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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낯선 자들의 밤
작가 : 환상좀비
작품등록일 : 2018.11.16

신화의 존재들이 생존한 세계.
암암리에 출몰하는 그들의 존재는 인간들의 암인가, 새로운 지성체들인가?
구마사제 준영은 끊임없는 시험 앞에 선택을 종용받게 된다.

 
3화. 검노인
작성일 : 18-11-16 15:01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7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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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여태 태평한 여행인 양 자신을 인솔해온 제롬의 낯선 경고에 준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포구에 정박하여 내리는 와중에도 제롬은 준영에게 두 차례 더 같은 경고를 했다. 준영은 제롬이 조성한 긴장감에 위축된 채 조심스레 육지에 발을 디뎠다.

 

 '주여, 감사합니다.'

 

 준영은 흔들리지 않는 땅이야말로 신의 축복이라 확신했다. 굳건한 땅 위에 서는 것만으로 그동안의 뱃멀미가 일부분 해소되었다. 속이 진정되자, 그제서야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섬의 포구는 적막했다.

 

 "야밤에 뉘시오!"

 

 섬 방향의 걸걸한 남성 목소리였다. 뉘엇하던 해는 이미 지고 어둠이 진득하게 깔린 포구에 후레시 빛이 번뜩했다.

 

 한참 젖은 옷을 털던 선장이 후레시 불빛을 향해 냉큼 걸었다.

 

 "보길도 영태지라! 수만이 아재요?"

 

 "오매, 영태여? 이 시간에 뭔 일이냐?"

 

 "말도 마쇼. 외지분들이 기어코 오늘 중에 델다 달라 해서 말이오."

 

 선장은 섬 주민과 말하던 도중에 제롬과 차인을 손으로 가리켰다.

 

 갑작스러운 선장의 소개에 뒤에 서있던 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목례했다. 섬 주민이 잠시 침묵했다. 아마도 같이 목례를 한 듯싶었다.

 

 눈앞으로 쏘아지는 낚시배의 강렬한 조명이 오히려 모두의 시야를 방해하는 바람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소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붉은 십자회의 리체리오 수사라고 합니다."

 

 "고거 말고. 이름이 뭐요?"

 

 "..네?"

 

 "젊은 사람이 가는 귀가 먹었는가? 자네 이름이 무냐고!"

 

 "아, 준영, 장준영입니다."

 

 "그래, 옆은? 아, 아니다. 시방, 뭐 뵈는게 없응께. 일단 들어갑시다. 영태야, 니도 자고 가라."

 

 섬 주민은 둘의 의사는 확인하지 않고, 오던 길로 되돌아 걸었다. 무례인지, 무뚝뚝함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환영에 준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롬은 그런 준영의 등을 토닥이듯 밀었다.

 

 "따라갑시다. 저분의 걸음이 빠르니, 까닥하면 놓치겠습니다."

 

 "..뭔가 완전히 말린 기분이 드네요."

 

 "그런 감은 없지 않으나, 어쨌든 우린 초대받은 겁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던 적의도 한풀 꺾였습니다."

 

 제롬의 말에 준영은 호기심이 생겼다. 허겁지겁 짐을 매고 선 섬 주민을 따라가는 와중에 제롬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적의란 건 어떻게 읽는 겁니까?"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여기서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네요. 귀가 많습니다."

 

 준영이 순간 놀라며 제롬에게 속삭였다.

 

 '아.. 죄송합니다. 혹 지금까지의 대화가 저분들에게 들린 건 아니겠죠?'

 

 너무 목소리가 작았나? 준영의 속삭임에도 제롬은 말없이 걸었다. 더 이상의 질문이 민폐가 될 것 같단 생각에 준영도 입을 꼭 다물고 제롬과 보폭을 맞혀 걸었다.

 

 「열네개의 귀. 열세개의 눈. 일곱번의 쇠붙이 소리.」

 

 제롬의 속삭임이었다. 마치 귓가에 대고 말하는 듯한 명확한 목소리에 놀란 준영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헛것을 들은 것일까? 그렇기엔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걸으세요. 저 수만큼이 우릴 경계 중입니다.」

 

 제롬의 전언에 준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급히 멈췄다.

 놀라 움츠려든 어깨와 끄덕이다 급히 멈춘 목의 각도가 준영의 모습을 오히려 더 괴상하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게 제롬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섬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마세요. 내가 보낼 수 있는 전언은.. 이..제 한..계입니..」

 

 마치 전파가 끊긴 라디오처럼 제롬의 전언이 흐려지다 결국 끊겼다. 제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준영은 걷고 있는 제롬의 표정을 살폈지만, 빛 한줌 건지기 힘든 어둠 속에서 표정이 드러날 리 없었다. 그 뒤로도 제롬은 어떤 전언도 하지 않았다.

 

 섬 주민을 따라 십여 분 정도 들어가자 마을의 전경이 보였다.

 

 열 채가 갓 넘는 주택들이 뭉쳐있었지만, 그 생김새가 제각기 달랐다. 울퉁불퉁한 낮은 산등성이의 지반 탓인 듯했다.

 

 "저어~기. 허연 불나는 집이 하숙집이요."

 

 주택들에서 흘러나온 그 희미하고 약한 조명들은 온통 석회 색인 길과 담벼락과 만나자,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섬 주민은 그중에서 희미한 형광등이 어른거리는 집을 가리켰다. 모양새가 한옥에 현대식 가건물을 대충 욱여넣은 듯한 형색이었다.

 

 "진수 어무이, 손님 왔어라!"

 

 자신들을 안내했던 섬사람은 멀찍이 서서 하숙집 주인을 부르고선 그대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섬사람의 이탈에 세 명만 덩그러니 길거리에 남았다. 그나마 이 섬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 선장이 이들을 안내했다.

 

 "흠흠, 갑시다. 여기 섬 분들이 좀 모자라기도 한데, 그렇다고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니까 너무 놀라지는 마소.“

 

 성큼성큼 먼저 걸어가는 선장을 따라 하숙집에 들어가자 불혹은 지난 듯이 보이는 아주머니가 이들을 반겼다.

 

 "오매, 야밤에 손님들이 다 오시고. 영태 씨도 오랜만이네!"

 

 소란스러운 하숙집 주인의 환영에 둘은 얼떨결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선장만이 그녀를 지나쳐 자기 집처럼 빈 방문을 열었다.

 

 "저기 손님들이 여길 꼭 오고 싶어 하대요. 안내 좀 잘해주쇼, 난 좀 쉴랍니다."

 

 탁- 선장이 할 말만 하고 문을 닫아버리자, 남겨진 둘은 길 잃은 아이처럼 하숙집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리로 와요. 어디서 오셨어요~?"

 

 하숙집 주인은 어색한 표준어를 쓰면서 둘을 빈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앞 마루에 걸터앉아 둘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입에 귀에 걸린 듯 환하게 웃었다.

 

 "아.. 저희 잠시 옷 좀 갈아입겠습니다."

 

 사랑스럽게 자신들을 바라보는 하숙집 주인의 눈빛은 사교적인 제롬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슬쩍 양해를 구하고 여닫이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하숙집 주인은 엄청난 속도로 준영의 팔을 낚아챘다.

 

 준영은 아무 반응조차 못하고 손아귀에 이끌려 넘어지듯 마루에 주저앉았다.

 

 "그러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하숙집 주인은 콧소리 섞인 하이톤으로 준영의 나이와 이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심지어 지금 대통령이 누군가까지도 물어봤다.

 

 '대체 뉴스조차 안보는건가?' 준영의 쏟아지는 질문에 식은땀을 흘려가며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남아있던 뱃멀미가 다시금 올라오는 것 같았다.

 

 "사장님은 지금 안 계신가봐요?"

 

 탁- 문이 열리면서 제롬이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여태껏 시달린 준영이 안쓰러워 제롬은 하숙집 주인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려주었다.

 

 "3년 전에 죽어븟지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걸 물어봤군요."

 

 "아이고~ 죄송은 무슨, 그냥 지 성질에 못 이겨서 죽어븐건데. 요 앞집 성태 아재랑 쌈이 났는데, 요기하고 요하고 칼침을 두 방 맞은 거지."

 

 "맙소사.."

 

 준영은 놀란 입을 막았다. 놀라긴 제롬도 마찬가지였다. 준영이 하숙집 주인의 손을 잡고 위로를 건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혼자 견디시기엔 큰 사건인데 이곳을 떠날 생각은 안 하신겁니까?"

 

 "살인? 에이~ 누가 가슴팍하고 뱃구녕에 칼 좀 맞는다고 죽는답니까. 그냥 우리 아재가 싸움에서 진 게 영 분해가꼬, 바닷물에 확 뛰어들었어. 나랑 동네 사람들이 한두 달 기다렸는데, 그래도 안 나오니깐 장례도 치러주고 한 거에요."

 

 하숙집 주인은 회상에 빠진 듯이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름 호상이었죠. 자살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잘 안 죽어요, 우리는."

 

 준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제롬을 바라보았다. 제롬도 준영과 같은 표정이었다.

 

 '그냥 미친 사람인가?' 제롬은 이야기할수록 자신까지 이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이야기가 다시 다른 곳으로 새기 전에 급하게 질문했다.

 

 "아, 사실 저흰 검노인 분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혹시 지금 좀 만나 뵐 수 있습니까?"

 

 제롬의 입에 검노인이란 말이 나오자 하숙집 주인은 처음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못들을 소릴 들은 사람처럼 인상을 한껏 쓰고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니 이야기 한참 즐거운데, 무슨 검노인이 나온다요. 하.. 보통 우리 동네에서 검노인이고 뭐고 씨부리면 칼침놓고 바다에 던져븐게 원칙인디.."

 

 듣기 살벌한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하숙집 주인은 준영을 한참 훑어본 후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여기 젊은 신부님도 계시고 하니까, 안내는 해줄게요. 뭐 가서는 나도 어떻게 될 지 모르고!"

 

 하숙집 주인은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둘은 순간 냉랭해진 분위기에 말 한마디 못하고 뒤따라 걸었다.

 

 그렇게 십여 분을 걷자, 그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널찍한 가옥 앞에 섰다.

 

 "들어가 보세요~ 춘복씨, 손님 두 분 왔네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중년의 남성이 튕겨져 나오듯 마루 앞에 섰다.

 

 "몇번을 말하냐! 이장이라 부르라고!"

 

 남자의 호통에도 하숙집 주인은 콧방귀를 뀌고선 돌아갔다. 큼- 춘복이라 불린 이장은 불편한 기색을 비추며 둘을 향해 손짓했다.

 

 "가만 서 있지 말고 들어와."

 

 제롬은 준영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입가에 세웠다. 입조심, 준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긴장했는지 준영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둘은 마루 위에 올라 한지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너, 너는 내가 알겠어. 시뻘건 잿냄새가 진동을 하니깐."

 

 넓은 상 가운데 앉은 이장은 제롬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준영을 가리켰다.

 

 

 "그런데.. 넌 뭐니? 옷을 보니 소속은 알겠는데, 보통 신부 놈들 같은 얄팍한 끼도 없어 보이고. 뭐하는 놈이야?"

 

 "채자인 신부님의 사람입니다."

 

 제롬이 이장의 질문을 가로채듯 말했다. 그러자 이장은 영 불편한 표정으로 제롬을 노려봤다.

 

 "내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잖어, 난 저놈 목소리를 들어야겠다고."

 

 이장이 자신을 가리키며 손가락질 하자 준영은 꼿꼿이 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영락없는 신입사원처럼 보였다.

 

  "네, 전 장.준.영 수사라고 합니다. 채자인 신부님의 보조 사제입니다. 채 신부님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오게 됐는데.."

 

 "됐는데?"

 

 "혹시 검노인 분이 맞으신가요?"

 

 "한때는 그렇게도 불렸지. 지금은 그냥 섬 이장이니까 니들도 그리 불러라. 그리고 일단 앉고. 내 채 신부 사람들을 계속 세워둘 순 없지."

 

 이장은 자신 옆에 대충 놓여있는 방석 두 개를 그들에게 던졌다.

 

 둘이 방석에 앉는 사이에 이장은 상 밑에서 만들다만 목각과 나무칼을 꺼냈다. 서걱서걱- 조용한 방 안에 목각 깎는 소리만이 울렸다.

 

 "...말해보라."

 

 "채 신부님이 안부를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거 말고, 본론 말이다."

 

 "검노인을 서울로 송환하라. 물론 검노인 본인의 동의없인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 전재하셨습니다."

 

 제롬의 말에 이장은 끌끌거리며 웃었다. '여전히 재밌는 놈이야.' 이장은 목각 상의 눈을 만들며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

 

 "자세한 본 내용은 가서 들으셔야 하겠지만, 아마 사제들의 호위를 요청하실 모양입니다."

 

 "허허.. 채 신부 그 양반이 나이를 잡수더만, 어릴 적 총명함이 다 바래버린 모양이야."

 

 "거절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장은 목각을 상 위에 놓고선, 차분한 눈으로 제롬을 바라보았다.

 

 "거절이 아니야. 지금 그게 불가능해."

 

 "혹시 당장 못 움직일 연유가 있으십니까?"

 

 "이봐, 불거인. 넌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아나?"

 

 "...제롬이라고 합니다. 검노인 분의 조직에 대해선 자세한 내막까진 모릅니다."

 

 "우린 너희처럼 신화에서 파생된 최초의 종족 같은게 아냐. 너희들을 질투한 인간들이 만든 불안전한 피조물들이지."

 

 이장은 자세를 고쳐 앉고선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는 준영을 바라보았다.

 

 "어이, 어린 신부야. 무슨 내용인 줄 알겠어? 우린 인간의 몸을 쟤네들처럼 개조시키고자 해서 만들어진 거야."

 

 "그럼 이장님도 연구에 참여하신 겁니까?"

 

 "참여는 개뿔.. 그냥 우리는 다 실험체였어. 우리처럼 숨어서 화적질이나 일삼던 놈들 전부 실험체로 끌려갔지. 그때 어머어마하게 죽었지들.. 근방에 더 이상 묻을 곳이 없어서 시체를 다 태워야 했을 정도니깐.."

 

 이장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머리가 가려운지 주먹칼로 머리를 긁었다.

 

 날카로운 칼날에 이장의 머리카락과 두피가 벗겨져 사방에 날렸지만, 이장은 개의치 않았다.

 

 "뭐.. 어쨌든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은 했어. 어느 순간 피가 나도 금방 그치고, 뼈가 부러져도 금방 붙더구먼. 다들 실험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어. 근데 딱 하나, 아무도 생각 못 한 것이 있었지."

 

 두피를 긁던 칼날이 순간 이장의 머리에 박혔다.

 

 찌걱찌걱- 이장은 자신의 머리가 목각인양, 주먹칼을 찌르고 뽑고를 반복했다.

 

 사방에 피가 튀었지만, 이장은 개의치 않았다. 준영만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피가 낭자한 자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그만두십시오!"

 

 "왜? 이해가 안 돼? 어차피 우리는 다 나아. 그래서 괜찮단 말이지."

 

 "그렇다고 굳이 자신을 상하게 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장이 검지를 폈다. 그리고 마치 학생을 대하는 것처럼 준영을 칭찬했다.

 

 "정답. 그것이야. 그것이 인간들이 상식이고 이성이라 믿는 것들이지. 그런데 말이야, 실험체였던 우린 뭐가 문제였는지 그런 범법 정신이나 상식, 윤리 같은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어. 간단히 말하면 실험체들 전체가 여덞 살 난 애들처럼 굴기 시작했단 말이지. 이.. 머릿속에 있는 뇌가 이상하게 일그러진 거야."

 

 제롬은 이장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았다. 검노인의 사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든, 그에겐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부여받은 일이었다.

 

 "그러한 내용이 채 신부님의 부탁을 거절할 명분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검노인 분은 신부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 하셨습니다."

 

 "하.. 거절이 아니라니깐. 지금 그게 불가능하다고."

 

 "연유를 말씀해 주셔야 저희도 납득을 합니다."

 

 "그럼 잠자코 들어. 그 실험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살인이었어. 그것이야말로 짐승들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니깐. 곧장 기관의 모든 곳에서 살육이 일어났지. 그리고 얼마간이 지나자 다른 흥미를 찾기 시작했어. 과연 그게 무엇일까?"

 

 "성교.. 겠죠."

 

 제롬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지극히 원초적인 단어에 준영이 벙 찐 얼굴로 제롬을 보았다.

 

 "끌끌.. 역시 잘 아는구먼. 이 정신 나간 실험체들은 오로지 호기심에 의해서만 움직이더라구."

 

 이장은 더 이상 자신의 머리를 찌르는 행위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주먹칼에 잔뜩 묻은 피를 목각에 바른 뒤 대충 옆으로 던져버렸다.

 

 ".. 난 그나마 이성이 남아있는 녀석들을 이끌고 수장 노릇을 시작했어. 그리고 녀석들을 최대한 인간답게 교육시켰지. 그건.. 진짜 어려운 일이었어. 마치 수십 명의 아이들을 이끄는 보모가 됐다고 해야 할까?"

 

 "그게 어느 정도 성공하셨기에 여기까지 오신 거겠죠."

 

 "그래, 그 여기까지 온 게 문제야! 재수 없는 일이지.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 해서 이 섬에 오면 안 됐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너 주변을 살면서 누가 보이디?"

 

 "하숙집의 중년의 여성분, 그 옆집엔 노인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 이장님."

 

 "이상하지 않냐?"

 

 "무엇이 말입니까?"

 

 "화적떼 하다 잡혀 온 놈들은 늙어봐야 서른 초중반이었어. 그리고 실험이 성공한 우린 육체적으로 늙지 않아."

 

 "그럼 이 섬에 들어온 이후에 노화가 진행되었단 말입니까?"

 

 "이 섬엔.. 할 게 없어. 이곳에 정착한 지 오년도 안 돼서, 우리들은 충족할만한 호기심 거리를 모두 소모해 버렸지. 그리고 다시 몇 년 지나니깐 사람이 확 늙어 버리더라구."

 

 "... 무슨 뜻인지 대략 짐작하겠습니다."

 

 이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뭐, 의뢰가 단순 살인 청부 같은 거면 얼마든지 가능해. 아무나 보내도 그런 건 천부적으로 잘할 수 있어. 하지만 하루 만에 몇 년씩 늙어버릴지 모르는 이 미치광이들에게 호위를 맡겨? 새벽녘에 목이나 안 따이면 다행이지.."

 

 시꺼먼 엄지로 코를 파던 이장은 제롬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갈 수도 없어. 당장 내가 사라지면 이 섬의 놈년들이 어떻게 될지 장담조차 할 수 없으니깐. 이 섬이 난리 통이 되는 건 채 신부도 바라진 않을 게다.“

 

 제롬은 진정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장의 말이 다 사실이라면, 이장 대신 누구를 데려간들 의미가 없었다.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폭탄을 데리고 움직이는 꼴 아닌가.

 

 그 순간, 이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젠장, 잊은 게 있었구만.."

 

 제롬은 빠르게 이장의 표정을 읽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경악에 찬 눈으로 준영을 향해 외쳤다.

 

 "피해요, 수사님!"

 

 제롬은 다급히 준영을 발로 찼다. 준영이 발길질에 밀려 벽에 부딪히는 순간, 문이 폭발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먼지와 잔해 사이로 검날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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