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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면진(免震)
작가 : 디비
작품등록일 : 2018.11.2

이해하지 마! 우린 그저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 뿐이야. 누구 하나 몰라도 돼. 아니 몰라야 해.
우리 사훈(社訓)이 면진(免震)이야! 그러나 정세현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업물][경제물][경영물][드라마][성장물]


소설을 처음 써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지명,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굿바이(Good bye) 노랑이
작성일 : 18-11-15 03:54     조회 : 390     추천 : 0     분량 : 9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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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연신 정세현의 뺨을 때렸다.

 “괜찮아? 이 새끼 죽었나?”

 정세현에게 가장 먼저 달려온 건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었다.

 “괜찮지?”

 바로 뒤따라온 '돈됐구만’사장은 못마땅한 듯 노랑이 로빈 이재성을 쳐다봤다.

 “형은 시발 이게 지금 괜찮은 걸로 보여?”

 노랑이 로빈 이재성 역시 ‘돈됐구만’사장을 못마땅한 듯 쳐다봤다.

 정작 정세현은 고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세현이 드럼통 테이블의 작은 구멍 속으로 막대 라이터를 넣어 불판에 불을 붙이는 순간 드럼통에 가스가 모여 있다가 터졌다. 밸브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거나 실수로 잠그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히 가스가 모아져 있는 양이 많지 않아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정세현의 앞 머리카락은 그을렸고 눈썹은 이미 다 타서 얼굴 모습이 흡사 모나리자 같았다. 웃겼지만 괴기스러웠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따갑고 쓰라려 손으로 얼굴을 비비려는 순간 정세현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와 정세현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물론 이 와중에 소주병 뚜껑을 따기 전 팔꿈치로 소주병 바닥을 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세현의 얼굴은 점점 더 벌게졌다.

 “괜찮을 거야. 이거 시야시 이빠이 된 거 알지?”

 ‘돈됐구만’의 사장은 이 광경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잠깐이었다.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서비스로 콜라 준비하겠습니다.”

 테이블에 앉았던 남녀 손님은 서로 애인인 듯했다. 다치지는 않았다. 모든 폭발과 화염은 드럼통 테이블 구멍을 통해 불을 붙이려고 쪼그려 앉아 있던 정세현이 얼굴로 다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돈됐구만’의 사장은 노랑이 로빈 이재성에게 눈짓을 줬다.

 “데리고 나가서 잠깐 바람 좀 쐬고 와. 진정되면 들어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정세현을 부축하고 입구를 나가려는 찰나 ‘돈됐구만’사장이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옆구리에 전단 묶음을 끼워 넣었다.

 “놀면 뭐 하냐. 돌려.”

 건물 입구 옆 쓰레기를 쌓아 놓은 곳으로 내려온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전단 묶음을 쓰레기봉투 안에 다 던져 집어넣었다.

 “아니 시발, 병원 가보라는 소리가 목구멍으로 안 나오나? 돈 아깝다 이거지?”

 여전히 시선은 지나가는 여자들을 쫓고 있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정세현에게 담배를 권하며 힐긋 쳐다봤다.

 “너 우냐?”

 정세현은 서러웠다. 눈물이 얼굴을 따라 흐르자 얼굴이 더 화끈해지기 시작했다.

 “뭘 이런 걸로 울어? 별일도 아니구만. 그래도 나 쩔지. 어떻게 그 순간 소주를 생각했지. 지금 다시 하라면 못 할 거야.”

 생각만 해도 만족스럽다는 듯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담배 연기로 맛있게 생긴 도넛을 만들어 냈다.

 “근데 소주?”

 “왜? 소주 알코올이야. 시원하고 소독도 되고 일석이조!”

 정세현은 과연 적절한 응급처치였는지가 궁금했다. 일하면서 난 사고였기에 그에 따른 보상이 제일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인트가 소주의 응급처치로 향했다.

 “오늘은 그냥 째자. 사장 새끼 똥줄 좀 타게. 오락실 콜? 넌 뭐 잘해?”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기지개를 켜며 먼저 일어섰다. 정세현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뭐 해?”

 “전......”

 “그럼 알아서 해.”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이내 인파 속으로 파묻혔다.

 ‘돈됐구만’사장의 입장에서 똥줄이 타고 속에서 천불이 난 것은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모습을 감춘 뒤였다. ‘돈됐구만’사장은 항상 주류와 식료품의 대금을 수금하러 온 업자들에게 돈이 없다며 2달씩 뒤로 미뤄 업자들의 애를 먹이고 있었다. 결제를 하더라도 한 번에 주는 법이 없었다. 3번이나 5번에 걸쳐 나눠서 줬다. 그런 ‘돈됐구만’사장이었지만 항상 지갑은 현찰 다발로 두둑했다. 순전히 영업시간이 끝날 때쯤 찾아오는 여자 친구에게 자랑하려는 목적이었다. 다량의 현금을 소지하고 다닌다는 건 소문이 빠른 유흥가에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금고행이었다. 새벽에는 은행의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의 영업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전날의 매상은 금고에 보관했다가 다음 날 입금하는 식이었다. 간혹 편의점에 현금지급기(CD)가 설치돼 있었지만 1998년 초에는 설치된 곳이 그리 많지 않았고 말 그대로 현금 출금만 할 수 있었다. 장사가 잘되는 날은 5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꽉꽉 찼다. 하루에 매장 테이블 회전율이 3회에서 4회가 됐다. 하루 매상고가 18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였다. 그런 날 금고에서 돈이 없어졌다. 정세현이 가게에 출근했을 때 ‘돈됐구만’사장은 다짜고짜 정세현의 따귀를 때렸다.

 “너냐?”

 정세현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았다.

 “네가 가져갔냐고?”

 “아이고 삼촌 왜 그래. 그렇다고 다짜고짜 이러면 어떡해.”

 ‘돈됐구만’사장을 말린 것은 주방 아줌마였다.

 “이모, 정말 몰라요? 노랑이 새끼 연락처나 사는 데?”

 “아휴, 몇 번이나 말해. 난 모르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주방 아줌마와 노랑이 둘의 관계를 뭔가 안다는 듯 '돈됐구만'사장은 주방 아줌마를 쏘아붙였다.

 “넌 노랑이 연락처 알아?”

 “아휴 자꾸 왜 얘한테 그래. 삼촌 나가서 화 좀 식히고 들어와.”

 “아 시발.”

 주방 아줌마에게 억지로 떠밀려 나가던 ‘돈됐구만’사장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발에 차이는 건 뭐든지 차고 나갔다.

 “괜찮아?”

 주방 아줌마가 정세현에게 휴지를 건넸다.

 “어제 금고에 있던 돈이 없어졌나 봐. 그래서 저리 방방 뛰는 거야.”

 정세현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넌 아니지?”

 정세현은 더 서러웠다.

 “아니. 그게 아니고 어떻게 정말 연락처나 아무것도 몰랐다니. 뭐에 씌었었는지.”

 밖에 나갔다 온 ‘돈됐구만’사장은 다소 차분해진 듯했다.

 “아까는 미안했다. 괜찮아?”

 정세현은 아무 말도 못 했다. 화풀이 대상이 된 건 정세현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래. 준비해.”

 ‘돈됐구만’사장은 천장과 바닥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촌,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이모, 뭘 알아야 신고하든지 하죠. 그 새끼 이름이 이재성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사는 곳도 몰라. 나이도 몰라.”

  “근데 노랑이가 확실해?”

 “그럼 확실하죠. 그럼, 이모예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됐구만’사장은 답답하다는 듯 주방 아줌마를 쏘아보았다.

 “근데 어쩜 누구 하나 정말 노랑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네.”

 “아 미치겠네.”

 ‘돈됐구만’사장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1998년 초에 자영업을 하는 업주들에게는 CCTV라는 개념이 없는 시대였다. 일반 영세 영업장에 설치하기에는 CCTV가 초기 시설 설치 비용면에서 엄청 비싸기도 했고 필요를 못 느낄 시기였다. 사설 보안 업체에 가입한다는 것은 돈 낭비에 호구 잡히는 일이라고 치부하던 시대였다.

 정세현도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라고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적어도 정세현에게 보여줬던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모습으로만 판단했을 경우에 그랬다. 다만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돈됐구만’사장의 돈을 가지고 날랐다면 정세현의 워크맨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사는 반지하 집을 ‘돈됐구만’사장에게 말해줄까도 생각했지만, 정세현은 그러지 않았다. 정세현은 왜 오자마자 따귀를 맞았어야 했는지도 몰랐고 돈이 없어진 사실조차 더더욱 몰랐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가져갔다는 증거도 없었다. 더구나 ‘돈됐구만’사장은 이제 더 이상 어머니 친구 아들이 아닌 정세현에게는 그저 악덕 사장일 뿐이었다. 더구나 폭행까지 당한 후였다. 정세현의 머릿속에는 어서 빨리 워크맨과 신해철 형님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세현이 한 번 신세를 졌던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반지하 집은 문과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정세현은 노크하려고 했지만 이미 반지하 집 안은 시끌벅적했다. 방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정세현이 들어가자 고스톱을 치고 있던 4명의 여자와 천장을 보고 누워 담배를 피우던 남자 2명 모두 시선이 정세현을 향했다.

 “어머 자기?”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입에 담배를 물고 열심히 패를 보고 있던 화투판의 멤버 중 하나가 반갑게 맞았다. 반송장이었다. 이제 추임새가 들어갈 차례였다.

 “자기?”

 “누구?”

 “어머, 귀엽게 생겼네.”

 나머지 화투판 여자 멤버들은 이제 3점을 먼저 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정세현의 등장은 신선했다. 모두 호기심 어린 눈빛이었다.

 “응. 내 자기.”

 “어머, 시발년. 금세 갈아탄 거야?”

 다른 색깔의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은 화투판 멤버들은 다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다들 편하게 그냥 팬티만 입고 있는 편이 나았다. 위 역시 거추장스러웠는지 브래지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젖꼭지가 도드라져 보였다. 짧은 원피스 잠옷의 용도는 단지 속옷과 겉옷의 구분이었다.

 정세현은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다.

 “역시, 화양리 588 버스답다. 자 오늘도 달립니다. 다 탔으면 오라이! 저 새끼는 몇 번째 승객이냐? 하여간 좆 나게 탔다 내렸다......”

 웃통을 까고 누워 있던 사내 둘은 정세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웃어댔다.

 “뭐래, 롸빈한테 다 말한다. 개새끼들아.”

 반송장은 일어서서 정세현이 서 있는 주방 겸 거실로 나왔다. 방 안에 있던 무리는 아직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작 정세현은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랐다. 반송장 역시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젖가슴의 봉긋한 모양이 잠옷 겉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저기 재성 씨는?”

 정세현은 바닥을 바라봤다. 또다시 반송장은 웃었다.

 “롸빈? 대공원 갔을걸. 왜?”

 “아니요. 좀 만나야 해서.”

 “자기야. 오늘 자고 갈 거야? 애들 많아서 불편할 건데.”

 반송장이 방안을 쳐다보자 동시에 방 안에서 휘파람과 환호성이 들렸다.

 “오 시발 오늘 라이브야?”

 “하긴 개좆 같은 거. 보는 게 더 꼴리는 법이지. 오늘 자빠져 자기는 다 틀렸네.”

 반송장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게 아니고 재성 씨 꼭 좀 만나서 물어볼 일이 있어서요.”

 “그래. 자기야. 그럼 대공원으로 가봐. 거기 있을 거야.”

 “대공원이요?”

 “응. 몰라?”

 반송장은 주섬주섬 외투를 꺼내 들었다.

 

 대공원을 둘러싸고 있던 펜스는 넘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높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중간에 간이 화장실이 나타났다. 그때까지 반송장과 정세현은 아무 말도 없었다. 간이화장실 뒤편의 펜스 밑에 개구멍이 하나 파여 있었다.

 “이리 들어가.”

 겨울이었지만 간이 화장실의 밑 부분에서 나는 대소변 냄새와 주위의 오물들로 인해 정세현은 멈칫거렸다. 하지만 노랑이 로빈 이재성을 만나야 했다.

 “쭉 가다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또 쭉 가다 보면 원숭이 우리 있어. 그 뒤 수풀로 들어가면 작은 벤치 하나 있을 거야. 거기.”

 “고마......”

 이미 반송장은 다시 3점을 내려고 뒤돌아 종종걸음으로 정세현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대공원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넓어 잘 찾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철제 케이지가 보이면 앞으로 가서 푯말을 보고 원숭이 우리가 맞는지 확인 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느낌상 대공원 안에는 노랑이 로빈 이재성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간신히 찾은 원숭이 케이지에는 원숭이의 고약한 체취만이 풍겼다. 원숭이들은 사육동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그 뒤로 정말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수풀 사이로 사람 발길의 흔적이 보였다. 정세현이 수풀 깊숙이 들어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앉아 있는 벤치로 다가갈 때까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등 뒤쪽에서 정세현은 살짝 손으로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등을 치며 아는 체를 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깜짝 놀라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곧바로 정세현 쪽으로 돌아앉았다. 많이 놀란 듯 보였다. 낯선 이방인을 맞이한 칼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어떤 새끼야?”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아직 긴장을 풀지 못했다.

 “저, 재성 씨?”

 “누구?”

 정세현도 마찬가지로 칼을 보고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세현?”

 그제야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칼을 거뒀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벤치에 앉으며 바닥을 손으로 두드렸다. 정세현에게 같이 앉을 것을 권했다.

 “어떻게 알고 왔어?”

 “재성 씨 집에 들렀는데 여자 친구분께서.”

 “세리가 엔간히 너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 있는 곳도 알려주고. 그러게 그날 한 번 하라니까.”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웃어 보였다. 반송장의 이름은 세리였다. 물론 진짜 이름이 아닐 수도 있었다. 정세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워크맨과 신해철 형님을 구해야 했다. 벤치 가운데에 소주병과 검은 비닐, 돼지 표 본드 깡통이 놓여 있었다. 대단한 의식을 치르려는 듯 보였지만 정세현은 이미 반송장 아니 세리의 헌 코에서 정답을 알고 있었다.

 “왜?”

 밑도 끝도 없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 이내 사라졌다.

 “아니 그게 저.”

 “사장 새끼가 가보래?”

 “아니요. 그게 저.”

 정세현은 워크맨과 신해철 형님 테이프를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모금밖에 못 줘.”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소주를 병째 건넸다. 정세현은 한 번에 반병을 들이켰다. 태어나서 처음 마셔보는 술이었지만 어차피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세계에서는 이게 당연한 것이었다.

 정세현의 가슴은 터질 듯 요동쳤다.

 “토 하지 마. 여기 더러워지는 꼴 나 못 봐.”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처음이라는 것을.

 “빨리 용건만 말해.”

 정세현은 빙빙 도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담배를 물었으나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빼앗았다.

 “지금 피면 백퍼 너 오바이트해. 그냥 지금이 딱 좋은 거 같은데.”

 정세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노랑이 로빈 이재성도 남은 소주 반병을 들이켰다.

 “응 섹스.”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더군다나 냄새나는 원숭이 우리 뒤편 수풀 속이었다. 하나 더하자면 추운 겨울이었다.

 “여기서요? 혼자? 농담해요?”

 정세현은 술기운에 용기가 나는 듯했다. 본질에서 또 벗어나고 있었다.

 “왜 니가 대줄래?”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말없이 웃었다.

 “세현, 꿈이 뭐야?”

 또 밑도 끝도 없었다.

 정세현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한국대 입학만이 전부였다.

 “왜 대답을 못 해. 내가 꿈 이뤄줄 수도 있는데. 세현, 불어 본 적 있어? 분 순간 온통 세상은 내가 바라던 곳으로 변해. 단지 그거야.”

 “아까는 섹스라고.”

 “맞아. 여기가 내 침실.”

 “이렇게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요?”

 “응. 세현 그거 알아. 사람마다 꿈이 다 틀리 듯 부는 놈들도 각기 저만의 세계가 있어.”

 “무슨 말이에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 한 새끼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뒤졌어. 왜 뒤졌을까?”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답을 구하지 않았다. 이미 술이 아닌 본드에 취한 듯 보였다.

 “그 새끼는 옥상에서 불었거든. 깨고 나면 지붕을 밟고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얼마나 자랑하던지. 또 다른 한 새끼는 주먹이나 발로 휙휙 하면 눈앞에 있는 게 다 부서졌데.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전봇대에 쏘면 전봇대가 잘려서 그걸 들고 다 때려 부쉈데. 그 새끼도 깨고 나면 그걸 휘두르면서 다 쓸고 다녔다고 얼마나 자랑하던지. 병신이 몸 성한 데가 없더라고. 그 새끼도 결국 뒤졌어. 차에 쳐서. 아마 전봇대로 차들 다 때려 부수며 다녔을 거야. 불었던 장소가 그랬는지 아니면 그 새끼들 대가리 속에서 원하는 게 그런 거였는지. 그래도 그 새끼들은 행복했을 거야. 영원히 지들 세상에 갇혀 뒤졌으니까.”

 “겨울에 여기서 그러다 재성 씨도 위험해요.”

 “뭐 어때. 얼어 죽으면. 내 세계에서 갇혀 죽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 앞이 원숭이 우리라 다행이야.”

 노랑이 로빈 이재성도 죽음은 두려운 듯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뱉었다.

 “재성 씨 세상은 어떤 세상이에요?”

 정세현은 취기가 점점 올라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빙긋 웃어 보였다.

 “나? 아까 말했잖아. 섹스. 여기가 내 침실.”

 “아니 혼자요?”

 “왜 혼자야. 매일 새로운 애인이 찾아온다고. 오늘은 그 많은 년들 중에 누가 올지 항상 궁금해.”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왜 그토록 지나다니는 여자들을 지독하리만큼 집착하듯 쳐다봤는지 정세현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거 범죄예요.”

 “뭐가? 그 년들도 말없이 왔다가 홀연히 사라진다고. 쓸데없는 소리 하려면 이제 가. 내 침실 더럽히지 말고.”

 정세현은 술김에 용기가 많이 생겼지만 명분이 있어야 했다.

 “저 ‘돈됐구만’ 그만 둘 거 에요.”

 “그래. 사장 새끼 돈 안 줄라 할 걸?”

 “그래서 그만두면 만날 일이 없을 거 같아서. 저 워크맨......”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돼지 표 본드 깡통을 흔들어 보였다.

 “고마워. 덕분에.”

 “아니 팔았어요?”

 “응. 별로 안 주더라. 그래도 뭐.”

 정세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신고할 거 에요. 그게 어떤 건 줄 알아요?”

 “신고? 뭘로? 내가 워크맨 가져간 거? 증거 있어?”

 “돈됐구만에서 돈 훔친 것도 사장한테 말하고 신고할 거 에요?”

 워크맨을 가져다 팔았다면 돈을 훔친 것도 당연했다.

 “그것도 증거 있어. 난 세현 니가 훔치는 거 봤는데. 이러면 어쩔 거야?”

 하긴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발뺌하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경찰서에서 봐요.”

 정세현은 술에 취한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돌변해서 칼을 들이밀었다.

 “뭐든 해봐. 죽여 버릴 거야. 아까 보고 왔지. 빠꾸 없는 새끼들. 잃을 거 없는 쌍년들.”

 정세현은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야이 씨발 개좆만한 새끼야.”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얼이 빠진 표정의 정세현이 재미있다는 듯 쳐다봤다.

 “나한테 이렇게 욕 먼저 하는 게 순서 아냐?”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칼을 집어넣으며 웃었다.

 “그래도 오늘 많은 여자애들 중에 만나는 년 그거 다 니 덕분이야. 아니다. 오늘은 세현 니가 나올 거 같은데. 고마워 잘 불게.”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칼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두려움이 아닌 공포였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세현은 더 이상 이 더러운 침실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수풀을 헤집고 원숭이 케이지로 나오면서 정세현은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그래. 이 개좆 같은 새끼야. 내가 뭘 그리 잘 못했어? 어 말해봐. 말해 보라고 이 개시발새끼야."

 어디서 나온 용기였을까? 알코올의 힘을 빌린 정세현의 진짜 본모습이었을까?

 속이 시원했는지 정세현은 눈물을 흘렸다.

 “그래. 씹 조지야. 이제야 좀 사람 새끼 같네.”

 멀어져 가는 정세현을 등진 채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혼잣말하며 양쪽 귀에 검은 비닐봉지를 걸었다.

 그날 이후 노랑이 로빈 이재성과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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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각기 다른 중국몽(夢) 2018 / 11 / 22 406 0 6469   
20 알제네레이션(R generation)의 태동 2018 / 11 / 20 393 0 6232   
19 굿바이(Good bye) 노랑이 2018 / 11 / 15 391 0 9016   
18 불놀이 2018 / 11 / 11 388 0 5890   
17 Here, I Stand For Money 2018 / 11 / 8 401 0 7497   
16 '돈(豚)됐구만'과 '와룡(臥龍)' 2018 / 11 / 4 412 0 6320   
15 뱃고동 2018 / 11 / 2 395 0 6728   
14 (昌祿實業) 창록실업 2018 / 11 / 2 405 0 6516   
13 충청투자 2018 / 11 / 2 389 0 5439   
12 전화위복 (轉禍爲福) 2018 / 11 / 2 402 0 4854   
11 여왕벌 2018 / 11 / 2 394 0 5947   
10 금선당 2018 / 11 / 2 419 0 6248   
9 지옥의 급행열차(2) 2018 / 11 / 2 396 0 5375   
8 밥상머리 교육 2018 / 11 / 2 429 0 5622   
7 지옥의 급행열차 2018 / 11 / 2 394 0 6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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