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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공주님과 맹수들
작가 : 체스트넛
작품등록일 : 2018.9.12

수능을 백 일 남긴 고3 임윤경.
친구가 보내준 소설 주인공, 알타로스 공국의 공주 유아나에게 빙의하다!

거기까진 좋다. 문제는, 소설 내용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그녀가 기억하는 건 충격적이고 허무했던 결말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유아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속이 시커먼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도주를 감행하지만, 국경을 지키는 하터스 백작가의 장남, 아이번 하터스에게 24시간도 안 돼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잡혀간 백작저에서, 유아나의 삶을 쥐고 흔든 남자 뢰베 공작을 만나게 되고.

가출하다 검거된 고양이처럼 목덜미를 잡혀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니인 여왕이 제국의 수도로 떠나란다.
그녀의 양 어깨에 공국의 독립이 달려 있단다!

‘나한테 이런 걸 맡겨봤자..!’
울면서도 할 건 다 하는 공주님과,

“옷 정도는 혼자 입을 수 있습니다.”
“……아이번. 단추, 한 칸씩 밀려서 끼웠는데요.”
일견 무심해보이지만 사실은 어리버리한 늑대님.

“또 그 늑대를 만나러 가는 거라면,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공주님은 제 손님이니까요.”
그리고, 또다시 유아나의 삶을 흔들려는 사자님.

의도치 않게 두 맹수를 조련하게 된 유아나의 이야기.

 
4화
작성일 : 18-09-12 19:02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6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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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 유아나는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었다.

 하나, 여왕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그래서 도망치려고 하는데 이 목걸이로 마법 쓰는 법 좀 알려주실래요?’ 라고 솔직히 말한 뒤, 미친사람 취급에 동정을 받다가 죽는다.

 둘, 미친 척 마법도 못 쓰는 상태로 무오사 숲으로 도주하다가 죽는다.

 셋, 그냥 죽는다.

 “셋 다 싫어!”

 망연자실한 상태로 방에 돌아온 유아나는 이불을 마구 걷어찼다.

 “답이 없잖아, 답이!”

 침실 밖에 선 로즈와 호위무사 맥스는 눈물 한 방울을 찔끔 흘렸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주님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번 주에 맞은 매 흉터도 아직 안 나았는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훌쩍이는 맥스의 등을 로즈가 토닥거렸다.

 “의원님한테 부탁해서 좋은 약 구해놨어요. 시원하게 맞고 오세요.”

 “로즈가 안 맞는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요!”

 “이미 화는 나셨으니, 저도 같이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두 사람은 다시 침울해졌다.

 “나보고 어쩌라고!”

 침실 안에서 유아나의 노여운 목소리가 거듭 울려 퍼졌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두 사람은 다시 눈물 한 방울을 더 흘렸다.

 

 침대에 정좌를 하고 앉은 유아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지금 명상을 하다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마나같은 걸 느껴버릴 지도 모르는 거잖아?!

 “마나야…… 마나야…… 이리 오렴……”

 될 리가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던 유아나가 감았던 눈을 치켜떴다.

 푸른 눈동자에 안광이 돌았다.

 “일기!”

 임윤경은 다이어리를 산 날 플러스 이틀 정도만 일기를 쓰는 아이였다.

 하지만 왕족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유아나는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기에 마법을 수련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같은 걸 적어놨을지도 모르는 거고!’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뛰어내린 유아나는 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일기라면, 분명히 밖이 아닌 침실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것이다.

 ‘일기처럼 중요한 건 나한테서 제일 가까우면서, 사용인들은 닿기 힘든 곳에 두겠지.’

 드레스룸의 옷을 마구 헤집던 유아나는 척척 걸어 나와 침대 쪽으로 향했다.

 제일 가깝지만 굳이 들어가지 않는 곳!

 그녀는 매트리스를 낑낑대며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아씨, 겁나 무겁네!”

 밖에서 로즈와 맥스가 기겁할만한 말을 내뱉은 유아나는 있는 힘을 다해 매트리스를 밀어냈지만, 그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매트리스를 꾹꾹 찔러댔다.

 작은 침실에서 무언가를 숨겨놓을 수 있을 법한 장소는 매트리스 밖에 없었다.

 “있어야만 하는데……!”

 급기야 유아나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매트리스 밑을 찔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매트리스 밑에는 먼지만 있을 뿐. 아니 먼지조차 없었다. 그냥 매트리스 안에는 솜만 푹신푹신하게 들어있을 뿐이었다.

 지친 유아나는 침대 밑에 풀썩 엎드렸다. 파란 쓰레기가 절그럭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부딪혔다.

 ‘……방금 그 소리 좀 울리지 않았나?’

 “아야!”

 벌떡 일어나다가 침대의 프레임에 머리를 박은 유아나가 고통스러워하며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자 목걸이가 부딪히면서, 다시 한 번 어딘가 빈 것 같은 퉁, 소리가 났다.

 ‘여기다!’

 눈을 반짝 빛낸 유아나는 빈 소리가 난 곳 주변을 더듬기 시작했다.

 한참 더듬어보니 손가락에 작은 홈이 걸렸다.

 꺅!

 환호성을 지를 뻔 한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홈 부분을 밀고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 밑 나무 바닥이 스륵 밀렸다.

 미닫이로 된 뚜껑 아래에는 소중히 보관한 듯한 책 몇 권이 들어 있었다.

 

 유아나는 전리품을 들고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누가 보면 귀신이라고 기겁이라도 할 법한 모양새였다.

 ‘제발 일기여라!’

 이렇게 꽁꽁 숨겨놓은 게 일기가 아니라면 탈세 장부 외에 무엇이람?

 어느 쪽이든 환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 더미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약간 먼지가 쌓인 표지를 슥 닦아내자 그 밑에 삐뚤빼뚤하게 쓴 글자가 보였다.

 “유아나 메티스 알타로스.”

 공들여 쓴 것 같은 어린애 글씨였다.

 이 묘한 아가씨가 어렸을 때부터 이중장부를 만들어 온 게 아니라면 이건 일기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유아나는 첫 번째 일기를 읽어내려 갔다.

 

 ‘오늘부터 게르데경한테 마법을 배운다. 마법은 재밌다. 매일 세상에 둥둥 떠다니던 게 마나라고 했다. 엄마랑 아빠가 유아나는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대마법사가 될 거다.’

 

 “…….”

 유아나가 타고난 마나친화력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걸 깜빡했구나.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면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인터뷰를 보는 기분이었다.

 유아나는 일기를 놓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그 마나…… 왜 나는 안 보이는건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이내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어떻게 하는 지를 알려달라고!”

 

 **

 

 로즈가 침실 문 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하는 지를 알려달라는 비명이 들린 후, 공주님의 방은 조용했다. 기묘할 정도로.

 식사도 거르겠다는 유아나에게 여왕이 보낸 간단한 식사를 올린 트레이를 끌어다 옆에 놓았다.

 노크를 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심기가 불편할 것이 뻔한 주인의 방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죽기보다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문을 두드리기 직전, 짧은 주마등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얌전해보이기만 한 공주님 밑으로 들어가게 됐다며 기뻐하던 과거의 멍청한 자신.

 실수가 있을 때마다 가차 없이 내려오던 매질,

 그리고 인간 이하를 보는 것처럼 내려다보던 조그만 공주님의 눈빛.

 그래. 최대한 빠르게 음식만 놓고 도망치자.

 문 옆에 선 호위무사 맥스가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생전 절대로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저 근육맨과 절친한 친구가 된 것도, 공주님의 공포정치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로즈는 결의를 다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손을 들어올렸다.

 “맥스!!! 맥스 거기 있지! 으악!!”

 타이밍 좋게 문을 열고 튀어나온 유아나가 문 앞에 선 로즈를 보고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기우뚱거리는 트레이를 필사적으로 붙잡은 로즈가 외쳤다.

 “공주님! 괜찮으세요?”

 “어. 이런 건 나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

 “……!”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공주님은 말투부터 행동까지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로즈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유아나는 로즈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맥스에게로 곧장 뛰어갔다.

 바짝 긴장한 맥스는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맥스, 검기를 쓸 줄 안다며? 그, 왜 마나로 하는 그거.”

 “예? 예. 어느 정도는……”

 “보여줘! 아니, 봐야 해!”

 “네? 네!”

 맥스는 허둥지둥 칼을 뽑아들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장소나 시간 같은 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또 매를 맞을 순 없어!’

 공주님이 요구하는 능력을 보여드리지 못 하면 좌천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 필사적이었다.

 

 유아나는 검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리는 것을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일기장에 오백번쯤 써 있던 대로 흐름이라는 걸 느껴 보려 했지만 느껴지는 건 방 어딘가로 웃풍이 든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포기하고 일기를 차근차근 읽던 중, 새 호위무사 맥스의 검기가 하찮다고 투덜거리는 대목을 읽고 문을 뛰쳐나온 것이었다.

 ‘내가 찾아낼 수 없으면 표본이라도 봐야지!’

 그리고 지금, 큰일을 보는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는 무사 옆에서 마나가 서린 그의 검만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이거, 집중해서 여기다가 흘려보내는, 그런 거지?”

 “예.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야?”

 맥스는 유아나의 반짝거리는 눈빛에 잠시 당황했다.

 그의 검에 매섭게 서렸던 마나는 맥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덧없이 사라졌다.

 맥스가 머쓱하게 검을 검집에 꽂아 넣으며 대답했다.

 “예. 공주님이 마법을 쓰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유아나는 맥스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뒤에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로즈와 눈이 마주친 맥스는 눈으로만 구조신호를 보내며 대답했다.

 “네. 그, 주변 공기의 흐름에 집중하면서 이질적인 마나의 흐름을 찾아냅니다. 조금 더 본질적이고 자유로운 느낌말입니다. 그리고 그걸 움직여서……”

 “됐어! 좋아!”

 유아나가 눈을 빛내며 무사의 단단한 팔뚝을 툭 쳤다.

 “넌 최고의 호위무사야!”

 벙찐 두 사람을 두고 방으로 달려 들어가던 유아나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팔에 그 상처자국 멋있는 걸? 최근에 영혼을 건 결투라도 한 판 한 거야?”

 찡긋, 유쾌하게 윙크까지 보낸 유아나는 로즈의 손에서 트레이를 뺏어 들고 문을 닫았다.

 “가…감사합니다…….”

 로즈가 눈물을 훔치는 맥스의 팔을 도닥여주었다.

 저번 주에 근무 중 졸았다는 이유로 받은 체벌의 흔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은, 그 팔이었다.

 “영혼을 건 결투 대신, 눈물을 흘리게 하는 체벌은 받았지요.”

 로즈는 퉁명스레 말하며 주머니에서 꺼낸 연고를 다시 한 번 발라주었다.

 맥스는 뭐가 그렇게 슬픈지 계속해서 훌쩍이고 있었다.

 “괜찮아요. 공주님이 우리한테 관심 없는 게 하루 이틀인가요, 뭐.”

 “최고의 호위무사래요…….”

 “네?”

 “공주님이 저보고 최고의 호위무사래요…… 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로즈……!”

 로즈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녀와는 다르게 맥스는 유아나의 호위를 자처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혼나면서도 공주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여전했다.

 “맥스도 참, 대단한 사람이네요. 그렇게 벌을 받아도 공주님이 좋으세요?”

 “전 최고의 호위무사니까요!”

 그 뜻이 아닌데.

 눈물을 쓱 닦고 자랑스럽게 가슴을 쳐 보이는 맥스를 보며, 로즈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방에 튀어 들어온 유아나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파이 하나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앉아 집중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마나가 모이고 그것이 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니,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다.

 ‘최고의 호위무사’인 맥스가 알려 준 팁도 도움이 됐다.

 “이질적인 감각 말이지.”

 유아나는 눈을 감았다.

 방 안 공기는 고요한 편이었다.

 웃풍이 새는 방 북쪽에서 바람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를 느끼고 있다 보니, 아까 맥스의 시범에서 보았던 푸르스름한 기운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유아나는 맥스가 그랬던 인상을 찌푸려 보았다.

 ‘아, 알 것 같은데.’

 푸우, 한숨을 내쉰 유아나는 무심코 목에 걸린 파란 돌멩이(일기장을 찾아낸 후로 쓰레기에서 돌멩이로 승격시켜주었다.)를 움켜쥐었다.

 돌은 내내 목에 걸려있었는데도 표면이 차가웠다.

 “음? 표면이 차가워?”

 유아나가 돌을 내려다보았다.

 돌 내부의 소용돌이치는 문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서서히 그 소용돌이가 퍼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아나는 눈을 손으로 비비고 다시 돌을 들여다 보았다.

 반짝이는 돌 주변으로 어떤 기운 같은 것이 빙빙 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나는 다시 눈을 감아보았다.

 어쩐지 이번에야말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물이다.”

 여전히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던 맥스가 침실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을 보며 말했다.

 “물이라구요?!”

 얼굴이 창백해진 로즈는 그대로 맥스를 밀치고 넘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침실 문이 열리며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된 유아나가 침대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 헤헤, 웃었다. 멋쩍고 기쁜 얼굴로.

 

 **

 

 씻는 것까지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일주일째 이야기 했지만, 오늘도 목욕은 네 명의 하녀와 함께 해야 했다.

 유아나는 몸을 쭉 뻗었다. 따뜻한 물에서는 좋은 향기가 솔솔 풍겼다.

 정답은 파란 돌멩이, 아니 왕가의 보물에 있었다.

 과연 가장 순수한 마나석이라고 하더니, 그것을 중심으로 방안의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맑고 상쾌한 기운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 순수하고 강력한 느낌.

 유아나는 마법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생각하면서 마나를 몸의 중심으로 끌어 모아보았다.

 그 순간,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물이 콰르르 쏟아졌다.

 침대에 앉아서 ‘마아법!’ 같은 시동어를 내뱉어보려 했던 유아나는 본의 아니게 물을 한 모금 마셔야 했고, 덕분에 그게 바닷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외로 익숙한 일인 듯, 로즈의 호출을 받고 뛰어온 하녀들은 자연스럽게 바닷물에 젖은 침실과 응접실을 치워나갔다.

 유아나는 부드럽게 머리를 마사지하는 로즈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가끔 물바다를 만들고 그랬…던가?”

 로즈는 망설이는 듯 대답이 없었다.

 “미안해. 이런 세세한 것들이 좀 기억이 안 나.”

 “괜찮습니다, 공주님.”

 로즈는 나지막이 대답하곤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주님께서는… 심정적으로 불안정하실 때 곧잘 방을 물바다로 만들곤 하셨습니다.”

 “아.”

 그 말은 지금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는건가?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아나는 이내 깨달았다.

 맞아. 나 지금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서 있구나.

 유아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불안정이라.”

 “시, 실언하였습니다! 벌을 내려주세요!”

 ……?

 유아나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 로즈를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이상했는데, 이번에야 말로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면서.

 “벌 안 줄 거야. 이딴걸로 줘서도 안 되고. 대체 내가 무슨 싸이코패스 폭군도 아니고, 왜 이렇게 날 무서워하는거야?”

 로즈는 그 말을 너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란 그녀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반쯤 포기상태가 된 유아나는 다시 욕조에 머리를 기대었다.

 

 방 안은 언제 바닷물 세례를 받았냐는 듯 뽀송했다.

 이제 마법 연습 비슷한 건 밖에서만 해야지, 생각하며 유아나는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일기장들은 하녀들이 잘 말려놨는지, 쭈글쭈글한 상태로 협탁에 놓여 있었다.

 본래의 유아나가 알았다면 극대노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유아나는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그녀는 쓰러지기 직전의 일기까지 읽은 상태였다.

 ‘오라버니가 젊은 쪽의 하터스 경과 여전히 친분을 유지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속도 좋지. 그 자가 어떤 자인데 친분을 유지할 수가 있냔 말이다.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론은, 유아나는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절대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어쩌면, 소설 속의 ‘바보 같음’은 모두 의도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떨어지게 된 것 까지도 말이야.

 유아나는 일기장을 덮어서 잘 갈무리했다.

 어찌됐든, 답은 하나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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