 “야!”

 문창주가 사진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문일섭 가족의 즉석 사진을 찍어 준 사진사가 어이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너. 명함 한 장 내놔. 만약에 아까 찍은 사진 현상해서 이상하면 넌 정말 대가리 쪼개지는 거니까. 알아들어?”

 동시에 사진사 카르텔에서 욕설이 날아들었다. 문창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카르텔 조직원 중 하나가 툭 튀어나온 배를 문창주에게 들이밀었다.

 “야이 시벌놈아. 너 뒈지고 싶냐? 어?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문창주에게 때릴 듯 손을 올리며 배로 계속 밀어댔다. 문창주는 웃긴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알어. 찍사 아니냐? 아냐?”

 욕설하면서 문창주에게 다가온 사진사가 갑자기 윗옷을 벗어부쳤다. 툭 튀어나온 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툭 튀어나온 배가 아닌 양쪽 가슴에 단색으로 색이 살짝 빠진 일심(一心)과 큐피드의 화살이 새겨진 문신이었다.

 “너 이리 와봐. 시벌놈아. 뭐 찍사?”

 “영업 방해하지 말고 인제 그만 가쇼.”

 다른 사진사가 일심 사진사를 말리며 문창주에게 손짓했다.

 “얼른 옷 입어. 흉하다. 신성한 대한민국 넘버 원 학교에서 뭐 하는 짓이야. 나이 처먹고 감기 걸리면 약도 없어. 임마.”

 “뭐 이 씹새끼 봐라. 옛날 같았으면 넌 벌써 뒈졌어? 알어?”

 주위에서 말리면 더더욱 길길이 날뛰기 마련이었다.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길거리 영업자들이나 노점상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한 번 밀리면 벼랑 끝까지 밀린다는 것을. 악에 받쳐 살고 싶어 사는 것이 아니었다.

 문창주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있던 정세희와 문규섭, 문일섭 형제 쪽으로 발길을 돌리던 참이었다.

 일심(一心) 사진사가 주위의 물건들을 다 때려 부쉈다. 일종의 기선제압이었다. 가위를 집어 들고 문창주 쪽으로 달려들려 했다. 주위 사진사들이 다 말렸다. 그 광경을 본 문창주가 담배를 입에 물고 존경스럽다는 듯 박수를 세 번 쳤다.

 “그래. 이 새끼들아. 밥 빌어먹고 살려면 일심이처럼 빠이팅이 있어야 하는 거야. 오 좋아. 일심이 삶에는 스토리가 있다. 어. 아주.”

 사고가 나려면 자존심을 긁혀야 했다. 문창주의 입에서 ‘찔러봐. 이 개새끼야.’ 라든가 ‘하지도 못할 거면 가위를 들지를 말든가’ 이런 멘트가 나왔어야 했다.

 사진사들은 맥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오늘은 아주 점잖게 말하고 가는 거야. 한국대 학부형으로서 상스러운 모습 보이는 거 아니거든. 체통을 지켜야지.”

 문창주는 섀도복싱을 해 보이며 웃어 보였다.

 신고받고 출동했는지 주위에서 현장 질서 유지를 담당하고 있었는지 모를 경찰관 두 명이 다가왔다. 경찰관의 출현은 상황을 강제로 종료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더 소란은 없었다. 쌍방이 더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돈 즉 영업이 우선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파출소로 집합하는 것은 온당치 못했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진즉에 알 나이들이었다.

 

 문일섭의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저녁에는 외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예약해 둔 상태였다. 고급 한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누구 하나 말을 하지 않았다. 무거운 공기의 흐름을 바꾼 것은 정세희였다.

 “자기, 오늘 정말 그래야 했어?”

 “무슨 소리야?”

 “사진 안 나왔으면 그 사람 만나려고 했냐고?”

 “또 쓸데없는 소리. 만나긴 왜 만나? 내가 그리 할 일이 없냐? 그냥 엄포용이지. 달고 있는 건 장식이 아니잖아. 넌 생각이라는 걸 좀 해라.”

 문창주는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기 또 이럴 거면 입학식에 오지 마. 나 아주 창피해 죽겠어. 이제 일섭이 한국대 학생이라고.”

 문창주는 문일섭을 바라봤다.

 “아들. 이 아빠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거 알지? 오늘 뭐 잘못된 거 있었어?”

 문일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식당 앞마당에 주차 후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문창주가 생각났다는 듯 자동차 뒤 트렁크를 열었다.

 “깜박할 뻔했네. 입학선물. 이건 일섭이. 이건 규섭이 꺼. 맞나 모르겠다.”

 문창주는 청바지 두 벌을 꺼냈다.

 “어 이거 긱스네.”

 오랜만에 입을 뗀 것은 문일섭의 형 문규섭이었다.

 “어떻게 알아?”

 “이거 엄마가 백화점에서 사 줘서 세 벌이나 있는데.”

 문창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세희도 마찬가지였다. 문규섭에게 바라는 점은 단지 눈치가 반 박자만이라도 빨랐으면 좋았겠다는 점이었다.

 “너 정말 정신 나갔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넋갱이 빠진 부모를 여기서 찾을 줄이야.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아니지 이미 알겠네.”

 문창주는 정세희를 죽일 듯 노려봤다. 한숨을 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이쯤 하자.”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창주 뒤를 따르던 정세희가 문규섭의 허리를 꼬집었다. 문규섭은 또 눈치 없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고기는 소문대로 맛이 있었다. 소 1등급 투 플러스가 확실했다. 혀에 닿자마자 녹는 느낌이었다. 음료도 코카콜라였다. 기분을 깬 것은 문창주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모토로라 무선호출기였다. 석정선, 석 이사에게서 온 호출이었다. 급했는지 ‘119 8282’가 찍혀 있었다. 연달아 ‘112 1818’도 찍혀 호출되었다. 평소 찍지 않던 아니 찍으면 안 되는 1818도 찍힌 거로 봐서 긴급 상황이 틀림없었다.

 문창주는 카운터로 향했다. 양해를 구한 후 녹음된 음성메시지를 들었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 음성 들으시는 데로 지금 연락받으실 수 있는 전화번호 찍어 주시거나 음성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긴급입니다.’

 수화기 너머 석 이사의 목소리는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떨림이 있었다. 문창주는 석정선의 무선호출기 번호 012…….를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충청 인베스트먼트 이사 석정선입니다. 올 한 해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정선의 무선호출기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호출은 1번, 음성 녹음은 2번을 눌러주십시오.’

 문창주는 수화기를 붙잡고 숫자 누르는 것을 잊어버린 듯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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