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모기
작가 : 박아스
작품등록일 : 2016.9.4

잡힐듯 말듯.

모기.

 
5
작성일 : 16-09-12 05:16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869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6.

 

 

 이한솔의 계좌는 깨끗했다.

 수첩에 언급돼있던 백 만원은커녕, 그나마 있던 돈도 온갖 곳에서 빠져나갔는지 잔고는 0 원이었고 그 문제의 백 만원이 들어온 흔적도 없는 것 같았다.

 창환이 계좌내역을 반으로 접으며 한숨을 쉬자 그의 눈치를 살피던 영일이 입을 열었다.

 

 "선배, 영장 없이 계좌내역 뽑은 거 팀장님이 아시면..."

 

 "그러니까 너만 조용히 하면 되잖아."

 

 창환은 전에도 똑같이 태원에게서 이런 식으로 중요한 공문서를 얻었다가 아예 경찰을 그만 둘 뻔했었다.

 다행히 영장 없이 뽑아뒀던 그 문서에서 중요한 증거가 나와 그걸 빌미로 범인을 잡아 서 내에서 조용히 눈 감아 줬지만 지금은 서장에게 찍힌 데다가 팀장은 혁수도 그를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이 사실을 걸린다면 이번엔 옷을 벗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 달 동안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며 조사만 받다가 징계가 확정된 후 아예 교도소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영일에게는 마치 늘 하는 일처럼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한 그였지만 창환도 속으로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쓰읍... 그건 그렇고 여기서 우회전이에요?"

 

 "어. 우회전하고 저기 앞에서 세워놔."

 

 

 27.

 

 

 맨 처음으로 사건이 일어났었던 오피스텔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지만 여전히 평화롭게만 보였다.

 피해자는 서른여덟의 문창수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반 회사원.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사기업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자였다.

 

 "결혼은 했는데, 이혼 소송 중이었다네요. 그 아내라는 사람, 시신 확인도 안 했어요. 말만 소송 중이지 아예 이혼 상태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홉 살에 죽었다네요?"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도중 영일이 수첩을 뒤적거리며 피해자의 관한 것을 창환에게 읊어주고 있었지만 창환은 그것을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애초에 어디서 베껴왔는지는 몰라도 그 정보는 모두 창환이 조사한 것이었기에 두 번 들어봤자 그로서는 귀찮을 뿐이었다.

 띵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지는 긴 복도였다.

 창환은 일단 문창수의 이웃집부터 조사를 할 요량으로 무작정 옆집 초인종을 눌러댔다.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를 몇 번 울리자 반응이 없던 철문이 열리며 잠옷 차림의 여자가 눈을 비비며 나타나자 창환과 영일이 경찰 신분증을 꺼내 여자의 눈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요 옆집에서 몇 주 전에 살인 사건 일어난 건 아시죠? 그것 때문에 뭣 좀 여쭤볼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 씨..."

 

 여자는 짜증을 내며 창환과 영일이 서 있는 복도 쪽으로 침을 퉤 하고 뱉으며 말했다.

 다행히 침은 그들을 피해 옆 벽에 붙었다.

 

 "이번엔 뭔데요? 전에도 별 쓸데없는 거나 잔뜩 물어봤었잖아요."

 

 "아, 이번엔 정말로 간단하게 몇 개만 여쭐게요. 옆 옆 집에 사시는데 피해자 분의 얼굴은 아시나요?"

 

 "음... 그 아저씨는 밤에 들어와서 새벽에 자고 저는 일찍 들어오면 점심에도 들어와요. 시간대가 달라서 많이는 못 봤는데... 얼굴 정도는 뭐, 대충 본 거 같아요."

 

 "아아..."

 

 창환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달력 앱을 실행시키며 문창수가 죽은 날짜를 보여주며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이 날에 옆 옆 동에서 뭔가 큰 소리가 났다거나 아니면 누군가랑 싸우는 소리가 났다거나, 그런 건 없었나요?"

 

 "그건 모르겠는데요? 제가 이 날은 회식 때문에 아예 집에 안 들어왔거든요. 근데 그 변태 아저씨 뭔 일 있어요?"

 

 "변태요?"

 

 영일이 끼어들자 여자는 이번엔 영일의 얼굴을 보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건 확실한 건 아닌데... 가끔 저도 야근하며 퇴근시간이 겹쳐서 볼 때마다 옆에 여자 한 명씩은 꼭 끼고 들어가던데요? 주마다 바뀌던데? 여기 밑에 층에 사는 여자도 그 아저씨랑 사귀었던 거 같던데... 아, 이건 별로 쓸데없는 건가?"

 

 "아뇨. 뭐든 말씀해주시면 좋습니다."

 

 "아니... 이건 확실한 건 아닌데, 7층 사는 여자가 그 아저씨 집으로 들어가는 건 봤거든요? 근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제가 그때 워낙 피곤한 상태여서..."

 

 "그 7층 사는 여성 분은 몇 호에 사시는지 혹시...?"

 

 "708호 일걸요? 그 여자 꽤 유명해요. 그 아저씨랑 사귄 거 때문에."

 

 영일이 "예... 예..."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여자가 하는 말을 모두 적기 시작했다.

 

 

 28.

 

 

 10층에서 7층으로 내려온 창환고 영일은 지체할 것도 업이 바로 708호 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거칠게 눌러댔다. 하지만 둘이 찾아온 것을 아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없는 건지 오 분이 넘을 동안 초인종을 눌러서 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초인종 소리에 질린 옆집 사람들이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708호에 사는 여자를 아냐고 물어봤지만 다들 알기만 알뿐,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는 듯했다.

 헛걸음을 한 창환과 영일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오피스텔 관리실로 직행했다.

 

 "708호 말씀이시죠?"

 

 "네. 708호 사시는 여자분. 혹시 아시나요? 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시다거나..."

 

 "아... 하하... 저희는 그런 거 없고요. 그냥 708호 사시는 분은 좀 유명하시죠? 저희끼리도 여기 안에 소문들은 얼추 다 들으니까요. 잠시만요."

 

 경비원이 해맑은 표정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아, 708호 사시는 분. 이혜원 씨. 맞으시죠?"

 

 "저희가 이름은 잘 모르거든요."

 

 "이혜원 씨 택배는 지금 다 저희가 관리하고 있거든요? 저기 뒤에 보이시죠? 이혜원 씨 거예요. 아무래도 여름이니까 계곡이라도 가신 거 같은데... 택배 관리 신청도 따로 저희가 돈을 받고 하는 거라서 보통 이 시기쯤 되면 휴가 가시기 전에 많이들 신청하세요. 근데... 이혜원 씨는 작년보다 좀 빨리 가셨네요."

 

 정말로 경비원의 뒤편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가득 쌓인 갈색 상자들이 보였다.

 

 "혹시 이혜원 씨가 어디로 가신다거나 뭐 그런 말씀은 없으셨나요?"

 

 "글쎄요...? 저희가 그거까지는..."

 

 경비원의 말이 끝나고 창환과 영일이 가볍게 그에게 목례한 후 자리를 떴다.

 

 "그냥 10층 다시 가죠. 그 여자도 대충 즐기다 오겠죠. 휴가를 한 달 내내 즐기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그냥 나중에 서로 출석시켜요. 설마 불응이라도 하겠어요?"

 

 영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넘기려고 했으나 창환은 뭔가 찝찝했다.

 

 

 29.

 

 

 다시 10층으로 올라온 창환과 영일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입주민들을 상대로 그다지 많은 건 얻어내지 못했다. 얻어낸 것이라곤 아무래도 이혜원이라는 이름의 여자 한 명뿐인 데다가 그마저도 지금 당장은 만나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다름 아닌 살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기에 주변인 조사마저 쉽지 않았다.

 

 "뭔 놈에 사람들이 이렇게 정이 없냐?"

 

 창환이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빼물며 투덜대자 영일도 답답한 듯 대답했다.

 

 "모르죠. 근데 보통 도둑만 들어도 이런 오피스텔에서는 다 소문나지 않아요? 서로 눈도 안 마주치나?"

 

 소문은 절대로 숨길 수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소문을 내고 그 소문은 점점 불어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오피스텔에서는 예외였는지 소문은 물론이고 입주민들끼리 서로 대화도 하지 않는지 조용할 뿐이었다.

 그때, 그들 앞으로 빨간색 스포츠 카 한 대가 미끄러지듯 지나가며 정적을 깨자 영일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와... 선배, 우리는 언제 저런 차 타볼까요?"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질문에 창환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난 아파트랑 집사람 차 융자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

 

 "외제차인가? 한 번도 못 본 차 같은데, 진짜 멋있네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차도 훔치고 그러는 건가? 이해가 좀 가네요."

 

 "야, 말 나온 김에 저거 훔쳐라. 너 잡고 실적 좀 쌓게."

 

 "아이 참. 뭔 말을 그렇게 하세요."

 

 창환과 영일이 실없이 웃어대며 웃어대던 와중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큰 키의 늘씬한 미녀가 그들에게 다가와 섰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올려보았다.

 

 "저기요,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되는 거 모르세요? 아 진짜 짜증 나네."

 

 느닷없이 날아온 싹수없는 말투에 눈치 빠른 영일은 재빨리 담배를 끄면서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 왜 꽁초는 거기에 끄고 지랄이에요 지랄은? 저기 쓰레기통 안 보여요? 그 정도 매너도 없어요?"

 

 지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영일이 멍해지자 창환이 발끈했다.

 

 "아가씨. 지랄이 뭡니까? 말씀 좀 가려서 하시죠."

 

 창환이 나서자 여자는 금방이라도 한 판 붙을 것처럼 창환을 노려보았다.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던 그 순간, 관리실에서 만났던 경비가 뛰어오며 말했다.

 

 "아! 벌써 만나셨네."

 

 

 30.

 

 

 "아~진짜... 짜증 나네. 그런 아저씨 모른다고요."

 

 빨간 스포츠 카 앞. 혜원이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면서 아까와 같은 말투로 말했다.

 만난 지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창환과 영일은 벌써부터 그녀에게 질리고 있었다.

 만약 모든 사건이 끝난 후. 소주 한 잔 걸칠 때 혜원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창환은 새벽녘 내내 욕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재차 물었다.

 

 "정말로 모르시는 거 맞으시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실래요? 모른다고 했잖아요. 저 이제 들어가 봐도 되죠?"

 

 혜원이 주차장 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담배꽁초를 버렸다는 것만으로 매너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따졌던 사람 치고는 참으로 훌륭한 시민의식이었다.

 

 "사실대로 말씀 안 하시면 나중 가서 더 힘들어지는 거 아시죠?"

 

 창환이 경고하는 말투로 말했지만 혜원은 들리지도 않는 듯 "별 씨발, 이상한 것들이..."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배,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뭐가?"

 

 "저 여자. 몸에 두르고 있는 거요. 좀..."

 

 "뭐가 이상한데? 가방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죄다 짭이에요."

 

 "짭? 가짜라고?"

 

 창환 같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분명히 명품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 가짜 명품들을 중국에서 밀매하는 범죄자들을 잡은 경력이 있던 영일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었다.

 

 "예. 솔직히 이거, 차 빼고는 다 가짜처럼 보였거든요. 몸에 가짜 두르고 다니는 건 그렇다 치는데, 그런 여자가 이런 차를 굴리는 게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기름값도 안 나올 텐데..."

 

 영일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의심해야 하는 게 맞았다.

 혜원의 나이는 척 보아도 삼십을 넘지 않아 보일 정도로 젊어 보였다. 그런 나이에 복권이라도 당첨됐거나 집에 돈이 많지 않은 이상 외제차를 끌고 다닐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돈이 많은 사람이 가짜 명품으로 몸을 치장할 리 없었다.

 가짜 명품을 사들이는 사람은 딱 두 가지 부류였다.

 도매상이거나, 남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 였다.

 맘 같아서는 차량 번호를 조회해보고 싶었지만 그쪽 계통으로 친한 사람이 없는 창환은 물론 영일도 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창환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31.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창환은 수사 팀에 문창수의 명의로 등록되어 있는 차가 있는지 확인했고 이내 2인승의 외제차가 한 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메이커와 모델은 혜원이 타고 왔던 차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혜원이 죽은 문창수가 그리워 같은 모델의 차를 샀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차 주인이 죽어있건 살아있건 상관없이 자기 돈 조금 나가는 것 말고는 신경 쓸 게 없으니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멍청이가 죽은 사람을 기린다고 같은 차를 사겠는가?

 참으로 뻔한 경우에 창환과 영일은 기가 막혀하며 혜원이 사는 708호 초인종을 거칠게 눌렀다.

 다행히 한 번에 반응하며 혜원의 짜증 나는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튀어나왔다.

 

 "또 왜요!"

 

 "잠깐이면 되니까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엔 좀 다른 것 때문에 그러거든요."

 

 "아... 씨..."

 

 인터폰이 끊기고 희미하게 문 안팎으로 잔뜩 화가 난 듯한 발걸음이 쿵쿵하고 들려오자 영일이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내 들었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잠금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리자 영일이 재빨리 혜원의 가녀린 손목을 잡아채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죽은 사람 것도 훔치면 절도죄에 들어가는 거 아시죠? 변호사 선임할 권리 있으시고 묵비권을 행사하실 수 있고요. 불리한 진술에 대해 거부권도 가지십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수갑이 잠기자 혜원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뭐야! 이거 안 풀어! 너희 미쳤어!? 빨리 풀어!"

 

 원체 여자를 거칠게 다루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여자 범죄자도 남자 범죄자만큼 다뤄야 온순해진다고 생각하는 영일이 단숨에 혜원을 벽장으로 밀어붙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어? 여기서 이러시면 죄 추가로 붙어요."

 

 "아아악! 풀라고오!"

 

 혜원이 악을 쓰며 소리치자 그제야 7층에 사는 주민들이 하나둘씩 어디선가 나타나 이 광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 구경꾼들은 창환이 막아섰다.

 

 "아, 경찰입니다. 여러분들은 신경 쓰지 안 쓰셔도 됩니다. 경찰이에요~ 경찰."

 

 "야아 아아악!"

 

 고상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악에 받친 혜원은 창환이 언젠가 젊은 시절. 친구들과 여행을 하던 도중 수산시장에서 이 가격 아래로는 절대 못 판다면 악을 쓰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한동안 난리를 피우던 혜원이 진정할 즈음 구경을 하던 주민들도 다 사라지고 나서야 영일이 창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혜원 씨. 이제부터 저희가 하는 질문에 대해 잘 대답해주시면, 저 차. 없던 일로 해드릴게요. 하지만 만에 하나 거짓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바로 연행할 거고요. 알아들으시죠?"

 

 혜원은 그새 울었는지 눈가에 지우다 만 짙은 화장이 번져 조금 흉하게 보였다.

 창환이 휴대폰의 달력을 꺼내 들며 말했다.

 

 "이 날이 어떤 날인지는 아시죠? 문창수 씨가 살해당한 날에 정확히 어디서 뭘 하셨는지 좀 알고 싶거든요."

 

 "그 날은 친구들이랑 술 마셨어요. 그것 말고는... 아, 진짜예요! 정말로! 그리고 그 아저씨랑은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 그냥 가끔 외롭다고... 그러길래..."

 

 "외롭다고?"

 

 "그... 그냥 파트너 식으로..."

 

 눈치 없는 창환이 이해를 못하자 수갑을 정리하던 영일이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대신 말했다.

 

 "아아. 대충 알아들었고요. 그럼 그날 있었던 일. 친구분들에게 여쭤봐도 상관없겠죠?"

 

 "네. 정말로 그 날 술을 많이 마셔서 집에 안 들어왔었거든요? 점심쯤에 집 들어왔는데... 10층에 누가 죽었다고... 막 경찰들도 와있길래... 그 아저씨라고 들은 건 제가 저녁쯤 돼서야 들었어요."

 

 "그럼 혹시 문창수 씨가 요즘 들어서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진 않으셨나요?"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서로 대화는 많이 안 해서..."

 

 "그럼..."

 

 영일이 두 번째 피해자였던 이한솔의 사진을 꺼내 들며 말했다.

 

 "최근에 이상한 사람이 여기에 왔다거나 뭐 그런 건 없었나요? 아주 사소한 것도 괜찮거든요? 가스 검침이 두 번이라던가...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왔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 요."

 

 "아뇨. 그런 건... 아! 그러고 보니까 이상한 사람이 10층 앞에 왔다 갔다 하는 건 봤었어요. 근데 한 달도 더 된 일이라..."

 

 "한 달 전에요? 누구였죠?"

 

 "모르겠어요... 그때 그 아저씨랑 약속한 날이어서... 10층에 올라갔었는데, 그 이상한 사람이 막 욕을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좀... 외국인 느낌? 욕도... 너무 더듬어서 알아듣지도 못 할 정도로 막 더듬었거든요. 장애인 같은... 그 아저씨한테 얘기했었는데 별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말을 더듬는다는 소리에 창환과 영일이 동시에 "말을 더듬었다고요?" 하고 되묻자 혜원이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확실한가요? 정말로 말을 더듬었나요? 혹시 그 외국인 인상착의나 뭐 다른 특징은 없었나요?"

 

 "다른 특징이요? 남자였고... 키는 한... 175 정도... 자세히는 못 봤어요. 그 날 저도 많이 피곤한 상태여서..."

 

 창환과 영일은 순간 동시에 원룸촌 슈퍼 주인 할머니를 떠올렸다.

 주인 할머니는 입이 조금 거칠긴 했어도 그들에게 틀린 말을 하진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럼 그날은 문창수 씨랑 만났나요?"

 

 "아니요. 그날은 워낙 또 피곤하기도 하고... 그 사람도 무서워서 뭐라고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집에 왔었어요."

 

 창환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인터폰을 바라본 후 다시 혜원에게 물었다.

 

 "분명히 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죠?"

 

 "네? 네..."

 

 말을 마친 창환이 어설픈 자세로 누워있는 혜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서로 없던 걸로 할게요. 알았죠?"

 

 "아...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뭐... 쓰읍, 아무튼 저희가 또 조사할 일이 생기면 출석하셔야 하거든요? 연락 가능한 번호 있을까요?"

 

 "잠시만요..."

 

 

 32.

 

 

 혜원에게서 집 전화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받고서 건물에서 빠져나온 창환과 영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동시에 담배를 빼 물어 불을 붙였다.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원룸촌에서 봤던 CCTV와 혜원의 증언은 이름 모를 말 더듬이가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두 형사들 머리에 각인시켜주고 있었다.

 

 "이 새끼를 이제 어떻게 잡죠? CCTV만 돌려본다고 잡히는 것도 아닐 거고... 이렇게 숨어 지낼 수 있는 건 어디 숨을 데가 있는 거 아닐까요? 뉴스 때문에 지금 다 떠벌려져서 자기 잡고 있는 것도 알 텐데... 아예 어디로 숨어버리면..."

 

 "숨는 것도 한계가 있지. 지가 신창원이야 뭐야?"

 

 창환의 말대로 숨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범행수법이 날로 잔인해지고 영악해지는 것과 동시에 경찰들의 수사도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CCTV에 모습을 드러내고 직접 본 목격자가 있는데 못 잡는다는 건 현대 경찰들로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물론 시간이야 조금 걸리겠지만 분명히 그 말 더듬이는 잡힐 것이었다.

 창환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해가 저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는 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날은 무더웠다.

 

 "선배, 가는 길에 뭐 밥이라도 한 끼 먹죠?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잖아요."

 

 "밥? 그래. 밥 먹어야지. 밥도 먹어야 잡지... 후..."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5 5 2016 / 9 / 12 300 0 8695   
4 4 (1) 2016 / 9 / 8 499 1 8083   
3 3 2016 / 9 / 6 414 0 7639   
2 2 2016 / 9 / 5 330 0 6301   
1 1 2016 / 9 / 4 520 0 723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