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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10-3 Trinity
작성일 : 18-07-01 12:20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8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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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영이 공원에 있을 때, 낄낄거리며 그의 사진을 찍던 인기척은 악질 파파라치였다. 시영과 아미의 스캔들을 위한 질 나쁜 몰래 촬영을 하던 그는 그들의 이미지를 나락 끝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더러운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그때 그의 어깨에 낯선 손에 올려졌다. 수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 파파라치는 얼굴을 세게 맞고 말았다.

  그를 때린 사람은 고속이었다. 공원 구석에서 몰래 찰칵거리던 카메라는 곧 그의 손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단 한 대 맞은 파파라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고가의 카메라가 부숴 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친 새끼가…”

  고속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카메라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음에도 그의 분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어이, 품속에서 USB같은 거 당장 다 꺼내.”

 “예? 뭐라굽쇼?”

 “당장 안 꺼내!”

  고속의 불같은 호통에 파파라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머니 속 USB를 비롯한 온갖 휴대 저장소를 꺼냈다. 고속은 액셀을 발동하여 몰래 하나의 USB를 챙겼고, 나머지는 그의 눈앞에서 전부 고장내버렸다.

  파파라치를 쫓아내버린 고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이곳에서 파파라치를 쫓아낼 수 있던 이유는 그날 창연이 꺼낸 말 때문이었다.

 “아미라는 이름의 아이돌? 아무튼 그녀와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이지.”

  창연은 이게 시영과 아미에게 가장 최선이라 말했고, 고속으로서는 이 말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던 현재는 This Illusion을 가르치는 스승과 제자의 입장이었다. 아미는 시영을 상당히 좋아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예쁜 마음을 가진 그녀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었던 그였다.

  하지만 그 창연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쉽게 알아낼 수 없었다. 결국 고속은 창연이 그랬던 것처럼 시영을 며칠 간 남모르게 미행했었고, 마침내 그 이유가 악질 파파라치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의 USB를 몰래 하나 챙긴 이유는 이 파파라치가 시영의 오컬트 슬레이어 시절 사진을 찍은 그 녀석 일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조사해볼 가치는 있었다.

 “난 정말 뭘 하고 싶은 걸까.”

  고속은 스스로를 비웃으며 박살난 카메라와 USB를 주워 담았다.

  스스로도 본인이 이러는 이유를 확신할 수 없었다. 시영의 과거를 들었음에도 괜한 참견은 실례라며 가장 먼저 가던 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금은 창연의 힌트에 직접 시영과 아미를 도우러 움직이고 있다.

  이상 세계 현상의 진실을 찾으려는 공통된 마음을 가진 동료애에서 비롯된 행동인지, 아미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은 건지, 지금의 그로서는 해답을 낼 수 없었다.

 

 

 “그럼 신… 아니 고속아. 이걸 조사하면 된다는 말이지?”

  뒷골목. 후드를 쓴 브로커가 고속과 이야기를 나눴다. 뒷골목 특유의 매캐한 연기가 그의 코를 두들겼고, 그 바람에 고속은 인상을 찌푸렸다.

 “되도록 그 이름은 언급하지 말아줘.”

 “알았어. 그럼 언제 만날래?”

 “먼저 연락 줘. 어지간하면 빨리 올 수 있으니까.”

 “그래, 알았어.”

  고속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뒷골목을 빠져나왔다. 매캐한 연기는 곧 도심의 현대적인 공기가 쫓아내었고, 고속은 크게 기침했다.

 “이제 뭐한담.”

  마음에 걸린 하나의 사건이 사라지고, 또 다시 그의 마음에는 넓고 지루한 평원이 펼쳐졌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걸으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봤다.

 “이게 뭐야? 막말 파문?”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기사는 이상 세계 현상의 전문가가 문제를 일으킨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저번 토크쇼에서 시영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갔던 사람이었다.

  기사를 꼼꼼히 읽던 고속은 예전부터 문제가 많았던 인물이라는 것과 이상 세계 현상의 전문가라고 할 별 다른 명분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기사의 댓글들도 하나 같이 그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고속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영의 이름으로 기사를 검색했지만 당연히 나올 리 없었다. 다시 검은 모자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재검색했다.

  아직 시영은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벗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점 그런 오명은 한 꺼풀씩 벗겨나가고 있었다. 그 중에는 그를 응원하는 기사의 댓글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고속은 고개를 들어 전광판에 비치는 화면을 어이없는 웃음으로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그 전문가가 허리를 숙여가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문득 어느새 번화가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며 전광판에서 시선을 뗐다.

 

 

  문득 고속은 공사현장에서 포우의 등장이 필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포우의 등장은 시영이 포우고, 소민이 걱정돼서 쫓아온 것이라 한다면 얼추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상이 아니던 소민과 검은 모자(시영)를 봤던 고속은 잘 모르는 일반인인 시영 대신, 소민에게만 집중했었다. 그래서 액셀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그녀에게만 집중했기에 시영이 자신을 쫓아왔다는 건 미처 파악하지 못했었다.

  미행의 효과가 생각보다 엄청난 결과를 몰고 왔기에 고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번화가를 벗어났다.

 

 

 “어서 오세요.”

  바람 따라, 햇볕 따라 이동하는 방랑자처럼. 고속의 발길이 다다른 곳은 민화의 빵가게였다.

 “고속 씨?”

  민화는 의외의 인물의 등장에 조금 당황했지만, 고속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쟁반과 집게를 잡아들었다.

  묵묵히 빵을 담는 고속. 다른 손님들의 계산을 도와주며 이따금 그를 주시하는 민화. 어느덧 고속의 차례가 왔다. 그는 여느 손님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계산을 마친 고속은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문 밖에서 한숨을 쉬며 마냥 걸었다.

 “잠깐만요!”

  민화는 다급하게 말했다. 고속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민화 씨, 대체 왜 절 귀찮게 하시는 거죠?”

  고속은 고개를 돌려 정중하지만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와 소인을 보고 있노라면 시영과 창연이 생각났기에 차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지갑… 놓고 가셨어요.”

  하지만 생각도 못한 친절에 고속은 그 자리에 굳어버린 것 마냥 움직일 수 없었다.

 “귀찮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럼… 또 오세요.”

  민화는 조심스레 인사하며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고속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민화의 어머니는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9시. 슬슬 가게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민화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알았어요. 엄마.”

  민화 모녀의 대화가 끝나고, 그녀의 어머니는 물걸레질을 시작했다.

 “문 닫고 올게요.”

  민화는 발랄하게 이동하여 문을 열었다.

 “고, 고속 씨?”

  문을 연 그곳에선 생각지도 못한 고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뒷목을 긁적이던 그는 입안에 바람을 넣어 빵빵하게 만들었다. 민화는 잠시 얼어붙은 듯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시영이는 엔트에 있습니다.”

 “네?”

  고속은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다시 떠나려 했다. 민화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그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떠나려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대체 뭘 원하시는 거죠?”

 “민화야 뭐하니?”

  한참을 기다려도 민화가 들어오지 않자, 그녀의 어머니는 직접 문 밖으로 나왔다.

 “어, 엄마!”

 “그 사람은 누군데 손목을 잡고 있니? 응? 아, 고속 씨!”

  민화의 어머니는 고속을 알아봤고, 고속은 그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 다 알고 있는 사이였어요?”

  민화는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가리킨 두 사람은 별로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당연하지. 이분이 가게에 문제가 벌어졌을 때, 해결해줬거든. 정말 좋으신 분이야. 덩치 여러 명을 단신으로 제압하는 데 글쎄!”

 “모 여사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치켜세우는 걸 껄끄럽게 생각하며,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다.

 “그럼 즐거운 이야기를 하길. 후훗.”

 “그, 그런 거 아녜요!”

  민화의 어머니는 히죽 웃어대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민화는 이상한 오해를 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 그건 그렇고, 고속 씨, 시영이가 엔트에 있다는 이야기를 왜 하신 거죠?”

  민화는 그의 손목을 놓고 물었다. 하지만 고속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속 씨?”

 “그냥,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예?”

  민화는 눈을 깜빡이며 우물쭈물 거리는 고속에게 되물었고, 그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않을수록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눈치를 봤다.

 “실은 뭐라고 해야 할지…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번에는 녀석들에게 신경 끄기 위해 먼저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지금 와서는 계속해서 녀석들이 신경 쓰입니다. 대체 제가 왜 이러는지…”

  고속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듣던 민화의 걱정스러운 눈길엔 이내 밝은 미소가 드리웠다. 환한 미소의 빛에 고속은 고개를 들었다.

 “고속 씨는 친절하신 분이세요.”

  민화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해바라기 같은 맑고 밝은 미소에 고속은 되물으려는 입이 슬며시 닫아졌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시영이도, 창연 씨도 신경 쓰이거든요. 두 사람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상하게도 두 명 다 닮았다고 생각돼서요.”

  고속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녀의 의견에 어느 정도는 동감했다. 오히려 두 사람이 닮았다 느끼지 않았더라면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북쪽 산이었죠? 전 내일 그곳으로 가 볼 생각이에요.”

 “그곳은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민화 씨가 갈 곳이 아니에요.”

  고속으로서는 그곳의 혹독함과 위험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창연을 제외하더라도, 비정상적으로 추운 기후,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좀비 말 등. 그곳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이런 저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쓸데없는 참견이라도 생각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비록 이런 저라도 누군가의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더군다나 시영이와는 오랜 친구 사이에요. 친구가 힘들어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고속으로서는 민화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여리여리한 모습이었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따스하다는 걸 몇 번이고 알 수 있었다.

 “그럼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전 그곳에 가본 적이 있고, 민화 씨를 지켜드릴 수 있을 겁니다.”

  고속은 가슴에 손을 대며 숨이 차오르도록 말했다. 어떻게든 민화만은 지킨다. 지켜져야 할 그녀가 직접 나선다는 건, 고속으로서도 선을 행하는 마음이 확실하게 차오르게 만들었다.

 “정말 든든한데요?”

  민화는 그의 마음에 화답하듯 해바라기 같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고속이 시영을 미행하여 그의 위치를 찾아낸 것은 민화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와 만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마찬가지로 공원에 핀 로즈마리라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대는 것으로 어색함이 없게 만날 수 있었다.

  시영의 상태는 멀쩡한 것을 넘어서 신념을 제대로 관철한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민화는 그와 대화하는 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수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아침 일찍 만나는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그와 헤어진 뒤, 공원을 빠져나가자마자 고속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게 다 고속 씨 덕분이에요.”

 “아뇨, 저야말로 민화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자, 그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드리죠.”

 

 

 “감사합니다!”

 “내일 몇 시에 오면 되죠?”

  고속의 물음에 민화는 눈을 깜빡이며 적당한 시간을 고르기 시작했다.

 “4시 30분?”

 “오후?”

  예상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고속은 크게 당황했다.

 “아뇨, 오전이요. 북쪽 산을 올라가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리니까 왕복 2시간 잡아서 일찍 다녀와야죠.”

  고속은 다시 한 번 그녀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바라기를 넘어선 태양 같은 미소라면 북쪽 산은 충분히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과, 자신도 민화의 강인함을 본받아야겠다는 존경심이 동시에 들었다.

 “도중에 포기하셔도 괜찮습니다.”

 “가려는 길을 포기한 적은 없어요. 기어서라도 올라갈게요!”

  그녀는 용기 가득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속은 해탈한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하게 입으세요.”

 “네!”

 

 

  그렇게 혜성의 야경을 배경삼아 집으로 돌아가던 고속은 해방기에 이끌린 불청객을 맞이해야만했다.

 “찾았다. 고속이형.”

 “소인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그 역시 뭔가에 강하게 이끌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 주인공이 소인이란 게 밝혀지자 놀라지도 않았다.

 “그거 아세요? 의외로 형 같은 스타일이 미행당하기 쉬운 스타일이에요.”

  소인은 손으로 음흉한 미소를 가리며 키득거렸다. 익숙한 악동 같은 웃음에 고속은 흠칫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이 시간에 또 놀리려고?”

 “아뇨, 그건 아녜요. 단지 고속형이 시영이형을 미행하는 걸 우연히 봤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고속은 놀리려는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영을 미행하면서 전혀 소인의 기색을 눈치 채지 못했었기에 마냥 안심하지 못했다.

 “너 혹시 날 계속 쫓아온 거야?”

 “아뇨? 미행이라뇨. 단지 거인이형이 사과 먹고 싶다기에 과일가게에 잠시 들리다가 시영이형이랑 고속형을 볼 수 있었어요. 그 뿐이에요.”

 “그, 그래? 그런데 그것만으로 여길 찾아왔다고?”

 “그 이후로 블러드리아랑 같이 소민이를 퇴원시키다가 여러 번 마주쳤어요. 공원이랑, 우체국 근처 빵집에서 특히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가다가 혹시나 해서 공원이랑 빵집만 잠시 들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형을 찾을 수 있던 거예요.”

  고속은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그것도 자신을 마냥 놀려먹으려는 소인에게 꼬리를 밟혔다는 것에 충격은 배로 다가왔다.

 “오늘은 바빠. 그러니 네 농담에 어울려줄 수 있는 시간 따위는 없어.”

  고속은 마음을 담아 소인에게 단호히 말했다. 그러고선 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려 했다.

 “농담하려 온 게 아니에요.”

  소인의 진중한 목소리에 고속은 뗀 걸음을 멈춰 그를 바라보았다.

 “한 가지만 여쭙고 싶어서 찾아온 거예요.”

 “뭘?”

 “시영이형을 꺾고 싶어요. 저, 정확히는! 포우를 꺾고 싶은 거예요.”

  어린 소년의 한 마디는 그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야, 그런 소리 하지마라. 나는 싸움질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시영이가 포우라는 걸 안 그 순간부터 걔랑은 싸우고 싶지는 않아.”

 “형께 싸움을 알려달라고 한 적 없어요. 제가 알고 싶은 건 시영이형의 위치에요.”

 “위치?”

 “네, 위치요. 오늘 하루 종일 시영이형을 미행하셨죠? 다는 보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그럴 것 같아요.”

  고속은 오늘 한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다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시영을 미행하는 것이었다.

 “직감이면 축하해. 정말 하루 종일 쫓아다녔을 거야.”

  소인에게 비아냥거리듯 말한 고속은 그에게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시영이형이 어디서 나타날지 대충 예상하실 수 있나요?”

 “그걸 나한테 묻는 거야?”

  고속은 터무니없는 물음에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어쩔 수 없잖아요! 해방기의 이끌림으로 누군가를 만나면 열에 일곱은 고속이형이고… 더군다나 시영이형과 자연스럽게 만나기가 힘들어요.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마치 절 피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하지만 소인의 마음은 진심이 가득했다. 더군다나 순간적으로 소인의 어려운 사정이 생각났고, 그 바람에 고속의 마음은 갈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세차게 흔들렸다.

 “아침 일찍, 한 5시? 그 정도에 우체국 빵집 근처에서 공원 사이. 이 부근을 지난다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민화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4시 30분이었다. 고속은 시영도 그 즈음에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유마에게서 시영에 대한 특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민화와 시영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고 알고 있었기에 그도 4시 30분 즈음에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고속은 내심 소인이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랐고, 의도적으로 늦은 시간을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고속이형!”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소인 때문에, 고속은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꼈다. 곧 소인은 집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시야에서 사라졌음에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약속의 다음 날 4시 30분. 고속은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우체국 옆 빵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선 이미 모 여사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그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이곳으로 올 시영을 기다렸다.

  하지만 소인에게 알려준 5시, 가게 문을 열어야 할 6시, 그리고 6시 30분이 되도록 시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고속은 초조해졌다. 민화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미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아침 일찍이라 했으니까요. 곧 올 거예요.”

  민화는 애써 미소 지으며 쪽지를 적었다. 이내 갓 구워진 빵이 담긴 바구니 속에 쪽지를 숨겼고,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속 씨, 먼저 가요. 시영이는 반드시 와 줄 거예요.”

  민화의 미소 섞인 권유에 고속은 도저히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북쪽 산을 향해 그녀와 걸으면서도 이따금 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여야할 시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은근하게 북쪽 산으로 향하는 유마와 이터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의 등장에 고속은 더욱 더 불안해졌다. 그저 민화가 그러는 것처럼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영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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