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오르트 구름 Oort cloud (1)

　#1. 먼 훗날, 어느 시기의 어느 우주. 우주선교사 수선109의 회고

　 옛적 지구계 인류의 어떤 부류는 항성간 우주여행을 생사의 경계를 넘는 일과 한 가지로 풀었다고 한다. 우주의 무한함은 생과 사의 문제가 해결된 현재도 숙제이거니와 하물며 100년 남짓한 삶을 한 생애의 끝으로 보던 시절의 광년 단위 우주에의 도전이니 그 심사가 짐작할 만하다.

　 무한한 우주를 향해 첫 발자국을 내딛던 시절, 목숨을 걸고 경계를 건넌 이들은 은하의 강 저편에서 어떤 언덕을 찾았는가. 백여 차례의 재생 생명을 반복한 현재의 내가 그 시절의 기억을 돌이켜 감상에 젖어 있는데, 엄청난 세대를 격한 두 개체는 기억의 공유만으로 한 인격으로 존중받아도 좋은가.

　 문득 열어본 해적선 신천지호의 항해일지에서, 우주력 1세기로부터의 감상에 빠져 과거를 회상하던 9세기의 나를 발견했는데, 그때의 현재를 옛날로 인식하여 울렁증에 걸려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떠한 나인가.

　#2. 우주력 810년. 태양계 제3행성이 있던 공간. 이번 이야기의 서장

　 왕년에 떠나왔던 곳에 돌아온 느낌은 상실을 확인한 허무뿐이었다. 800년 전, 그들은 이곳을 떠나 외계 우주로 여행을 시작했었다.

　 “나는 내 지성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그 여인을 찾아서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로. 이 약속은 나 개인의 업, 여러분은 따를 의무가 없습니다.”

　 우주력 원년 10월, 타이탄을 탈출하여 외계우주를 향해 발진을 시작한 신천지호의 선상에서 선장 김진욱002는 동료 선원들에게 자신의 길을 찾기를 청했었다. 김진욱002는 인드라의 해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가진 두 번째 몸으로 전생테 번호 002가 이름에 붙어 있었다.

　 김진욱002는 자신을 선장으로 추대해준 동료들에게 우주의 무한함과 인간의 유한한 생명, 빛의 속도를 돌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우주선의 성능 등을 들어 외계우주행의 무모함을 깨우쳐주려 하였다. 현재의 상황은 오로지 자신이 쌓은 업의 결과임을 강조하여 고난을 함께 하기를 사양하고, 지구세계에 속한 우주에 남을 경우의 밝은 미래를 각인시켜 미련을 지워주려 하였다.

　 선원들은 선장 김진욱002의 그러한 설득의 말들을 귓등으로 흘리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운명에 엮어진 전체생물임을 깨닫고 있었다. 간디002가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화성생명법인의 ‘교수’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때 특유의 낙인을 남겼지. 장미를 좋아하는 마음. 여자들은 장미꽃을 심어 술을 빚고 남자들은 장미주를 마시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교수’는 그렇게 지구계 재생인류 모두에게 그리움을 심어 한 울안에 엮으려 했어.”

　 선원들은 모두 장미주를 좋아했다. 아울러 장미주를 빚는 타이탄의 여인들을 가슴 속에 감추었다. 때문에 대장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한 선장을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여행이 한 해나 두 해에 끝날 수 있는 유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런 까닭으로 더욱 동료들을 버릴 수 없었다.

　 반천 년을 넘기고 또 반천 년을 바라보게 될 때까지 과거를 돌이키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결과를 알고 따나는 여행은 없다지만, 기다리던 여인들의 세계까지 잃어버린 현실에 놓여, 흩어져 버린 고향별의 자취를 찾아 후회를 곱씹게 될 줄이야……

　 멀리서 혜성이 하나 길게 꼬리를 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혜성은 또 무슨 사연을 만들려고 편도여행을 떠나는가. 수선080은 자신이 013이었던 시절에 보았던 한 이야기를 떠올려 한의 기원을 밝히려 하였다.

　#3. 지구력 2105년 6월. 우주력 원년 1월. 명왕성계 밖 우주. 해적선 신천지호

　 “선장은 우리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어. 가란다고 ‘안녕히 계슈!’할 인사가 있다고 생각하나?”

　 간디002는 한껏 비아냥댔다. 그들은 타이탄의 죄수 호송선 신천지호를 탈취하여 외계 우주로 나가는 길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은하 우주, 넓고도 넓은 별의 바다에서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지구의 바닷가에서 바늘을 찾는 일보다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건 각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은 오히려 선장님의 불신에 있습니다.”

　 선원들을 대표해서 오신002가 항의를 했다. 그들은 선장 김진욱002와 재생의료 전문가 간디002가 우주로 쏘아 올린 타임캡슐을 찾으러 태양계를 떠나는 길이었다. 예의 타임캡슐 속에는 선장 김진욱002와 그의 친구 간디002에게 인연이 깊은 어떤 여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얽힌 사연을 전해 들었을 뿐 생전의 여인을 본 적도 없는 선원들은 김진욱002와 간디002에 대한 의리로 알고 당연한 듯이 자신의 업보로 받아들여 외계행에 동참한 것이었다.

　 “류우가 추적자를 보냈다더군요. 지구 세계 최고의 싸움꾼들로 함대를 꾸며서. 그런 류우에게 항서를 보내면 장미장원으로 돌려보내 줄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돌아갈 길이 없어요.”

　 막내인 오덕양002가 말했다. 선원들의 대부분은 타이탄의 장미장원에 인연을 남기고 있었다. 오덕양002는 간부급 선원들 중 유일하게 타이탄의 장미장원과 인연을 갖지 않은 사람으로 선장 김진욱002에게 심취해서 무작정 따라나선 경우였다.

　 “하기는 그토록 소동을 벌렸으니…… 장미장원에는 폐만 끼치고…… 좋은 인연이었는데……”

　 타이탄의 장미장원이 생계 수단으로 문을 열고 있는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은 그들의 연인들이 있는 곳이었다. 운명의 얄궂은 조화로 떠나게 되었지만, 장미장원은 선원들의 가슴속에 언젠가 돌아갈 곳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돌아와야지.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게야.”

　 간디002가 선원들 모두를 대신해서 희망사항을 말했다. 그들은 타이탄의 강제노동 수용소를 탈출한 죄수들이었다. 죽음 직전의 상황에 있던 그들을 탈출시킨 것은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의 주인 네 자매였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해적 노릇이라도 해서 우주로 나갈 수밖에.”

　 그들은 지구연방에 반기를 들었던 이적 세력으로 한바탕의 활극 끝에 체포된 중죄수들이었다. 타이탄 지하의 중간물질 인드라 광산에 강제 투입되어, 시체가 되어 나갈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있었다. 물질과 반물질의 경계에 있는 중간물질 인드라는 엄청난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는 반물질 폭발의 기폭제로 자체 내에 약간의 반물질을 함유하고 있었는데, 물질계의 상식을 벗어난 고등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반물질 폭발의 촉매인 인드라의 성질이 상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체에 작용하여 광부들의 육체를 엉망으로 뒤틀어 놓았고, 그런 상태로나마 장미장원의 네 자매의 도움을 받아 타이탄의 수용소를 탈출하여 우주로 나선 길이었다.

　 태양계 안에는 그들이 숨을 곳이 없었다. 지구연방 제일의 명문가인 류우 가문의 사람들이 지구 세계의 전 병력을 동원해 뒤쫓는 탓이었다.

　 쫓는 류우와 도망치는 김진욱과 간디, 두 사람이 업보로 알고 찾아 나선 어떤 여인, 장미장원 네 자매의 맏이인 흑장미002까지의 다섯 사람은, 밝히기 힘든 비사로 인해 은원간의 사연이 얽혀 있다고 하였다. 태양계 안의 모든 유인 행성과 위성이 그들의 정박을 허락하지 않았고, 때문에 해적 외의 다른 길을 찾지 못한 그들은 지구연방 소속의 군용과 관용 우주선들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므로 외계우주로 나갈 자원을 얻고 더불어 탈출자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우주력 원년 1월 1일이 된 지구력 2105년 6월의 어느 날, 해적선 신천지호는 태양계 내에는 몸을 의탁할 곳이 없는 선원들을 싣고 우주로 나섰다.

　 “몸들을 조금씩 고쳐야 할 걸세. 곧 외계 우주로 나가게 될 모양이니까. 전생테가 꼬리표처럼 달리게 되겠지.”

　 그 날은 선원들 모두의 전생테가 002로 바뀐 날이기도 했다.

　#4. 우주력 4년 12월. 태양계의 끝

　 “하나의 방에 갇힌 하나는 하나인가, 열다섯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했지. 화성우주대학의 최종학부에 적을 두고 있을 때의 은사에게서.”

　 코넬003과 함께 전망 스크린을 보고 있던 알렉산더003이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 오덕양003과 오신002는 출격을 명령받고 무장을 갖추는 중이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평면을, 평면이 모여 3차원인 입체를 이루는데, 입체인 방안에 갇혀 있음을 전제로 했으니 시간적인 조건이 부여된 셈이므로 4차원이 성립되고, 각 차원마다 한 차례씩의 배가가 가능하다고 보면…… 이거 계산이 맞지 않는데?

　 당신, 엉터리 질문으로 속인 거지? 하나의 방에 갇힌 하나를 열다섯 아니냐고 묻는다는 것이 말이 돼?”

　 코넬003의 반박에 알렉산더003은 가볍게 웃고 입을 다물었다. 간디002가 역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코넬003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부러 화난 표정을 보여 답변을 재촉했다.

　 “이제부터 그 질문이 왜 성립되는가 보게 될 거야. 잠시 조바심을 접고 기다리시게.”

　 알렉산더003이 코넬003의 기분을 달래는 동안 전망 스크린의 경치는 구름이 짙은 우주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르트 구름, 혜성의 고향이야.”

　 알렉산더003의 짧은 설명이었다. 신천지호가 타이탄을 떠나온 지 4년째 되는 해로 태양으로부터 1.8광년의 거리를 달려왔을 때였다.

　 신천지호는 오르트 구름 외곽에서 멈추었다. 오덕양003과 오신002의 대대가 탐사선에 나누어 타고 비행갑판을 이륙했다.

　 “뭐야? 무슨 일이 있는지 내게도 설명해 주어야지.”

　 탐사선이 구름 안으로 진입하는 광경을 보며 코넬003은 다시금 질문을 계속했다. 그는 최근에 죽어 재생되었으므로 원탁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잃었었다.

　 “오르트 구름이 혜성의 고향이 된 이유는 저 우주의 먼지 뭉치들이 태양을 향해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때문이지. 혜성이 왕복 4광년 남짓한 타원 궤도를 여행하는 이유를 밝혀내는 게 이번 탐사의 목적이야.”

　 알렉산더003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코넬003이 여전히 불만의 표정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연료를 구하기 위한 모험이야. 모처럼 공간도약 항법을 이용한 초광속 비행을 준비했는데 연료인 반물질을 만들 인드라가 바닥이 났어.”

　 알렉산더003은 신천지호 제일의 엔지니어로 기술부문 책임자였다. 그의 부서에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었는데, 타이탄 탈출에 성공한 신천지호가 태양계 안을 헤집고 다닐 때 일행이 되기를 청한 나그네족들 중에서 골라 뽑은 결과였다.

　 “태양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 외에 암흑 반성을 또 하나의 항성으로 가진 이중 태양계라는 추측은 20세기 초부터 있었지. 명왕성과 해왕성의 이해할 수 없는 운동과 혜성의 타원 궤도에 대한 해석을 찾던 중에 나온 이론이었어.

　 학자들은 태양의 어두운 반성이거나 최소한 제11행성의 위치를 차지할 새로운 태양계 가족을 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발견하지 못했어. 2600만년이라는 공전 궤도를 상정하고 복수의 여신을 뜻하는 네메시스라는 이름까지 지어놓고 집중 추적을 했는데도 그랬지.

　 그런데 말이야. 실은 그 수수께끼의 별을 발견한 사람이 우리 중에 있었어. 수많은 모방 김진욱 중의 어떤 분이었지. 우리는 그 분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이번 여행을 시작한 거야.”

　 알렉산더003의 설명은 계속되지 못했다. 통신 모니터에 구원을 청하는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탐사대 위기 상황!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 주기 바람!”

　 통신 모니터는 한 차례의 메시지 전송을 끝으로 벙어리가 되었다. 신천지호는 비상 상태에 돌입하고 남은 간부들만으로 원탁회의가 열렸다.

　 “알렉산더003을 비롯한 기술진은 본선에 대기하고 코넬003의 대대는 나와 함께 출동하기로 하지.”

　 김진욱003이 내린 결론이었다. 신천지호의 승무원들은 모두 김진욱003을 선장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곧 전체의 의견이기도 했다.

　 코넬003이 탄 단승 우주정은 김진욱003의 우주정과 나란히 선두에 서서 오르트 구름 속으로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