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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회색순찰자
작가 : 이현주s
작품등록일 : 2018.5.7

숲에 스산한 어둠이 내려앉거든, 작은 소리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순찰자의 화살이 그대의 심장을 찾는 소리일지 모르니.

 
10화
작성일 : 18-10-22 10:04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7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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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서벽으로부터 서쪽으로 꽤 떨어진 평원. 치열한 전투 소리도 희미하게 들리는 이곳에는 아직 삼백여 명의 오크가 남아 있었다. 예비대라기엔 돌격 준비도 하지 않고 있고, 후방 지원이라기엔 너무나 전투적으로 보이는 이들은 타오르는 시선으로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투적…… 실로 그랬다. 맨손으로 곰도 때려잡는 오크 중에서도 이들은 유별나 보였다. 우선 덩치를 보면, 성벽을 공격하는 형제들보다 훨씬 컸다. 아까 성벽 위에 올라갔던 오크가 주위의 인간을 모두 압도했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고작 그 덩치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피로 문신을 하였고, 인간의 뼈로 만든 장신구를 차고 있었으며, 깃창의 끝에는 인간의 두개골이 꽂혀 있었다. 이 앞서 말한 그 무엇보다도 그들은 어떤 오크보다도 증오에 휩싸인 눈으로 인간의 성을 눈에 담고 있었다. 이런 자들이 절대 후방 지원이나 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해답은 한 오크가 고개 숙여 말을 거는 자에게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라자.]

  라자, 즉 족장이라 불린 오크 남자가 대답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힘 있고 묵직한, 울림이 깊은 목소리였다. 기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이 상투머릴 한 남자는 주위의 오크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존재라 할만 했다. 3m에 달하는, 같은 오크조차 압도해버리는 키와 그와 걸맞는 덩치. 그러나 그를 돋보이게 하는 건 거대한 덩치도, 보통 오크는 쓰지 않는 커다란 검도, 다른 오크들과는 다른 검은 피부도 아니었다. 바로 그의 몸을 뒤덮은 흉터였다.

  오크 나이로 서른쯤 되지 않았을까. 의외로 젊어 보이는 그의 얼굴 왼쪽 이마에서 오른쪽 턱에 이르기까지, 길고도 깊은 검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튀어나온 엄니 중 오른쪽은 절반 이상 부서져 있었고, 왼쪽 턱에는 도끼에 찍힌 흉터가 남아 있었다. 큼지막한 흉터들 사이사이에는 작은 흉터들이 자리를 메웠다.

  몸은 더 심해서, 피로 진하게 문신을 했음에도 도저히 가릴 수 없을 정도였다. 가장 큰 건 왼팔이었는데 손등에서 팔꿈치 어름에 이르기까지 마치 뱀이 기어간 흔적 같은 검상이 남아 있었다.

  흉터투성이의 오크 라자. ‘울팽’은 조용히 성을 응시하였다. 칠흑 같이 검은 눈에서 싸늘한 불꽃이 일렁였다. 그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낀 오크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둘을 제외하고.

  [또 옛 생각을 하고 있나?]

  울팽에게 말을 건 자는 둘 중 하나, 왜소한 오크(그래봐야 키가 180cm에 달해 어지간한 인간보단 컸지만…….)였다. 주로 도끼, 망치, 창, 글레이브 등을 애용하는 다른 오크와는 달리 왼손엔 채찍을, 오른손엔 낫이 쥐여 있었다. 입과 눈은 귀까지 찢어져 있었고, 코가 있던 자리에는 코 대신 굵은 칼자국이 나 있었다.

  외모야 오크 사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그들 사이에선 경원시 되는 무기에 이름마저 오크어로 ‘등 뒤의 그림자’라는 뜻의 ‘그리쉬나크’, 즉 교활한 암살자를 암시하였다. 당연히도 오크 사이에서는 배척당하는 존재지만 오크에게는 드문 끈기와 인내,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있어 울팽이 가장 신뢰하는 동료였다.

  [걱정 말게. 오늘, 꼭 복수를 이룰 테니까.]

  [당연히, 그렇다. 승리는, 우리, 것.]

  어눌하고 느릿한 목소리가 뒤를 따랐다. 둘 중 다른 오크, ‘아자그’였다. 붉은 피부의 이 오크는 대체로 인상적인 얼굴을 가진 동족 사이에서도 드물게 순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퉁방울눈을 꿈뻑이며 웅얼거리는 걸 보면 심지어 귀엽게까지 보인다. 이 귀여운 녀석이 전장에선 적의 심장을 씹어먹는 놈이란 건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적 대전사는? 보이는 자가 있나?]

  울팽의 물음에 그리쉬나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 델린저 혼자 부지런히 뛰고 있다.]

  [그 여자, 싫다. 배신자, 냄새가, 나.]

  아자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반면 그리쉬나크는 낫을 들어 씩 웃어 보였다.

  [제국 암살자라. 언젠가 한 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잘 됐군.]

  [시작하겠다.]

  울팽이 말하자 시끄럽게 떠들던 둘이 입을 다물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울팽은 품에서 두루마리를 한 장 꺼냈다.

  바싹 마른 사람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였다. 가죽 상태도 그렇지만 겉에 언뜻 묻은 피가 시커멓게 변색된 걸 보아 일, 이 년 된 물건은 분명 아니었다. 그것을 본 아자그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푸른 눈에는 두려움의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그리쉬나크는 휘파람을 불었다.

  [과연! 비스페아르 산은 다른 건가……. 아자그가 두려워할 정도라니.]

  아자그가 발끈했다.

  [아니! 아니, 다! 나, 무섭지, 않다. 그저.]

  [조용.]

  왼손에 쥐인 양피지를 바라보던 울팽이 주먹을 꽉 쥐었다. 손 안에 있던 양피지가 힘없이 부스러졌다. 그러나 양피지에 인간의 피로 새겨진 문자는 부서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선명해진 채 그의 손에 남아 있었다.

  울팽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왼손을 편 뒤 단검으로 손바닥을 쿡 찌른 뒤 뽑았다. 피가 솟구침과 동시에 문자들이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그와 함께 격통이 밀려들어 왔다.

  [크으으…….]

  단련된 전사조차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울팽은 이를 부득 갈면서도 천천히 무릎을 굽힌 뒤 손바닥을 땅에 댔다. 손에 닿은 풀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순간 울팽이 억누르고 있던 목소리를 해방시켰다. 그 목소리를 들은 모든 전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 ㅡㅡㅡ!

  그 말은 이 세상 그 어떤 종족의 말이 아니었고, 그 자체로 력(力)인 말이었다. 강대한 오크들을 강제로 무릎 꿇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그리고 이계의 문을 열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한 힘이기도 했다.

  바닥에 닿은 손바닥에서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이 땅에 전염되었다. 마치 홍수가 터지듯 검은 기운은 울팽 주변을 빠르게 잠식하였다. 종국에는 그가 검은 호수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기운이 확장을 멈추자 울팽은 천천히 일어났다.

  다른 전사들과 재빠르게 자리를 피했던 그리쉬나크가 외쳤다.

  [울팽! 괜찮은 건가?]

  [괜찮냐고?]

  울팽이 엄니를 벌렸다. 그의 얼굴에는 광기에 가까운 환희가 가득 차 있었다.

  [굉장해…… 굉장한 힘이야. ‘비스페아르의 마법사왕’은 대체…….]

  그는 홀로 중얼거리며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단검에 찔린 상처가 핏빛으로 선명히 빛나고 있었는데, 쩍 입을 벌린 상처는 상처라기보다 공간이 갈라진 모습처럼 보였다. 그 속이 보이지 않는 틈새로 검은 호수에서부터 수증기와 같이 피어난 기운들이 유입되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리쉬나크와 아자그가 외쳤다.

  [이거 불안한데. 울팽! 그만 두게. 문을 닫아!]

  [그만, 해라. 형제! 죽는, 다! 그만 둬!]

  [죽는다고?]

  비웃음을 흘린 울팽이 왼손을 들었다. 하늘을 향한 손바닥 위로 검은 구체가 생겨났다. 어떠한 주문도 없이 태어난 그것은 서서히 팽창하였다. 서서히, 급속도로.

  그것이 산만큼이나 거대해지자 울팽이 말하였다.

  [죽음은 저들의 것이다.]

  그의 손이 까딱였다. 거인이 공을 던지듯 검은 구체가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빠르게 날아간 구체가 성벽과 충돌하였다. 꽝! 충돌한 구체와 성벽이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을 내었다. 부스러지는 구체와 함께 그 견고한 알키비르의 성벽이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이명이 귀를 찢는 듯 하였다. 눈이 안 떠지는 건지, 떴는데 눈에 이상이 있는 건지, 전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님! 형님! 형님! 일어나십쇼!”

  다행히 전자였던 것 같다. 어깨를 흔드는 익숙한 목소리에 무니는 번쩍 눈을 떴다. 그러나 어두워서 그를 깨운 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잔뜩 쉰 목소리가 그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마고냐?”

  “그 깡패 놈은 어딨는지 모르겠습니다. 잔해에 깔리는 건 본 거 같은데…….”

  마고가 아니었다. 무니는 눈을 깜빡였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똥통을 배치했던 기사였다.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성벽에 깔려?”

  무니가 충격에 상황을 잊어버렸다 생각했는지 기사는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놈들이 무슨 사술을 부렸는지…….”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저 멀리서 날아온 거대한 뭔가가 성벽을 강타했다. 그러자 성벽 일부가 완전히 무너졌고, 그 무너지는 성벽 위에 있던 그는 운 좋게 살았다. 누가 상황을 모르는 줄 아나.

  그는 즉시 기사의 말을 끊었다.

  “마고를 찾아와. 당장.”

  “지금 그런 깡패 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놈들이…….”

  주절대던 기사의 얼굴이 무니 앞으로 끌려왔다. 그의 멱살을 움켜쥔 무니가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서쪽 성벽이 무너졌으니 이리로 오크 놈들이 돌격하겠지. 여기, 우리가 있는 곳에.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바리케이드라도 깔까? 아니면 오천 명을 저 괴물 새끼들 앞에 세워놔? 다 뒈지라고? 그 잘난 키프로스 기사들은 오크 상대로 그리 하라고 가르치더냐? 지금부터 열심히 기도나 해! 그 깡패 새끼가 우리 목숨줄이니까.”

  그때 무니 근처에 있던 성벽 잔해가 들썩이더니, 돌조각들이 위로 튀어 올랐다. 괴성과 함께.

  “우어어어어! 형니이이임!”

  흡사 지옥에서 돌아온 몰골을 항 마고를 본 두 사람은 잠시 얼어붙었다. 이내 무니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 새끼. 하긴 뒈졌을 리가 있나. 명줄 긴 걸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새낀데.”

  무니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대가리에 피를 철철 흘려대는 마고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잡고 있던 기사의 멱살을 밀치며 말했다.

  “됐어. 이제 남은 기사 모아서 저놈이랑 여길 막아. 성벽 무너진 거, 생각보다 안 크다. 기껏해야 마차 서너 대 지나갈 정도? 저놈이 절반은 막을 수 있어. 잠깐이지만. 절반은 니들이 할 수 있지? 난 당장 지원 요청하러 갈 테니 그때까지만 버텨. 믿는다.”

  기사가 주먹을 가슴에 척 붙였다.

  “옛!

  “운이 좋으면 동벽 장수 하나쯤은 데려올 수 있겠지. 운이 좋으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려던 무니가 발걸음을 멈췄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뿌우우우ㅡ

  “이건…….”

  기사가 소리쳤다.

  “나팔 소리입니다!”

  무니가 덧붙였다.

  “키프로스 나팔 소리지.”

  무니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날려 성벽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뒤에서 마고가 “어? 혀, 형님? 저기요? 제가 형님 목숨줄이라매요?” 하고 얼빠진 소릴 냈지만 개의치 않았다.

  성가퀴에 몸을 바짝 붙인 무니는 나팔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다 욕지거릴 내뱉었다.

  “씨발! 하나도 안 보여. 어디서 울리는 거야?”

  “저깁니다. 해자 쪽입니다!”

  뒤따라 올라온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간 무니는 숨을 헉, 들이켰다.

  배들이었다. 해자에 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지만, 수십 명을 태울 수 있는 배. 그런 배가 못해도 스무 척은 떠 있었다. 그 배에서 내린 일단의 무리가 성으로 돌격하려던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든 다양한 깃발 중에서도 배에 창이 꽂혀 있는, 십자가형을 받은 피투성이 남자가 그려진 깃발이 무니 눈에 들었다.

  “죽은 디아우스 신……. 오즈릭 경일 리는 없는데. 설마…….”

  의심은 그 깃발을 든 거구의 기사가 한 손으로 휘두른 할버드로 오크를 단번에 쓰러뜨리는 걸 보자 확신이 되었다.

  ‘알베릭 경! 그렇다면…….’

  “‘들개들’! 맙소사. 들개들이다. 말도 안 돼!”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기사가 물었다.

  “‘들개들’이…… 뭡니까?”

  흥분한 무니는 저도 모르게 크게 떠들어댔다. 발설하지 말아야 할 내용들을.

  “왕에는 반대하지만 나라는 사랑하는…… 반왕 애국자들! 저놈들 전부가 최상급 기사이자 일급 범죄자들이야. 제기랄, 맙소사. 저놈들이 여기에 나타날 줄이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조직의 이름에 기사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어쩌면 저 압도적인 오크 군세와 대등하게 싸우는 저들의 무력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무니가 자신이 말이 너무 많았단 걸 깨달은 건 소리 없이 목젖에 다가온 칼날 덕분이었다. 돌아보니 다니엘이 칼을 들이대고 있었고, 신이 나서 떠들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크흠. 내가 실수를…….”

  푸학-

  무니가 헛기침을 하며 둘러대는 순간, 파육음과 함께 피가 튀었다. 목젖이 베인 시체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무니는 눈 하나 깜빡 않고 혀를 차며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죽일 필요까지야…….”

  “당신 때문이오.”

  다니엘이 무표정하게 말하였다. 그 특유의 표정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아무렇잖게 살인을 한 뒤라서 그런지 평범하게 말하는데도 쏘아붙이듯 말하는 것 같았다.

  ‘뭐, 십중팔구는 그렇겠지. 상황을 보면 그게 맞으니.’

  참 특이한 여자야,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무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일부러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나 때문에? 사람을 무슨 썩은 나무토막 베듯 담가버린 게 누군데?”

  다니엘이 날카로운 금색 눈을 무니의 눈으로 향했다. 그것뿐이었는데도 무니는 조금이라도 움찔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잠시 동안 말없이 그를 응시하던 다니엘이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어르신께 감사하시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성벽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무니의 말에 멈춰야 했지만.

  “무니 주베온스. 내 이름이오.”

  다니엘은 고개를 흘끗 돌려 무니를 보았다. 수염이 숭숭 난 지저분한 얼굴에 이가 씩 드러나 있었다.

  “오크들은 상대를 형제나 적으로 인정했을 때 이름을 알려준다지? 우리 부족도 그 비슷한 케케묵은 관습이 있소. 날 친구로 여길지, 적으로 여길지는 당신 몫이오. 다니엘 델린저 경.”

  다니엘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럼 적이겠군.”

  적대적인 태도에도 무니는 픽 웃을 뿐이었다.

  “마고도, 당신 주인도 그리 말했지. 지금은 내 부하거나 친구요. 당신도 그럴 거고.”

  “…….”

  대답 대신 무시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검은 피부의 여인은 곧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무니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하마터면 뒈질 뻔했네. 뭔 놈의 여자가 저래 쎄다냐? 안 그러냐, 마고야?”

  다니엘 뒤에 서 있던 마고가 손에 쥔 것을 놓았다. 쿵, 묵직한 뭔가가 성벽을 파고들었다.

  “저 여자, 형님과 절 동시에 치려 했습니다.”

  “칠 순 있을 거 같던?”

  마고가 망설임 없이 끄덕였다.

  “예. 방법은 모르겠지만.”

  무니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으며 파안대소했다.

  “무서운 여자야. 이거이거 반하겠는걸.”

  “저런 여잘 침대에 들이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검다.”

  진지한 조언에도 무니는 더 크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면 열한 개를 준비하면 되겠네. 아아, 잔소리는 넣어두고! 여기 애들 정리나 해. 어차피 곧 끝나겠지만.”

  “이미 물러나고 있는뎁쇼.”

  전장을 살피던 마고가 말했다. 처음엔 인간 측이 약간의 우세함을 유지하던 전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크들에게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강 너머에서 대기하던 그리쉬나크와 아자그가 이끄는 예비대의 합류였다.

  측면과 정면에 적을 맞이한 ‘들개들’은 타고 왔던 배로 서서히 물러났다. 추격해 섬멸하려던 오크들은 강 너머에서 울리는 나팔 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강으로 사라지는 배와 알키비르를 한 번씩 보고는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본 무니는 속으로 탄식했다.

  ‘앞으로 힘들겠구나.’

  오크에게는 상하가 없다. 모두가 형제고, 모두가 적이다. 인간보다 거의 모든 점에서 우월한 그들이 진즉 이 전쟁을 끝내지 못한 이유는 여기 있었다. 사냥철 같이 꼭 필요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들이 수백 명씩 무리 짓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그런 일이 벌어졌다. 오크가 수백 명 단위로 움직이고, 인간의 성을 공성하는 일이. 그것도 모자라 이젠 군대처럼 나팔에 따라 퇴각까지 한다. 전진밖에 모르는 우직한 종족이 말이다. 이건 완전히 인간 군대와 다를 거 없지 않은가.

  “다음에는 뭐, 공성 병기라도 끌고 오려나?”

  혼잣말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곧 후회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아는가. 물론 공성탑을 미는 오크의 모습이야말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그거야 내일 고민할 문제지. 오늘 일은 끝났어.’

  그는 뒷머리에 뒷짐을 지고 천천히 성벽을 내려갔다.

  그의 생각대로, 오늘 키프로스는 살아남았다. 이젠 살아남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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