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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메두사는 연애중
작가 : 이은교
작품등록일 : 2016.9.16

아무르. 명품브랜드 가방 파트 이사 일명, 메두사 변정연과
아무르. 명품브랜드 가방 파트 팀장, 연하 양서준의
로맨스 이야기.

 
제 1부. 메두사, 큐피드를 만나다.
작성일 : 16-09-17 10:49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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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디어 왔군!”

 

 서준이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오자, 업무를 보고 있던 부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갑게 맞이했다.

 

 “뭐 마실래?”

 “전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그럼, 차가운 녹차 두 잔으로 부탁 할게.”

 석호의 말에 비서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차가운 녹차 두 잔을 금세 준비해서 돌아왔다. 녹차를 서준의 앞자리에 놔주면서 비서의 눈길이 반사적으로 힐끔, 서준의 얼굴을 살피고는 수줍게 미소 지어 보였다. 비서가 나가자 부사장이 신기한 듯 허허,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남자 직원들 보기를 돌보기처럼 여기던 우리 김비서도 자네한테는 어쩔 수가 없나봐. 여전하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여자가 따르는 그 인기는. 그것도 복이라면, 아주 큰 복이야.”

 아무르의 부사장 차석호는 디자이너 출신의 전문 CEO로 6년 전, 서준이 일하던 J-come 세계 명품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서준을 직접 채용하고 함께 일을 했던 석호는 그의 뛰어난 감각과 가능성을 높이 사며 몇 번이고 한국으로 귀국해 자신과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기회가 닿지 않아 서운해 하던 차에 이번에 서준이 자의로 귀국할 의사를 밝혀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석호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서준이 전에 일했던 파트이자, 아무르의 매출에서 크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슈즈’ 파트가 아닌, ‘가방’ 파트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었다.

 “생각은 좀 해 봤어?”

 “네. 몇 번이고 생각해봤는데, 드릴 수 있는 답이 똑같네요.”

 고민 끝에 그가 결국은 ‘슈즈’파트로 생각을 바꾸길 바랐던 석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실망 하셨어요?”

 “그럴 리가. 조금 아쉬운 것뿐이지. 워낙,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상품화 될 가치들을 보는 시선이 예리하기 때문에 어느 파트에 가든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지. 우리 서준이는, 아니, 이제는 양팀장이라고 해야 하지? 하하!”

 띠 동갑을 훨씬 넘는 나이 차이와 그 경력을 뒷받침하는 차이나는 계급에도 불구하고 서준에게 석호는 친한 동네 형 같은 존재처럼 편안했다.

 “오늘 점심은 나랑 같이 먹자고. 알았지?”

 “네.”

 “뭐 먹을지, 고민해 놓고 거하게 사 줄 테니까.”

 호탕하게 웃는 석호를 마주하며 서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서준의 미소를 보며 석호는 남자가 봐도 참, 사랑스러운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변이사가 곧 올라 올 거야. 변이사 알지? 워낙 유명하잖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변정연 이사님.”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 온 가장 큰 이유.

 서준은 고작, 이름 한 번 불러 봤을 뿐인데 감당 되지 않는 웃음기가 자꾸만 피어오르는 자신이 낯설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제 새벽 내내,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물들어진 몸과 마음은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결국,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은 극심한 설렘은 거세게 몰려드는 피곤함을 가차 없이 밀어 버리고 여전히 서준의 온 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준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며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굳게 닫혀 있던 부사장 문으로 가볍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오, 우리 변이사 왔나 보네.”

 쿵.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살결을 찢고 튀어 나올 것 같은 심장에 발끝부터 머리까지 다 울리는 기분이었다. 서준은 회심 서린 한숨을 입술 밖으로 내뱉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또각. 또각.

 마침, 문이 열리고 조금 날카롭게 느껴지는 하이힐 소리가 자신의 반경 안으로 들어왔다. 서준은 그녀가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둘러 싼 주변의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준은 재빠르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고개를 살며시 돌려 정연을 마주했다.

 짧고 까만 쇼트커트가 잘 어울릴 정도로 뽀얗고 가느다란 목선과 감히 원피스 따위로는 감출 수 없는 오래된 운동으로 탄력 있으면서도 육감적인 몸매, 건조한 듯 하면서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중압감이 드는 눈빛. 그녀를 보며 서준은 속으로 가만히 중얼 거렸다.

 잘 자라줬다.

 우습게도 서준은 제 나이를 잊고 중얼 거렸다.

 고작, 낙엽이 구르는 걸 보면 까르르 숨 넘어 가듯 웃던 수줍은 많은 소녀는 어느새, 온 몸에서 관능미를 풍기고 있는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정연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발걸음으로 단숨에 서준의 앞으로 다가왔다.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가방 디자인팀 이사 변정연입니다.”

 그녀가 다가오면서 일렁인 미세한 바람은 은은한 장미꽃 향기를 실고 서준의 코끝을 조심도 없이 간질였다. 서준은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정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누나에게 맞아서 우는 자신을 달래주던 그 부드러운 손길은 여전할까? 서준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정연의 손을 맞잡았다.

 “이번 가방 디자인팀에 합류하게 될 팀장. 양서준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커다란 손에 완전히 감싸지는 그녀의 작은 손은 놓아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여전히 부드러웠다.

 알기는 할까. 서른 살의 양서준은 아직도 이 손의 감촉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변이사!”

 “네. 부사장님.”

 “내가 특별히 아끼는 친구이니,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잘 가르쳐 주게.”

 둘의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석호가 신신당부를 했다. 정연이 가볍게 목례를 취했다. 세 사람은 서준의 포트폴리오에 대해서 간단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럼, 파이팅들 하고! 아, 그리고 변이사 오늘 점심에 약속 없으면, 나랑 양팀장이랑 같이 점심…….”

 “죄송합니다. 급하게 처리할 게 있어서.”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양팀장은 점심 때 보자고.”

 부사장실에서 나온 서준은 정연과 함께 나란히 복도를 거닐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그녀의 얼굴에선 어떤 표정의 미동도 없었다. 자신을 단박에 알아 볼 거라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굴엔 잠시라도 그 서운한 표정을 지을 틈이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체구로 열심히 앞장 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웃음이 삐죽삐죽 튀어 나왔다.

 뭐라고 인사를 건네야 좋을까,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에요. 라는 통상적이고 촌스러운 인사?

 아니면, 여전히 예쁘네요. 하는 좀 오글거리는 인사?

 그것도 아니면, 보고 싶었다는, 뜬금없긴 하지만 진심을 담은 인사?

 “팀원들에게 인사하기에 앞서 잠깐 저 좀 먼저 보죠.”

 고민을 하는 사이, 사무실에 도착한 서준은 자신을 발견하고 얼굴에 화색을 띠우며 일어나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정연을 따라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 문을 닫고 인사를 건네기 위해 정연에게로 다가가던 서준의 걸음이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는 눈앞에 보이는 믿기 힘든 광경에 재갈을 입에 물은 것 처럼 말문이 막혀 버렸다. 정연의 손에는 아까 석호가 건넸던 서준의 포트폴리오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포트폴리오는 한 장, 한 장 정연의 손에 뜯겨 분쇄기에 비참하게 갈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놀라 묻는 서준의 질문에 돌아오건 정연의 대답이 아닌, 여전히 분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지금 뭐하시는 거냐구요!”

 분쇄기에 종이를 넣고 있던 정연의 손목을 낚아챈 서준은 평소엔 듣기 드문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정연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여전히 건조한 얼굴로 서준을 응시했다.

 “보면 몰라? 쓰레기 버리고 있잖아.”

 고저 없는 목소리가 지독히도 냉랭하게 느껴졌다. 서준은 단언했다. 자신이 ‘쓰레기’라는 극단적인 단어를 잘못 들었다고. 천사인 정연이 ‘쓰레기’라는 상스러운 단어를 입에 담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 줄 생각인지, 정연은 전보다 훨씬 더 사납게 굳은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서준의 디자인을 구기며 바닥으로 내던졌다. 서준의 디자인이 무참히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이런 경우 없는 상황을 처음 겪어 본 서준은 그저 말문이 막힐 만큼 어이가 없었다.

 “잘 부탁? 여기가 학교야, 학원이야? 내가 왜 널 가르쳐야 하지? 부족한 게 많다면 처음부터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낙하산 타고 내려 온 게 자랑이야?”

 “…….”

 “쪽팔리지도 않니?”

 더 이상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정연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서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몰아붙이는 정연을 보며 서준은 몰려드는 수치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안 쪽팔립니다.”

 “안 쪽팔려?”

 “네.”

 “왜 안 쪽팔릴까? 낙하산의 뜻을 모르나. 아니면, 낙하산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나. 설마?”

 “이사님 눈에는 제 디자인이 낙하산 수준으로 보이세요?”

 “응. 그것도 확실히. 네 디자인이 증명하고 있잖아. 낙. 하. 산. 이라고.”

 J-come에서 조차도 몇 번이고 사표를 물릴 만큼 실력을 인정받던 서준이었다. 그랬기에 정연의 낙하산이라는 발언은 그의 자존심은 비참하게 뭉개졌다. 하지만 그런 서준의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연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며 서준을 매섭게 올려다보았다.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선수라도 다 같을 순 없어. 야구, 축구, 농구…….‘운동’이라는 공동 된 단어를 쓴 다해도 광범위한 종목이라는 게 있는 거지. 축구 선수가 느닷없이 야구를 할 순 없잖니? 마찬 가지야. 같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해서 모든 디자인을 할 수는 없는 거야. 그 말은, 네가 슈즈 분야에서는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쪽 분야에는 그 감각이라는 것이 영 없다는 거지. 네 분야를 살려. 괜히 깨끗한 웅덩이에 미꾸라지처럼 들어와 물 흐리지 말고.”

 믿었던 도끼에게 발등을 찍혀도 이 보다 더 아프고 배신감이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서준은 불현듯, 자신이 여태 그녀에게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거품처럼 사라지는 허탈함에 실소를 터트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의 가슴이 생채기를 내고 자신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녀가 야속했고 상처 받아야 하는 이 순간이 속상했다.

 서준은 자신을 지나쳐 회의실을 막 빠져 나가려던 정연을 불러 세웠다.

 “굴러 온 돌한테 발등 다친다는 속담 아십니까?”

 뜬금없는 서준의 속담 타령에 정연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며 낮게 물었다.

 “발등 조심하시라는 뜻입니다.”

 보폭이 큰 걸음으로 단숨에 정연의 앞으로 다가온 서준의 얼굴엔 시종일관 스며들어 있는 장난스러운 웃음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보시면 아시겠죠. 제가 미꾸라지 일지, 아니면 박힌 돌 빼낼 굴러 온 돌일지는.”

 정연의 귓가를 파고드는 서준의 음성은 냉랭한 기운이 묻어난 경고처럼 들렸다. 정연은 있는 힘을 다해 서준의 손을 뿌리치고 회의실을 나왔다. 서준에게 인사를 하려고 엉거주춤 서 있던 직원들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정연을 보며 죄다 눈치를 보며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 뒤로 서준이 따라 나왔다.

 서준은 앞에 서 있던 정연을 지나쳐 사무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연에게서 서준으로 옮겨갔다. 서준은 방금 회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듯, 화사하게 웃으며 입술을 떼어냈다.

 “다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된 양서준 팀장입니다.”

 서서 소개에 경청을 기울이고 있는 직원들을 쭉, 둘러 본 서준의 시선이 맨 끝에 서 있는 정연에게로 꽂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준의 목소리는 분명 달콤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꽉 억눌러 있었다. 어금니를 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연은 그의 시선을 오래도록 되받아 치다가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왔다.

 ‘보시면 아시겠죠. 제가 미꾸라지 일지, 아니면 박힌 돌 빼낼 굴러 온 돌일지는.’

 “그럼, 나를 내 쫒기라도 하겠다는 뜻이야? 어디서 건방지게…….”

 회의실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향해 경고하던 서준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정연은 지금 막 집어 들었던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에 내던졌다. 서준은 전에 있던 해외 브랜드에서는 슈즈 디자이너로서 꽤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들었다.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은 있어도 가방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은 없는 거였다. 한마디로, 그 경력으로는 가방 파트에 총괄 ‘팀장’급으로 들어 올 만한 인재는 되지 못한다는 거였다.

 실력을 정확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오롯이 경력이 있다는 이유, 그리고 어찌보면 부사장의 적극 추진으로 ‘팀장’급을 달아 버리면 밑바닥부터 깨지며 올라 온 디자이너들에겐 승진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을 당하는 거였다.

 더군다나, 쌓은 경력이 가방 디자이너라면 이런 불만이 조금은 미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슈즈 디자이너라니…….가방과 슈즈는 엄연히 다른 종목의 운동이고, 다른 빛깔을 띠우고 있는 하늘이며, 다른 재료들이 들어가는 요리였다. 그런 서준을 턱, 하니 팀장급 자리에 앉혀 놓은 회사도, 실력도 경력도 없으면서 그 자리에 뻔뻔하게 앉아 있는 서준도 정연은 이해를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연은 자신이 수없이도 그런 이유로 사회에서 외면을 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똑똑.

 한참 열을 내고 있는데 문을 노크하고 커피를 든 임비서가 들어왔다. 문이 잠깐 열리고 닫히는 순간, 밑에 사무실은 서준의 등장에 꽤 들떠 있는 분위기였다.

 “일들 안 하고 뭐하는 거야?”

 정연의 곱지 못한 물음에도 양비서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우며 따뜻하게 웃었다.

 “다들, 잘 생긴 양팀장님과 일을 할 생각을 하니, 많이 들뜬 모양이에요.”

 “참…….배알도 없는 것들.”

 “그래도 양팀장님 정말 잘 생기셨잖아요.”

 “잘생기면 뭐해? 얼굴이 디자인 그려줘? 그리고 잘 생기긴 뭐가 잘 생겨? 임비서도 저렇게 애기 같이 생긴 얼굴 좋아해?”

 “몸이 애기가 아니던데…….”

 예기치 못한 임비서의 말에 혀를 내차며 입술에 커피를 축이던 정연이 당황해서는 그대로 내뿜으며 사레에 걸리고 말았다.

 “참…….임비서도 은근히 밝혀? 양팀장 몸 좋은 건 둘째 치고, 임비서 몸은 좀 괜찮아?”

 “네. 어깨가 조금 쑤시는 거 빼고는 다 괜찮은데, 이사님은 어떠세요?”

 “나도 괜찮아. 나 아직 젊잖아.”

 “다행이네요. 이번 주에 꽤 무리하셔서 혹시, 못 나오시진 않을까, 걱정 했는데.”

 “자기 그 뱃살이나 걱정해. 어떻게 나보다 훨씬 어리면서 그렇게 뱃살이 많아?”

 정연이 회사 내에서 경계를 풀고 유일하게 장난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임비서였다. 정연과 임비서는 지난 2년 동안, 마지막 넷째주인 일요일에 만나 고아원으로 함께 봉사를 다녔다. 아이들 앞에서는 무장해체가 되어 천사처럼 웃는 정연을 보며 임비서는 그녀가 회사에서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가면을 쓰고 독하게 굴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참, 그리고 이사님. 이번 여민정씨 계약이 만료되어서요. 재계약을 하실지, 어떻게 하실지, 결정을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여민정씨?”

 “네.”

 “알겠어.”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임비서가 나가고 정연은 계약직 사원들과 작성한 계약서가 꽂혀 있는 파일을 꺼냈다. 민정은 단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는 요즘 보기 드문 성실한 직원이었다. 실력이 엄청나게 대단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하고 점점 향상되고 있어 계약직으로만 두기엔 아까운 직원이기도 했다. 이미 정해진 답 속에서 정연은 두 번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정연은 인터폰을 눌러 민정을 불렀다.

 *

 

 ‘괜히 깨끗한 웅덩이에 미꾸라지처럼 들어와 물 흐리지 말고.’

 어디서부터 왜, 잘못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귓가에는 정연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떠돌았고 시야에는 마주했던 정연의 얼굴이 아른 거렸다. 목소리는 자신을 있는 힘을 다해 업신여기는 뉘앙스였고 눈빛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무시하듯 바라보았고 심지어는 제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은 쓰레기 취급 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보고 싶은지, 서준은 자꾸만 빠끔히 고개를 쳐들려고 하는 본능이라는 진심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미쳤네…….”

 낮게 중얼거리며 내뱉은 한숨은 깊고도 뜨거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조용한 복도를 걸어 끝 쪽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들어 온 서준은 주방으로 가 시원한 물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타들어 갈 것 같이 이르던 갈증이 해소 되고 나자, 입고 있던 트렌치코트를 벗으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지친 몸을 소파 깊숙이 기대고 앉았다. 사실, 몸이 지쳤다고 하기보다는 마음이 지친 것일지도 몰랐다. 서준이 이마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의 일을 다시 되새김질 하고 있을 때였다.

 삐- 삐비빅- 삐.

 달칵.

 삐비비비비빅!

 삐- 삐- 삑빅- 삐.

 달칵.

 삐비비비비빅!

 누군가가 자신의 집 도어락 문의 비밀번호를 멋대로 누르고 열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서준이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들어 밖의 상황을 살폈다.

 “…….”

 신중을 가한 진지한 표정으로 여전히 비밀번호를 풀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버튼을 누르고 있는 사람은 강도가 아닌, 자신의 누나 세정이었다. 서준이 거칠게 현관문을 열어 젖혔다.

 “엄마야!”

 “다른 사람 집에 들어오고 싶을 땐, 비밀 번호 버튼이 아니라.”

 서준은 도어락 문 보다 훨씬 위쪽에 달려 있는 초인종을 가리켰다.

 “이걸 누르는 거야.”

 “단순한 걸로 좀 해놓지. 넌 애가 너무 복잡해.”

 “누나가 너무 단순한 거지. 어느 집 여자 비밀번호가 0000이야.”

 “너무 복잡하게 해놓으면 까먹는단 말이야.”

 서준을 지나친 세정은 간식 먹으러 들어 온 꼬마처럼 구두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들어갔다. 작은 문틈 사이로 복도까지 날아가 버린 구두를 들고 들어 온 서준의 얼굴엔 못마땅함이 가득 번져 있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도 신발을 이따구로 벗어?”

 가뜩이나, 정연 때문에 심란한 마음에 세정이 와서 냅다 기름을 들이 붓는 격이 된 것이다.

 “가족끼리도 격식 차려야 돼?”

 “누가 격식 차리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는 거지.”

 “너 어렸을 때는 나한테 한 마디도 못 했는데.”

 “하던 애를 주먹으로 내려치니까, 우느라 못 한 거지. 못해서 못 한 건 아니야.”

 서준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세정은 바에서 꺼내 마시고 있던 와인을 들고 종종 걸음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서준에게 다가왔다.

 “첫 출근은 어땠어? 정연이 봤어?”

 ‘보면 몰라? 쓰레기 버리고 있잖아.’

 자신을 무시하던 그 선명한 말투와 표정이 서준을 또 한 번 한숨짓게 만들었다.

 “정연이 많이 변했지?”

 “어.”

 “그렇지? 걔는 안 늙을 줄 알았는데, 많이 늙었어…….자세히 보면 눈가에 주름이 아홉 갠가? 그런다. 실망 많이 했구나?”

 고작, 나이가 있어 탱탱함은 사라지고 주름살이 좀 생겼다고 정연에게 실망할 만큼 서준의 마음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서준이 실망한 것은 그녀의 외적이 아닌, 내적이었다. 상대방에서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서준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말고? 그럼, 뭐. 어떤 거? 헉. 뱃살도 있어?”

 하지만 그런 걸 누군가에게 일일이 일러바칠 생각은 없었다. 정연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스스로 찾고 싶었다. 찾은 그 이유가 자신을 끝까지 납득시키지 못할 그때 세정의 조언을 얻어도 늦지는 않을 거라 단언했다.

 “안 가?”

 “나 온지, 겨우 5분 됐거든!”

 “피곤해.”

 서준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뭉친 어깨를 공중으로 돌리며 샤워실로 걸음을 떼어냈다,

 “정연이는? 너 바로 알아보지?”

 “…….”

 말간 목소리로 물어오는 세정에 서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뭐야, 설마 못 알아봐? 하긴…….횟수로는 벌써 17년 만이니까, 못 알아 볼 만도 하겠다.

 서준의 미세한 반응을 눈치 차린 세정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너라고 말은 했어? 반가워하디?”

 ‘이번 가방 디자인팀에 합류하게 될 팀장. 양서준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건조한 얼굴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정연에겐 자신이라는 사람이 이름조차 기억 되지 않았던 존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고 저릿해져왔다.

 ‘낙하산 타고 내려 온 게 쪽팔리지도 않니?’

 정연이 뱉어낸 말은 독사가 뿜어낸 독처럼 쏘아 서준의 가슴 언저리에 깊숙이 파고들며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평생 잊지 못할 말들이었다.

 ‘쓰레기’,‘낙하산’,‘미꾸라지’

 “아니. 말 안 했어.”

 “진짜? 말 안 했어?”

 “내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양세정의 동생 양서준이라는 걸 알아본다면, 많이 반겨 줬을까?”

 “그럼. 반겨줬겠지. 걔가 너 많이 예뻐했잖아. 자기는 동생 없다면서 너 얼마나 귀엽다고 그랬는데, 예전에는 너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친 동생 삼고 싶다고 하기 까지 했어.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지. 그때는 지금이랑 다르게 내가 널 좀 귀찮아했었잖아. 그래서 내가 망설이지 않고 그러라고까지 하면서 엄마한테 서준이 보내자고 진지하게 얘기하다가 뒤통수 맞았었지.”

 ‘서준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 주던 이름이면서…….

 “기억도 안 해줄 거였으면…….그렇게 환하게 웃어주지 말았어야지.”

 공중을 떠다니는 먼지처럼 작게 중얼거리는 서준을 바라보는 세정의 눈엔 여전히 가시지 않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뭐라구?”

 “됐어. 그것만 마시고 가.”

 “안 데려다 줘?”

 “재미없어.”

 “쳇.”

 세정은 서준과 같은 오피스텔 바로 위층에 살았다. 그러면서도 매번 저렇게 말하며 뭐가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는 세정에게 서준은 무심하게 돌아섰다.

 “아참, 그리고 말하지 마.”

 “뭘?”

 “내가 양세정 동생. 양서준이라는 거.”

 “진짜 정연이한테 말 안 했어?”

 “안했어. 앞으로도 안 할 거고.”

 “왜?”

 친구의 동생 서준이라고 한다면, 자신을 더욱 어린애 취급할 것이 흐르는 시냇물 보듯 뻔했다. 옛 추억을 소환하여 억지로 받는 친절과 미소도 원하지 않는다. 서준은 결의했다. 지금의 양서준으로 그녀를 반드시 웃게 만들 것이라고. 그 웃는 이유는 단 하나가 될 것이다. 디자인. 그녀의 입에서 내가, 너를 잘못 봤다. 미안해. 라는 말을 기필코 흘러나오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당신의 판단이 오만이고 잘못 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나중에 내가 때 되면 말 할 거야. 그니까, 진짜 말 하지 마.”

 서준의 대답에 세정의 눈빛이 금세 씁쓸해졌다. 무언가 잔뜩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왜 그러고 봐?”

 “어? 아니야. 근데 어차피 말하고 싶어도 못해. 나 내일 오전에 괌으로 가서 한 달 정도 있다가 올 거야.”

 “또?”

 자유영혼도 저런 자유영혼이 없다. 어제 저녁에 이탈리아에서 막 귀국해 놓고는 또 떠난다니…….서준은 어디서든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만 다니는 세정이 안타까웠다.

 “왜 그러고 봐? 한심해?”

 “아니.”

 “다행이다.”

 “조심히 잘 갔다 와. 선물 사오고.”

 “뭐 사다 줄까? 말만 해. 하나밖에 없는 내 사랑하는 동생이 사다달라는 건 다 사다줄 수 있지.”

 서준은 세정이 저렇게 마음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깊어져 갔다. 하지만 그 안쓰러움을 동정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세정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그냥. 아무거나.”

 “싱겁기는…….”

 서준은 건조하게 말을 내뱉으며 샤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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