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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회색순찰자
작가 : 이현주s
작품등록일 : 2018.5.7

숲에 스산한 어둠이 내려앉거든, 작은 소리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순찰자의 화살이 그대의 심장을 찾는 소리일지 모르니.

 
8화
작성일 : 18-10-21 15:01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5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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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광야에 멈춰선 늑대의 등 위에서, 앤더슨은 잠시 숨을 골랐다. 야밤의 공기를 음미하기라도 하듯 그는 천천히,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우…….”

  그가 호흡할 때마다 헐렁한 옷 아래로 흉부가 크게 팽창하였다가 작아졌다. 한 삼사 분을 그렇게 가만히 있던 그는 느릿하게 등허리에 둔 전통에 손을 뻗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에 화살 하나가 딸려 나왔다.

  그는 그 손 그대로 시위에 화살을 쟀다.

  쭈우욱-

  억센 시위를 힘껏 당긴 그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온갖 소리들이 그의 뒤로 밀려들어왔다. 전장의 소음, 귀를 때리는 세찬 바람 소리, 그리고…… 마법사들의 주문 외는 소리.

  저기다.

  그는 활을 오른쪽으로 삼십 도 가량 틀고, 화살깃을 비틀었다. 비틀고, 놓았다.

  쉬익-!

  시위를 떠난 화살이 뱀 소리를 내며 물살을 가르는 고기처럼 바람을 타고 쏘아졌다. 잠시간의 비행을 마친 살은 빨려 들어가듯 전투 마법사 뒤에 대기하던 변성 마법사의 목에 틀어박혔다. 불시의 기습에 당한 마법사는 비명도 못 지르고 픽 쓰러졌다. 너무도 조용하게 이루어진 기습이라 주위의 어느 누구도 이 죽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그 앞에 있던 전투 마법사조차.

  첫 화살을 쏜 앤더슨은 다시 천천히, 그러나 전번보다는 빠른 동작으로 화살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시위에 걸고, 다른 하나는 활을 쥔 왼손에 쥐었다. 화살이 핑- 소릴 내고는 허공에 날아갔다. 시간차를 거의 두지 않고 두 번째 화살이 발사되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간 화살들은 마찬가지로 마력포를 조작하던 마법사 둘의 목을 꿰뚫었다.

  이때까지도 제국군은 이 조용한 암살자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살을 쏜 뒤 앤더슨은 여전히 느리지만 역시 전번보단 빠르게 화살 세 개를 꺼냈다. 화살 셋이 차례로 그의 손을 거쳐 목표물을 향해 떠났다. 세 발의 화살은 먼젓번처럼 깔끔하고 정확히 적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이쯤 되니 제국군도 기습을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이미 때가 늦어 모든 마력포의 화력 지원이 사라진 후였지만.

  “적이다! 기습이다!”

  “적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순찰자 놈들이 뚫린 건가?”

  동요하는 병사들에게 베하임이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화살이 날아오는 숫자를 봐. 적은 소수다!”

  그의 독려가 무색하게도 앤더슨의 동작은 점점 빨라져 종국에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화살을 꺼내고, 재고, 쏘는 동작을 마쳤다. 덕분에 제국군은 스스로 유능한 작전 참모에 대한 신뢰를 제쳐버리고 ‘적은 다수다!’라고 믿어버렸다. 공포가 제국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마법사를 향하던 무자비한 죽음의 시선은 이제 병사를 통제하는 기사에게도 쏘아지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익숙한 간부들의 목소리가 차례로 끊겨 나가자 제국군은 자중지란에 빠졌고, 점점 와해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당장 멈춰라, 이 머저리들! 자리를 지켜! 적은 저기 있다. 고작 저 한 놈 때문에 쥐새끼마냥 흩어질 셈이냐! 너희가 그러고도 황제 폐하의 군대냐? 그러고도 디아우스 님의 군대야!”

  전장을 울리는 목소리에 오백 명의 제국군이 일제히 맨드빌 후작을 보았다. 그리고 그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맨드빌의 손가락을 따라 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동작을 오백 명이 따라하는 광경은, 우습다랄지 장광이랄지 할 만한 것이었다.

  아무튼 맨드빌의 손가락 끝에는 그가 용케도 찾아낸 앤더슨이 자리해 있었다. 재앙의 원흉을 발견한 제국군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분노하였다.

  “저, 저 개자식!”

  “감히 우릴 농락하다니…….”

  “잡아! 사교도 놈을 붙잡아 찢어 죽여라!”

  “잠깐, 지금 놈을 쫓으면…….”

  베하임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이미 눈이 뒤집힌 제국군은 앤더슨에게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그 모습을 본 베하임은 이를 갈았다. 와해는 어찌저찌 막았지만 이래서야 와해와 별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꼭지고 돌대로 돈 병사들을 그가 제지할 순 없는 노릇.

  “빌어먹을…….”

  욕지거릴 뱉으며 씨근대던 베하임은 문득 정체불명의 적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단 걸 깨달았다. 왜? 어째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때 그의 눈에 저 멀리 보이는 적의 오른팔이 뒤쪽으로 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설마…….’

  베하임은 다급히 맨드빌을 보았다. 맨드빌은 타들어가는 제 작전 참모의 속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의문이 의심이 되는 순간 그는 즉시 마법을 캐스팅하였다.

  마법을 캐스팅하는 중 겨냥을 마친 앤더슨이 시위를 놓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맨드빌을 노리고 날아갔다.

  의심이 맞아 떨어지자 베하임은 빠르게 주문을 완성하였고, 날아드는 화살에 즉시 발동하였다. 화살이 맨드빌의 머리를 꿰기 직전에.

  ‘변성 - 시간 역행!’

  주문이 발동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날아드는 화살이, 날아오던 궤적 그대로 되돌아가더니 앤더슨의 활시위를 거쳐 원래 들어있던 전통으로 들어갔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치…… 맨드빌의 술병처럼.

  잠시 어리둥절하던 앤더슨은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아하, 이게 그 돈 잡아먹는 하마가 쓴다던 그건가?”

  언젠가 로저가 말해준 제국의 괴팍한 변성 마법사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기존의 ‘물체’의 성질을 바꾸는 변성 마법을 뜯어고쳐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마법사가.

  그때 그의 귀로 으르렁거리는, 온몸의 털을 쭈뼛 서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로 중얼거리던 앤더슨은 어깨를 툭, 내리더니 늑대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체. 알았네, 알았어. 그만 하고 집에 갑시다.”

  그러자 이 거대한 야수는 앤더슨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즉각 뒤로 돌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과연 비수(飛獸)라는 별명을 가진 종족답게 늑대는 한 번 땅을 박찰 때마다 오 미터, 육 미터는 가볍게 이동하였다. 그 뒤를 성난 제국군의 고함소리가 뒤따랐다. 조금 뒤 울린 뿔나팔 소리에 금방 그쳤지만.

  뿌우우-

  아무리 분노에 이성이 마비되었다 해도 상명하복에 철저한 제국군답게 나팔 소리를 무시하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작전 종료, 무조건 퇴각’이라는 명령에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것까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나팔 소리는 전장 전역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큰 소리였다.

  “어쩌지? 대장이…….”

  “작전대로 한다.”

  시르암의 말에 다른 제국 순찰자 부대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지휘관이 없음에도 제국 순찰자들의 행동은 일사불란했다. 미리 정해둔 백 명만 계속 산개해 키프로스군을 유인하고, 나머지는 퇴각해 본대에 합류한다. 로저가 없는 키프로스군은 제국군이 완전히 퇴각할 때까지 농락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반면 똑같이 지휘관이 있는 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다! 놈들을 섬멸하라!”

  나팔소리가 들린 후 분주해진 적들의 움직임을 본 오즈릭이 멀쩡한 팔로 할버드를 방방 휘둘러댔다. 노익장을 과시한 그는 여전히 그를 부축하고 있는 헨리에게 역정을 냈다.

  “이놈! 어서 썩 가서 싸우지 않고 뭐하는…….”

  성질을 부리던 오즈릭은, 헨리의 상태가 무언가 이상하단 걸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인이 알아챈 그는 할버드를 버리고 옆의 병사에게서 횃불을 빼앗아 헨리의 얼굴을 비쳤다. 초점 없는 눈을 확인한 오즈릭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놈아, 능력 좀 쓰지 말라니까…….”

  그 말에 헨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전황보다, 네놈 눈은? 괜찮은 거냐?”

  “이번에도 다행히 장님 신세는 면한 것 같습니다. ……아마. 전황은 어떻습니까.”

  의심스런 눈초리로 잠깐 그를 훑어보던 오즈릭이 시선을 돌려 전황을 살폈다.

  “놈들이 물러나고 있다. 헌데…… 이상하군. 진형을 전혀 안 갖추고 마구잡이야. 놈들답지 않은데.”

  제국군의 진법은 키프로스군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히 정교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또 군기에 있어서는 키프로스군보다 훨씬 엄하다. 그런데 그런 제국군이 저렇게 오합지졸처럼 도망치는 건 어째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지휘관이 부재중인 것도 아닌데.

  헨리가 오즈릭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마법사입니다.”

  “마법사?”

  “예. 한 이백 명 정도. 전부 환상 마법사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두에서 적을 추적하던 키프로스 병사들이 “어?”하는 얼빠진 소리와 함께 일제히 멈춰섰다. 선두가 갑자기 멈추자 후미의 병사들이 뒤엉켰고, 키프로스군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입을 벌린 오즈릭에게 헨리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환상-실명입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상’에 빠뜨리는 마법이지만, 제국군에선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그딴 건 나도 알고 있네! 빌어먹을 베하임 놈, 애초에 이럴 작정이었군!"

  ‘애초에 이럴 작정은 아니었겠지만…….’

  본래 의도야 성벽을 무너뜨리고 성으로 밀고 들어갈 때 쓰려 했을 테지. 이렇게 전격 후퇴를 위해 쓰려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환상 마법사들의 활약으로 제국군은 무사히 본진으로 퇴각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의 죽음으로 성벽을 무너뜨릴 화력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시간이 없다 판단한 베하임은 맨드빌에게 퇴각 요청을 하였다.

  “뭘 요청을 하고 그래? 집에 가야지 뭐. 아참, 가기 전에 빅터를 데려와.”

  맨드빌의 말에 뭐라 말하려던 베하임은, 그의 싸늘한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정체불명의 적이 남쪽에서 나타난 건 그도 분명히 본 사실. 남쪽을 맡던 순찰자들이 문책을 받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옛 친구에 대한 의리는 충분히 지켰다. 날 원망하진 마라, 빅터.’

  속으로 그렇게 자위했지만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작전만 성공했다면 든든한 세력이 그의 손 안에 들어왔을 텐데. 아쉬움을 삼킨 그는 군에 주군의 명을 전달하였다.

  과연 제국군이랄까. 명이 떨어지자 전우의 시체와 마력포 따위의 장비를 챙기고 오를 맞춰 퇴각하는 데는 반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제국군이 퇴각한 후 삼십 분. 남북의 키프로스군이 제국군 본진이 있던 자리에 도착하였다. 흔적을 둘러본 로저가 적이 사라진 시간을 정확히 추정하자, 오즈릭이 말했다.

  “우리도 퇴각한다.”

  “하지만…….”

  “이봐, 애송이. 전투 아직 안 끝났다. 서벽은 아직 전투 중이란 걸 잊지 마라.”

  그 말에 로저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 부지런지 제국군을 추적하면 적을 따라잡을 순 있어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어차피 적을 쫓아낸 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다한 셈. 서벽의 상황을 모르는 이상 오즈릭의 말대로 전열을 재정비해 서벽을 지원하는 게 합당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로저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하, 그래도 나이 차가 몇 갠데 애송이라니…….”

  로저가 입술을 삐죽거리자 오즈릭이 주먹으로 그의 머릴 쾅, 내리치고는 불호령을 내렸다.

  “떽! 나이는 똥구멍으로 쳐먹은 게 어딜 감히 나이를 논해? 그리고 그 나이 먹고도 이런 것도 모르면 애송이지. 잔소리 말고 퇴각 준비나 해!”

  “아, 뉘에, 뉘에, 알겠쯥니…….”

  뒷머리에 뒷짐을 지고 있던 로저는 우르릉! 하는 굉음에 움찔하며 서쪽을 보았다. 그러나 성벽은 무사하였다…… 동벽은. 하지만 이 소린 저 너머에서 들리는 소린데……. 불현듯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 높다란 성벽 덕에 동벽 너머, 지평선 끝에 어렴풋이 보이는 서벽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무너지는 성벽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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