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의 마을 : 스타티니티 ]
"쌉니다 싸요~ 오늘 아침에 갓 잡은 토끼고기가 단돈 3실버"
"토끼.너구리.사슴.다람쥐 다 덤비라고 하십시오! 초심자용 나무방패와 함께라면 그대는 천하무적!"
"음식도 좋지만 사냥효율하면 역시 포션 아니겠습니까!!. 10개 묶음으로 구매하시면 1개를 더 얹어 드립니다!"
"갑옷도 좋고 무기도 좋지만, 역시 평상복이 제일 아니겠습니까? 수제 잠옷이 단돈 10실버랍니다!!"
그레이스가 지금 서 있는곳은 시작지점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마을의 광장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얀 블라우스에 블랙스커트차림인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다들 하나같이 게임 안에서 입던 갑옷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디보자..."
그레이스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다시 열어보았다.
평소하던 RPG처럼 사냥을 하든지 퀘스트를 진행하려면 무기나 방어구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본인은 집에서 입고 나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무언가를 공격 할 수 있는 무기도,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는 방어구도 없었다.
기본적인 RPG게임이라면 인벤토리에 입을만한 장비가 하나라도 들어있기 마련이었다.
띠링~!
인벤토리를 연 그레이스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까 물을 마실 때 분명 인벤토리를 열어봤었다. 그곳에 들어 있는거라곤 빵과 물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금 인벤토리에 들어있는것도 그 두가지 물품 뿐이었다.
그레이스는 인벤토리를 닫고 장비창에 손을 올렸다.
[그레이스의 교복]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장비창에 장착되어 있었다.
물론 자신이 지금 알몸상태가 아니기에 옷이 있다고해서 이상할건 없었다.
하지만 입고 온 옷이 장비화되어 공식적인 장비로 등록되어 있다니, 게다가 장비 이름에 자신의 이름까지 들어가있다니..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Overmind'를 포함해 기존에 하던 VR게임들은 시작하면 가상의 캐릭터의 모습에 운영진이 설정해 놓은 기본장비가 입혀져 있는게 당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레이스는 자신이 입고 있는 장비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장비위에 손을 올렸다.
[그레이스의 교복 - 천 (등급 : 에픽 )
체력 : 0 방어력 : 0
힘 : 0 지능 : 0
민첩 : 0 정신력 : 0
행운 : 10
전용효과 : '끝없는 성장' - 착용자의 성장과 함께 능력이 증가한다.
부가효과 : '꽃피는 재능' - 착용자의 성장에 따라 추가적인 능력이 발현된다.
착용자의 성장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옷
- 세상을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자의 사랑과 염원이 담긴 옷이라는 전설이 있다.
: 너의 꿈, 너의 웃음, 너의 날개, 그 모든걸 펼쳐보이거라. ]
"......."
그레이스는 두 눈에 고인 눈물을 얼른 닦아냈다.
아빠와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우는 모습을 보일수는 없었다.
"그럼 가장 먼저 구해야하는건 무기겠네"
눈물을 닦아낸 그레이스의 목소리는 작게 떨리고 있었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감출수는 없었다.
18살 그레이스에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무기를 구하려면 우선 돈이 있어야겠지?"
방금 전 인벤토리에서 확인한 자신의 소지 금액은 0실버
즉 땡전한푼 없는 거지였다.
'돈.... 어떻게 벌어야하지?'
기존에 했던 게임들의 경우 기본적인 초보자 가이드나 퀘스트를 안내해주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기본중의 기본인 튜토리얼도 중간부터 끊긴 마당에 그런게 있을리가 없었다.
'역시 이럴때는 퀘스트지'
튜토리얼이 없다고해도 그레이스는 이런 게임을 상당히 많이 즐겨왔었다.
돈을 버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역시, 퀘스트 아니면 노가다 둘 중 하나
보스몬스터를 잡아서 나오는 높은 등급의 장비를 거래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초보자인 지금의 그레이스에겐 무리였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서 있는 커다란 분수가 있는 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과와 딸기, 그리고 맛있어 보이는 과일들이 가득 진열 된 과일가게였다.
"어서옵쇼~"
40대정도로 보이는 가게의 주인이 그레이스에게 인사를 건내왔다.
"이야~ 아가씨 모하는 사람이야? 내 생전 태어나서 그런 장비는 처음보는구만"
그레이스가 입고 있는 옷은 세상의 딱 하나뿐인 옷이었다.
당연히 다른 곳에서 봤을리가 없었다.
"에...저기...그러니까...."
방금전까지 자신만만하던 그레이스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렸다.
VR게임과는 다른 이질감.
기존에 하던 게임들은 일종의 아바타를 조종하는 느낌이었다.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만 내가 아닌 존재' 자신의 캐릭터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정도의 존재였다.
'Overmind'에서 '천애의 날개' 공대를 이끌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당당하게 다른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사람들과 서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아바타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움직이고 말하고 있는것은 '아바타'가 아니라 진짜 '나 자신' 이었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아버지를 제외하곤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다른 누구와 이야기해본적이 없었다.
항상 아바타 뒤에서 이야기하던 그레이스는 지금 알몸으로 서 있는것처럼 부끄러웠다.
'어떡해~ 말이 안나와~'
주인아저씨의가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그레이스는 고개를 바짝 숙였다.
도저히 얼굴을 쳐다보고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침착해..침착하자 그레이스.. 이건 게임이야. 지금까지 많이 했잖아!
긴장하지마... 긴장하지마....'
마음속으로 자기최면을 거는 그레이스
그런 그레이스에게 주인아저씨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아가씨 모 찾는거라도 있어?"
"아..저...그게...."
"음?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조금만 더 크게 말해주겠나?"
그레이스의 목소리는 개미소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게..저.. 사실은..."
"음? 뭐라고? 사...? 사 뭐?
아~~~ 사과? 사과 달라고?"
그나마 소리를 할 수 있었던 부분은 '사실은'의 '사'라는 글자까지 그 뒤의 말은 말이라고 하기 민망할 수준의 크기였다.
주인아저씨는 10개들이 사과 한바구니를 들더니 커다란 사과 두 개를 그 위에 더 얹었다.
"이 아저씨가 특별히 두 개 더 얹어주마.
귀한 장비 구경하게 해준 값이라고! 하하하하"
주인아저씨의 호탕한 웃음.
후다다닥!!!
그레이스는 그런 아저씨의 웃음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마치 범죄를 저지르고 들이닥친 경찰을 피해 도망가는 범죄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어..어이! 아가씨!"
주인아저씨의 당황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그레이스는 두 눈을 질끈 감도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아니, 실은 그렇게 많이 달리지도 못한 그레이스였다.
이곳 'Epic Tales' 안에서의 그레이스는 초보중에서도 생초보였다.
게다가 몸이 아팠던 그레이스는 평소 일상에서도 운동이라고는 할 수 없어왔었다.
현실에 있던 그레이스의 몸은 약골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몸을 짓누르는 아픔이 사라졌다고해서 그레이스의 체력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하....하..... 더 이상은 못뛰어...."
마을 중앙에 있던 커다란 분수를 지나 있는 작은 나무그늘에 멈춘 그레이스가 숨을 헐떡였다.
'어떡해.... 나 이렇게 소심했었던거야?'
본인이 소심하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사람들과 말을 섞어본 적 없던 그레이스였다.
'말을 못걸면 퀘스트를 받을수가 없잖아...'
그레이스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숨이 턱끝까지 흐르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온다.
그레이스는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자신의 왼쪽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뛰고 있다는 감촉
'여기 진짜 심장이 있구나...'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그레이스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한가지"
이마에 흐르는 땀도 뛰어오던 심장박동도 잦아지자 그레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가다
퀘스트를 받지 못한다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그것 뿐이었다.
"내가 들어왔던 초원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다른 입구로 나가볼까?"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는 그레이스는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