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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을 조용히 걷고 있던 사내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살짝 걱정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금화는 조금 과했는지도 모르겠군.”
방금 전 우발적으로 아이들에게 금화를 준 것이 조금 과했던 일이 아닌지 지금에서야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의 간섭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끝까지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무작정 아이들에게 간섭하는 것은 도움이 아닌, 상처를 더욱 깊게 입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 옷이 있으면 당분간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름 모를 아이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지 않기로 한 그가 지금의 상황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제 보름 정도 남았나......, 슬슬 움직여야겠군.’
더 이상 이 도시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진 지금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사내는 클라크가 운영하고 있는 상점으로 향했다.
딸랑ㅡ
여전히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지만 나는 잠시 그 방울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클라크가 방울 소리를 들었는지 가게 안에서 나오면서 방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어서 오십쇼! 이곳은...... 또 너냐?”
물론 끝까지 웃지는 않았지만.
“역시 반응이 너무하군.”
“손님도 손님이어야지. 겨우 포션 하나 가져 온 것 가지고 이때까지 있었던 일을 없는 셈 하려면 쓰나. 그래서 무슨 일이냐? 이번에는 뭐라도 좀 사게?”
“어.”
자신의 말을 들은 클라크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뭐?”
“살게 좀 있다.”
“잠깐 잠깐 잠깐!! 네가 살게 있다고?”
이번에는 사내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내가 물건을 사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그 말이 끝나자 클라크가 갑자기 잔뜩 흥분하여 오래되어 보이는 탁자를 양 팔로 내리쳤다.
쾅ㅡ!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쩌적ㅡ
‘아... 부서졌다.’
클라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열기를 토해냈다.
“내가!! 수년 동안 그 꼴 보는데 질려서 직접 만든 옷을 그냥 싸게 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사내자식 어디 가서 힘 좀 써보라고 덤으로 귀한 걸 줘도 거절하고, 그딴 집 같지도 않은 곳 좀 고쳐준다니까 나중에 가면 다시 망가질 거라면서 거절한 네가!!”
클라크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테 물건을 산다고?”
“......”
이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갈라져버린 탁자를 만지작댔다.
“하아......”
옆에서 클라크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는 무언가 깊은 상처를 입은 것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로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데?”
*
“말린 고기 3포대랑 리트베리의 열매? 너 어디 여행가냐? 무슨 여기에 와서 찾는 게 안줏거리 밖에 없어?”
여행이라.......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말했다.
“비슷해.”
대답을 들은 클라크가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하아, 이런 걸 단골이라고 해야 돼? 보통 드워프들이 하는 가게에 오면 무기라든가, 갑옷이라던거....... 그런 걸 찾는 게 정상 아니냐? 아무리 내가 다루지 않는 물건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그렇지.”
“......”
내가 아무 말이 없자 클라크가 돌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너 돈은 있냐?”
나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전에......”
그걸 본 클라크가 활짝 웃으면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에서 주머니를 낚아챘다.
“지금 뭐 하는......”
그 순간 클라크가 무언가가 이상한지 주머니를 짤랑거렸다. 그러고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돈 좀 썼냐? 금화 하나가 비는 것 같은데?”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드워프 같지 않은 드워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클라크는 그런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쯧! 이러면 내가 너무 손해 보는데...... 뭐, 어쩔 수 없나. 잠깐 거기 있어봐. 그리고 너, 아공간 주머니 있지?”
“뭐?”
그 말과 함께 클라크가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가게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저 곳에 공간이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저 문이 열리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약간의 호기심을 가졌고, 잠시 뒤 클라크가 쾅ㅡ 하고 문을 발로 차면서 나오는 것을 보고서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달그락ㅡ
클라크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장검과 함께 갑옷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쿵ㅡ 쩌적ㅡ!
클라크가 방금 자신이 내리 친 탁자위에 검과 갑옷을 놓자 탁자가 더욱 벌어지면서 기이한 소리를 내었지만 클라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간만에 만지니까 좀 무겁네. 이건 먼저 가져가라. 음식은 내가 밖에 있는 창고에서 나중에 네놈 집으로 가져다주마.”
나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클라크를 쳐다보다가 이내 당장이라고 부서질 것 같은 탁자 위에 놓인 병장기들을 보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자, 잠만. 이걸 가져가라고?”
“뭐? 불만이냐? 다른 걸로 바꿔줘?”
“아니, 이걸 왜......”
내가 당황한 이유가 갑자기 말도 하지 않고, 클라크가 손수 병장기를 챙겨준 것에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이거... 네 작품이지? 그것도 평범한 철 같은 걸로 만든 게 아닌.”
이것이 눈앞에 있는 클라크가 직접 두드려 만든 물건이었다는 점이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드워프들의 기술은 다른 종족들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평생을 단 한 가지에 바친 뛰어난 장인들이 수두룩하고, 다른 이들은 차마 모방조차 할 수도 없을 금속들과 세공을 오히려 재미있겠다는 듯 손쉽게 두드릴 수 있는 자들이 드워프라는 종족이었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장인을 그만두었지만 내 눈앞에 있는 클라크는 한 평생을 화로에 자신을 불태웠던 엄연한 드워프 장인이었다.
쉽게 말해 그가 만든 병장기들의 가치는 겨우 금화 몇 개가지고 어떻게 해볼 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웬만한 성보다 가치가 높은 것이 드워프 장인들의 장비였으니까.
하물며 이건 일반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무언가 특이한 광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당연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역시....... 너 원래 검썼지? 그것도 꽤나 경지가 높았을 테고.”
“뭐?”
클라크가 진중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검을 익힌 자들의 몸은 평범한 이들과는 그 구조가 조금 다르지. 하물며 네놈의 몸의 구조는 확실히 일반적인 검사들의 몸과는 그 격이 다르다. 거기다가 넌 이것들의 가치도 어렴풋이 눈치 챈 것 같고. 솔직히 이걸 정확하게 알아 볼 수 있는 놈들은 얼마 없거든?”
툭ㅡ
“지금 뭐 하는......!”
클라크가 두 손으로 자신이 만든 검과 갑옷을 던지자 나는 재빨리 그것들을 붙잡았다.
‘......가볍다.’
비록 일반적인 금속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 크기의 물건이 가볍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 검은.......
“나쁘지 않지?”
클라크가 입 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네가 들고 있는 아이들은 내가 마지막으로 만든 아이들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 역작이기도 하지. 수십 년 동안 창고 안에서 꺼내지 못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이 기회에 이렇게 꺼내게 되니까 기분이 좋네.”
“이걸 왜......”
“이놈은 왜 준다고 하면 맨날 불평을 하고 있어? 그냥 고맙다고 받으면 좀 좋아?”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클라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너랑 알고 지낸지가 벌서 십년이 다 돼 간다. 그 동안 술도 몇 번 같이 마셨고, 밥도 같이 먹었었지. 안 그러냐?”
“......그랬었지.”
“그 정도면 내 아이들을 맞길 수 있지. 딱 봐도 네가 약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ㅡ
역시 좋은 검이었다.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면서도 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절대 잡스럽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사용했었던 모든 검들 중에서도 두 손가락 안에 드는 명검일 것이다.
“고맙다......”
그때 내 표정을 본 클라크가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 그래도 오해는 마라? 그 아이들을 너한테 완전히 넘기는 건 아니니까. 말 그대로 잠시 빌려주는 거다? 그러니까 나중에 꼭 다시 돌려줘야 된다. 야! 대답해!!”
“알았다. 가능하면 다시 돌려주러 오지.”
“으잉... 맘 변하기 전에 빨리 나가!! 그거 다시 가져간다!?”
클라크가 내 손에 들려있는 검을 도로 가져가려는 듯한 추임새를 보이자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면서 검을 납도 했다.
그러고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보지....... 고맙다. 이건 잘 쓰겠다.”
“누가 만든 작품인데 당연히 잘 써야지!!”
클라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사내는 빠르게 발을 돌려 골목으로 나갔다.
*
딸랑ㅡ
“하아......”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한 클라크가 잔뜩 힘이 들어갔던 몸에 힘을 풀고 한숨을 푹 쉬며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탁자위로 몸을 축 늘어트렸다.
“웬일로 물건을 산다고 하더라니......”
클라크는 방금 전 라스가 자신의 가게에 들어왔을 때 했었던 눈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아마... 다시 보기는 힘들겠지.”
그 눈을 본 순간 클라크는 어째서인지 앞으로 라스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뭐라고 할까....... 라스가 자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었다.
“여행이라.......”
자신이 여행을 가냐고 물었을 때 라스는 분명 잠시 망설이더니 비슷하다고 답 했다. 아마도 평범한 곳을 가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분명 위험한 곳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놈이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도 그 아이들을 받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거기다가.......
‘그분도 그런 눈을 하셨었지......’
클라크의 얼굴에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의 얼굴에는 다시 한 번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도 아주 밝고, 호탕한 미소가.
클라크는 옆에 있던 찻장을 열어 그곳에 있는 술을 꺼내들어 벌컥벌컥 마시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가게 안이 다 울릴 정도로 외쳤다.
“벗이 위험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한 명의 드워프로서 빈손으로 보낼 수야 없지!! 잘 지내라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