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막내 후궁의 자립기
작가 : 오렌지사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8.5.2

[성장물]/[육아물]/[로코물]/[동안 여주]/[순진 여주]

여자의 결혼 적령기는 과연 언제일까.


평민들은 대충 2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결혼하지만 귀족은 어린 나이에 미리 약혼을 해두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왕족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레나테 공주의 나이가 이제 열넷이니 파네스 제국 황제 폐하의 후궁으로 가도록 하라는 국왕 전하의 명이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벌써 결혼하는 건 이른 거 아닐까. 올해 갓 14살이 된 레나테는 시종의 전언을 듣고 멍하니 생각했다.


원래 연재했던 막내 후궁의 자립기 리메이크작입니다. 표지는 레이에린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1장
작성일 : 18-05-02 19:30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934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레나테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푹신한 이불과 하얀 천장, 진한 분홍색 휘장,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레베카와 엘라, 나탈리였다. 특히 레베카는 평소 레나테를 돌봐줄 때의 자애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귀신 한 명이 서 있는 것 같은 섬뜩한 얼굴이었다.

 

 “유, 유모?”

 “레나 님, 어제 어떻게 여기 돌아오셨는지 기억하시나요?”

 

 레베카의 물음에 레나테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기억 안 나. 백합 궁에서 우유 마셨던 건 기억나는데.”

 

 레나테의 대답에 레베카는 뒷목을 잡았고 엘라는 주저앉고 나탈리는 비틀거렸다. 고개를 갸웃하는 레나테에게 레베카가 이를 악문 채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쪽지 하나 남겨놓고선 가본 적도 없는 도서관에 가시겠다고 나가셔선 몇 시간이나 행방불명에, 겨우 소식이 왔나 싶었더니만 백합 궁에서 우유를 마시고 잠들어 계셨다고요? 대체 뭐하신 거에요? 모르는 사람이 사탕 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잖아요!”

 “사탕 준다고 안 했어. 그리고 모르는 사람 아니야. 세헤라자데 님은 10후궁이신걸.”

 “10후궁님이시라고 해도요! 처음 본 사람을 그냥 따라가시면 어떻게 해요? 그럴 때는 일단 프리지아 궁에 돌아와서 시녀를 데리고 가셨어야죠!”

 “아, 그래야 되는 거야?”

 “네!”

 

 레베카가 강하게 끄덕이자 레나테는 머릿속으로 기억해두었다.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돌아와서 시녀를 데려가야 한다. 별궁에서는 그냥 나갔는데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되는 모양이다.

 

 “근데 그럼 나 오늘 티타임에 초대받았는데 그건 어떻게 해? 초콜릿 케이크 준다고 했는데.”

 “그 전갈이라면 어제 받았습니다. 다행히 어제 티타임에 입고 가실 만한 옷 한 벌은 준비해두었으니 그걸 입고 가시도록 하죠. 대신 오늘 아침은 어제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나가신 벌도 겸해서 한 그릇만 드세요.”

 “뭐?”

 

 레베카의 말에 레나테는 오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로 절망했다. 한 그릇이라니, 오믈렛과 크로아상인데 그걸 한 그릇만 먹으라니!

 

 “싫어! 두 그릇!”

 “한 그릇입니다! 어제 그렇게 과식해서 배 아프다고 하시고선 또 같은 실수를 하시려는 거에요?”

 “여자는 원래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 그러잖아!”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으신 거에요?”

 “엘라!”

 

 레나테의 힘찬 대답에 레베카는 엘라를 노려보았다. 어제 저녁을 먹고 아쉬워하는 레나테에게 뭐라고 하는 걸 보긴 했지만 설마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을 줄이야.

 

 “그런 건 잠깐만이라도 살이 찌는 것을 외면하기 위해 하는 헛소리입니다. 오늘 아침은 한 그릇이에요. 엘라, 그 이상 드실 수 없도록 한 그릇만 내오도록 해요.”

 “흐잉...”

 

 레나테가 풀이 죽었지만 레베카는 단호했다. 여기에 와서 처음 보는 고급 음식에 흥분한 레나테는 정말 위가 터지도록 먹으려고 했다. 살이야 좀 쪄야 하지만 잘못해서 또 탈이 났다간 괜히 몸만 더 망칠 것이다. 레나테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했다.

 

 

 

 

 레베카는 정말로 딱 한 그릇만 먹게 해주었다. 오믈렛이라는 게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던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달콤한 오믈렛과 부드러운 크로아상, 그리고 굉장히 진한 코코아와 신선한 과일까지 나오자 레나테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게 먹었지만 레베카의 규제로 양이 어제에 비해 확 줄어든 건 슬펐다.

 

 그래도 티타임에는 가도 된다고 했기에 레나테는 새 옷을 입고 백합 궁으로 출발했다. 엘라의 말에 따르면 세헤라자데는 다른 궁과 교류가 거의 없어 아마 둘이서만 티타임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된 건 아니었던 레나테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서 와요, 레나테 님. 어젯밤에는 잘 주무셨나요?”

 “네! 세헤라자데 님도 안녕하셨어요?”

 

 정원에 자리를 마련해놓은 세헤라자데가 온화하게 웃으며 레나테를 맞아주었다. 어제와는 마찬가지로 엷은 소매 없는 분홍색 드레스와 날개옷을 걸친 세헤라자데는 정원에서 햇살을 받아 더욱 봄 같은 생기와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세헤라자데 님은 그 옷을 좋아하세요? 어제도 입었던 것 같은데.”

 “아, 이건 제가 모국에서부터 입던 옷이에요. 저희 어머니께서 주로 이런 옷을 입으셨다 보니 저도 같은 걸 여러 벌 맞췄답니다.”

 “그렇구나... 저는 여기 와서 옷 잔뜩 맞췄는데. 원래 입던 옷은 하나도 안 예쁘거든요. 장식도 없고, 색깔도 다 갈색이나 회색이고.”

 “어머, 그래도 지금 입은 옷은 정말 잘 어울리는걸요? 장미꽃 장식이 화려한 게 꼭 요정 같아요.”

 

 레나테의 티타임용 드레스는 볼품없이 마른 몸을 최대한 가리도록 풍성하고 장식이 가득한 옷이었다. 새하얀 바탕에 가슴팍에는 프릴이 달린 분홍색 원피스는 허리에 더 진한 분홍색 리본을 매서 포인트를 주고 머리에는 허리에 맨 것과 같은 색의 리본을 매어 치장을 완성했다. 마치 작은 요정 같은 옷차림이 사랑스러워 세헤라자데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헤헤, 저도 이 옷 정말 좋아요. 분홍색은 정말 예쁘거든요. 후궁 정찬 때도 이거 입고 갈까 생각중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후궁 정찬이 모레였죠. 레나테 님은 다른 후궁 분들과는 면식이 없으신가요?”

 “네. 세헤라자데 님 말고는 만나본 적 없어요. 다른 후궁 분들은 어떤 분들이 계신가요?”

 

 일단 후궁에 들어온 이상 다들 레나테에게 선배들이다. 본국의 별궁에서는 레나테의 출생 때문에 다들 그녀를 기피해서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본 제국의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고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그러니 후궁에서는 그래도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레나테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레나테의 기대 가득한 눈빛에 세헤라자데는 난감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이본느와 레나테를 번갈아 보았다. 당장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후궁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쳐줘도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음... 일단 레나테 님이 11후궁이고 제가 10후궁이니 9분이 더 계시죠. 하지만 뭐랄까... 사이가 서로 좋지는 않아요.”

 “사이가 안 좋아요? 어떻게요?”

 “그게, 성격이나 성향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망설이던 세헤라자데가 처음부터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그동안 황제 폐하께서는 후궁을 찾아오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후궁들을 일단 관습에 따라 들이시기는 하셨지만 어떤 후궁에게도 관심을 보이시지 않으셨고, 후사를 볼 의사도 아직 없으신 듯해요.”

 “그래요? 그래서요?”

 “그래서, 처음에 후궁에 들어오신 분들은 제국에서도 명문가에 미모도 재능도 뛰어난 재원 분들이셨지만 폐하께서 후궁에 관심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자 점점 다들 후궁을 피하기 시작하셨어요. 폐하께서 즉위하신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인에게, 그, 관심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거든요.”

 “어, 그럼 후궁은 왜 들여요? 친선 목적으로?”

 “그것도 있지만 관습법상 황제는 후궁을 11명까지 두도록 되어 있다고 해요. 그리고 5명 이상은 꼭 외국에서 맞아야 하기 때문에 보통 6후궁부터는 외국인이 들어와요.”

 

 세헤라자데의 말을 레나테는 주의깊게 들었다. 아무래도 1후궁부터 5후궁까지는 제국 출신, 6후궁부터 레나테까지는 전부 외국 출신인 모양이었다.

 

 “그럼 여러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많은 거네요? 어느 어느 나라에서 오셨다고 해요?”

 “헬레나 님은 아셀린 왕국 출신이셔요. 7후궁 이사벨라 님은 샤펠 공국 출신이시고, 8후궁 수잔나 님은 트리스탄 왕국, 9후궁 레오나 님은 바이잔 왕국 출신이시고요. 저로 말하자면 플루라 왕국 출신이랍니다.”

 “그렇구나... 그럼 1후궁님부터 5후궁님까지는 제국 출신이신 거네요?”

 “네. 전부 정치, 상업, 군사, 예술 분야에 영향력이 있거나 유서 깊은 명문가 출신이세요.”

 

 대륙의 지도라면 책에 나와 있지만 제국의 명문가나 권력자에 대해서는 레나테가 알 수가 없다. 일단 다른 후궁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그 나라들에 대한 책이라도 읽어둘까 하고 레나테가 케이크를 포크로 잘라 찍으며 고민하려던 때, 정원 밖에서 약간 소란이 들렸다. 정원 밖에서 대기하던 시녀에게 말을 들으러 간 엘라는 말을 듣자마자 기겁해서 종종걸음으로 돌아왔다.

 

 “레, 레나테 님! 10후궁님, 큰일이에요!”

 “이게 무슨 체통 없는 짓이죠? 무슨 일이기에 그리 소란인가요?”

 

 이본느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엄격한 얼굴로 노려보았으나 엘라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그녀도 의문을 느낀 듯 설명부터 요구했다. 이본느의 얼굴을 보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여전히 당황했으면서도 시녀답게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엘라는 밖의 소식을 전했다.

 

 “화, 황제 폐하께서, 11후궁 레나테 님을 직접 보셔야겠다고 조금 전에 프리지아 궁에 행차하셨다 하옵니다. 허나 레나테 님께서 자리를 비우셨기에 이리로 오셨다고...”

 

 엘라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그녀의 뒤에서 ‘황제 폐하 납시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레나테가 케이크를 찍은 포크를 내려놓고 일어나자 세헤라자데 역시 벌떡 일어나서 레나테의 곁에 가서 섰다. 그녀가 레나테를 자신의 날개옷으로 감싸며 살짝 뒤로 물러나게 했을 때 시종장 사이먼을 대동한 황제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는 레나테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미남이었다. 밤하늘을 그대로 담은 듯한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만으로도 인상적이었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이목구비는 정말로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어쩐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정확히는 이 얼굴이 아니라, 이 얼굴과 닮은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레나테가 얼굴을 더 보기도 전, 세헤라자데가 레나테를 몸으로 가린 채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며 주의를 끌었다.

 

 “파네스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백합 궁의 주인, 10후궁 세헤라자데가 인사 올립니다.”

 “전갈도 없이 들이닥친 것을 사과하겠네, 10후궁. 뒤에 있는 소녀가 11후궁인 듯한데, 잠시 비켜줄 수 있겠나?”

 “송구하오나 그리 할 수는 없사옵니다, 폐하.”

 

 고개를 든 세헤라자데가 황제를 노려보았다. 레나테를 감싸며 선 그녀의 우아한 태도에서 보이는 건 다른 후궁에 대한 시기가 아닌 어린 소녀를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이었고,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에 담긴 것은 황제에 대한 경외심이 아닌 변태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11후궁은 아직 나이가 어려 폐하를 모시기에 적합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폐하께서 제국의 주인이라 하신들 인간의 윤리를 저버려서는 안 되는 법, 부디 폐하에 대한 존경심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세헤라자데의 말과 태도에 아르토리우스는 현기증을 느꼈다. 비비안의 말을 듣고 느낀 위기감은 이미 현실이 되어 있었다. 당장 세헤라자데의 마음속에서 황제가 아니라 변태 파렴치한으로 추락한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아르토리우스는 근엄한 어조로 자신을 변호했다.

 

 “짐은 그저 11후궁을 확인하러 온 것뿐이다. 어찌하려는 게 아니라 얼굴을 한 번 보려 했을 뿐이야. 그리 경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껏 후궁에 누가 들어와도 얼굴을 보러 오신 적 없는 폐하께서 11후궁의 얼굴은 확인하러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의 근거가 되리라 생각하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헤라자데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여인에게 어떤 관심도 보인 적 없는 아르토리우스가 레나테를 직접 보러 온 것에 경계심이 더 올라버렸다. 여성에게 선망과 연정의 눈길은 받은 적 있어도 이렇게 경계와 경멸에 한 발짝 남은 듯한 눈빛을 받은 적은 없던 아르토리우스는 억울함에 가슴을 치고 싶었다.

 

 “10후궁, 자네의 의심은 이해하나 부디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라네. 짐은 11후궁의 나이를 알고 후궁으로 들인 것이 아니네. 오늘 시종장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확인을 위해 온 것이야. 나의 이름에 걸고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테니 부디 비켜주게.”

 

 황제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세헤라자데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옆으로 물러났다.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직 의심이 풀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당장 험한 짓은 하지 않을 듯하니 조금 경계는 풀었다.

 

 세헤라자데가 비켜서자 그제야 레나테와 황제의 눈이 마주쳤다. 밤하늘처럼 어두운 황제의 눈매를 본 순간 레나테는 황제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황궁에 들어올 때 봤던 사람! 그런데 왜 닮았지?’

 

 레나테가 의문을 표시하기도 전, 레나테를 찬찬히 훑어본 황제가 표정이 일그러져서 사이먼을 돌아보았다. 사이먼 역시 레나테의 모습을 보고 참담함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사이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송구하옵니다, 폐하. 제가 보기에도 정말 이건 아닙니다.”

 

 사이먼도 죄책감에 몸부림치고 싶은 걸 참는 것 같았다. 비비안의 말마따나 14살도 아니고 간신히 10살로 봐줄까말까 한 수준이다. 특히 드레스로 가리기는 했지만 앙상하게 마른 몸과 작은 키는 동정심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나마 그녀와 나이가 비슷한 비비안이 8살 때 저 정도 키였던 것도 같다. 초롱초롱한 눈과 사랑스러운 얼굴 생김새는 괜찮지만 후궁의 다른 여자는 물론 지나가는 시녀를 붙잡아도 이보다 낫겠다 싶을 만큼 레나테의 발육, 건강 상태는 좋아보이지 않았다.

 

 비비안의 말이 맞았다. 이런 아이한테 손을 대는 건 인간은커녕 짐승도 아니다. 짐승 이하의 무언가지.

 

 “아무리 모든 나라에서 한 명씩 후궁을 보냈기에 에드나 왕국에서도 받기는 했다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나. 이런 아이를 보내다니, 에드나 국왕은 정말 제정신인 건가?”

 “얼굴도 보지 않고 보낸 모양이지요. 아무래도 후궁 선발 때는 면접도 거쳐야 할 모양입니다. 또 이런 사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애초에 더 들일 후궁은 없어. 그보다 에드나 왕국과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지? 자기들만 후궁이 없다면 꽤나 물고늘어질 텐데.”

 

 아르토리우스가 말꼬리를 흐리자 불안해진 레나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폐하... 혹시 저를 돌려보내시려는 건가요?”

 

 자그마한 소녀가 동그란 눈동자 가득 불안을 담고 자신을 보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 아르토리우스는 나름대로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봤자 평소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이 자리에서 당장 대답할 수는 없지만 인간적으로 14살은 너무 어리지. 그대도 그대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과 결혼하는 게 나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원한다면 돌려보내줄-”

 “안 돼요!”

 

 황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나테가 다급하게 외쳤다. 동그란 청록색 눈동자에는 이제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아직 후궁이 뭐하는 건지는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공부도 하고 다른 후궁 분들하고도 잘 지낼게요. 아기도, 지금은 아직 어렵겠지만 낳을 수 있게 노력할 테니까, 그러니까...”

 

 감히 황제의 말을 끊은 무례를 지적하기도 전에 레나테가 외치는 필사적인 목소리에 놀란 아르토리우스는 차마 화를 내지도 못하고 레나테의 울음 섞인 말을 들었다. 커다란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레나테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며 말을 이었다.

 

 “뭐든, 정말 열심히 할 테니까... 제발 돌려보내지 말아주세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부탁드려요...”

 

 레나테의 말이 끝나자 정원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졸지에 어린 소녀를 협박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된 아르토리우스는 물론, 뒤에 있던 사이먼도 시녀들도 레나테에게 연민을 느꼈다. 얼마나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면 저 어린 아이가 뭐든 하겠다고 할까.

 

 아르토리우스는 가슴을 치고 싶었다. 맹세코 그는 레나테를 확인하고 싶어서 온 것이지 불순한 의도로 보러 온 게 아니다. 원한다면 돌려보내려고도 했는데 설마 레나테 본인이 돌아가기 싫어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헤라자데와 그 뒤의 시녀들이 자신을 짐승보다 못한 무언가로 생각하고 보는 게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심지어 사이먼은 자기가 통과시켜놓고선 왜 저리 노려보는 건지, 당장 월급을 반으로 깎아버릴까 하고 속으로 이를 갈며 아르토리우스는 앞으로는 한 번만 더 서류를 읽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1년간 서류지옥에 다이빙해 휴식 없이 개미처럼 일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지. 조만간 대책을 세울 테니 기다리고 있도록.”

 

 우는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에드나 왕국에 항의하고 싶어도 이미 후궁으로 들이는 데 동의한 이상 항의해봤자 마차는 떠난 뒤다.

 

 그러니 그가 찾아가야 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돌아가자마자 전갈을 넣기 위해 아르토리우스는 후궁을 떠났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우는 모습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그를 괴롭혔다.

 

 

 

 

 “직접 보니 어떠셨습니까? 어린 신부는 마음에 들던가요?”

 “맞기 싫으면 입 다물어라, 비비안.”

 

 아르토리우스가 이를 악물고 말하자 후궁 밖에서 기다리던 비비안은 삐딱하게 선 자세로 그를 흘겨보았다. 누가 보면 황자가 아니라 가출 청소년이냐고 할 만큼 불량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나 아르토리우스나 그리 그걸 신경쓰는 사이는 아니었다.

 

 “다행이네요. 난 형님이 남색가거나 중년 여성, 나아가 할머니 취향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런 어린아이를 상대로 성욕을 느낀다고 했으면 반란 일으켰어요.”

 “그런 소리 할 거면 그냥 줄 테니 황제 자리 가지거라. 나도 퇴위하고 놀고 먹어보자.”

 “누구 좋으라고 내가 황제합니까? 미성년자 여기서 더 부려먹을 생각하지 마세요. 그보다, 그 공주는 어떻게 할 거에요? 설마 안 돌아간대요?”

 

 비비안의 물음에 아르토리우스는 한숨을 쉬었다. 아까의 광경을 떠올리면 나오는 건 한숨이요, 할 수 있는 것은 깃펜 부러뜨리기뿐이었다. 항상 황제의 업무 스트레스에 따라 그날 부러지는 깃펜의 개수가 달라진다는 건 유명한데, 아무래도 오늘은 오랜만에 부러지는 깃펜이 10개가 넘어갈 듯하다.

 

 100년 전까지는 수명이 짧아서 14살도 결혼을 했다지만 지금 시대에서 사회적으로 결혼이 용인되는 나이는 16살이다. 그걸 떠나서도 레나테처럼 마르고 발육상태도 엉망인 아이를 아내로 맞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하지만 레나테 본인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저렇게 우는데다 다른 나라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해서 더욱 복잡해졌다.

 

 “뭐든 할 테니 제발 돌려보내지 말라더군. 공부도 할 거고 다른 후궁들과도 잘 지낼 수 있고 심지어 아이도 낳을 수 있게 노력할 테니 여기 있게 해달라고.”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건 아웃이잖아요! 뭐에요, 그 꼬마?”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아라. 어차피 보아하니 알지도 못하고 하는 말인 듯하니. 그보다는...”

 

 아르토리우스는 레나테의 우는 모습을 지우며 떠오르는 눈빛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치 언니나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레나테를 감싸고 서서 그에게 맞서던 세헤라자데. 레나테가 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대체 언제 그렇게까지 친해진 것인지.

 

 게다가 돌아가려고 정원을 나가다 흘깃 뒤를 보았을 때 그녀는 아예 몸을 숙여 11후궁을 품에 안고 달래주고 있었다. 나풀거리는 드레스의 아랫단에 풀이 묻는 것도, 가슴팍에 아이의 눈물이 묻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서.

 

 ‘···완전히 악당이 되버렸겠군.’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쾌감과 억울함을 애써 도로 묻으며 아르토리우스는 사이먼을 불렀다.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했을 세헤라자데도 신경쓰였지만 당장 급한 건 레나테다.

 

 “어마마마를 뵙는다. 전갈을 넣도록.”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1장 2018 / 5 / 8 199 0 13762   
8 1장 2018 / 5 / 2 217 0 6206   
7 1장 2018 / 5 / 2 210 0 6943   
6 1장 2018 / 5 / 2 197 0 5621   
5 1장 2018 / 5 / 2 220 0 9342   
4 1장 2018 / 5 / 2 217 0 8998   
3 1장 2018 / 5 / 2 232 0 8897   
2 1장 2018 / 5 / 2 246 0 5396   
1 프롤로그 2018 / 5 / 2 388 0 479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