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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삶과 삶 사이
작가 : 진늘솜
작품등록일 : 2018.7.10

죽음은 예정된 것이면서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월적 존재들은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한을 풀 수 있는 '화신(化身)' 이라는 한 번의 기회를 선사한다. 단, 스스로 삶을 끝맺은 인간은 화신의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누비는 사자의 보필을 받으며 생각을 되돌릴 시간이 주어진다. 삶과 삶 사이에서 넋을 찾는 소녀와 넋을 잃은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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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10 17:36     조회 : 236     추천 : 2     분량 :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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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하는 요즘 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집 근처를 배회하는 고양이에게 인사 한 번 더 건네고 얼마 전부터 친해진 꼬마에게 사탕 한 알 더 쥐어 주는 아침.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열기 위한 그녀 나름의 방법이었다. 한결에게 자신의 감정이 공유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 그렇기도 하다. 한결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었다.

 

  근 한 달 사이에 한결은 학교에 아주 잘 녹아 들었다. 매사에 친절하고 용모도 반듯한 편이라 호감을 사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민하와는 딴판이었다. 민하는 그런 한결이 신기하기만 했다. 사람이 붐비는 곳은 타인과의 거리가 강제적으로 가까워져 불안함을 느끼는 편이었다. 시간과 예산의 효율을 생각해 혼자 행동하는 것이 편했던 민하에게 한결은 절대적인 삶의 변수로 작용했다. 우선 골칫거리였던 조별과제나 활동은 덕분에 머릿수를 쉽게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넘치는 활기가 아직은 어색하지만 학교 생활의 부담이 줄어 다행이라 여기는 민하였다.

 

 평화로울 것만 같던 시간이었다. 얌전히 화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건만, 외톨이 생활을 청산하고 시야를 넓히자 민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글과도 같은 학교였다. 교과서에서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 또는 사회 계층 이론. 교실은 꼭 그것들과 닮아 있었다. 강자와 약자가 존재했다.

 

 “야, 쪽바리! 여기 청소.”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교실에 울렸고 한 여학생이 뒤를 돌아봤다. 청소 당번이었던 그녀는 군말없이 빗자루를 손에 쥐었다. 책을 읽던 민하는 고개를 들어 여학생을 주시했다. 민하와 그리 친하지 않으면서 한결 또한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몇 안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출신이 특이해 학생들의 입에 잘 오르내리는 아이였다. 윤의라고 했다. 임윤의. 듣기로는 부모님이 교포인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특수성 때문에 윤의는 자연스럽게 근방 학교에서 “쪽바리”로 통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윤의는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애초에 화를 낼 정도로 감정 표현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접점이 전혀 없을 것만 같았던 윤의와 두 사람의 연이 닿은 것은 어느 조별 과제 덕분이었다. 민하는 으레 그랬던 것처럼 한결과 세트로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학생들은 뜻에 따라 삼삼오오 뭉쳐 칠판에 이름을 적었다. 오직 윤의만이 여전히 교실 뒷편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런 윤의에게 민하가 선뜻 손을 내밀었다.

 

 “다섯 명 까지는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같이 할래?”

 

 그렇게 윤의는 가장 마지막으로 칠판에 이름을 올렸다. 옅은 미소가 번진 얼굴이었다.

 

 -

 

  조의 구성원은 민하와 한결, 윤의를 포함해 여학생과 남학생 각 한 명까지 총 다섯이었다. 조용하기로 소문난 애와 갑자기 친해진 인기 전학생, ‘쪽바리’로 통하는 교포. 그리고 나머지 둘은 소위 말해 ‘잘나가는’ 축에 속한 이들이었다. 교칙 정도야 두 세 개씩 어기고 선생님께 혼나도 적절히 개기는 것을 멋으로 삼는, 그들 만의 친목이 주변 학생들에게 이질감을 주는 그런 부류. 이런 중구난방의 조합이 탄생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한결의 인기 때문이었다.

 

 “야, 한결아, 같은 조 좀 해줘라. 너는 똑똑하니까 우리 같은 애들도 돕고 그래야지.”

 “나는 상관없는데···.”

 “최민하, 괜찮지? 한결이가 상관없다잖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민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어울릴 사람도 없어 반은 강제적인 권유였다. 애초에 잘 빚어진 생김새로 이목을 끌면서 전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얹어준 화제성에 매사에 친절한 성격은 한결을 유명인사로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잘나가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떡밥이었다. 한결의 이름이 불리는 횟수는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그들이 한결을 보는 시선은 결코 순수한 우정이 아니었다. 꼭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어려운 일이라면 무조건 한결을 불렀다.

 

 “착한 건 착한 거고 호구는 호구야, 이한결. 모르는 거 아니잖아.

 “그래도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거지. 너까지 귀찮게 해서 미안해.”

 

  핀잔을 줘도 미안하다며 웃어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녀라면 딱 잘라 거절했을 부탁도 한결은 웃으며 기꺼이 일을 거두었다. 천성이 그랬다. 답답하게 굴지 말라고 다그쳐도 그는 늘 맑은 사람이었다.

 

 “짜증내지 마, 민하야. 나 심장 아파, 으윽.”

 

  민하가 짜증을 내면 나쁜 감정이 느껴진다며 제 심장을 부여잡고 아픈 시늉을 했다. 장난이라고 눈이 휘어져라 웃어버리는 한결에 민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본인의 웃는 얼굴에 약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럴 때만 교활하다며 투덜거렸다.

 

 -

 

  조별과제의 첫 모임을 하는 날이었다. 발표할 작품도 정하고 역할도 분담하고 다음 일정에 대한 계획도 짜고.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참여를 하는 사람은 세 명 뿐이었다. 민하가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잘나가는 친구들께서 이런 모임에 뜻을 두고 있을리가. 본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장난을 치고 떠드는 것이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민하는 자료를 훑어보던 한결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한결도 알고 있다는 듯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윤의는 안내 받은 대로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현란하게 자판을 치는 소리가 교실 가득 울려 퍼졌다. 참다 못한 민하가 운을 뗐다.

 

 “조별과제잖아 얘들아, 같이 도와주면 안될까?”

 

 순간의 정적이 민하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PPT 다룰 줄 몰라. 발표는 실수할 것 같아서 싫어. 그럼 어떡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는 것이 서투르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면박을 줄 이는 한 명도 없다. 다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 것이다. 역시나 벽에다 대고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대화였다. 학교라는 서바이벌 만큼이나 출발선이 제각기 다른 경쟁이 있을까 싶었다. 헛웃음을 짓는 민하를 제지하며 나선 한결이 자료라도 조사해줄 수 있냐며 친절하게 되물었다.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인 그들을 끝으로 모임을 파했다.

 

 “윤의야, 너는 화 안 나? 나는 분해 죽겠는데.”

 “딱히. 그렇게 화를 내면 끝도 없이 화만 나더라. 그냥 내가 쟤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거든.”

 

  서로가 제법 편해졌는지 말을 붙이는 것에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한결은 찾아볼 자료가 있다며 먼저 도서관으로 향했다. 둘은 하교 시간이 꽤 지난 저녁답의 복도를 걸었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의 저녁은 아직 밝기만 했다.

 

  고작 하루였지만 함께 보내며 민하가 깨달은 것은 윤의가 생각보다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소리 내어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고 언짢을 때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기도 했다. 표현을 못하는 것이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조용히 지낸 것이 신경 쓰였던 민하였다.

 

 “나 처음에 되게 기뻤다? 네가 같이 하자고 해서.”

 “···.”

 “남들이랑 특별히 다른 것도 없는데 늘 이방인이었거든. 그래도 너는 내 이름 불러주잖아.”

 

  민하 또한 늘 이방인이었다. 묘한 동질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들의 시선에서 민하는 일반적인 가정의 아이가 아니었다. 열다섯의 가을에 부모님이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는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랑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남들이 그렇지 않다고 멋대로 떠들지? 꼬리에 꼬리를 문 의문은 민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나갔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민하는 자신에게 대대적인 외톨이 선언을 했다. 친구를 사귀지 말 것, 사람에게 정도 주지 말 것. 약 일년이 지난 지금, 민하의 바람대로 더 이상 그녀를 놀리는 이는 없었다. 가끔 쓸쓸했지만 괜찮았다.

 

 “나도 그래. 엄마랑 둘이서 살았거든.”

 “그러니까, 세상은 넓은데 사람 생각만큼 좁은 게 없더라.”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두 외톨이는 서로에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

 

  윤의를 먼저 보낸 민하는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교는 꼭 함께하던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도서관의 책상은 자습을 하는 학생들로 빼곡했다. 목이 빠질 세라 책에 고개를 박고 있거나 인터넷 강의를 보거나 자거나. 제각기 다른 학생들의 모습에서 비슷한 애잔함이 느껴졌다. 책장 몇 개 지나치자 ‘문학’이라 쓰여진 코너 구석 창가에 기대어 있는 한결이 보였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문학 전집쯤 되는 두꺼운 책에 정신을 팔린 것 같았다.

 

 “그거는 정리가 덜 되어 있어서 과제 하기엔 힘들 걸. 전집은 여기 출판사가 좋아.”

 

  민하는 한결이 뽑아 놓은 비슷한 전집 중 하나를 꺼내 건냈다. 책을 건내 받은 그는 멋쩍은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살짝 웃어 보였다. 그렇게 읽던 책을 덮고 팔짱을 낀 한결의 표정이 얄궂었다. 민하의 감정은 진작에 파악했다며 잘난 채를 하는 모습이었다. 책을 챙긴 한결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민하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함께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우리 민하에게 드디어 친구가 생기다니. 장족의 발전이야.”

 

  눈을 질끈 감고 우는 시늉을 하며 미간을 검지로 짚은 한결이 과장되게 말했다. 이에 한심하다는 듯 대꾸도 하지 않은 민하가 혀를 끌끌 찼다. 그냥 버려 두고 가버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민하의 생각을 읽었는지 한결은 금방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갈까?’ 하고 되물었다.

 

 “보통 화신은 어떤 형태야?”

 

  민하가 물었다. 마음가짐을 달리 하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또 윤의와 이야기를 나누며 생긴 의문이었다. 엄마의 화신이 온다면 반드시 알아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인연들을 맺게 되니 확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과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글쎄, 그건 나도 정확하게 몰라.”

 

  타인의 시야를 잠시 빌려 보기만 하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개체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머무는 기간도 달라진다. 물론 화신과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화신을 눈치채는 것은 온전히 상대방의 몫이지 심부름꾼이 만사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것이 있거나 깊은 원한을 품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전자를 택한다. 산 사람과 대면하는 것은 넋에게 미련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넋이 미련을 가진다는 것은 악귀가 되는 지름길에 들어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홧김에 빙의라도 해버리면 그 넋은 회생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너는 언제까지 나랑 있어주는데?”

 “···네가 행복해질 때까지?”

 

  순간의 정적이 둘을 휘감았다. 오글거리는 소리 하지 말라며 민하가 뒤늦게 질색을 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민하의 삶에서 죽음이 도사리지 않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글거려도 그래야만 한다며 한결은 그녀를 가볍게 다그쳤다.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고 세상이 행복하고. 좀 알겠어?”

 

  어느덧 한결과 투닥거릴 수 있는 하굣길이 즐겁게 느껴지는 민하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작은 변화는 나쁘지 않다고 확신한 해질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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