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7-2 오해
작성일 : 18-06-18 08:17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1151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소인은 거인의 병실에서 이마를 움켜쥐며 한숨을 나오는 대로 쉬었다.

 “복 떨어지겠다.”

  책을 읽던 거인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하며 소인에게 그만 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우울한 그에게는 들릴 리 만무했고, 그는 보란 듯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고민 있니?”

 “있긴 있는데… 별로 말 하고 싶지 않아서.”

 “왜?”

 “그야 내가 잘못 한 거니까.”

  소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선을 바닥을 향해 떨어뜨렸고, 자신을 향해 조용히 비웃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들어줘야겠군.”

  거인은 책을 덮어 옆에 내려놓았다. 책을 덮는 소리에 맞춰, 소인도 고개를 들었고, 거인과 눈이 마주치자 코에서 숨을 내쉬며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형, 형 같으면 말이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어. 정말 고마운 사람이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요즘 들어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없어.”

 “그 사람이 네가 평소에 말하던 시영이라는 사람이지?”

  거인의 지레짐작에 소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어?”

 “네게 최근에 도움을 준 사람이 그 시영이라는 사람 말고는 없잖아. 나도 그 사람에게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 그럼 이야기는 쉽겠다. 그래서 그 시영이형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형을 믿을 수가 없어. 그게 정말 좋은 사람이고… 항상 잘 웃는 형인데…”

 “정말 좋은 사람이고, 잘 웃는 형인데?”

  소인은 바닥을 바라보며 한숨을 작게 쉬었다.

 “그 형의 비밀 노트를 보게 되었거든. 원래도 몇몇 행동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형이었는데 그걸 보니까 확실하게 알 수 있겠더라고. 그 형은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노트를 그 사람이 보라고 한 거니?”

 “아니, 어쩌다보니 내가 보게 된 거야.”

 “그럼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네.”

  거인은 말을 마치고는 허리를 비틀어 뻐근해진 몸을 풀었다.

 “형?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당연한 거 아냐? 비밀 노트라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적어놓았겠지. 그게 왜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겠어.”

 “하지만 웃고 있었다니까? 내가 몰랐으면 이런 말 안 해. 하지만 그런 암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란 듯이 웃고 다니잖아. 그게 거짓말이 아니고 뭐야.”

 “그건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 아닌, 어떻게든 솔직해지고 싶어서 하는 ‘참된 행동’일거야.”

  소인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그랬지? 그 사람 거짓말 못한다고.”

 “그땐… 그랬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하지만 그 때는 비밀 일기를 보기 전이었어.”

  거인은 소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윽고 어깨도 토닥였고, 소인은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동생아, 넌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응… 어떻게든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솔직하게 말하니 좋네. 그럼 이해하지 마.”

  거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소인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소인은 그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거인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네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이유는?”

 “나야 모르지.”

  거인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형, 형이 그런 말 하면 어떻게 해.”

  소인은 그의 어깨를 검지로 찌르며 불만을 표시했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거인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앙다물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몰라. 하지만 내 동생 두 명을 구해준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잖아. 더군다나 네가 나한테 가끔씩 들려주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덕분에 나는 그 사람이 적어도 ‘진실’된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어. 그리고 비밀 일기를 읽은 건 네가 잘못 한 일이잖아.”

 “하지만 그 진실 되었다는 사람이 노트에는 그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적어두고, 겉으로는 마냥 해맑게 웃어대잖아.”

 “그럼 그 사람의 웃음이 거짓이라고 느껴본 적 있니?”

  거인의 물음에 소인은 곰곰이 기억을 되뇌었다. 방금 전 유마의 연구실에서 딱 한번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때 시영의 노트의 영향으로 그를 걱정만 하고 있었고, 그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자주 웃는다면, 그 웃음에 거짓이 느꼈어야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에서는 거짓을 표할 수 없어, 의도하고 조작한 행위에는 그런 느낌이 양념을 친 것처럼 확실히 드러나거든.”

 “확실히… 웃음을 비롯한 많은 행동에서 거짓을 느낀 적은 없었어.”

 “그리고 이 사람이 그 시영이라는 사람이지?”

  거인은 스마트폰의 SNS 어플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려는 검은 모자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소인에게 보여주었다.

 “마, 맞아.”

 “그 비밀일기가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현재야. 이상 세계 현상도 마찬가지지. 이미 일어나 버린 건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나마 나는 그 사건으로 나만 다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하지만 난 형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어!”

  소인은 금세 눈시울이 적셔졌다. 깁스 되어 움직일 수 없는 거인의 다리에 시선이 옮겨지자 눈물이 샘물처럼 고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야. 난 너랑 소민이가 다치지 않는 걸 원하지 않았거든. 그렇게 따지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

  거인은 소인에게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소인은 그제야 그가 말한 미소의 진실성에 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거인은 현재 다리를 움직일 수 없기에 시영에 버금갈 정도로 힘든 마음이 느껴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보낸 미소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그의 진실 된 마음이었다.

  타인을 위한 뜨거운 희생이…

 “그리고 이 사진을 비롯해서 이 시영이라는 사람이 항상 포우가 가는 곳마다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했는데, 이제 보니 이해가 가더라고.”

  거인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를 돕는 것, 멋진 일이잖아. 이 사람은 분명 마음에서 우러난 그런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했을 거야. 멀리 갈 것 없이, 너희들을 도와준 사람이잖아.”

  소인은 자신이 잘 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비밀 일기에는 그렇게 적었을지 몰라. 아, 참! 언제쯤 적은 건지 알고 있니?”

 “이상 세계 현상이 일어난 즈음?”

 “그럼 그렇지. ‘이상 세계 현상’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

  소인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그가 휴식을 취하길 바랐다. 동정과 연민을 느낀 탓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중요한 건 휴식이 아니었다. 그에게 정말 중요한 건.

  타인의 행복이었다.

 “형, 나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아…”

 “그래? 어떤 면에서?”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역시 그 형의 비밀 일기를 훔쳐 본 게 가장 잘못했고, 또 그 형에게 무조건적인 휴식만을 강요한 것.”

  거인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소인 역시 남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고, 상황은 좋지 못했지만, 그 역시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너도 잘 한 행동이야. 남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건 정말 훌륭하기 때문이지.”

 “거짓말쟁이라 매도했는데도?”

 “그건 잘못했지.”

  거인의 사실 적시에 두 형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웃어대었고, 배가 아플 정도가 되자 웃는 걸 그만두었다.

 “형, 소민이한테 갔다가, 시영이형한테 사과하러 갈게.”

 “그래. 아, 소인아.”

 “응?”

 “네 친구들이 요즘 내 병실에 자주 오더라?”

  갑작스런 그의 고백에 소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친구들?”

 “응. 2명 정도였고, 여자애들이었어.”

  소인은 누가 오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것도 이성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오는 건 좋은데, 그래도 자주 오면 불편해서 말이야.”

 “알겠어, 형. 내가 알아서 할게.”

 

 

 “자, 아 해.”

  하얗고 가녀린 손. 숟가락을 들고 있는 그 손이 향한 곳은 소민의 입 안이었다.

 “리아? 이 정도는 혼자 먹을 수 있어.”

 “안 돼. 넌 환자라고.”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는데…’

  블러드리아의 태도는 단호했다. 소민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수긍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든 마석이 인류를 위해서라는 사실은 소민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고, 흔쾌히 마석의 실험자가 되어주었지만, 결과는 그녀를 실망시키게 만들었다.

  블러드리아의 손에 들어온 마석은 전부 폐기되었다. 마석의 피해자들을 위해, 새로 나올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가장 옳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소민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마석을 충분히 멈출 수 있는 기간이 이틀 정도는 존재했었다. 하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 그리고 그 후에 느껴지는 강한 힘과 희열감에 취해 결국에는 블러드리아의 실망을 불러왔었다.

  하지만 블러드리아는 평소 소민이 가지고 있던 ‘강한 힘’에 대한 갈망을 잘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리아를 실망 시킬 수는 없겠지?’

  그녀가 뜬 죽을 우물거리는 소민은 생각했다. 학교에선 그 누구에게도 실망을 끼치지 않기 위해 열심인 그녀였기에, 쉽게 다짐할 수 있었다.

 “소민아, 뭐해?”

  그때 병실 문을 열고 소인이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블러드리아가 소민의 죽을 먹여주는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잠시 생각이 정지했다.

  그리고 눈치껏 나가주려 했지만, 소민의 저지로 나가지는 않았다.

 “헤헤, 쌍둥이가 같이 있는 모습은 오랜만이다.”

  블러드리아는 소민과 소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두 쌍둥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했고, 이내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너희들 왜 그래?”

  블러드리아의 물음에 소인은 어색하지 않게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아, 맞다. 블러드리아, 혹시 네가 우리 형 병실에 갔었니?”

  어색함을 풀기 위해 소인은 대화 주제를 다르게 잡았다.

 “다리에 깁스하신 그 분? 맞아! 나야.”

 “어쩐지… 올만한 사람은 너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왜? 그 분이 뭐라고 하셔?”

 “오는 건 고마운데, 너무 자주 와서 불편하대.”

  소인의 일방적인 통보에 블러드리아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 이후 은근히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소민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모습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하지만 소민은 블러드리아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제야 그녀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여자애 두 명 이랬는데, 그럼 나머지는 누구지?”

 “아마 반장일거야.”

  소민이 주섬주섬 편지를 꺼내며 말했다.

 “반장?”

 “응, 반장. 나한테 우리 오빠 병실을 물어보더라고. 그리고 이건 너한테 쓴 편지.”

  소인은 그녀가 건넨 편지를 받으며 의문을 품었다.

 “반장이 여길 왜 와?”

 “반을 대표해서 온 거래. 여기 노트 필기 한 것도 있고, 과자도 있고.”

  소민은 반장이 건넨 노트와 과자를 꺼내며 말했다. 소인은 노트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 편지는 뭐야?”

 “연애편지? 어머!”

  블러드리아가 입을 가리며 깜짝 놀란 행동을 취했다. 그 모습에 소민은 소인에게 삿대질하며 깔깔 웃어대기 시작했고, 약이 오른 소인은 그녀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아냐, 그런 거 아닐 테니까…”

  하지만 소인은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것은 반장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블러드리아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게 했던 묘한 행동들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시영을 만난 그 날, 학교에서 있던 일이었다. 막 등교하던 소인에게 담임 선생님의 호출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괜찮으면 이번 주 주말에…”

 “미안. 이번 주는 조금 바쁠 것 같아.”

  그때는 소민의 건도 있었고, 정말 바쁘게 움직이려 했기에 한 거절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실상 그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외에도 자신에게 묘하게 잘해준다는 느낌은 있었다. 결국 소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서 온 편지를 뜯어 읽어보았다.

  결과는 그녀에게 온 고백 편지였다. 소인은 그것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두 소녀는 그의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에 서로 키득거렸다.

 “우, 웃지 마!”

 “반장 좋은 아이야. 잘해봐.”

  소민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소녀의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반장은 좋은 학생이었고, 그녀는 진심으로 말한 것이었지만, 웃음으로 인해 소인을 놀리는 것처럼 되었다.

 “모, 몰라!”

  소인은 갑작스런 고백편지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편지지를 봉투에 조심스레 넣어 품 안에 넣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시영 씨였나? 그 분이 그때 많이 활약했었을 거야.”

  블러드리아가 소민에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여주며 말했다.

 “너 하녀야?”

  소인은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정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던 소민은 그를 째려보았다.

 “하녀라니! 친구한테 할 소리야?”

 “아니, 아까부터 너한테 하는 행동 보면 옷만 사복이지 하녀랑 다를 게 뭐야?”

 “그리고 내가 너보다 누나거든?”

 “누나 좋아하시네. 어떤 누나가 힘에 취해서 동생을 고생 시키냐?”

  소인은 자신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사실이라는 화살을 날리는 소인에게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 그건… 일탈이지.”

  소민은 소심하게 반박했지만, 소인에게 먹힐 리 만무했다. 결국 그녀는 블러드리아의 품에 파묻혀 분한 마음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소민아, 시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이야기 해줄까?”

 “리아야, 그 분을 잘 알고 있어?”

 “조금은? 그 분은 나 같은 오컬트에게는 은인 같은 존재거든.”

  블러드리아는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인! 맞아. 내게도 은인 같은 분이지.”

  소민은 그를 생각하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마석의 영향으로 인한 아픔 속에 고통 받고 있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인은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블러드리아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었지만, 소민을 구하기 위해 시영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고생했던 건 소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시영이형이구나…’

  소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같이 행동했고, 같이 진실을 밝혀내었다. 물론 시영의 활약이 더 뛰어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있었기에, 사건을 빠르게 밝힐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소민을 비롯한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소인은 다행이라 자위하며, 스스로를 이해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된 것일까…

  블러드리아는 문득 그를 바라보았고,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재빨리 소민을 툭툭 건드려 그를 보여주었다.

 “나, 갈게. 블러드리아, 재밌게 놀다 가.”

  소인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말투로 말했다. 영문을 모르는 소민은 그가 나가는 길에 활기차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가 완전히 문을 닫자 기지개를 폈다.

 “그나저나 리아야, 마석 사건 때, 소인이도 고생 많았다며?”

 

 

  소인은 한숨을 쉬었다. 결과적으로는 좋게 되었기에 그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다스렸다.

 “여기 있었네? 제대로 찾아왔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노크했고, 소인은 자신을 찾아온 고속을 바라보았다.

 “고속이형?”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니?”

 “네, 잘 지냈어요!”

  소인은 활짝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엔트의 주방장님의 부탁을 받고 ‘후드를 쓴 여성’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어. 정보를 조사하던 중에 소인이 네가 가장 오랫동안 접촉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

 “후드 쓴 여성? 아아, 그 사람이요?”

  소인은 그 여성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유령 소동의 원인 중 한 사람이었다. 나머지는 자신이었고, 그랬기에 강혁에게는 은근히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후드를 쓴 여성이라는 것 밖에는 알지 못했지만, 유령이 든 수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억할 수 있었고, 특히 그녀의 하얀 다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역시 알고 있구나?”

 “자세히 아는 건 아녜요.”

 “하지만 그 정보를 하나, 하나 모아서 구체적으로 만드는 게 내가 할 일이지. 괜찮다면 피자라도 한 판 사줄 테니 조금이라도 정보를 줄 수 있니?”

  피자라는 말에 소인은 군침을 흘리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는 문득 문 뒤의 소민과 블러드리아가 생각이 났고, 코로 한숨을 쉬며 고속을 올려다보았다.

 “형, 그럼 저 말고. 저기 있는 소민이랑 블러드리아, 그리고 저희 형한테 한판씩 사주실 수 있으세요?”

  고속은 의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먹는 게 내 기분에는 더 좋은 것 같은데?”

 “역시 힘들겠죠?”

 “아냐, 힘들기는. 상관없어. 그냥 네가 주는 정보니까 네가 먹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런 거지. 그럼 총 3판이지?”

  고속은 속전속결로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다. 단숨에 피자 3판을 주문하고는 소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형!”

  소인은 허리를 숙여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고속은 필요 이상으로 행동하는 그에게 위화감을 느꼈고, 그를 은연 중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럼 정보를 주겠니?”

  그들은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후드는 정말 별 것 없어요. 후드와 로브를 덧댄 이상한 복장이었고, 유령이 들어 있는 수정구를 가지고 있는 것, 마지막으로 하얀 맨다리였어요.”

 “맨발이었다고?”

 “네.”

  고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강혁에게서도 그녀가 맨발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나타났던 북쪽 산은 ‘여름에도 눈이 내릴 정도로 추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북쪽 산에는 눈이 쌓여있을 것이 분명했고, 동상을 각오하면서 까지 맨발로 다니는 것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다른 건?”

 “유령들에게 존댓말을 하고… 수정의 개수가 한 개가 아닌 것 같았어요. 퇴마사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거든요. 아,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배를 자주 굶었는지, 꼬르륵 소리가 자주 나더라고요.”

  고속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그녀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모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문제에 도착했다. 그것은 소인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대해서였다.

  그는 그를 무시하고 그냥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민이 있는 사람을 두고 그냥 간다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빚진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속은 입을 열었다.

 “고민 있니?”

 “네? 아, 네… 조금은…”

 “말해봐. 들어는 줄게.”

  고속은 오늘따라 따스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 시영이형에 대해서 그런 거예요…”

  소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 때문에 고속은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이 거짓말임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우, 웃지 마세요! 제게는 심각한 문제라구요.”

 “네, 나이 때는 고민이 많을 때지. 이해해. 원래 인생이라는 게 하나를 넘기면 또 다른 하나가 찾아오기 마련이잖아.”

 “그래서 절 도와주시는 거예요?”

 “아니?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저 이끌렸기 때문이었어. 생각해보면 고민은 누구나 다 하는 거고, 그게 너만 하는 건 아니잖아?”

 “놀리려는 거예요?”

 “응. 킥킥.”

  고속은 장난스레 키득거렸다. 그는 저번 소인에게 놀아나버린 걸 계속해서 분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이 그것을 복수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장난을 많이 해보지 않은 탓에 오히려 소인의 기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놀릴 거면 그냥 가주세요.”

 “미안, 미안. 사실 놀리려는 거 절반, 고민 들어주려는 거 절반이었어. 이제부터는 제대로 들어줄게.”

  고속은 새삼 누군가를 놀리는 건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시영이형이 계속 신경 쓰였어요. 뭐랄까, 좋은 형이고, 친절한 사람인걸 알겠는데… 계속 신경 쓰이고, 이해 안 되고… 여러모로…”

  소인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속은 그런 답답한 모습에 한숨을 쉬었지만, 그가 이러는 이유는 대충은 파악할 수 있었다.

 “질투네.”

 “질투요?”

 “그래, 질투. 네 나이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고, 나이 먹어서도 이따금 하는 아주 나쁜 행동이지.”

  소인은 그의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녀석 거짓말 못했었지? 너도 은근히 그 녀석을 의식하고 있던 거 아냐?”

 “무슨 소리에요?”

 “네 진심은 이것 뿐만은 아니잖아.”

  정곡을 찌르는 고속의 화살에 소인은 입을 더욱 더 굳게 다물었다. 그는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이 지긋지긋한 신경 쓰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병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속이 넌지시 던진 물음에 소인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는 소민의 병실에서 그녀들이 시영만을 칭찬하는 것을 계속해서 불만스럽게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곧 그에 대한 질투로 발전되어 갔다.

  그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은 고속은 고개를 끄덕이며 코로 한숨을 쉬었다.

 “질투는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죄 없는 시영이를 미워하면 안 되지.”

 “미워하는 건 아녜요. 단지… 화가 날 뿐이에요. 저도 소민이를 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소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불끈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고, 고속은 그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꼈다.

 “그래도 생각해봐. 그가 포우가 아닌 이상 질투해봐야 너만 손해라고?”

  고속은 이내 자신의 발언을 후회했다. 당장 제시할 예시가 포우밖에 없었지만 영웅인 포우와 그저 사립 탐정에 불과한 시영을 비교하는 것은 존엄한 인간과 먼지 한 톨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말은 소인에게 효과적이었다.

  그 역시 포우에 대해서도 신경 쓰고 있었다. 시영과 포우, 이유는 달랐지만 솔직한 그의 마음으로는 둘 모두에게 질투를 느꼈다.

  하지만 그나마 고속의 실수 덕분에 시영에게 가지고 있던 질투는 많이 소멸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린 마음에 한 번 생긴 질투는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었고, 어느 정도는 분한 마음이 표정에서 드러났다.

 “뭐, 포우는 만인이 동경하는 영웅, 시영은 널 도와준 착한 녀석. 그렇다면 뭐, 포우에는 질투를 느낄 수 있어도, 시영에게는 그러지마. 분명 네 성격이라면 그에게 무례를 범했을지도 모를텐데…”

  고속은 그를 떠보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은 제대로 된 유도가 되었다.

 “거짓말쟁이라 하긴 했어요. 하지만 이유 없이 그런 건 아니에요.”

  소인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눈동자는 파도치듯 요동치고 있었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 모습에 고속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을게. 내 말이 틀렸다면 어떻게든 증명해봐. 그래서 내 입을 한 번 막아봐. 네가 질투심에 눈이 먼 겁쟁이가 아니라면 말이지.”

  고속은 자신의 일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대화는 원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질투로 인한 투정이라면 더더욱 사양이었다.

 ‘그나저나 포우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고속은 문득 포우의 정체에 대해 궁금함을 느꼈다. 의도치 않게 언급된 포우였지만, 그랬기에 갑작스레 궁금함을 느꼈다.

  하지만 포우도 포우였지만, 그에게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짐작도 가지 않는 포우보다, 비교적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은 후드를 조사하는 것. 그것이 그에게는 훨씬 이득이었다.

 ‘그 전에 피자부터 건네줘야겠지…’

  옥상을 내려가려던 고속은 문득 소인을 돌아보았다. 나름의 고충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고속으로서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투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갈등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었다. 질투를 버리는 것으로 그는 충분히 성장할 것이다. 고속은 확신할 수 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56 World 13 무형-4(강혁) 2018 / 8 / 11 246 0 8752   
55 World 13 무형-3(유마) 2018 / 8 / 10 244 0 4574   
54 World 13-2 무형 2018 / 8 / 4 271 0 5408   
53 World 13-1 무형 2018 / 8 / 3 265 0 10136   
52 World 12-4 마법사 2018 / 7 / 28 275 0 4790   
51 World 12-3 마법사 2018 / 7 / 27 264 0 6519   
50 World 12-2 마법사 2018 / 7 / 22 280 0 5662   
49 World 12-1 마법사 2018 / 7 / 20 279 0 2825   
48 World 11-4 심야 식당 2018 / 7 / 15 255 0 6680   
47 World 11-3 심야 식당 2018 / 7 / 14 257 0 6119   
46 World 11-2 심야 식당 2018 / 7 / 13 284 0 10972   
45 World 11-1 심야 식당 2018 / 7 / 8 262 0 6451   
44 World 10-5 Trinity 2018 / 7 / 7 269 0 13607   
43 World 10-4 Trinity 2018 / 7 / 6 249 0 12442   
42 World 10-3 Trinity 2018 / 7 / 1 269 0 8403   
41 World 10-2 Trinity 2018 / 6 / 30 233 0 10650   
40 World 10-1.5 Trinity 2018 / 6 / 29 250 0 13820   
39 World 10-1 Trinity 2018 / 6 / 29 261 0 10804   
38 World 9-4 잠자는 공주 2018 / 6 / 24 265 0 7745   
37 World 9-3 잠자는 공주 2018 / 6 / 23 247 0 11530   
36 World 9-2 잠자는 공주 2018 / 6 / 22 258 0 23208   
35 World 9-1 잠자는 공주 2018 / 6 / 22 289 0 6406   
34 World 8-4 Who is FOW? 2018 / 6 / 19 291 0 9419   
33 World 8-3 Who is FOW? 2018 / 6 / 19 287 0 5891   
32 World 8-2 Who is FOW? 2018 / 6 / 19 257 0 5490   
31 World 8-1 Who is FOW? 2018 / 6 / 19 266 0 6364   
30 World 7-4 오해 2018 / 6 / 18 283 0 5282   
29 World 7-3 오해 2018 / 6 / 18 282 0 5699   
28 World 7-2 오해 2018 / 6 / 18 245 0 11517   
27 World 7-1 오해 2018 / 6 / 18 245 0 11120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