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원들의 훈련 모습에서 자극을 받아, 새벽에 열을 발산하고 기절하듯 잠이 든 다휘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다휘는 부스럭거리며 이불 속에 다시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이내 오늘까지 보내줘야 하는 프로젝트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쯤 몸을 일으킨 다휘는 머리를 헝클이며 뻐근한 몸과 함께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몇 시지···.”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을 들었다.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겼고, 다휘에게는 몇몇에게서 채팅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은호 : 점심은 챙겨 먹어!」
「은호 : 나는 일욜까지 인도에 출장ㅠㅠ 일욜 저녁에 봐!!」
「주유연 씨 : 다휘 씨~」
「주유연 씨 : 메일로 회의록 보냈어!」
「주유연 씨 : 그리구 엑스트라 일인데.. 디온에 센이 만든 곡 검수 좀 부탁할게!」
「유달이(디온-5인조) : 너 시현쓰한테 곡 줬어?! 나도 줘! 나도 솔로 할래!」
다휘는 가장 먼저 회사 동료인 유연의 메시지에 알았다며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으로 유달의 메시지에는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모티콘) 사장님께 허락만 받아와~」
한참이나 떼쓸 유달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마지막으로 은호의 메시지를 보며 ‘은호는 의료, 연구인데도 출장을 다니는구나.’ 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는 메시지와 함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굉장히 뭉친 듯 딱딱한 몸 상태에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다.
밤샘 작업을 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허기진 소리가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
.
점심시간에 맞추어 준비한 다휘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으며 방에서 나갈 참이었다.
민환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그녀는 문을 열어젖혔다.
“어··? 민, 민환 씨?”
“메시지는 왜 안 봐?”
“어, 아니, 죄송해요. 씻고 나오느라 핸드폰을 안 보고 있었어요.”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건 민환이었다.
최근 더워지는 날씨에 자켓을 벗고, 하얀 반팔 와이셔츠에 검고 얇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다휘는 자신을 지나쳐서 앞장선 민환의 뒤를 급히 따라붙었다.
“몇 시에 잤는데?”
“음·· 아마 6시쯤이요··.”
민환의 물음에 다휘가 기억을 되짚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앞장서서 걷던 민환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다휘를 째려봤다.
“야! 네 건강은 네가 챙겨! 괜히 형님이랑 은호가 걱정하게 하지 말고!”
“네, 네?”
“무슨 일을 철야로 해! 대충 살란 말이야! 열심히 살지 마!”
그녀는 민환의 잔소리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일주일쯤 전 본부에서 사는 것으로 결정이 났을 때, 납치 사건에 대해서 했던 대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이라도 된 양,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서 다휘가 헤실 거리며 민환을 바라봤다.
“웃긴 뭘 웃어? 내, 내가 너 걱정해서 그러는 거 같냐? 그냥 형님이랑 은호가 하도 네 얘기만 하니까 그러는 거야!”
민환이 그녀의 웃는 표정에 고개를 돌려 다시 걸어나갔다.
다휘는 그런 민환의 모습에 휘원이 함께 떠올랐지만, 지난주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휘원이 자신에게 했던 만큼, 모두가 잘 해주고 있어서 빈자리가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암살부에서 백기준이랑 남호수가 온다. 그래서 간단하게 술 마실 거 같은데, 마실 줄은 아냐?” 민환이 퉁명스레 물었다.
그의 물음에 다휘는 10일 전에 암살부에 갔을 때 봤던 네 명 중, 두 사람을 떠올렸다.
진탁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만난 피가 철철 나던 전 모델.
그리고 키는 컸지만 굉장히 어려 보이던 남자.
그녀는 특히 기준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쯤은 괜찮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씩 웃었다.
“술은 조금 해요.”
“그래. 제발 취하지만 마라.”
이윽고 두 사람은 간부 식당의 문을 함께 열고 들어갔다.
식당 내에는 아침과는 달리 몇 자리가 비어있었다.
“다휘야. 어서 와. 잘 잤어?”
가장 상석의 연호가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물었다.
다휘는 연호와 도담의 대화를 들은 대가로 부끄러운 기분이 들긴 했지만, 아직 철판은 깔 수 있는 정도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식탁에는 연호와 민환, 그리고 선우와 은국만이 있었다.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많이 비어있는 자리에 의문을 갖는 듯하자, 연호가 살짝 웃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담이 형은 암살부에 출장 갔어. 진탁 형이랑 로이드, 우목이는 같이 중국으로 출장 갔고. 은호는·· 인도였나?”
“의료기기 박람회.”
“아아. 그랬죠. 2박 3일이라, 일요일엔 올 거야.”
연호가 잠시 헷갈려 하자, 은국이 덧붙였다. 연호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다휘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알아들었는지, 살짝 웃었다.
곧 다휘의 식사가 준비되었고, 탱글탱글한 오므라이스에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연호가 물로 입안을 헹구며 다휘를 바라봤다.
“아. 다휘야. 민환이에게 들었어? 오늘 암살부에서 기준이랑 호수가 오는 거.”
“아아·· 네. 들었어요. 그래서 저녁에 간단하게 술자리 있으실 거라고도···. 저도 같이 있나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연호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도 있어야지. 오늘 할 일은 많아? 아마 8시에 도착할 거 같은데.”
“그전까지 끝낼 수 있어요.”
“알았어. 오늘 민환이가 같이 있어줄 거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 그리고 선우는 이따가 어제 임무 보고서 내러 오고.”
“네.”
“그럼 나 먼저 일어날게. 다들 천천히 식사들 해.”
연호가 다휘에게 민환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어 선우를 향해 말했지만 그는 연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그가 식당을 나가자, 민환은 고개를 돌려 선우를 바라봤다.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 선우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나랑 약속했잖아.” 민환이 말했다.
선우는 여전히 자신의 식사만 보고 있었다. 그는 민환이 귀찮은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선우가 말했다. 그러자 민환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런데 라니. 적어도 보스한테 지킬 건 지키자고!”
“그건 내가 정해.”
민환의 말에도 선우는 굉장한 태도를 취하며 그를 여전히 보지 않고 있었다.
분위기가 조금 험악해진 것 같다고 느낀 다휘는 숟가락을 조심히 접시 위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요즘 또 왜 그러는데?”
“할 말 다 했으면 간다.”
“아니, 야! 도선우!”
이내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는 식탁을 지나치며 다휘와 시선이 잠깐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의 행동에 민환은 짜증난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그리고 물을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너! 밥 먹고 작업실로 가냐?”
“아, 네, 네!”
“이따가 갈 테니까, 딴 길로 새지 말고 가!”
“넵··.”
괜한 불똥을 맞은 기분이 든 다휘가 빠릿하게 대답했다. 민환은 씩씩거리며 뒤이어 식당을 나갔다.
차가워진 분위기 속에서 은국과 둘이 남게 된 식당, 다휘는 어색함에 물을 조금 마시며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덜그럭 거리지만 조용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한편, 내내 조용하게 있던 은국은 진즉에 식사가 끝난 것 같았다.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다휘를 지켜봤다.
가뜩이나 성질 나쁜 놈들만 주말에 남게 되어서 눈치가 많이 보일 텐데, 은호마저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은호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대신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조금 정신이 없을 주말이 시작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