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마일드
묘재
담화공
피카대장
에드찬
서경
사열
사열
담화공
사열
풍령인
임준후
건드리고고
박재영
     
 
작가연재 > 현대물
매버릭(maverick).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3.29

<원래 바둑에는 천지 방원(方圓)의 상징, 음양의 이치, 성신(星辰) 집산의 질서가 담겨있다. 또한 비와 구름의 변화, 산하(山河) 기복의 형세는 물론 세상사의 흥망, 일신의 성쇠 등 무릇 그 속에 비유되지 않는 것이 없다.
바둑은 또한 행함에 있어 인(仁)으로, 결정하는데 지(智)로, 거두는 데 예(禮)로써 한다.
이러하니 범백(凡百)의 다른 기예를 어찌 감히 바둑과 비교할 수 있으랴.
···현현기경(玄玄碁經) 중에서.>

 
8화.통화권이탈지역2.
작성일 : 16-03-31 16:40     조회 : 784     추천 : 0     분량 : 476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8화.

 통화권이탈지역2.

 

 

 십단전의 두 번째 대국.

 승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대국 중 점심시간조차 폐지할 정도였으니 중단된 대국을 이어서 둔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첫 번째 대국은 명백히 도민우가 승기를 잡은 판세였지만 결국 도민우의 패배로 결론지어진 상태.

 사실 도민우의 몸 상태가 진짜로 좋지 않다면 첫 번째 대국 바로 다음날 열리는 두 번째 시합에 나갈 수가 없다. 예선이라면 대국 당사자가 합의해 날짜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선 대국부터는 달랐다.

 한국기원의 내규에 의하면 공식대회에 참가하는 기사는 지정된 날짜와 장소에서 대국해야만 한다.

 도민우가 쓰러진 건 개인 사정이기 때문에 일정 조정은 불가능했고, 결승3국 중 첫 번째 대국을 놓친 도민우로서는 두 번째 대국에 나가지 않게 되면 자동적으로 기권패가 된다.

 

 대국 중이던 프로기사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일은 바둑계에 대단한 이슈였다. 그 때문에 십단전의 두 번째 대국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흑을 잡은 양승호 5단은 첫 번째와는 다른 형태의 바둑을 유도했다.

 포석을 모두 끝낸 뒤 서로 조금씩 상대의 집을 깎아내는 승부가 긴 바둑을 택한 것이다.

 바둑은 일종의 체력싸움이기도 하다. 체력이 좋아야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고 집중력도 강해진다.

 결국 양승호 5단은 도민우가 두 번째 대국에 나서기는 했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승부가 긴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승부를 걸면 슬그머니 피한다. 하지만 계속 피하다보면 흑을 쥐었으니 덤에 걸려 패하게 된다.

 양승호5단은 긴 시합을 위해 혼전을 피하며 실리에 집착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집 부족으로 패할 게 분명했다.

 도민우의 행보가 가볍고 날카롭다면 양승호5단의 행보는 묵지하고 느렸다.

 바둑에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느려도 너무 느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조차 그가 도민우의 체력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바둑이 중반에 들어가자 도민우의 진용이 뚫리고 말았다. 관전자들이 보기에는 승부를 서두르다가 연이어 패착을 둔 것 같았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진 우상귀의 싸움에서 양승호5단의 실착으로 형세가 반전된다.

 이후 양승호5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형세 파악이 불가능해지면서 어느덧 양쪽 모두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비하고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양승호5단의 기대와는 달리 도민우는 쓰러지지 않았다.

 바둑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치는 건 오히려 양승호5단이었다.

 결국 몇 번의 초읽기를 간신히 넘기던 그는 한순간 계시원이 열을 모두 세도록 돌을 놓지 못해 결국 시간패하게 된다.

 이로써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마지막 한판으로 십단전의 우승자가 갈리게 된 것이다.

 

  * * *

 

 바람이 차다.

 저 남쪽 어디선가 봄이 준비되고 있겠지만 아직은 살을 에는 찬바람이다.

 그 찬바람을 맞으며 도민우는 이제 막 강릉의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곧 이어질 십단전의 결승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다.

 ‘혹시 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옛집에 가기 위해 오긴 왔는데··· 과연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지 모르겠구나.’

 잠시 후, 터미널을 빠져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도민우의 눈에는 다소 불안해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외조부와 함께 살던 시골집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막상 강릉까지 오긴 했지만 도통 어떻게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외조부와 관계된 일은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인위적으로 닫혀 버린 느낌이 들 정도였다.

 ‘왕산면 노추산인 건 알고 있으니 일단 근처까지 가보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지.’

 도민우는 태평하게 마음먹고 다시 왕산면으로 가는 버스를 찾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다.

 기와집과 스레트 지붕으로 된 판자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고 곳곳에 밭과 논이 펼쳐져 있다.

 요즘은 어느 시골에 가도 도시화가 진행되어 나름대로 잘 개발이 되어 있지만 왕산면은 아직 예전의 시골풍경 그대로였다.

 일단 왕산면에 도착한 도민우는 마을 전체를 살펴본 뒤 마을을 감싸 안은 듯 우뚝 서있는 노추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왕산면에서 십여리 정도 뒤에 우뚝 서있는 노추산은 한 눈에 보기에도 악산이었다.

 ‘그러니까 저 산 중턱쯤이었던 것 같은데···’

 도민우는 갑자기 마음이 느긋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하던 곳이었지만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졌다.

 마을을 가로 질러 노추산 아래에 도착하자 도민우의 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막상 노추산에 도착하자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저절로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경운기 한 대 정도가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도민우의 기억에는 없던 길이었다.

 길은 거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는 계곡을 끼고 계속 이어져 있었다.

 오를수록 산은 깊어지고 일체의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길을 따라 올랐을까?

 뒤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경운기 한 대가 도민우를 따라잡았다.

 경운기가 가까워지자 도민우는 한 옆으로 비켜 선채 경운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대략 오십대 초반 가량 되어 보이는 중년인이 경운기를 몰고 도민우 옆을 지나치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서늘하고 깊은 눈이었다. 깡마른 얼굴이지만 옷으로 감춰진 몸매는 중년인답지 않게 단단해 보였다.

 덜컹!

 도민우의 뇌리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갈 때 경운기가 멈춰졌다.

 도민우가 경운기를 몰던 중년인이 낯이 익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너 민우 아니냐?”

 “아···! 아저씨세요?”

 도민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중년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마치 흙속에 묻혀 있던 감자를 캐듯 기억들이 줄줄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정말 반갑구나.”

 아저씨는 경운기에서 내려 도민우의 손을 잡았다.

 거친 손이지만 정이 느껴지는 따듯한 손이었다.

 

 노추산의 중턱,

 산 아래부터 거의 두 시간 정도를 올라야 하는 중턱에 한 채의 고택(古宅)이 서있었다. 본채 외에도 사랑채와 별채로 나뉘어져 있는 고택에는 넓은 마당과 작은 연못도 갖춰져 있어 깊은 산중에 지어진 집 치고는 규모가 컸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도민우는 감개가 무량했다. 집은 낡을 대로 낡아 어떻게 보면 을씨년스럽기도 했지만 도민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이었다.

 기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도민우는 이 집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집안을 둘러보다 보면 혹시 외조부에게 배운 것들이 조금이나마 기억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뿐이었다.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다고 할까.

 살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본채는 물론이고 외조부께서 기거하시던 별채역시 거의 폐가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본채를 둘러본 도민우는 별채 주위를 한가롭게 둘러보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방 한 칸씩 있었는데 오른쪽이 외조부께서 쓰던 방이었다.

 방안에는 외조부께서 쓰시던 옛날식 책상인 경상(經床)과 장문갑 같은 고가구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일 뿐 외조부의 자취는 남아있지 않았다.

 도민우는 먼지가 쌓여 있는 걸 무시한 채 방 가운데 벌렁 누워 천정을 보며 외조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할아버지는 좀 이상한 분이었지. 그때는 이상하다고만 알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기인이셨어.

 도민우의 외조부는 가끔씩 훌쩍 어디론가 떠나곤 했는데 몇 달 만에 홀연히 돌아와 산삼이라며 억지로 씹어 먹게 했다. 하지만 당시의 도민우는 그게 산삼이라고 믿지 않았다.

 가끔씩은 웅담이라며 이상한 핏덩어리 같은 것도 먹게 했는데 역시 도민우는 믿지 않았다. 산삼이나 웅담이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어린 도민우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도 앉아서 돌아가셨어. 난 나중에야 그게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외조부는 도민우에 대해 포기한 것 같았다. 더 이상 뭘 가르치려 닦달하지 않았다.

 

 “거기 있느냐?”

 아마 깜짝 잠이든 모양이다.

 “아, 예! 방에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네요. 그래도 예전에 살던 곳이라 편했나 봐요.”

 도민우가 문을 열자 중간에서 만나 경운기를 태워준 아저씨가 마루에 서있었다.

 예전부터 이름도 모르고 그냥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는 사랑채에서 살고 있었는데 산 아래 밭을 가꾸고 집안의 잡일을 도맡아하는 일종의 집사 같은 신분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처럼, 혹은 자상한 어머니처럼 따르던 사람이다. 외조부께서 안 계실 때는 그야말로 아저씨만이 유일한 가족이었다.

 문득 아저씨가 기다란 쇠꼬챙이 같은 물체 두 개를 내밀었다. 끝 부위가 이리저리 돌출된 형태였다.

 “어르신께서 네게 주라고 맡긴 것이다. 자물통을 여는 방법은 잊지 않았겠지?”

 도민우는 어리둥절해져 손에 쥔 기다란 물체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옛날식 열쇠 같은데? 내가 여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아저씨 말에 의하면 도민우는 그 열쇠로 어딘가에 있을 자물통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게다가 열쇠가 있는데 그 열쇠로 어떤 곳을 열어야 하는 지도 몰랐다.

 도민우는 새삼스럽게 외조부께서 기거하던 방을 둘러보았다.

 방문 맞은편 벽 위쪽에 벽장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벽장을 열자 하나의 나무궤짝이 있었는데 그 궤짝에 지금은 골동품상에서도 찾기 힘들 것 같은 옛날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3 22화.이 또한 지나가리라1. 2016 / 4 / 5 821 0 6753   
22 21화.바둑의 성지(聖地), 황장(皇莊)3. 2016 / 4 / 5 691 0 4488   
21 20화.바둑의 성지(聖地), 황장(皇莊)2. 2016 / 4 / 4 675 0 5167   
20 19화.바둑의 성지(聖地), 황장(皇莊)1. 2016 / 4 / 4 838 0 4483   
19 18화.청부를 맡다3. 2016 / 4 / 3 693 0 4173   
18 17화.청부를 맡다2. 2016 / 4 / 3 773 0 7853   
17 16화.독불2. 2016 / 4 / 2 764 0 6863   
16 15화.독불1. 2016 / 4 / 2 828 0 3850   
15 14화.청부를 맡다1. 2016 / 4 / 2 632 0 6506   
14 13화.고대(古代)의 바둑2. 2016 / 4 / 2 715 0 2867   
13 12화.고대(古代)의 바둑1. 2016 / 4 / 2 743 0 3546   
12 11화.권왕(拳王)의 후예2. 2016 / 4 / 2 756 0 4182   
11 10화.권왕의 후예1. 2016 / 4 / 1 659 0 5888   
10 9화.통화권이탈지역3. 2016 / 4 / 1 752 0 5290   
9 8화.통화권이탈지역2. 2016 / 3 / 31 785 0 4767   
8 7화.통화권이탈지역1. 2016 / 3 / 31 829 0 3175   
7 6화.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3. 2016 / 3 / 30 941 0 8886   
6 5화.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2. 2016 / 3 / 30 905 0 4556   
5 4화.균천무상권결(鈞天無上拳結) 1. 2016 / 3 / 29 758 0 4362   
4 3화. 무림으로3. 2016 / 3 / 29 641 0 4292   
3 2화. 무림으로2. 2016 / 3 / 29 602 0 3004   
2 1화. 무림으로. (1) 2016 / 3 / 29 721 0 4641   
1 서문 2016 / 3 / 29 1118 1 130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흑첨향
박재영
장왕곤
박재영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