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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면진(免震)
작가 : 디비
작품등록일 : 2018.11.2

이해하지 마! 우린 그저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 뿐이야. 누구 하나 몰라도 돼. 아니 몰라야 해.
우리 사훈(社訓)이 면진(免震)이야! 그러나 정세현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업물][경제물][경영물][드라마][성장물]


소설을 처음 써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지명,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Here, I Stand For Money
작성일 : 18-11-08 12:45     조회 : 425     추천 : 0     분량 : 7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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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은 약속 시간에 맞춰 ‘돈됐구만’의 건물 입구에 도착했다. 왼쪽 귀에만 귀걸이를 하고 짧은 스포츠머리에 샛노랗게 염색을 한 건지 원래 머리카락 색깔이 노란색인지 모를 한 외국인 사내가 건물 입구 옆 쓰레기를 쌓아 모아 놓은 곳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연신 침을 뱉으며 담배를 피웠다.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불량스러워 보였다. 그의 입은 정세현을 향해 무엇인가 이야기했지만, 소니 워크맨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던 음악에 막혀 허공으로 흩어졌다.

 ‘돈됐구만’은 여전히 손님이 없었다. 가게 안은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만이 홀로 TV를 보고 있었다.

 “저기?”

 “아직 영업시간 아니에요.”

 주방 아줌마는 돌아보지도 않고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오늘부터 아르바이트하기로 한 정세현이라고 하는데요.”

 그제야 앞치마에 손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아 알바생.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부지런도 하다. 앉아. 이거 좀 먹고 있어.”

 주방 아줌마는 까먹고 있던 귤을 정세현에게 건넸다.

 “오다가 노랑이 못 봤니?”

 “노랑이요?”

 “응. 머리 샛노란 애.”

 정세현은 입구에서 봤던 불량스러워 보이고 양아치의 표본 같았던 사내를 떠 올렸다.

 문에 달린 종이 흔들렸다.

 “맞네. 뉴 페이스? 아까는 왜 쌩 까고 그냥 올라가? 아주 쪽팔려 죽는 줄 알았네. 오늘부터 알바?”

 정세현은 이런 대화법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영어로 인사를 할 뻔했다. 한국말이 엄청 유창했다.

 “누나, 사장 형 언제 온단 말 없었어?”

 주방 아줌마가 조선시대에 애를 낳았다면 분명 손자라고 해도 믿었을 나이대인 양아치는 거리낌 없이 누나라고 불렀다. 주방 아줌마 역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이재성. 그냥 로빈이라고 불러.”

 “전 정세현입니다.”

 “그래? 몇 살이야? 학교는 다니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학교는 당연히 다니는 것 아니었나? 어디 학교 다니냐고 묻는 것이 상식 아닌가? 사람마다 당연한 기준은 다 달랐다.

 “2월에 졸업해요. 학교는 한영외고 영어과 구요.”

 “그럼, 깔따구는?”

 “깔따구요?”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정세현과 주방 아줌마가 보는 앞에서 허리를 앞뒤로 흔들어 보였다. 정세현은 어리둥절했지만, 주방 아줌마는 너무 귀엽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보고 있었다.

 “너 뭐 하냐?”

 “어 형. 왔어. 뉴 페이스 호구 조사 중이었지.”

 언제 왔는지 ‘돈됐구만’의 사장도 와있었다.

 “깔따구 없냐고? 없어?”

 정세현은 깔따구라는 단어의 뜻부터 이해해야 했다.

 “이상하다. 너 정도 귀여운 얼굴이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사장 형도 있는데.”

 ‘돈됐구만’의 사장은 주먹을 쥐며 한 대 칠 기세였지만 귀엽다는 듯 웃고 있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사장 형을 보며 또다시 허리를 앞뒤로 흔들어 재꼈다. 유추해 보자면 여자 친구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왜 이리 깔따구에 집착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정세현은 숙맥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깔따구 없어요.”

 “그래. 그럼?”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혀를 날름거리며 두 손을 보자기와 주먹 모양으로 만들어 서로 탁탁 쳐댔다.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여자 경험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일이나 가르쳐 줘.”

 “형, 이미 세팅 다 끝냈고 뭐 일이란 게 있어요. 그냥 팍 뭐 응?”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정세현에게 어깨동무했다. 가게 입구를 나가며 ‘돈됐구만’사장에게 입을 벌려 혀로 담배 연기를 이용해 도넛을 만드는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담배 피지?”

 이게 무슨 말인가? 학생은 당연히 안 피는 것 아니었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마다 당연한 기준은 다 달랐다. 담배라도 안 배워 뒀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정세현은 외투 주머니에서 디스(THIS) 담배를 꺼내 들어 보였다.

 쪼그려 앉아 바닥에 연신 침을 뱉으며 시선은 지나가는 여자들에 고정됐다.

 “일은 어려운 거 없어. 근데 사장 형하고는 어떤 사이야?”

 “어머니 친구 아들이에요.”

 “그래? 그럼, 도망도 못 가겠네. 도망가려면 지금 가라고 이야기해주려고 했는데.”

 “네?”

 “응. 사장새끼 개새끼라고.”

 “무슨 말인지......”

 “그건 그렇고 얼마 받기로 했어?”

 “그건 아직?”

 “뭐 아무것도 몰라? 너 정체가 뭐야? 그냥 엄마 친구 아들이라 이거야? 큰일 날 새끼네 이거.”

 첫 만남부터 무례했다.

 “근데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어요?”

 정세현은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나? 집에서.”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웃으며 입으로 내뱉은 연기를 코로 다시 들이마셨다. 물레방아를 만드는 실력이 대단했다.

 “농담이고 구의동. 나 구의동 살아.”

 “아니 그게 정말 어디서 오셨냐구요?”

 “아!”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이해했다는 듯 담배를 입에 물고 손뼉을 쳤다.

 “내가 생긴 건 이래도 진퉁 코리안. 평생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죄송해요.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에요.”

 “괜찮아. 양키들은 나 보면 영락없이 한국인 취급하니까. 우리 아빠가 영국 사람이래. 확실한 건 아니고. 얼굴도 한 번 못 봤는데 뭘. 어려서부터 할머니랑 살았으니까.”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무덤덤하게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지나가는 여자들을 훑었다.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러니까 얼마 받기로 했냐고?”

 “네? 전 아직. 아르바이트가 처음이라 잘 몰라요. 얼마 받으시는데요?”

 “시간당 800원. 근데 1,000원은 받고 나가야지. 나 아니었으면 여기 돌아가지가 않아.”

 “그거 잠깐 줘 봐.”

 “뭐요?”

 “워크맨.”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손은 이미 정세현의 외투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우와. 시발 이거 죽이네. 뚜껑이 세로로 열려? 소니 WM-EX2? 이런 건 얼마나 해?”

 허를 찔린 정세현은 다시 손을 뻗어 워크맨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잠깐만 뭐 듣나 궁금해서 그래.”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허밍으로 흥얼거렸다.

 정세현에게는 모욕적이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흥얼거리는 노래는 N.EX.T의 Here, I Stand For You였다. 더럽게 날름거리던 혀로 신해철 형님을 욕보이는 것 같아 정세현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혀를 뽑아 버리고 싶었다. 정세현은 무의식 중에 기준을 나누고 있었다. 저런 양아치는 신해철 그의 노래를 알아서도 좋아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허밍 자체도 허용할 수 없었다.

 “야 준비 안 하냐? 빨리 안 올라와?”

 3층 창문에서 ‘돈됐구만’의 사장이 재촉했다.

 첫날의 인수인계는 별것 없었다. 손님이 오면 주문받고 밑반찬을 깐 다음 드럼통 테이블에 연결된 가스 밸브를 열어 긴 막대 모양으로 된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문한 고기를 내오기까지 불판을 달구기만 하면 됐다. 음료와 술은 틈틈이 주문받으면 됐다. 저녁을 제공했지만, 문제는 제공 시간이 밤 11시 30분이었다. 영업시간은 새벽 2시까지였지만 새벽에 고기를 먹으러 오는 손님들은 없었고 그 시간대는 술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을 시간이었다. 영업시간 중 가장 한가한 시간대에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제공되는 식사라고 해봐야 주방 아줌마가 해주는 계란 간장밥이나 참기름에 김치를 넣고 비빈 비빔밥, 아니면 손님들이 구워 먹고 남긴 삼겹살을 모아서 다시 밥과 볶은 볶음밥이 전부였다. ‘돈됐구만’의 사장은 같이 먹지 않았다. 이 정도는 젊었기에 참고 일할 수 있었으나 정세현에게 가장 고역이었던 점은 영업이 끝난 후 닦아야 했던 불판들이었다. 손님들이 빠지고 나면 그때그때 달궈진 불판을 물에 불려야 했다. 장사가 잘된 날은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지옥이었다. 사장에게는 기쁨이었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슬픔이었다. 사장의 지갑은 두둑해졌지만, 아르바이트생은 닦아야 할 불판이 두둑해졌다. 기름진 불판을 닦을 때 고무장갑을 끼지 못하게 했다. 맨손으로 쇠털 수세미를 잡고 미끈거리는 불판을 다 닦고 나면 비누로 손을 씻는다 해도 기름기가 없어지지 않고 손이 미끈거리고 쇳독으로 인해 손이 화끈거렸다. 서빙까지인지 설거지까지인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어디까지가 아르바이트생의 영역인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영업 종료 시각은 새벽 2시였지만 그전에 일찍 문을 닫는 경우도 있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과 같이 나온 시각은 새벽 1시 20분이었다. 손이 쇳독 때문에 화끈거리고 저려 정세현은 연신 손을 털어냈다. 날씨가 추워 더 쓰라렸다. 새벽의 유흥가 거리는 1·4 후퇴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듯 어수선했다. 술 때문인지 몰라도 부끄러움이 사라진 듯 아무 곳에서나 서서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녀, 부모가 돌아가신 듯 여기저기에서 대성통곡하는 사람들, 불륜이라도 걸린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커플 등 정세현은 살아오면서 겪어 보지 못한 광경들을 오늘 다 보는 것 같았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시선은 여자들만 쫓고 있었다.

 “에이 시발년들. 근데 너 어떻게 집에 갈 거야? 지하철 버스 다 끊겼을 텐데?”

 정세현은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집까지 걷는다면 족히 1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더군다나 새벽이었다.

 “그럼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가. 나야 집이 가까우니까 이 시간까지 때울 수 있는데 사장 형한테 내일부터 11시 40분 전에 퇴근한다고 해. 여태껏 그 시간 이후로 손님 오는 거 한 번도 못 봤으니까. 내가 장담해. 오더라도 한두 테이블은 사장 형이 카바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교통비 달라고 해야지. 그래야 택시라도 타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이렇게 친절한 사람인 줄 몰랐다. 정세현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해버린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그럴까요? 그럼 여기 공중전화 어디 있는지 알아요?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정세현이 지하철역과 유흥가 입구가 교차하는 곳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하고 나오자 맞은편 사람들 사이에서 노랑이 로빈 이재성도 같이 열심히 뭔가를 고르고 있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최신가요 믹스 테이프를 팔고 있는 리어카였다.

 “이리 와서 한 번 골라 봐. 내가 하나 사줄게.”

 정세현은 하룻밤 얻어 자는 것도 미안해서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너무 열심히 고르고 있어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고르는 척을 하다 아무 테이프나 잡히는 데로 집었다. 누가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했던가? 그 순간 정세현은 똑똑히 봤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손에 들려 있던 테이프 하나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을.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정세현이 고른 테이프를 들고 1,000원을 내밀었다. 리어카 장사꾼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얼굴을 보곤 손사래를 쳤다.

 “No. No. Sorry, Sorry, Two thousand Won. OK?”

 “뭐래. 여기 천 원이라고 써 있구만?”

 장사꾼은 놀란 눈치였다.

 “한국말 잘하네. 여기 라떼루 봐봐. SKC라고 써 있지. 그 옆에는 120. 120분짜리야. 그리고 이번 주 최신곡들이야. 이천 원 내.”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다시 천 원짜리 최신 인기가요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천 원은 던지듯 내려놨다.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새끼네. 짝퉁 파는 주제에.”

 “뭐?”

 노랑이도 지지 않겠다는 듯 가슴을 내밀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의 집은 반지하였다. 대문과 현관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환기가 잘 안 되는지 눅눅한 느낌이 들었다. 곰팡내인지 스프레이를 뿌릴 때 나는 냄새가 났다.

 방 2개 중 작은 방은 이미 쓰레기통으로 쓰이는 듯했고 나머지 방에는 이미 자는 사람이 있었다. 여자였다. 어두웠지만 허리의 굴곡이 선명했다. 팬티만 입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 깔따구. 왜 한번 할래?”

 “네? 뭘요?”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도대체 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냐는 표정이었다. 정세현에게는 농담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듯 보였다. 정세현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패륜적인 말을 서슴없이 하는지 말이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냄비에 라면 물을 올린 후 여자 친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방 안에서 나왔다. 정세현은 주방 겸 거실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 이거. 받아. 2,000원짜리. 이번 주 최신가요.”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주머니에서 최신가요 믹스 테이프를 꺼내 정세현의 주머니에 넣었다. 동시에 정세현의 워크맨을 꺼내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라면을 끓이며 흥얼거렸다. 주먹으로 마이크 모양을 만들어 허밍으로 흥얼거렸다. 또 신해철 형님을 욕보이고 있었다. 혀를 잘라버려야 했다.

 “이거 제목이 뭐야. 좋다. 노래 잘 부르네.”

 “넥스트예요. 제목은 히얼 아이 스탠 포 유.”

 “근데 계속 이 노래만 나오는 거 같다? 이것만 계속 녹음 한 거야? 미친놈같이?”

 “아니, 싱글앨범이에요.”

 “응? 뭐? 아니다. 라면 먹자. 그리고 나 오늘 하루만 빌려줘. 내일 저녁에 가게로 가지고 갈게. 괜찮지?”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라면을 먹으면서도 흥얼거렸다.

 정세현은 라면을 다 먹은 후 노랑이 로빈 이재성 옆에 쪼그리고 누웠다. 낯선 잠자리여서 그런지 쉽게 눈이 감기지 않았다. 잠깐 선잠이 들었을까?

 정세현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눈이 반쯤 풀려 산송장 같은 귀신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어제 새벽에 말한 여자 친구인 듯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연신 코를 비벼 대고 있었다. 코끝은 이미 빨갛게 부어 있었고 많이 헐어 있었다.

 “저? 이재성 씨는요?”

 “씨?”

 산송장은 즐거운 듯 힘겹게 웃어 보였다. 눈동자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 초점이 없었다.

 “롸빈? 집 앞 대공원에 갔을 거야. 자기야 누군진 몰라도 나 배고파. 라면 좀 끓여줘.”

 정세현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바닥에 검은 비닐봉지와 깡통이 널브러져 있었다. 스프레이를 뿌렸을 때 나던 석유 냄새 비슷한 것은 곰팡냄새가 아니었다. 둥근 원통형 깡통에는 돼지표 본드라고 쓰여 있었다. 각각의 비닐봉지 안에는 이미 굳어 딱딱해진 본드가 들어있었다. 정세현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단지 등록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고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다. 왜 계속 밑이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위를 보고 달려가도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던 정세현이었다.

 “자기야 나 배고프다고!”

 코를 비벼 대며 킁킁거렸다. 정세현은 초점을 잃어버린 그녀의 눈을 보면서 서글퍼졌다. 그녀의 눈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세현은 오히려 자신의 처지가 지옥이라고 느낀 감정이 어린애 장난같이 느껴졌다.

 “자기야, 담배 좀.”

 송장 귀신은 연신 요구만 해댔다.

 정세현은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갑 째 주며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이미 아침이라 해가 눈부시게 떠 있었다. 집을 향해 가는 거리의 풍경은 어제와 같았다. 단지 문 하나 차이였다.

 낯설게 선잠을 자서 그런지 오후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생각했던 정세현은 다시 ‘돈됐구만’으로 가는 길에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다.

 ‘돈됐구만’가게에 도착하고 보니 노랑이 로빈 이재성이 ‘돈됐구만’사장과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세현이 들어서자 이내 이야기를 끝냈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정세현을 보고도 웃지 않았다.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영업 시작을 한 후 운수 좋은 날인지 테이블이 꽉 찼다. 회전율도 좋았다. 노랑이 로빈 이재성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정세현의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꽂고 TV 앞에 앉아 멍하니 화면만 봤다.

 테이블이 정리되고 새로운 손님들로 채워졌다. 정세현은 이제 제법 능숙한 폼으로 테이블 세팅을 끝내고 드럼통 테이블 밑구멍으로 불판에 막대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할 찰나였다.

 폭발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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