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초전 전야 (1)
#1. 우주력 6세기. 타이탄의 우주선 장미13호의 선장실
-청문회는 맘에 들었나?
-잘 치렀습니다.
-잘 치렀다?
-신앙은 인간세의 고집이라고 풀었습니다. 해적들의 ‘우리는 신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온 생애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고, 그래서 당신의 신이 필요한 것이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습니다.
-그 완고한 영감들이 해적들의 입장을 이해하던가.
-그게, 노력했지만……
-알 듯싶네. 우주사의 발단과 진행에 해적이 필연이었음을 종교청문회 따위가 인정하려 들었겠나.
-설명을 했습니다. 정사와 야사를 망라한 역사 돌이키기로.
#2. 우주력 6세기. 어떤 역사학자의 우주해적에 관한 기록
우주 해적은 ‘타이탄의 유형수들’이 탈취하여 타고 떠났던 죄수 호송용 수송선 신천지호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세간의 정설이다. 허나 필자는 더욱 거슬러 지구계 인류가 지구별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의 이단적인 세력인 나그네족에게서 연원을 찾고 싶다.
어느 체제에도 속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을 만드는 것조차도 거부했던 지구력 21세기판 집시족인 나그네족은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지향한 까닭에 각국 정부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그들은 제3차 세계대전의 방관자들이 시작한 탓에 나그네족을 자처했는데, 세류의 흐름을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제멋대로 살아가는 모습에 호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가세하므로 반체제 색깔을 보이기 시작했고, 종전 후의 수습기에 희생양이 필요했던 각국 정부는 당연한 듯이 적대 세력으로 분류하고 소탕전을 시작했다.
각국 정부의 경찰력에 쫓긴 나그네족이 눈길을 돌린 곳이 우주였다. 아직 태양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수준이었지만 인류는 21세기초에 이미 지구를 탈출하고 있었다. 나그네족은 그 무렵의 우주 개척 열기에 편승하여 화성과 타이탄의 식민지에 첫발을 내딛은 주민이 되었다.
화성에 이르러서는 한때 그들만의 정부를 세우기도 하였다. 곧 지구 측의 토벌군에 의해 궤멸의 위기를 맛보아야 했지만 그들은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탈출에 성공했다.
일단의 나그네족이 지구군 추적대의 총구를 피해 소행성계를 떠돌던 중, 때 마침 타이탄에서 중간물질 인드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드라가 보석과 동력원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질임이 밝혀지면서 타이탄은 개발의 태풍이 불고 있었고, 정착지를 찾던 나그네족은 신천지의 개척자로서 참여할 수 있었다.
바라던 황금의 땅을 찾은 듯했던 타이탄은 인드라가 새로운 동력원으로서의 가치가 큰 만큼 해독 또한 크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무덤으로 변해 갔다. 권력이라는 우산을 갖지 못했던 나그네족은 인드라의 치명적인 독성 때문에 노동력을 구하지 못했던 각국 정부의 좋은 사냥감이 되었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첫 번째 순위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한 바탕의 소동 끝에 그들은 유형의 땅 타이탄을 떠나 우주로 날아올랐다. 스스로 ‘타이탄의 유형수들’을 자처한 그들은 이제 더는 머물 곳이 없어진 태양계를 떠나 은하의 별무리 속으로 멀어졌다. 지구력 2105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지구 정부의 위정자들이 그들을 추격할 원정대를 편성한 것은 2년 8개월 후인 2108년 1월 1일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원정대는 태양계 밖으로 나온 즉시 정체 모를 선단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다고 하였다. 가까스로 타이탄의 전진기지로 돌아온 병사들은 공격해 온 세력을 ‘해골 깃발이 선명한 해적’이었다고 전했다.
지구 정부가 ‘외계의 정체 모를 해적 선단’의 공격에 대비한 강력한 선단을 구성하여 다시 태양계 밖으로 나간 시기는 그로부터 다섯 해 후였다.
#3. 우주력 1세기. 앞 이야기의 연속
외계로 나온 제2차 지구 원정대는 순조로운 항해 끝에 목표로 했던 프록시마 켄타우리에 닿을 수 있었다. 프록시마는 삼중 연성계인 켄타우리 성계에 속한 별로 지구가 속한 항성계의 태양과 쌍둥이라고 할 만큼 조건이 흡사했고, 최근에 발견된 암흑 반성의 세 번째 위성에는 물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목표가 된 이유였다.
훗날 ‘제2의 지구’로 불린 프록시마B-1-3에 닿은 원정대는 그곳에서 뜻밖에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고 놀랐다. 타이탄의 전진 기지에서 유도하는 대로 가장 상륙하기 쉬운 평탄 지역에 내렸을 때, 그들을 맞은 것은 지구의 평야 지대와 같은 경작지였다.
경작지에서는 지구의 것과 유전 인자가 같은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제법 알이 충실한 옥수수를 보며 주인을 찾던 원정대의 앞에 나타난 것은 원시의 복장을 한 일단의 지구계 인류였다.
“제2차 원정대가 찾아 낸 원시인 복장의 지구계 인류는 제1차 원정대의 생존자들이었다. 그들은 난파 직전의 우주선을 몰아 프록시마B-1-3 위성에 상륙한 후 옥수수를 재배하여 생계를 이어가며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당시 지구 정부의 공식 발표문은 대강 그런 정도였다. 그들의 기적적인 생환 소식이 전해지자 지구 전체는 영웅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한 열기로 들끓었다. 그러나 지구인들은 그들을 볼 수 없었다. 구함을 받은 이들도 구함을 베푼 이들도 끝내 공식적인 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았고, 정부가 배포한 영상 자료만이 안방을 찾았을 뿐이었다. 정부는 그들이 새로운 임무를 찾아 제3차 원정대의 일원으로 우주로 나갔다고 발표했다.
#4. 우주력 1세기. 앞 이야기의 연속
원정대가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자 지구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했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단의 함정이 가장 최근에 ‘정체 모를 무장 선단’이 나타났던 로이텐726-8 성계로 출발했다. 로이텐726-8 성계는 연성계로 로이텐726-8B의 경우 항성의 질량의 1/10에 달하는 거대한 암흑성을 행성으로 거느리고 있음이 밝혀져 정부와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로이텐728-8B-1 행성의 중력권에 도착했을 때 원정대는 발신자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통신문을 받았다.
-돌아가라. 또 희생을 부르려는가.
-그대들은 누군가. 희생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그대들의 눈앞에 있는 행성은 죽음의 별이다. 속히 중력권을 벗어나라.
-블랙홀이라면 우리도 대책이 있다.
-어리석은 친구들일세. 저 정도의 행성이 왜 최근까지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는가. 저 행성은 물질계의 상식 밖에 있는 별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더욱 우리가 밝혀내야 한다. 충고는 고맙지만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원정대의 전파 추적 전문가들은 교신이 시작된 순간부터 통신문의 발신지를 추적하고 있었다. 원정대의 사령관은 이미 함대를 둘로 나누어 로이텐726-8B-1 행성에의 상륙과 통신문의 발신자의 추격을 동시에 수행할 것을 명령했다.
사령관은 추격 함대를 지휘하기로 했다. 남은 절반에 ‘암흑 행성’에의 상륙을 명령한 후 선수를 돌린 사령관은 추적 함대의 전면에 서서 전망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로이텐728-8B 성계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소행성이나 혜성 등의 작은 천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우주 풍경은 감상할 만한 아름다움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령관의 눈은 전망 스크린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사령관의 눈빛이 빛났다. 티끌만한 작은 점이 시야 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적선입니다. ‘정체 모를 무장집단’의 정체가 밝혀지겠군요.”
정보 참모의 보고였다. 어지간히도 골치를 썩이더니 기어이 잡히는군. 사령관은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도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0.5천문단위의 거리입니다. 속도는 초당 3만km, 곧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시간은?”
“30분 이내입니다.”
항해사의 보고를 받는 동안에도 적선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함대의 정보 분석 전문가들은 추적 장치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 물체라면 무엇이든지 정체를 밝혀 놓을 만큼 실력자들이었다.
“저건?”
사령관은 부지중에 신음을 흘렸다. 전망 스크린 가득 확대되어 나타난 적선의 모습이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던 탓이었다.
“범선(帆船)이로군요.”
정보 참모 역시 뜻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적선은 수백 개의 돛이 수십 개의 돛대에 연결되어 전후좌우 상하, 모든 방향에서 바람을 받고 있는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한 방 안겨 볼까요?”
항해사의 말이었다. 사령관은 지휘봉을 세우는 것으로 동의의 뜻을 보였다.
중성자탄이 발사되었다. 어지간한 소행성 하나쯤은 가루로 만들 만한 폭발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함정의 원래 속도에 중간물질 인드라를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얻어진 에너지를 장약으로 삼아 가속을 얻은 중성자탄은 광속에 육박하는 속도로 적선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폭발은 없었다. 중선자탄은 바다 속에 삼켜진 바늘마냥 조용히 적선의 돛폭 속으로 삼켜졌다.
“역중력(逆重力)입니다.”
정보참모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는 물리학을 전공한 전문가였다.
“뭔가?”
사령관의 반문에 정보참모는 설명을 덧붙였다.
“중력장의 인력 효과를 반대로 응용한 것입니다. 적당히 조절만 할 수 있으면 중력을 당기거나 밀 수 있으므로 자체 동력 없이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반물질을 상용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렇다면 역시 저들이?”
정보참모가 말꼬리를 흐리는 의미를 짐작한 사령관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지휘봉을 들어 명령을 내렸다.
“함대의 전력을 동원해서 저들을 추적한다! 암흑 행성 상륙 함대에게도 합세를 명령하도록!”
그 순간 항해사와 통신참모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보고를 올렸다.
“중성자탄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상륙 함대에서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통신이 들어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