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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나는 김구다! 제2부 -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7.11.22

'나는 김구다!' 제2부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전날 천붕을 당해 의욕이 꺾였던 글인데 권유가 있어 다시 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인물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 혹시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 가차없는 질책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5. 서울진공작전 1
작성일 : 18-06-19 04:46     조회 : 446     추천 : 3     분량 : 6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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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서울진공작전 1

 

  선생은 염동협을 간단히 염협으로 불렀다. 첫 만남의 밤, 선생은 또 다른 방법을 통해 염협과 안면을 트고 있었다.

  탕!

  일발의 총성이 프랑스 조계 내 마당로(馬當路)의 3층 벽돌집에서 울렸다. 임시정부가 1926년 옮겨온 이후 1932년까지 머물던 곳이다. 그날 선생은 가족들이 머무는 곳을 찾지 않고 청사 내에서 밤을 새웠고, 오산 등과 더불어 물러났던 염협은 어둠을 틈타서 다시 선생을 찾았다.

  “쳇! 역시 대단해. 항복이요.”

  염협은 손에 든 육혈포를 버리며 말했다. 염협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사수로 암살에 제2탄은 없다는 주의였다.

  “무슨 조화를 부리신 거요? 똑 바로 겨누었는데 발사되는 순간 헛총을 쏘았음을 알 수 있었으니……”

  염협의 총탄은 선생의 가슴께를 정확히 노려 총구를 떠났다. 헌데 간발의 차이로 스쳐갔던 것이다.

  “심검(心劍). 이야기한 적이 있을 걸.”

  흐트러짐이 없는 말투였다. 정작 선생의 목숨을 노렸던 염협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설명해 주시오. 칼을 들어 적을 치는 게 검법 아니었소?”

  “무상도(無相刀). 형상을 버리면 허와 실에 나눔이 없다.”

  “엥이! 뜬 구름 잡는 말씀일랑 하지마시고.”

  “나는 염군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고, 염군은 해칠 생각 없이 방아쇠를 당겼어. 마음 자세부터 달랐는데, 누가 이길까?”

  선생은 염협이 버린 육혈포를 집어 들어 살펴본 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리볼버 싱글 액션, 염협은 실린더에 단 한 발의 총탄만을 넣고 다녔다.

  “김오산 형에게서 염군의 일을 들었네. 만보산사건의 원흉을 처단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선생은 잠깐 오산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되새겼다.

  “그토록 고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중국인 자경단에 왜인들과 조선인 간자들이 숨어들어 싸움을 부추겼습니다.”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을 얼구이쯔(二鬼子)로 불렀다. 르번구이쯔(日本鬼子)로 부르는 일본인들의 주구로 본 탓이었다. 오산이 전한 만보산사건의 내막 역시 자신을 절반 일본인으로 생각한 일부 조선인들의 그릇된 충성이 일본제국의 침략정책에 맞물려 시작된 비극의 하나였다.

 

  1920년대의 마지막 해, 만주벌은 남경 정부의 치안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은 복마전이었다. 동북대원수를 자처하던 장작림(張作霖)이 일본군의 암습으로 폭사한 뒤끝이라 정세는 극도로 민감했고, 대도시와 철도 인근을 제외한 오지는 토호들이 자경단 형식의 병력을 보유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곳이 많았다. 길림성 장춘현 야탑장(野塔莊)은 그러한 중국인 대농장주가 주인인 곳이었다.

  “탕!”

  흙벽돌로 두텁게 쌓은 보루(堡壘)였다. 총탄이 맞으면 생채기가 날 뿐 파괴는 어림없는 욕심이었다.

  “탕!”

  오산의 몸 근처로 총알이 스쳐갔다. 총알을 낭비하지 않는 정확한 사격술이었다. 총구멍만 내밀고 맹목 사격을 하는 대부분의 적들 중에 때때로 조준 사격을 해오는 몇몇이 있었다.

  “저 자를 노려 쏴라!”

  보루 위에서 지휘하는 자는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은 자로 보였다. 오산을 지휘자로 판단한 듯 집중 사격을 해오고 있었다. 오산 역시 그를 노려 저격을 명령했다.

  “사격 개시!”

  공격군은 부경주에게서 빌린 단군밀교의 교도들로 이루어진 정예와 상해에서 급파된 백의대의 사관들이었다. 따라서 보루 위의 적들과 잘 절제된 공방을 벌였다.

  “쉽지 않겠는데요.”

  전황은 교착상태로 두 시간을 넘었다. 1931년 7월 18일, 길림성 장춘현 야탑장에서 오산과 당쇠가 이끈 군세는 그렇게 강한 적을 만나 고전 중이었다.

  “뒤에도 적입니다!”

  만보산사건의 뒤처리를 명받고 급거 달려온 지 열흘 남짓, 드디어 적을 호구로 몰아넣었다 싶은 순간이었다. 적은 뜻밖에 준비가 철저하여 장원 밖에 매복을 두고 있었다.

  “부사형이 교도들을 모아 달려올 거야. 원군이 올 때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길림성의 중국군 성병(城兵)이나 장춘영사관의 일본군 수비대가 먼저 올 지도 모릅니다.”

  후군을 맡아 뒤편의 적과 사격전을 벌이던 당쇠가 달려와 말했다. 그의 염려가 아니더라도 불리한 싸움임은 확실했다. 앞뒤로 적을 맞아 궁지로 몰린 느낌이었고, 게다가 시간은 적의 편이었다. 부경주의 원군은 희망사항이었지만 중국군 성병(城兵)과 일본군 수비대는 확정된 적이었다.

  “내가 돌파구를 열겠어.”

  오산은 당쇠에게 지휘봉을 맡긴 후 보루를 향해 달려갔다. 몇 사람의 수하가 뒤따르고, 적의 총탄이 공격군을 향해 쏟아졌다.

  “엄호하라!”

  당쇠의 명령으로 백의대의 모든 총구가 불을 토했다. 총탄에 맞은 보루의 흙벽돌 벽이 먼지를 일으켰다. 잠시 적의 사격이 주춤해지고, 오산은 그 틈새를 타고 보루의 벽에 붙었다.

  산이 드문 만주벌의 보루는 마적단 시절의 잔재로 황토벽돌을 쌓고 요소마다 총구멍을 내어 수비를 하는 군성(軍城)이었다. 성문이 유일한 출입구였는데, 그 또한 철판을 두껍게 씌워 대포를 갖지 못한 백의대는 공략할 방법이 없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유일한 공격 방법이었으므로 오산과 병사들은 보루의 총혈(銃穴)이 총격을 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택해 공략을 서둘렀다.

  보루 위에 엎드려 있던 적이 벽에 붙은 오산 일행을 발견하고 상반신을 일으켜 총구를 겨누었다. 순간, 적의 움직임을 발견한 당쇠가 총을 쏘았고, 오산을 겨눈 적은 총탄을 맞고 보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타타타탕! 우군 뒤편의 적들이 보루의 벽에 붙은 오산과 백의대의 병사들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벽에 붙은 상태에서 총격을 받은 백의대 병사 몇이 비명을 지르며 굴러 떨어졌다. 오산은 즉시 성벽 공략을 멈추고 뛰어내려 총탄에 맞은 부하들을 구한 후 엄폐물을 찾아 숨었다.

  “뒤따르라!”

  오산의 공격병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자 당쇠가 수하를 나누어 후미의 적을 향해 사격을 했다. 싸움은 교착상태에 빠져 지루한 사격전이 되었다.

  “콰쾅!”

  홀연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성문이 부셔졌다. 보루 안으로부터 내응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편이 있었나? 부사형의 솜씨?”

  예기치 않은 도움이었지만 부경주의 단군밀교는 만주벌 사회의 어느 곳에나 숨어 있었으므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백의대는 폭파된 성문을 통해 쇄도해 들어갔다.

  장원 안은 이미 전투 중이었다. 백의대를 막으려고 달려오던 적들은 뒤로부터 총탄을 맞고 차례로 쓰러졌다. 일발, 또 일발, 단 한 명의 저격병으로 인해 보루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멋지게 쏘더군. 도와주어서 고맙소.”

  기세가 오른 백의대는 어렵지 않게 보루를 점령했다. 당쇠 역시 후미에서 공격해 온 적을 물리쳤다는 보고를 보내왔다. 중국인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일본인 간자들임이 확실했는데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결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누구신지?”

  적의 원병을 염려하여 서둘러 철수한 오산은 뜻밖의 원군이 되어 준 저격병을 맞아 물었다. 그는 두터운 안경을 쓴 약관의 젊은이로 빈사상태의 포로를 한 명 끌고 왔다.

  “저는 단군교의 염동협입니다. 대사제님의 명을 받고 이 자를 쫓아 야탑보에 들어갔습니다. 이놈의 이름은 박창하, 장춘 주재 일본영사관 형사로 김이삼(金利三)을 죽인 자입니다.”

  “김이삼? 조선일보 장춘지국장(長春支局長) 김이삼?”

  “그렇습니다. 만보산사건의 오보를 냈던 김이삼입니다.”

  “그럼 이 자가?”

  “김이삼은 이 자에게서 정보를 받아 본사에 송신했습니다. 만보산 삼성보의 수로 싸움이 중국인들의 조선인들 박해로 알려져서 조선일보의 호외가 나오고, 평양의 중국인 거리가 습격을 받아 200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무리죽음을 당한 사건은 모두 이 자의 거짓 정보가 빚은 참극이었습니다.”

  만보산사건은 1931년 5월부터 시작된 중국 만주 길림성 장춘현 만보산 삼성보(三姓堡)에서의 수로 싸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다. 조선인들의 대거 이주로 논농사가 시작된 만주는 수전(水田) 개간이 빈번했고, 논농사에 필수조건인 수로 확보 문제로 중국인들과 조선인들 사이에 다툼이 많았다.

  크고 작은 분규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심심치 않게 실리던 그 해의 7월 2일, 조선일보는 ‘만보산에서 중국농민과 조선농민이 충돌해 많은 조선인이 피살됐다’는 기사로 호외를 발행했다.

 

  참혹한 폭동, 사망 100여명

  중국 관민 800여명과 조선인 동포 200여명 충돌

  장춘 일본 주둔군 출동 준비, 일-중 관헌 1시간여 교전

  급박한 동포 안위, 기관총대 급파, 전투 준비 중

 

  동포들의 수난 소식을 접한 조선반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었다. 전국 각지에서 중국인들이 습격당하고 상점들이 불탔다. 특히 평양에서의 소요가 커서 2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무리죽음을 당했다.

  사태가 크게 번진데 놀란 김이삼은 사건을 다시 조사하여 자신이 계교에 빠진 것을 알았다. 만보산 수로 싸움은 중국인들과 조선인들 10여 명이 다친 정도의 소규모 분쟁을 일본영사관이 부풀린 것이었고, 김이삼은 일본영사관 형사가 전한 정보를 믿고 오보를 날린 것이었다.

  “상해의 임시정부가 염려하던 그대로였군.”

  김이삼은 즉시 오보임을 알려 수습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었다. 조선에서의 학살이 알려진 후에 중국인들이 보복에 나섰고, 각지의 동포들이 수난을 당하는 상황까지 오자 만주침략의 명분을 찾던 일본군은 자국민 보호를 명목으로 병력을 증강시켰다.

  “김이삼은 이 자가 새로운 분란을 조장하기 위해 야탑장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추적에 나섰다가 오히려 변을 당했습니다.”

  “그도 조선인의 하나라 이를 갈았겠지. 이 추악한 자를 치료해서 상해로 보내 법정에 세우도록 하세.”

 

  오산의 보고서를 접한 선생은 황급히 중국정부와 서울의 동지들을 동원하여 사태의 전말을 공개했다. 오보를 낸 조선일보와 경쟁지인 동아일보가 적극 나섰음은 물론이지만, 조선과 만주, 상해의 민족세력이 단결하여 중국과의 불화를 중재하고 나섰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일본군의 만주 침략을 막을 길은 없었다.

  “그 박창하라는 일본형사를 잃은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중국정부에 내밀 가장 큰 증거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정부 외의 세력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오산이 보낸 보고서의 마지막 문구였다. 김이삼을 충동질하여 만보산사건의 오보를 내게 만든 박창하는 임시정부로 압송되기 전에 치료를 위해 병원에 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산은 자책했고 선생은 위로했다. 선생은 오산의 보고서를 접하기 전에 다른 경로를 통해 만보산사건의 내막을 전해 듣고 있었다.

 

  “우리는 만주를 점령할 거요. 중원의 사슴을 쫓게 되겠지. 만보산사건은 그 시발쯤으로 생각하면 될 거요.”

  숙적 사사키 주로(佐佐木十郞)였다. 선생은 오십대 중반의 화복을 입은 일본인이 자동차를 보내왔다 하여 그임을 짐작하고 대면을 허락했다.

  “만주의 중국인들과 조선인들 사이를 이반시켜 세를 불리지 않고는 싸움이 안 된다고 보았지. 당신네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많더군.”

  사사키가 말하는 조선인은 매국노들을 말함이었다. 조선반도의 일본 통치가 궤도에 든 후 만주벌에는 부역자가 된 조선인들이 많았고, 중국인들 사이에 섞여 살며 2류 일본인쯤으로 행세하려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야탑장은 만보산 삼성보와 비슷한 인적 구성을 가진 곳으로 노림수가 되었던 것이다.

  “이 눈, 의안이요. 진짜는 사이또 총독 암살사건 때 당신과 겨루어 빼앗겼지. 당신이 조선인들의 총수가 되어 있듯이 나도 제몫을 하고 있어. 이름도 바꿨지. 사사키 구라노스케(佐佐木蔵之介)로 불러주시기를.”

  사사키는 제멋대로 지껄이고 결론을 내렸다.

  “희생이 없는 혁명을 바랬소? 민중에게 정권은 세금을 뜯어가는 지배세력일 뿐이라 어떤 정부도 입맛에 맞을 수는 없다오. 조금 더 효과적으로 민중을 착취할 수 있는 통치체제를 갖는 것. 지배세력은 그것을 성공한 혁명으로 부르지. 우리의 명치유신이 그러했소.”

  세계가 사회주의 사상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파시스트가 횡행하고, 일본식 군국주의는 그 아류였다. 사사키는 선생을 일본에 대한 독립이 아닌, 민족적 혁명에 목표를 둔 사람으로 보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아, 그리고…… 내가 보낸 사람 말인데, 모처럼 발견한 인재인데 조선인이더군. 드릴 테니 잘 사용해 보시오. 입맛에 맞을 것이오.”

  염동협은 그렇게 강력한 추천인을 배경으로 둔 무정부주의자로 등장했다. 그는 첫 인사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게 일군을 주십시오. 서울을 점령해 보이겠습니다.”

  만보산 사건의 복수가 필요한 시기였다. 일본은 만주벌에 병력을 증파시키고 있었고, 중국인과 조선인들 사이의 갈등은 더할 수 없이 높아져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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