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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공주님과 맹수들
작가 : 체스트넛
작품등록일 : 2018.9.12

수능을 백 일 남긴 고3 임윤경.
친구가 보내준 소설 주인공, 알타로스 공국의 공주 유아나에게 빙의하다!

거기까진 좋다. 문제는, 소설 내용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그녀가 기억하는 건 충격적이고 허무했던 결말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유아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속이 시커먼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도주를 감행하지만, 국경을 지키는 하터스 백작가의 장남, 아이번 하터스에게 24시간도 안 돼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잡혀간 백작저에서, 유아나의 삶을 쥐고 흔든 남자 뢰베 공작을 만나게 되고.

가출하다 검거된 고양이처럼 목덜미를 잡혀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니인 여왕이 제국의 수도로 떠나란다.
그녀의 양 어깨에 공국의 독립이 달려 있단다!

‘나한테 이런 걸 맡겨봤자..!’
울면서도 할 건 다 하는 공주님과,

“옷 정도는 혼자 입을 수 있습니다.”
“……아이번. 단추, 한 칸씩 밀려서 끼웠는데요.”
일견 무심해보이지만 사실은 어리버리한 늑대님.

“또 그 늑대를 만나러 가는 거라면,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공주님은 제 손님이니까요.”
그리고, 또다시 유아나의 삶을 흔들려는 사자님.

의도치 않게 두 맹수를 조련하게 된 유아나의 이야기.

 
3화
작성일 : 18-09-12 19:01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6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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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아나는 몸을 홱, 돌려 보았다.

 여러 겹으로 된 얇은 치맛자락이 가볍게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꼭 곤충의 날개를 여러 겹 둘러놓은 것 같았다.

 유아나는 손을 뻗어 옷을 만지작거려 보았다.

 ‘듣던 대로 부드럽네.’

 소설 속에서 몇 번이고 강조하던 알타로스의 ‘독특한’ 의복은 천을 여러 겹 둘러 입는 형식이었다.

 독특하다고 말하는 건 옷감 때문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바람이 잘 통하고,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알타로스의 옷감은 제국에서도 구하려고 애를 쓰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또 다른 점은 제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옷을 입는다는 점이었다.

 제국의 침공을 받기 전까지는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생긴 차이였다.

 ‘그냥 숲 하나 사이에 뒀을 뿐인데도 참 많이 다르단 말이야.’

 물론 그 숲이 좀, 많이, 크긴 했지만.

 하녀는 옷을 허리춤에서 갈무리하고 허리장식을 다는 중이었다.

 알타로스인들은 언제나 재단을 최소화했다.

 알타로스에서만 자라는 식물에서 뽑은 섬유로 천을 만드는데, 그들은 그 식물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믿었다.

 그런 귀한 것으로 만든 천을 함부로 잘라 대선 안된다는 게 바로 그 이유였다.

 ‘그리고 제국의 사교계에 데뷔했을 때, 이것 때문에 큰 일 한번 치렀었지.’

 유아나는 옷을 만지작대던 손을 멈추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했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유아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생생하게, 옷을 놀리던 무리들의 대사가 떠올랐다.

 ‘어머, 본연의 몸매를 그대로 살린 드레스로군요. 책에서 본 야만족의 공주님 같아요.’

 그 후 유아나는 공작의 저택 뒤뜰에서 알타로스의 옷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아니, 그 아까운 걸 왜 태워! 하며 외치던 기억까지 함께 떠올랐다.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아나는 이내 옷으로 관심을 돌렸다.

 ‘……예쁘기만 한데. 움직이기도 편하고.’

 유아나가 옷을 감상하는 사이 하녀는 드래곤을 조각한 펜던트가 달린 허리띠를 마무리하고, 치마를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다 된 거야?”

 “예.”

 단정하게 대답한 하녀가 손을 모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잠에서 깨어나고 일주일 정도.

 하루 24시간을 붙어있는 하녀였지만 둘 사이는 데면데면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한시도 방 안에 붙어있지를 않았고, 유아나가 말을 걸 세라 눈을 피하기 바빴다. 마치 문제가 생길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엘리랑 마고도 그렇고. 내가 무섭게 생겼나?’

 유아나는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거울을 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무섭다기보다는, 강남 같은 곳에 가면 도를 아십니까를 다섯 번 연속으로 만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곱게 손질해 늘어뜨린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 강아지처럼 순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 보드라운 흰 얼굴에 작고 통통한 입술까지.

 어려 보이는데다 곱게 자란 티가 팍팍 나는 게, 쉽게 거절 한 마디 못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변 인물들은, 이 순한 얼굴을 한 소녀의 눈치를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유아나는 슬쩍 옆에 선 하녀를 보았다.

 하녀는 유아나의 치맛자락을 정리하며 흘긋 거울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체 뭐지?

 “큼, 저어, 이름이 뭐더라?”

 “예?”

 “아, 아니, 내가 기억이 잘…… 알잖아.”

 하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동요도 잠시, 그녀는 하녀 교육 교본에 나올 것 같은 자세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대답했다.

 “로즈라고 합니다.”

 “이름이 로즈였구나!”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유아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는 척 하면서, 다음에 할 수 있는 말 후보를 다섯 가지 정도 추리는 중이었다.

 그 때, 드레스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님. 폐하께서 공주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유아나는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허리를 숙인 채 눈알을 굴리던 하녀 로즈도 그녀의 뒤를 후다닥 따라 나갔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이 어색한 대화를 더 안 해도 된다!’

 

 **

 

 여왕은 집무실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창 너머로는 성 뒤에 접한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흰 톤으로 꾸민 응접실 창문으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들어왔고, 유아나는 그 햇살과 어머니의 모습이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머뭇거리며 서 있는 유아나의 등 뒤로 커다란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녀가 찻잔에 든 첫물을 비우고 진하게 우린 차를 따랐다.

 여왕은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자 부드럽게 뒤돌아섰다.

 “앉아서 차를 좀 들련.”

 유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하녀는 트레이에서 다과를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이제 응접실에는 유아나와 여왕,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어색해!’

 유아나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옥의 17시간 릴레이는, 그날의 자살 소동 이후 여왕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죄송합니다’를 첫마디로 선택한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말고 무슨 말을 해야 평범한 티타임을 가질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하는 유아나를 보며 여왕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왜 그랬는지 캐묻지 않을테니 안심하거라.”

 “……네?”

 “어찌됐든 내가 너를 살리지 않았느냐. 문득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너는 지금 살아서 내 옆에 있으니. 그거면 됐다. 더 이상은 힘들게 하지 않으마.”

 “감사……합니다.”

 여왕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유아나도 덩달아 차를 마시며 응접실을 휘 둘러보았다.

 응접실의 높은 곳엔 여왕과 부군의 결혼식 그림이 걸려 있었다.

 부군과 사별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왕은 그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 응접실의 결혼식 그림 역시 남겨둔 흔적 중 하나였다.

 “네 아버지와 나의 젊은 시절 그림이란다.”

 “예? 아, 아니.”

 여왕은 당황하는 유아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기억까지 사라진 건지, 너무도 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조금만 더 몰아세우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남편과 아들처럼.

 유아나는 여왕의 얼굴에 습관처럼 자리 잡은 슬픔을 보고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중이었다.

 ‘분명히 매우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데, 나 때문인가? 내가 풀어줘야겠지?!’

 유아나는 차로 입술을 적시고 일단 배시시 웃었다.

 “좋은 분이셨……죠? 아버지.”

 여왕은 조금 놀란 눈빛으로 대답했다.

 “비슷한 사람조차 다신 못 만날 만큼.”

 ‘망했다. 더 슬퍼보이잖아.’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건 여왕의 슬픔 버튼을 누르는 일이군.

 속에 메모 해 둔 유아나는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임윤경은 사람과 대화하는 순간이 불편해서 열심히 도망 다니던 아이였다.

 엄마라고는 하지만 만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사람인데, 벌써 친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왕이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티타임에 오겠다고 해줘서 정말 고맙다. 이번에도 오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었단다.”

 “제가 차를 좀 안 좋아했었나봐요.”

 여왕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유아나가 기억을 잃은 건, 전쟁 이후로 생긴 오랜 모녀사이의 골을 회복하라는 신의 뜻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저 지금은 차 좋아해요! 향이 너무 좋은걸요.”

 차는 그냥 냄새나는 물이라고 생각하는 유아나가 호호 웃으며 대답했다.

 여왕은 마주 웃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탁자 위에 놓인 편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참. 테오에게서 편지가 왔단다. 너와 함께 읽고 싶어서…….”

 여왕은 잠시 유아나를 애틋하게 바라본 뒤 조용히 편지를 건넸다.

 “네가 좀 읽어주겠니?”

 “제가요?”

 “네가 편지를 읽는 소리가 듣고 싶었거든. 항상.”

 유아나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바다 위를 나는 드래곤이 새겨진 공국의 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유아나는 여왕이 건네는 편지칼로 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내들었다.

 “어머니. 테오입니다. 이곳은 날이 갈수록 추워지고 있습니다. 몸은 건강하신지요…….”

 그 순간, 물밀 듯이 기억이 밀려들어왔다. 유아나는 깜짝 놀라 기침을 했다.

 “켁, 쿨럭!”

 “아가, 괜찮니? 여봐라, 당장 의원을 불러라!”

 “아, 아뇨. 괜찮아요. 갑자기 읽으려니, 긴장돼서.”

 여왕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유아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수도에 끌려가 기사수업을 받으며 제국의 법도를 익히던 오빠가, 기사 서임을 받기 전에 휴가를 내어 고향에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편지를 부치고 출발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아마 이 주 정도 후에야 도착할 것 같습니다. 얼른 보고 싶습니다. 사랑을 보내며, 테오.”

 “테오가 돌아온다니!”

 여왕이 보기 드물게 흥분하며 말했다.

 “유리스!”

 “예, 폐하.”

 문이 열리고 시녀가 들어왔다. 처음 눈을 뜨자마자 공주님이 정신을 차렸다며 호들갑을 떨던 그 여인이었다.

 “이 주 뒤에 테오도르가 알타로스에 도착한다. 환영 연회 준비를 지시하도록!”

 얼굴이 확 밝아진 유리스가 호들갑을 떨며 손뼉을 쳤다.

 “어머나, 세상에! 테오도르 왕자님이 돌아오신다니, 이런 경사가 다 있나! 걱정 마세요, 폐하. 제가 아주 멋들어지게 준비 해 놓을 테니까!”

 여왕은 신나게 연회 계획을 세우는 유리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유아나는 편지를 들고 있는 팔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갑자기 떠오르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 머리가 어지러워 왔다.

 유아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옷을 갈아입을 때 떠올랐던 대사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다녔다. 잊고 있던 소설의 내용이었다.

 편지를 뜯어보고 기뻐하는 유아나와 여왕, 환영 연회 준비에 분주해진 왕성.

 그리고 예정되었던 기간을 놀랍도록 단축해 한 주 뒤에 도착하는 테오.

 국경을 넘은 건 공국의 마차가 아닌, 검은 배경에 황금빛 사자가 그려진 뢰베 공작가의 마차였다.

 사냥을 마친 사자무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던 유아나.

 그리고 무서우면서도 이상한 느낌으로 거세게 뛰기 시작하던 유아나의 심장까지.

 마치 방금 겪은 일인 것처럼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유아나는 쿵쾅거리는 가슴께를 손으로 눌렀다.

 진정을 해야하는데, 진정할 수가 없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어머어머, 춤추는 거 괜찮겠다. 테오님은 옛날부터 춤을 좋아하셨잖아요. 제국에서 몇 년 살았다고 춤을 잊진 않았을 테니!”

 “그래. 무도회를 열어서 그 녀석 춤 실력이 녹슬진 않았는지 확인해야겠구나. 유아나, 넌 어떠니?”

 “네? 네. 좋아요. 춤. 좋죠.”

 여왕이 유아나의 안색을 살피곤 놀란 어조로 되물었다.

 “또 몸이 좋지 않은 것이냐. 의원을 부를까?”

 유아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 말짱해요. 진짜로.”

 잠시 망설이던 유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준비를 서둘러야 하진……않을까요? 혹시라도 예정보다 일찍 도착할지도 모르잖아요.”

 “알타로스의 마차를 타고 온다면 이 주도 빠듯할 것이다. 그래도 서둘러야겠지. 십 년 만이니 성대하게 연회를 열어야 하지 않겠니.”

 “그렇겠죠…….”

 유아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유리스는 신나서 연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유아나는 한 시간을 더 그곳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

 

 터덜터덜 복도를 걷는 유아나는 지금 머리가 최고로 복잡했다.

 편지를 한 문장 읽자마자 갑자기 떠오른 기억들.

 가까이 다가가야만 실체를 볼 수 있는 짙은 안개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전환점을 만나면 기억이 나는 모양인데. 문제는 그 전환점이 뭔지 모른다는거지.’

 오빠의 편지가 도착한다는 것도, 여왕이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 했다.

 그렇다면 마차가 도착하고 나서도 기억하지 못 하는 어떤 전환점이 있을 것 같았다. 그 뒤의 소설 내용들이 떠오르는, 전환점이.

 “으아아아, 나보고 어쩌라고!”

 유아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로즈와 호위무사가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은 눈알만 굴려 신호를 보냈다.

 ‘공주님이 화나신 것 같으니 몸을 사려라!’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고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공주님 뒤에 가만히 서 있기를 선택했다.

 “역시 도망쳐야겠어.”

 “뭐라구요?!”

 로즈가 놀라서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곧이어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고, 호위무사는 근육질 팔로 로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응?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유아나는 누가 봐도 당황한 얼굴로 하하, 웃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로즈는 여전히 입을 틀어막은 채로 호위무사를 올려다봤다.

 “…….”

 “…….”

 두 사람은 또다시 눈빛으로 의견을 나눴다.

 ‘공주님이 평소와 많이 다르시다.’

 ‘무례한 말에도 화를 안 내신다!’

 그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유아나의 뒤를 쫓았다.

 

 **

 

 방에 돌아온 유아나는 침실 밖에 딸린 응접실에 앉아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단,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건 위험하다.

 더군다나 이 유아나라는 인물도 심상치 않다.

 사실 그녀는, 알타로스에서는 주인과 시종의 관계가 원래 그렇게 딱딱한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설에서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맹하고 순해보이는 유아나조차 무서워하고 떠는 시종들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더한가보다,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왕이 아랫사람들을 대하는 걸 보고 그녀는 확신했다.

 ‘얘, 어딘지 뒤가 구린 것 같다.’

 우락부락, 유아나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호위무사도 그녀가 이상한 기색을 보이면 뻣뻣하게 긴장했다.

 로즈라는 하녀 역시 그랬다.

 그저 주인이 조금이라도 심기가 상할까봐 노심초사 하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 속에서 그려졌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대로 운명에 몸을 맡길 수는 없지.

 유아나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신체의 일부라도 되는 듯 가지고 다니는 이 목걸이는 유아나 마법의 전부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아니었다. 그냥 무거운 파란 쓰레기일 뿐.

 “윙…… 가르디움 레비오우사.”

 그래. 이건 아닐 것 같았다.

 혹시 몰라 읊어본 주문도 효과가 없었다.

 입맛을 다신 유아나는 다시 파란 쓰레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응접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에게 말을 걸었다.

 “저어, 혹시 내 마법 선생님은 어디에 계신지 알아?”

 “공주님의 마법 선생님이라면…….”

 우락부락한 호위무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게르데 경은 돌아가셨고…… 혹시 폐하 말씀이십니까?”

 “…….”

 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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