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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13 무형-4(강혁)
작성일 : 18-08-11 07:08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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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경고에도 강혁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무형을 구현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물결의 이미를 형상화했지만, 잘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어떻게든 구현하려 용을 썼다.

  그렇게 한참 뒤에 구현된 것은 고생해서 나온 물결이었지만, 태양이 생성한 검 같이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영이 공원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응용력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볼품없는 모습이었기에 강혁은 점점 초조해졌다.

 “사부, 그거 물결이에요? 어떻게 하신 거죠?”

  루나가 자그마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에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빛이 반사 되서 일까, 강혁의 무형(물결)은 멋은 없었지만, 빛나고 있었다.

  강혁은 그녀를 쳐다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고, 무형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 잊어버렸던 예전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루나야 그 때 기억나니? 우리가 처음 만나고, 지금 이렇게 지낼 수 있던 일에 대해서 말이야.”

 “그 일이요?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래됐었죠?”

 “잠시 옛날이야기를 해볼까?”

 

 

  몇 년 전까지 종합격투기 유망주였던 강혁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두각을 보이는 준 프로였다. 비록 정식 프로는 아니었지만, 재능과 가능성,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에 어느 정도의 지지기반도 생길 정도로 장래에 뛰어난 선수가 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특히 그가 가장 강점을 보이는 것은 종합격투기라는 치열한 경기에서도, 관객들과 소통하듯 보이는 쇼맨십에 있었다. 화려한 볼거리, 여유. 그만큼 강혁은 세계를 노리는 파이터라 불리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강혁이 너는 다 좋은데, 상대를 너무 배려하는 것 같아.”

  준비 운동을 하던 강혁에게 코치가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불만 같지도 않은 불만이었기에 강혁은 어리둥절하며 코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코치님?”

 “네가 강한 건 인정하지만, 결국 격투기는 상대를 때려눕히는 거야.”

 “제가 하는 건 싸움이 아녜요. 정정당당한 링 위에서 상대와 겨루는 스포츠죠.”

 “네 말도 맞는데, 관객들이 원하는 건, 압도적인 경기력이 아닌 치열함이야. 너는 경기력은 확실히 압도적인데, 치열함이 부족해.”

  강혁은 코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배려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쇼맨십을 보여줄 때마다 관객들은 좋아했고, 그도 그런 관객들의 열광이 좋았다.

 “아직 저는 프로의 세계에 입문하지 않았잖아요. 프로의 세계는 아마추어와는 차원이 다를 테고, 그렇다는 말은 정정당당하고 치열한 스포츠가 될 거라는 말이죠.”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내 말은 넌 프로의 세계에서도 통할 녀석이라는 거야. 우승은 무리더라도, 최소한 TOP4는 잘하면 들어갈 정도지.”

  코치는 강혁을 띄워주었지만, 강혁은 부끄러움에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다.

 “어후, 전 아직 부족해요.”

  강혁은 자신을 단지 아마추어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절대 자만하지 않았고, 프로의 세계는 아마추어와는 차원이 3개 정도는 다르다 생각했었다. 그런 프로의 세계에서 지금의 자신이 두각을 나타낼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알았어, 자식아. 뭐, 그것보다도 오늘은 내가 일이 좀 있는데, 혼자 연습하다 돌아갈 수 있지?”

 “그럼 혼자 하다 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강혁은 코치에게 공손하게 인사했고, 코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밖에서 싸우고 다니지 마라.”

 

 

  평소 성실히 연습을 하던 강혁이었지만 오늘따라 ‘프로’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같이 느껴진 것일까, 한참을 움직였지만,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쉬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

  강혁은 아쉬움을 느끼며, 달력의 다음 대회가 적힌 날짜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 해줘.”

  화장을 진하게 한 노란 머리 루나는 자신을 둘러싼 불량한 남학생들을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남학생들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루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새하얗게 겁에 질렸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글쎄? 다 네가 잘못했는데?”

  그 중에서도 리더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눈높이를 강제로 맞추고는 히죽거렸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네년에게 잘못이 있다면 우리랑 놀러 다녔다는 거?”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루나는 무섭고 억울했다. 그녀는 그 무엇도 잘못한 게 없었다. 단지 불량한 집단에 껴 잠시 어울려 다녔을 뿐이었다. 불량학생의 리더의 말처럼 잘못이라면 그들과 어울렸다는 것이었겠지만, 웃기지도 않은 소리일 뿐이었다.

 “여기 있지. 얘들아 뭐하냐.”

  대장의 한 마디에 이들은 저마다 가위와 칼을 꺼냈다. 그러고선 음흉한 눈빛으로 루나를 바라보며 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버틸 수 있지?”

 “하, 하지 마. 하면 죽여 버릴 거야!”

  루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쥐며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그들은 그녀를 두려워 할리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벌레처럼 증식했다.

 “얘들아 뭐하니.”

  그때 집에 가던 강혁이 수상한 집단인 그들을 바라보며 한 마디 했고, 불량 집단과 루나는 강혁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뭔데.”

 “저 새끼가…”

  불량학생의 리더의 말에 강혁은 분노하여 살기를 내뿜었다. 그에게서 호랑이를 봤기 때문일까, 불량 집단 대부분은 그의 살기에 두려움을 느끼며 가위와 칼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저씨, 뭔데. 아저씨 누군데.”

  유일하게 리더만은 눈에 뵈는 게 없이, 강혁을 도발하며 짜증을 냈다. 그때 한 남학생이 강혁이 누구인지 알아보고는 새파랗게 사색이 되어 그에게 귓속말했다.

 “뭐라고? 아마추어 격투가?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

  대장은 그가 단지 아마추어라는 이유만으로 깔깔대며 미친 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강혁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저 새끼가 프로든, 아마추어든 상관없어. 선수 생활 계속하고 싶다면 민간인을 때릴 수 없어. 잘 봐.”

  대장은 옆에 있는 남학생의 가위를 빼앗아, 루나에게로 다가갔고, 곧 그녀의 교복 상의를 능숙하게 잘라내었다.

 “하지마!”

  루나의 저항에도 리더는 그녀의 얼굴을 세게 잡으며 강혁에게 보란 듯이 눈을 부라렸다.

 “더러운 애새끼가…”

  강혁은 더럽고 추잡한 저 녀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자라나는 새싹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보다 약한 여자를 희롱하는 것은 최고로 추잡하고 더러운 행동이다. 금방이라도 저 악마를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이성으로 꾹꾹 참아가며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꽤 버티네?’

  대장은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반면 다른 불량 학생들은 그의 살기도 살기였지만, 최대한 분노를 참아가는 모습이 더 이상 그를 자극하면 안 된다고 본능이 알려주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저씨!”

  경찰에게 이곳의 위치를 말하던 강혁은 대장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고, 그 바람에 가위 날이 뺨을 스쳤다.

  강혁의 입 속에서 이가 빠득 갈리는 것은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곧 전화기 너머로 비명소리가 합창을 했고, 링 밖에서 벌어진 싸움의 끝을 알렸다.

 

 

 “음… 그러니까, 이 녀석들 한 두 번이 아니네요.”

  시간이 흘러 그들 모두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담요를 덮고 훌쩍거리는 루나, 분이 풀리지 않은 강혁, 그리고 상당히 다친 불량 집단의 리더를 비롯한 불량 남학생 등 누구도 빠지지 않았다.

 “문제는 선생께서 애를 너무 조져놔서 아슬아슬하게 정당방위요.”

  한 명의 여학생에게 남학생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려했기에, 강혁으로서는 도저히 분노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더군다나 리더가 계속해서 ‘아저씨’라는 단어로 점점 그의 화를 돋우었기 때문에, 옳지 못한 해결법인 폭력이 온 것은 필연이었다.

  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맞긴 맞았지만, 대장이 너무 심하게 다쳤기에 아팠음에도 아프다 말할 수 없었다.

  강혁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비록 소녀를 구하기 위한 정당방위였지만, 폭력을 휘두른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설상가상 대장의 어머니가 분노를 담아 그에게 뺨을 갈기자, 가위 날에 스친 상처가 찢어지며 피가 주르륵 흘렀다.

  당연하게도 유망주였던 강혁은 폭력을 사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 이상 링으로 돌아갈 수도, 두 번 다시 영광을 얻을 수도 없었다.

 

 

 “야, 이 개새끼야. 치열하게 링 위에서 프로랑 겨루랬지, 치열하게 애새끼들이랑 치고 박으래?”

 “죄송합니다.”

  코치는 눈에 불을 켜며 그에게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강혁은 억울했지만, 꾹 참았고 그의 모욕을 참아내며, 자진해서 체육관을 떠나는 것으로 마지막 명예는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격투기 유망주 강혁은 죽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정당방위라는 이름 아래 마지막 존엄을 지킨,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했던 강혁이 이어간다.

  강혁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타이틀을 내려놓는 것으로 한 짓밟히려는 새싹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을 단지 내려놓는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싸게 먹힌 것과 다름없다.

  물론 단면만을 보고 욕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도 싸게 먹힌 편이었지만, 스스로 억울한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절망의 입구에서 서성거리던 강혁은 아무 생각 없이 엔트의 입구를 지났다.

 “이제야 찾았구먼, 아니, 찾게 되었다, 라고 해야 하나.”

  중후한 중년의 사내였다. 풍채 크고, 위협적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다정함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사내의 권유로 엔트로 들어간 강혁은 심야였음에도 문을 닫지 않은 모습에 조금은 신선하게 놀랐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없습니다. 딱히 입맛도 없고.”

 “그럼 이게 제격이겠군.”

  사내는 멋대료 요리를 시작했다. 능숙한 모습에 강혁은 그가 연륜 있는 관록의 요리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요리사는 수육과 김치, 매운 카레를 강혁에게 제공했다.

 “이건?”

 “보면 모르나, 수육하고 카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왜 제게 주시냐는 말씀입니다. 저는 딱히 여기서 이걸 받을 만큼 뭘 한 적이 없어서…”

  강혁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시선은 음식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리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가 받을 자격이 없다면, 대체 누가 받는다는 말인가.”

 “무슨 소리시죠?”

 “루나야.”

  요리사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아빠, 왜 부르세요?”

  나온 사람은 루나, 강혁이 구해줬던 그 여학생이다. 강혁과 루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곧 그들의 시선은 요리사이자 루나의 아버지에게 향했다.

 “내 딸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네. 내 딸을 위해 격투기 유망주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러지 않았다면 따님은…”

 “그러니 자네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네. 은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밥 한 끼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을 담았으니 부디 맛있게만 먹어주게나.”

  진심을 담은 한 끼 식사. 금덩어리보다 가치 있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귀중한 먹을거리다. 강혁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덩어리 보듯 침만 삼키고 있었지만, 이내 수육과 카레를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울리는 깊은 맛. 그 어디서도 이런 맛은 내지 못할 것이다. 강혁은 자신이 이런 요리를 먹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네는 자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매운 카레를 절반쯤 먹어갈 때, 요리사는 지그시 강혁에게 물었다.

 “성인이지만 아직도 미숙하다 생각합니다.”

 “자네는 미숙해. 분명 누군가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고 말했음에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휘둘렀지. 그러니 자네는 미숙한 한 사람이네. 하지만 그런 자네의 미숙함이 내 딸을 구했고, 나도 구할 수 있었다네.”

  요리사는 허리 숙여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절을 해도 모자랐을 거라 스스로 생각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강혁이 오히려 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건 다행이지만, 분명 따님도 상처입지 않고, 저도 무사했을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미숙한 건 단점입니다. 조금만 더 참았다면, 모두가 잘 될 수 있었을 텐데…”

 “미숙한 건,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네. 미숙하기에 더 배울 수 있고, 고쳐나갈 수 있다 믿고 있기 때문이지.”

  요리사의 말은 강혁으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마냥 와 닿기만 한 건 아니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말이었기에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게서 요리를 배워보지 않겠나?”

  요리사의 말은 하나, 하나가 충격적이었다. 격투기를 하던 사람에게 요리를 권유하는 상상도 못할 발상은 충격을 넘어 역으로 존경마저 부를 뻔했고, 강혁은 어이가 없었다.

 “요리요? 전 그런 거 못합니다. 한 평생 주먹질만 해서 말이죠. 남을 상처 입히는 이 손으로 요리를 하라고요?”

  강혁은 수저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손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참 가관인 손이었다.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은 투박하고 큰 손. 남을 배려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국에는 상처를 입힌 손.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

 “자네의 힘은 공정한 링 위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지 않나. 루나가 엇나간 건 이 애비의 잘못도 있고, 자네에게 나름대로의 구원의 손을 내밀고 싶네.”

  아버지의 질책에 루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모든 원인은 루나,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요리라니…”

 “이번에는 이 주방이라는 링 위에서 싸울 일 없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지 않나?”

  강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홀린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방이라는 링 위에서 ‘싸울 일 없이’ 행복을 준다. 사람들에게 행복(기쁨)을 주는 것은 강혁이라는 사내가 가장 바라왔던 일이었다.

 “주방은 요리만 하는 곳이 아니네, 사람들과 음식이라는 것으로 교감하는 만남의 장이지. 자네의 경기는 몇 번 챙겨봤네만, 그 정도의 쇼맨십이라면 요리에서도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 것 같군.”

  요리사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그가 내민 구원의 손은 목표를 잃은 강혁이라는 사내에게 새로운 목표를 부여했고, 이쯤 되자 그는 더 이상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강혁은 그를 새로운 스승으로 모시며, 주방 일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요리사의 기본자세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배우는 것은 분명 힘들 일이었지만, 강혁은 그것을 참고 이겨나갔다.

  그렇게 2016년 말 무렵, 그가 상당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을 무렵 그에게 한 가지 불행이 찾아왔다.

  그를 구원해주었던 스승의 손을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원인은 몇 년간 가지고 있던 지병이었다. 강혁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스승은 자신을 통해 엔트와 루나를 이어주려 했던 것이었고, 자신도 이곳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하려 하는 등, 많은 것들을 두 사람에게 물려주려 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루나는 크게 슬퍼한다. 극복하고 싶어 하지만 어린 소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큰 불행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조금은 성숙해진 루나는 스스로 강혁의 제자로 들어가며, 그가 했던 것처럼 기초부터 배우려 했다.

  강혁은 언젠가는 이 엔트를 루나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그랬기에 언젠가는 떠나야했고, 그때까지 루나를 잘 가르쳐야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그렇게 2017년. 이상 세계 현상을 겪고, 그 영향으로 엔트도 부서지는 큰 피해를 입지만, 강혁이 유망주시절 틈틈히 벌어둔 돈과 그 동안 엔트에서 벌어둔 돈으로 어렵지 않게 수복할 수 있었다.

  당시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지만, 떠나기 싫다는 루나의 의견과 더불어 스승님이 지켜온 곳을 버릴 수는 없었기에 엔트를 수복하며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그녀와 합의를 봤다.

  또한 리모델링한 것은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때때로 강혁에게 스승은 그에게 했던 ‘심야 식당’을 해보고 싶다 언급했었고, 강혁은 스승의 뜻을 이어 정식으로 ‘심야 식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돈을 지불하지 않는 심야 식당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강혁이 스승과 만났던 심야 식당에서는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첫 번째를 가능하게 한 강혁이 모아둔 돈과 실력을 인정받은 지금의 엔트에서 벌어들이는 돈, 그리고 그가 직접 재배하는 채소 덕분이었다.

  비록 몇 년 동안만 같이 지냈던 스승이었지만, 그가 지금의 강혁을 만든 것이었고, 앞으로 몇 년이나 지내게 될지 모르는 루나가 앞으로의 강혁을 만들어 갈 것이었다.

 

 

 “지금의 제가 있는 건, 사부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김 사부!”

  잠시 동안의 옛날이야기로 루나는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수치심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정이 담긴 한 방울을 눈물을 흘렸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아냐, 뭘.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날 찾을 수 없었을 텐데 뭘.”

  강혁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고민했던 것인지 부끄러워했다.

  그가 태양의 만류에도 무형에 집착했던 이유는 바로 루나 때문이었다.

  자신은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했고, 그랬기에 신비한 무술인 ‘무형’은 그의 마음속에 쏙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곧 자신의 미련함을 상징한다 생각했다.

  무형은 스승과 했던 시간, 그리고 앞으로 루나와 지낼 시간을 대신할 수 없다. 단지 그녀를 위해 무형으로 새로운 출발을 할 것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었을 뿐이었다.

  진정한 출발은 루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아주 간단한 것이었지만 이제야 깨달아버렸다.

 ‘그렇죠, 스승님?’

  강혁은 곁에 돌아가신 스승님이 함께 있는 다정한 느낌을 받았다. 몇 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그리움이었지만, 그랬기에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내 마음을 편하게 먹은 강혁은 다시 정신을 집중했고, 그 순간 자그마한 물결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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