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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을 죽이는 남자
작가 : 암영
작품등록일 : 2018.11.1

살인을 하면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남자와 여형사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

 
25화 -Copycat No. 2-
작성일 : 18-11-01 11:24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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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는 똑똑한 척 다 하더니, 이럴 때는 눈치가 없단 말이야...”

 

 연화가 어젯밤을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사실 그냥 자신은 ‘미안하다’ 한 마디면 그만이었는데. 별로 설명을 듣고 싶은데 아니었다. 그냥 사과가 받고 싶었을 뿐이지. 약간 어린애 같은 심통을 부리긴 했지만.

 

 병원밥은 원래도 그다지 맛이 있지는 않았지만 오늘따라 더욱 입에 안 맞는 듯 했다. 결국 그녀는 식사의 삼분의 일 가량을 남긴 채 쟁반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밥맛도 별로 없고. 재수 한번 없는 날이네...”

 

 ‘칼에 찔려서 죽을 뻔하고, 모방범이 나오고, 엄마랑 싸우고, 남자친구랑 싸우고...정말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이지? 이젠 시간여행을 하는 또라이를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생각해야 되고...’

 

 그런 잡생각을 하던 도중,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고 시야가 어둠에 휩싸였다. 플래시백일까? 하지만 왜? 분명 ‘그 날’ 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상황인데.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은 똑같지만...

 

 “하아...”

 

 그녀의 눈이 풀렸고, 정신은 몽롱해졌다. 속이 울렁거렸고 천장이 핑핑 돌았다. 전처럼 압도적인 공포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극도의 혼란함과 피곤함이 자리를 대신했다.

 

 “나...왜 이러는 거야...?”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제정신을 유지하며 중얼거렸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간호사 호출 버튼을 찾기 위해 손을 마구 휘저었다.

 

 후두둑-

 

 무언가가 어디에서 떨어졌지만 적어도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몇 번을 잘못된 곳을 누른 후, 그녀는 겨우 호출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됐다...”

 

 안도감과 함께 정신력도 바닥났고 연화는 옆으로 쓰러졌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녀는 확신했다-뭔가가 잘못 되었다. 아무리 그녀가 PTSD를 앓고 있다고 한들 이런 느낌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네, 부르셨습니까.”

 

 문이 철컥 열리며 간호사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그제야 연화는 마음을 놓았고 정신을 잃었다.

 

 ***

 

 “응...?”

 

 연화가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 아니었다. 여전히 정신이 몽롱했지만, 적어도 병실과는 상당히 다른 구조의 내부로는 것은 인지할 수 있었다.

 

 “아, 눈 뜨셨네요?”

 

 “네...?”

 

 뭐가 잘못된 건지, 말이 아주 이상하게 나왔다.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는 속도에 비견될 정도로 말이 굉장히 늘어졌다. 입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신이 호출한 간호사가 미소를 지었다. 분명 따듯한 미소였건만, 어째선지 등골이 오싹했다. 오감이 이곳은 위험하다고 소리쳤다.

 

 “아, 너무 무리해서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어차피 말이 제대로 안 나오실 거거든요. 약효가 빠지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어요.”

 

 “아...그런데 제가...지금 머리가 멍해요...이게 무슨 약이죠...?”

 

 연화가 겨우겨우 단어들을 입 밖으로 내자 간호사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얼굴을 하며 손뼉을 쳤다.

 

 “아 맞다! 말하는걸 깜빡했네요. 여기 병원 아니에요, 형사님.”

 

 “네...?”

 

 입이 맛이 간 걸로도 모자라, 연화의 정신까지도 아직 혼란스러웠다. 간단한 말을 이해하는데도 최소 십 초는 걸렸다. 여전히 그녀는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아 정말, 이 약이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간호사가 짜증을 부리며 주사기를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서 연화가 누워 있는 침대의 옆에 앉았다.

 

 “그러니까...한번 손이랑 다리를 움직여 보세요.”

 

 연화는 멍청한 기분을 느끼며 손발을 움직여 상체를 일으켜 세우기로 했다. 물론 몸이랑 정신이 이 모양이니 쉽지는 않겠지만...

 

 철컹철컹.

 

 ‘어.’

 

 간호사가 괴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눈이 찢어짐과 동시에 입꼬리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다. 마치 더 이상은 참기 힘들다는 듯이, 그녀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쿡...쿡쿡...아하하...! 하하하하...!”

 

 이내 깔깔거리는 그녀는 한참이 지나고 눈에 눈물이 맺힌 다음에야 웃음을 멈추고는 조소를 지었다.

 

 ‘뭐야 이 간호사...미쳤나봐...’

 

 망할 약 기운 때문에 연화는 아직도 이런 바보같은 사실외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깨어 있는 상태에 중간에 놓인 것처럼, 어떤 것들은 현실이라고 자각했지만 어떤 것들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아...정말 최고야...그 진철원도 못 죽인 형사님을 제가 잡았다니...너어어어어무 흥분되요. 저 어떡하죠? 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쩌면좋지...?”

 

 그제서야 연화는 뭐가 어떻든 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멍청아! 정신 똑바로 차려!’

 

 머릿속에서 예의 환청이 고함치자 그제서야 연화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이 간호사는 또 뭐가 어떻게 된 거고? 왜 내가 묶여있는 거야?’

 

 ‘죽기 싫으면 생각 잘 하라고 멍청아!’

 

 ‘뭐야 이거 왜 이래...’

 

 공포심에 연화가 마구 손과 다리를 움직이자, 간호사는 미친듯이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고 기계처럼 차갑고 공허한 얼굴로 연화를 섬뜩하게 쳐다보았다. 분명 그녀에게 식사를 가져다 준, 초롱초롱한 검은 눈에 귀여운 인상을 가졌던 간호사가 맞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간호사의 눈은 아예 텅 비어버렸고, 귀여운 인상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 위에 강렬한 미치광이의 인상이 더해졌다. 정말 ‘순수하게 미친’ 사람처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에요?”

 

 연화가 이를 악물고 힘을 주었지만 망할 구속은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간호사 따위가 어디서 이런 것들을 구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긴요, 형사님은 그 대단한 진철원도 못 죽인 바퀴벌레 같은 분이시잖아요? 그런 분을 제가 죽이면, 제가 진철원보다 더 대단한 인간이 되는 거잖아요. ‘희대의 연쇄살인마에게서 살아남은 여경을 죽인 간호사!’ 정말 멋지지 않나요? 전 그 더러운 아저씨보다 훨씬 더 유명해지게 될 거에요!”

 

 미쳤다. 의문의 여지 없이 제대로 미친 인간이다. 아니, 유명세를 타기 위해 살인을 하겠다는 사고 자체도 미쳤지만, 그것보다도 논리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단순히 진철원이 못 죽인 자신을 죽인다고 더 유명해 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간호사는 그런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에요...? 여긴 어디죠?”

 

 연화가 질문했다. 만약 그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면, 적어도 시간이라도 벌어야 할 테니까. 이 간호사가 유명세에 미쳐 그녀를 즉사시키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그 침대는 정신병자에서 훔쳐 왔어요~ 여긴 뭐랄까...병원에서 별로 멀리 안 떨어진 옛날 폐건물? 그쯤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정말 안 들킨 게 신기하네요...”

 

 “걱정 마세요! 제가 들킬 만한 사람들한테도 형사님하고 똑같은 약을 먹였으니까! 물론 그 약은 엄~청 관리가 철저해서, 아마 이미 다 들켰겠지만요!”

 

 하지만 간호사는 ‘들킨다’ 는 것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잡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인가?

 

 “미쳤군요. 얼마 못 가 잡힐 거라는 걸 모르겠어요? 그 병원에는 내가 아는 경찰이 있어요. 아무리 그런 짓을 해도 당신이 범인이라는 걸 제가 사라지고 나서 금방 알아차렸을 거에요.”

 

 연화가 최대한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말했다. 솔직히 미친듯이 무서웠다. 칼에 찔려서 죽어도 보고, 진철원과 일대 일로 싸워도 봤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렇겠죠. 저도 알아요. 아마도 길어 봤자 이십 분만 있으면 여기 경찰이든 뭐든 들이닥치겠죠.”

 

 “뭐라고요?”

 

 간호사는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또다시 그 괴기한 웃음을 지었다.

 

 “잡히겠죠. 그런데, 저한테 형사님을 죽이는 건 그냥 방법이에요. 제가 잡히지 않으면 안 돼요. 반드시...반드시 제가 형사님을 죽였단 걸 알아야 해요. 안 그러면 다 쓸모 없어요. 아무도 절 못 잡으면 아무도 제가 형사님을 죽였다는 걸 모르잖아요? 꼭! 제가 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된다구요.”

 

 순간적으로 간호사의 얼굴이 괴상한 웃음을 지우고는 섬뜩하게 찌푸려졌다. 마치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기가 하는 듯이.

 

 “...설마 잡히려고 날 죽이려는 거에요?”

 

 “정답입니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간호사는 어딘가에서 빠루 한 자루를 꺼냈다. 오래된 좀비 영화에서 나올 듯한 모양새였지만, 지금의 연화는 그게 무엇을 위한 용도인지 알 수 있었다. 연화의 몸이 굳었고, 사고가 멈췄다.

 

 “그, 그걸로 뭘 하려는 거에요...”

 

 공포심에 절로 말을 더듬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구속을 풀 정도의 힘은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절박한 심정으로 온몸을 뒤틀며 손과 발을 흔들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십 분은...침대에 사지가 묶인 사람 하나 죽이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랍니다?”

 

 그리고는 빠루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간호사의 얼굴은 그녀가 지금 느끼는 흥분과 황홀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마치 원하던 대학에 붙은 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티없이 순수한 기쁨이었다.

 

 티없이 순수하게 미쳐버린 기쁨이지만.

 

 “물론, 그 전에 장난을 조금 칠 수도 있지요.”

 

 그리고는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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