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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박쥐
작가 : 사각
작품등록일 : 2018.10.23

"기왕 죽을거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서."
"타 죽고싶어."

 
3화
작성일 : 18-10-30 01:29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7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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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리고 다음날 아빠는 내 방 베란다 앞에 수북이 쌓인 감자를 발견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아빠는 나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난밤 충격에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나를 배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박쥐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불안해하는 것을. 지능이 거의 없이 본능으로만 움직인다고 하기엔 너무도 지능적인 모습은 우리 가족을 또 다른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감자를 확인한 아빠는 나의 외출금지령을 풀었다. 그 대신 오전 여덟시부터 아빠의 군대와 함께 활동하도록 했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여군 다섯을 붙여 경호하게 했다. 그리고 방 또한 쓰지 않는 2층 구석방으로 옮겼다.

 

 창문이 없는, 원래는 창고로 쓰이던 방이었다. 낮 시간에 아빠가 집에 있을 수 있는 삼십 분 안에 짐을 옮기느라 나는 몇 벌의 옷과 속옷, 그리고 침구밖에 챙기지 못했다. 쾌쾌한 냄새가 가득해도 환기를 할 수 없는 방이라는 것이 슬펐지만, 원래 내 방에 계속 지내는 것보단 나았다.

 

 

 

 사람들은 대충 분위기를 눈치챈 것 같았다.

 

 

 

 집에서는 잘 챙겨도 바깥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그것도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은 딸의 안부에 늘 '뭐 그냥 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무덤덤하게 굴던 아빠가 갑자기 24시간 밀착 경호에 화장실도 무장군인을 대동토록해서, 벌써 나와 군인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멀리서 '무슨 일 있었어요?'하고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아빠의 명령이었다.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진 괜히 뒤숭숭하게 만들지 말라는. 나 또한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였지만, 때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밝히고 낮에도 조심할 것을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리고 정확히 그가 내방 베란다에 감자를 쌓아놓고 가고 나서 정확히 이틀 뒤, 사건이 터졌다.

 

 

 

 지역에서 애처가로 소문났던 혁이 아저씨가 실종되었다. 이틀 동안 나타나지 않는 아저씨를 찾아 하늘이 거뭇거뭇해질 때까지 군대를 대동해 아저씨를 찾아나선 아빠는 그 와중에도 나를 그 자리에 동행토록 했다. 집에 혼자 놔두는 것보다, 아무리 해가 지는 중이어도 바깥에 같이 있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몇 년만에 직접 눈으로 보는 어두운 밤하늘과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나 또한 예민하게 주변을 훑었다. 낮에 분명 눈으로 보았던 건물들인데도 빛 하나 없이 요새처럼 꽁꽁 싸매진 건물들이 을씨년스러웠다.

 

 

 

 하얗게 발광하는 휴대용 자외선압축기를 손에 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걷던 와중에 나는 어두컴컴한 곳에 무언가 우뚝 서있는 것을 본 것 같아 흠칫 다시 바라보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고,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어떤 것이었던 그 것이, 점점 눈에 익으면서 키가 크고 뼈대가 굵은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날은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고, 어느 날은 벽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나의 곁을 둘러싼 여군들은 아무도 내가 본 것을 보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다리 밑의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더불어 우리 집 앞에까지 왔었던 그 사람이라는 것도.

 

 

 

 아저씨가 실종된 지 5일이 지나고, 이번엔 혁이네 집에서 두 블럭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2년 전 급하게 애를 갖고 결혼한 새댁 영미씨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 3일이 지난 장날. 장이 열리는 광장 끄트머리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열여덟 짜리 소년 군인이 실종되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한 번의 사고라 생각했던 혁이 아저씨의 사건이 새댁 영미씨가 사라지면서 또 어리지만 분명 제대로 훈련을 받은 소년 군인까지 사라지니 그야말로 '보통 아닌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차마 크게 의문을 제시 할 수 없었던 것은, 혁이 아저씨도, 영미씨도 소년도 모두

 

 

 

 대낮에 실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군인까지 사라지자 사람들은 점점 낮에도 집밖을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낮 열두시 해가 머리위에서 번쩍이고 있는 지금, 휑한 광장 가운데 경호를 받으며 우두커니 서있던 나의 손목을 누군가가 덥썩 잡았다.

 

 

 내가 놀라기도 전에 군인들에 의해 나가떨어진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나는 군인들 틈으로 내 손목을 잡아채다 나가떨어진 사람이 혁이 아줌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호야, 지호야. 너는 알지? 응?”

 

 “………”

 

 

 

 밀쳐내긴 했지만 나를 경호하고 있던 군인들도 결국은 마을사람이었다. 군인이 애가 탄다는 목소리로 ‘혁이 아주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네?’ 했지만 아주머니는 다시 일어나 두 손으로 내 손을 마주잡으며 무릎 꿇었다.

 

 

 

 “지호야, 지호야. 아줌마 좀 살려줘. 우리 애가 아직 다섯 살인데, 아직 어? 응? 지호야…!!”

 

 

 

 

 아주머니의 울부짖음에 광장 근처의 집들의 문이 하나 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군인들도 당황하기 시작한 게 눈에 보였다. 모여든 인파 속에서 영미씨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녀도 다가와 내 팔뚝을 잡았다. 군인들이 다시 나를 막아서려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막았다.

 

 

 모두가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가족을 기다리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이들이 내 앞에서 울고 있었다. 7년 전 내가 그들과 같았다. 나도. 그들과 같았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마지막 단서일 것이다. 내가 갑작스레 요란한 경호를 받기 시작한 후에 그들의 가족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까. 마지막 희망. 마지막 증거.

 

 

 곧 군중들 가운데에서 항의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장 딸년 하나 지킨다고 군인들 끌어다 쓸 때부터 알아봤어!’, ‘김대장 불러와!’, ‘무슨 일인지 다 같이 쳐들어가서 따져봐야 합니다!’ 하는 성난 목소리가 천둥처럼 광장을 울렸다. 그들의 고함소리에 군인들마저 긴장한 얼굴로 내 주변에 더욱 더 바짝 붙어 섰다.

 

 

 

 

 

 “얘야 제발…”

 

 “…게요.”

 

 

 

 

 

 내 작은 목소리에 천천히 광장이 고요함을 찾아갔다. 나는 천천히 몸을 숙여 이미 주저앉아 울고 있는 혁이 아줌마와 영미씨 어머니와 눈을 마주했다.

 

 

 

 

 “어떻게든 해볼게요. 제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할게요.”

 

 

 뾰족한 수가 있다기 보단,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 것이었다. 대낮에 벌어진 납치사건. 그리고 대낮에 내 앞에 나타난,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을, 내 숨통을 조이는 것을 즐기는 듯한 박쥐.

 

 

 

 이 모든 것은 분명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철창을 넘어간 나 때문에.

 

 

 

 

 

 

 

 The Bat

 

 

 

 

 

 

 "아빠."

 

 "안된다."

 

 

 

 

 

 사무실로 들어오며 아빠를 부르는 나를 보며 아빠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전해들은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참을 말없이 아빠의 곁에 서서 아빠를 바라보았다. 서류 위에 의미 없이 펜으로 죽죽 선을 긋던 아빠가 통탄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며 '안 돼!'하고 나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그만할까.'하는 생각과 '얼른 말 해.'하는 생각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식은땀이 고인 주먹을 꽉 쥐고 내가 숨을 고른 뒤 입을 뗐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안 돼."

 

 "밤에 아저씨와 영미씨, 그리고 준환이를 찾으러 돌아다닐 때."

 

 "말 하지 마라! 듣기 싫어 나는!"

 

 "그를 보았어요."

 

 "제발. 지호야."

 

 

 

 

 아빠가 마치 애원하듯 내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나는 그런 아빠의 곁에 쪼그려 앉아 아빠의 거친 손을 꼭 잡고 올려다보았다.

 

 

 

 

 "놈이 노리는 건 나예요. 아빠."

 

 "………"

 

 "나를 미끼로 써주세요. 저도 죽고 싶지 않아요. 이거, 이거 다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

 

 "놈은 나를 그 자리에서 잡아먹진 않을 거예요. 분명 어디론가 데려가려 할 거예요.

 

 그러면, 제가 최대한 시간을 벌고 있을 때 놈을 잡아주세요. 그래야 모든 비밀이 풀려요."

 

 "지호야."

 

 "지능적이잖아요. 이런 박쥐는 아빠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요. 단순히 햇빛을 두려워하고 굶주린 짐승처럼 마구 달려들던 박쥐가 아니잖아요.“

 

 

 

 

 내 설득에 아빠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겠지. 아빠도 힘들 것이다. 내 말이 틀린 게 없으나 내 말대로 했다간 내가 위험해지니까. 하지만 나로 인해 시작된 일이기에.

 

 

 

 ”왜 내가 아닌 애꿎은 사람들을 데려가 지능적으로 공포감을 심어줬는지, 왜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아래에서 서있을 수 있는지, 혹시 그런 박쥐들이 많이 있는지."

 

 "……"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누가 알려주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해결해야 했다.

 

 

 

 

 

 

 

 

 The Bat

 

 

 

 

 

 

 

 그날 밤, 이야기를 들은 도휘가 노크도 없이 내 방에 쳐들어왔다. '너 미쳤어?!'하는 김도휘의 목소리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화난 목소리였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막상 365일 침착하던 김도휘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의 일이라면 정말 위험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도휘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실은 두려움에 누구든 같이 있어달라고 빌고 싶은 참이었으나 정말 누군가 같이 있는 다면 힘겹게 먹은 마음이 약해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내가 부탁을 하고나서도 한참동안 방문 고리를 잡은 채 문 앞을 떠나지 못하던 김도휘는 '미쳤어. 너.' 하는 그의 첫 외침과 앞뒤만 다른 말을 내뱉곤 쾅 소리내서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그래. 난 미쳤다. 미친 정의감에 사로잡힌건지, 그냥 죽고싶어 미친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지금 내게 벌어진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죽여 울었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라기 보단 내가 스스로 내 절망에 가까운 울음을 내 귀로 듣고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다시 한 번 깨닫고 싶지 않아서였다.

 

 

 

 

 

 

 

 

 

 The Bat

 

 

 

 

 

 

 

 

 다음날, 절대 오지 말라고 속으로 빌고 빌었던 밤 열한시는 야속하게도 예상보다 빨리 나를 찾아왔다.

 

 

 내내 숨어 울기만하다 눈을 뜨니 밤이었다. 무섭지만,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갈 곳이 없었다. 여기서 도망간다 해도 나는 놈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이 마을에서도 살 수 없어질 테니까.

 

 

 나는 미리 세워놓은 계획대로 아빠의 사무실에서 나와 혼자 광장으로 향했다. 맨 처음 계획은 집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나무 하나 없는 그 길은 박쥐도 숨지 못하지만 우리 군인들도 숨을 곳이 없어서 안 됐다.

 

 

 여러 허름한 집들을 사이에 둔 동그란 광장은, 언제 어디서 놈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우리 군인들이 숨죽여 숨어있기에도 좋았다. 우리 군인들의 위치가 발각될까 자외선압축기를 군데군데 꺼놓은 것 때문에 광장은 군데군데 암흑이었다. 달빛은 생각보다 밝지 않았다.

 

 

 

 냄새를 숨기기 위해 아빠와 군인들은 낮부터 밀폐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온 몸에 숯가루를 발랐다. 나조차도 우리 군인들이 어디에 매복해있는지 몰랐지만, 분명 내가 가는 길목 한곳, 한곳에 모두 다 숨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광장 중앙에 섰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확신했다. 놈은 나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너무 두려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내 울어 퉁퉁 부은 눈에 시야도 불편했다. 걸어오는 내내 뒤돌아 집으로 뛰어가고 싶은 욕구에 목구멍이 여러 번 울컥거렸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내 목숨이 하나여서도 그랬고, 작전이 들켜 놈을 어쩌다 놓치기라도 하면 다신 같은 방법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차가워진 손에 흥건하게 맺힌 땀을 바지에 벅벅 문질러 닦았다. 두 주먹을 꼭 쥐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아 입술만 달싹이고 있을 때, 탁-하며 우측 골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인가? 아니면, 우리 군인의 실수? 내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골목 중앙에 누군가 서있었다. 어두워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처럼 우뚝 서 있다기보단 큰 덩치를 살짝 웅크리고 서있었다. 웅크리고 있지만 큰 덩치… 커다란 상체에 조금 마른 하체. 이 날씨에 이상하리만큼 낡고 헐은 여름옷 차림…

 

 

 

 

 

 “거기 누구야…”

 

 “……”

 

 “너 누구야!”

 

 

 

 영웅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게 소리치려고 했지만, 우습게도 목소리가 공포감에 떨렸다.

 

 

 

 내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지 그 그림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꼭 뼈마디가 부서진 사람처럼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심장이 전과 다르게 뛰었다.

 

 

 

 분명, 분명 사람은 아니었는데 내가 본 그 놈이 아닌 것 같았다. 분명 다리 밑에서도, 며칠간 골목에서 문득문득 보았을 때도, 그는 늘 꼿꼿한 자세로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저렇게 어디가 부서진 사람같이 걸을 것 같지는 않았다. 골목을 벗어나 조금 밝아진 곳에 선 놈을 본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남자가 아니었다. 서 있는 자세도, 키도, 덩치도…

 

 

 듣기 거북한 숨소리를 뱉으며 헉헉거리던 그 놈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놈의 등 뒤에 있는 집 창문에서 반짝이는 총구를 보았다.

 

 

 

 

 아니야. 이 놈이 아니야!

 

 

 

 

 "안돼…!"

 

 

 

 

 내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러 군데에서 단발의 총성이 터져 나왔다. 흔들리는 나의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날아든 총알이 내 머리카락을 끊어내며 놈의 목에 박혔다.

 

 나의 두 걸음 앞에서 총을 맞는 그 검은 덩어리는, 곰보가 패고 구더기가 들끓는 그 구역질나는 얼굴은 분명 목을 포함해 여러 발의 총알을 맞았음에도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는 것처럼 비틀려있었다.

 

 

 내가 헉하며 짧게 숨을 들이켰을 그 때, 놈이 내게 손을 뻗었고… 그 순간 내 눈 앞이 까맣게 어두워지며 몸이 붕 떠올랐다.

 

 

 

 

 

 "김지호!!"

 

 

 

 

 김도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꼭 그때 감자를 줍던 나를 향해 땀을 뻘뻘 흘리고 달려오던 것처럼, 나에게 달려나올 것 같은 절박한 목소리였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나를 한 팔로 들어 옆구리에 끼고 내달리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각도상 얼굴을 보려면 엄청난 허리의 유연성이 필요했다. 아쉽게도 난 힘은 아빠를 닮아 쎘지만, 유연성은 우리 가족 모두가 제로였다.

 

 

 

 고개를 아무리 번쩍 들어도 남자의 얼굴은 안 보이고 남자가 입고 있는 셔츠 안에 꽉 찬 그의 가슴팍이나, 불툭하게 튀어나온 그의 목젖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던 그 괴물은 아니라는 것이고, 이 사람은 이곳의 지리를 매우 잘 알고 있고, 이 사람의 달리기는 아주아주, 아주아주 빠르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군대 중에 이렇게 힘이 쎄고 빠른 사람이 있었나. 이렇게 키가 크고 이렇게 체격이 좋은 사람이…하는 생각을 하며 '저기요!'하고 그 사람을 부르려던 그때, 땅을 보며 붙들려가던 나의 눈앞에, 갑자기 땅이 사라졌다.

 

 

 

 남자가…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천을 터는 것 같은, 아니 그보다는 더 크고 웅장한 소리가 온 몸을 감쌌고, 곧이어 느껴진 공중에 붕 떠있는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은 바닥으로 추락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보다 더 섬칫하고 소름이 돋아 오히려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달을 품은 검은 강이 물결치며 발밑에 흐르고 있었다. 책에서 글자로만 읽던 그 밤하늘을 품은 물결치는 강에, 나는 감탄보단 두려움이 덜컥 앞섰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았다. 하늘로 맹렬히 치솟은 그것은 분명… 짐승의 날개였다.

 

 

 

 검은 윤기가 흐르는 그 날개와 그 날개와 같이 까만 강물, 그리고 멀어지는 다리를 번갈아 보던 나는 현기증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벼락을 맞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멀미에 헛구역질이 밀려왔다. 박쥐일까…

 

 하지만 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박쥐는 책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는데… 그때 머리 위에서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처음 놈을 다리 밑에서 마주보았을 때보다 더. 나는 나를 안고 하늘을 날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정신을 놓았다.

 

 

 

 

 

 "그만 움직이는게 좋을 거야."

 

 "…………"

 

 "씹어먹어 버리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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