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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막내 후궁의 자립기
작가 : 오렌지사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8.5.2

[성장물]/[육아물]/[로코물]/[동안 여주]/[순진 여주]

여자의 결혼 적령기는 과연 언제일까.


평민들은 대충 2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결혼하지만 귀족은 어린 나이에 미리 약혼을 해두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왕족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레나테 공주의 나이가 이제 열넷이니 파네스 제국 황제 폐하의 후궁으로 가도록 하라는 국왕 전하의 명이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벌써 결혼하는 건 이른 거 아닐까. 올해 갓 14살이 된 레나테는 시종의 전언을 듣고 멍하니 생각했다.


원래 연재했던 막내 후궁의 자립기 리메이크작입니다. 표지는 레이에린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1장
작성일 : 18-05-02 19:29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8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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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황제의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누가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건가 싶어 눈썹을 찡그린 시종장은 들어온 인물을 보고는 바로 허리를 숙였다. 그는 황궁에서 황제에게 어느 정도 무례를 저질러도 용서받는 단 둘뿐의 인물이었다.

 

 “형님 미쳤어요? 한 번도 여자 가까이 안한다 싶었더니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이었던 거에요?!”

 “···갑자기 문을 부수듯이 들어와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비비안.”

 

 집무실의 간소하지만 위엄 있는 의자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던 황제 아르토리우스는 갑작스레 쳐들어온 그의 이복동생 비비안으로부터 엄청난 욕을 얻어먹었다. 색은 다르지만 자신과 닮은 날카로운 눈매가 거의 살기에 가까운 빛을 띄고서 그를 매도하자 아르토리우스는 자신이 대체 뭘 했던가 며칠 전부터의 일을 차례로 떠올려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바이잔과의 무역협상은 재상한테 맡겼으니 만약 그 문제라면 재상한테 달려가야 할 거고, 특별채용 문제라면 그저께 벌써 한소리 했으니 또 올 리는 없는데... 그보다 취향? 대체 무슨 일이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경험을 쌓기 위해 관료로 일하는 동생에게 종종 일을 여러 가지 떠넘기는 바람에 욕을 먹은 적은 있어도 인신공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취향 중에서 특이하다고 할 만한 건 술보다 탄산음료를 즐기는 정도이지만 그것도 흠이 될 만한 건 아니기에 부당한 인신공격에 짜증이 나려 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형의 얼굴에 비비안은 어제 보았던 에드나 왕국의 어린 공주의 모습이 떠올라 당장 엎드려 통곡하고 싶어졌다. 화장을 한 얼굴과 무거운 드레스로 조금이라도 성숙하게 보이려고 한 듯했지만 그 얼굴과 몸집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살 이상은 무리다.

 

 동안일 뿐 성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자료를 뒤지고 혹시라도 조작이 있을까봐 조사한 레나테 공주의 나이는 올해로 14살. 10살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적으로도 결혼이 가능한 나이는 아니다. 나이까지 확인하고 나자 비비안은 당장 형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며 소리지르기 위해서 체통이고 오늘 일정이고 다 집어던지고 당장 형의 집무실로 달려왔다. 그런데 정작 저 형은 저리도 태평하니 16년간 쌓아온 형제애만큼 집무실을 초토화시켜버릴까 충동이 들었다.

 

 “뭐긴 뭡니까? 11후궁 말이에요!”

 “11후궁...? 아아, 에드나 왕국에서 보냈다는 공주 말인가.”

 

 이제야 떠올린 듯 아르토리우스는 턱을 괴고 그녀의 자료를 떠올렸다. 에드나 왕국은 워낙 소국이라 굳이 친선을 맺어야 할까 싶었지만 최근 그 왕국의 천 수출량이 늘기도 했고, 어차피 헌법상 후궁은 11명까지 들여야 했기에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첫째는 약혼자가 있어 둘째를 보낸다는 보고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워낙 바쁘기도 했고 후궁에 그가 관심을 보이면 기존의 후궁들의 친정에서 빨리 합궁을 해서 후사를 보라고 난리를 치기에 일부러 무관심했던 것도 있다.

 

 “아아, 가 아니잖아요?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런 어린애를 후궁으로 들인 겁니까? 황제가 소아성애자라고 제국 전체에 소문이라도 낼 셈이에요? 아니, 소문 이전에 그런 애한테 손대면 그건 인간도 아니에요. 그냥 짐승보다 못한 작자지!”

 

 비비안의 말에 아르토리우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후궁에 무관심하기로 한 뒤 대면식도 치르지 않고 관리도 황태후와 시종장에게 다 떠넘겼기에 그는 동생이 저렇게 분노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사이먼, 에드나의 공주가 몇 살이지?”

 “올해로 14살이십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아직 4년이 남았지요.”

 “···14살?”

 

 시종장의 말에 아르토리우스는 들고 있던 서류를 집어던질 뻔했다. 14살이라니, 그건 정말 어린애 아닌가.

 

 “아까 후궁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봤는데 겉보기엔 10살이나 됐을까 하더군요. 에드나 쪽에서 서류조작한 거 아닌가 싶어서 조사해봤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이는 사실이에요.”

 “···사이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비비안의 말을 들은 아르토리우스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렸다. 하지만 일을 처리했던 사이먼도 할 말은 있었다.

 

 “폐하께서 바이잔 왕국과의 협상 때문에 바쁘시다고 제가 드린 서류는 읽지도 않고 황태후 마마께 넘겨드렸잖습니까? 제가 분명히 첫째인 비앙카 공주는 18살이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어서 둘째인 레나테 공주를 대신 보내겠다는 답신이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4살밖에 안 된 어린애를 후궁에 들이밀었다고? 그 왕은 제정신인가?”

 “원래 후궁의 소생이랍니다. 그쪽에서도 껄끄러워서 우리 쪽에 떠넘긴 것에 가깝겠지요.”

 “그걸 알면서 왜 내게 보고하지 않은 건가?”

 “어차피 후궁으로 들여도 관심 가질 생각도 없으니 보고는 굳이 할 것 없이 승인으로 처리하라고 말씀하신 건 폐하십니다.”

 

 사이먼의 말에 아르토리우스는 두통이 났다. 확실히 그는 후궁이 싫었고 지금까지 후궁과 잠자리는커녕 대면조차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4살-비비안의 말에 따르면 겉보기는 10살이라고 한다-밖에 되지 않은 소녀를 후궁으로 들일 정도로 그가 바닥은 아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11후궁님께서는 아직 초경도 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성장이 매우 느리셔서 성숙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합궁을 삼가라고-”

 “내가 미쳤다고 합궁을 할 것 같나!”

 “하기만 해봐요. 내가 당장 어마마마랑 백성들 선동해서 형님 거세시켜버릴 거니까. 그런 어린애랑 합궁이라니, 인간으로서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되지!”

 

 아르토리우스는 깃펜을 집어던질까 고민했다. 동생이나 시종장이나 하여간에 성질 긁는 소리만 하고 있다. 후궁에 신경 좀 안 썼더니 설마 이런 사태가 되어 있을 줄은.

 

 “지금 11후궁에 대해 아는 자가 몇이나 되나?”

 “시녀장과 프리지아 궁 시녀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외에는-”

 “내가 오늘 황궁 입구에서 만났으니 거기까지 오는 동안 호위해온 기사들, 경비병, 그리고 마법사 길드의 마법사들은 알고 있겠네요. 후궁에 들어갔으니 후궁들도 알 거고, 후궁들이 알면 귀족들 사이에서도 다 퍼지겠죠.”

 

 아르토리우스는 결국 깃펜을 손으로 부러뜨렸다. 후궁 중에 아는 사람이 생겼다면 이제 그의 이미지는 끝장이다. 졸지에 제국의 고고한 황제에서 소아성애자 변태로 이미지가 추락하게 생긴 아르토리우스는 급하게 시종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후궁으로 행차한다. 프리지아 궁에 전갈을 넣도록!”

 

 

 

 

 

 황궁을 구성하는 궁은 황제가 거주하고 업무가 행해지는 본궁, 황족들이 거주하는 별궁, 그리고 황제의 후궁들이 거주하는 후궁으로 분리된다. 그 중 후궁에는 후궁의 관리를 맡는 시녀장과 총괄 시녀들이 거주하는 중앙궁을 중심으로 11개의 궁이 있는데, 각각 데이지, 제비꽃, 제라늄, 거베라, 사프란, 달리아, 샐비어, 수선화, 아네모네, 백합, 프리지아 궁이다. 그 중 1후궁이 거주하는 데이지 궁은 1후궁부터 5후궁까지 제국 출신의 후궁들이, 그리고 6후궁이 거주하는 달리아 궁은 6후궁과 다른 나라 출신 후궁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소로 쓰인다.

 

 데이지 궁의 응접실에 모인 다섯 명은 각각 제국 유수의 명문가, 아니면 신흥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1후궁 페넬로페는 정계 보수파의 기둥으로 꼽히는 라파예트 공작의 장녀, 2후궁 비올레타는 진보파의 기둥인 에지워스 후작가의 장녀, 3후궁 조세핀은 기사단장을 맡으며 정계에도 진출한 랜스버리 가의 외동딸, 4후궁 안젤라는 제국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오브라이언 상회를 소유한 오브라이언 가의 막내딸, 5후궁 세실리아는 각종 예술사업에 투자하여 문화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플라티니 백작가의 셋째 딸이다.

 

 후궁이 아니라면 가문끼리 이해관계나 본인들의 성향도 있다 보니 딱히 친하게 지낼 일은 없는 사람들이지만 후궁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그들을 ‘국내파’라는 파벌로 묶어주었다. 정확히는 1후궁 페넬로페의 묵인 하에 2후궁 비올레타의 주도에 따라 다른 후궁들이 참여한 파벌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집단을 만들어서 얻는 소속감은 황제가 찾지 않는 후궁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채운다는 점에선 장점도 있다.

 

 “11번째 후궁이 어제 궁에 들어왔다고 하는군요.”

 

 회의를 시작한 건 찻잔을 들고 한 모금 입에 댄 2후궁 비올레타였다. 깐깐해 보이는 암록색 눈동자에는 경계심이 담겼지만 노련한 정치인의 딸답게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도록 한 겹의 미소가 그것을 덮고 있었다.

 

 “에드나의 공주라고 했죠?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네요. 국력을 생각해서 위축되거나, 아니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주제 모르고 날뛰거나.”

 “세실리아 님, 만나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시니컬한 말투로 말한 건 홍차에 우유를 붓고 있던 5후궁 세실리아였다. 분홍빛이 맴도는 금발에 컬을 넣고 보석이 달린 머리핀으로 장식한 그녀는 세련되고 화려한 외모만큼 성격도 강했다.

 

 그와 반대로 4후궁 안젤라는 말투만큼 외모도 소극적이고 얌전한 스타일이었다. 끝부분이 약간 구불거리는 짧은 분홍색 머리카락에 핀 하나만 달고 있는 그녀를 그 오브라이언 상회의 딸이라고 짐작하기는 어려울 만큼.

 

 “에드나가 침략당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완충 지대의 필요성, 그리고 제국을 앞에 두고 전쟁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었습니다. 이번에 공주를 보낸 것도 제국과 동맹을 맺어 전쟁의 가능성을 더욱 낮추기 위한 것 아닙니까?”

 

 딱딱한 군인 같은 말투의 주인은 3후궁 조세핀이었다. 목덜미 위로 귀가 드러날 정도로 짧게 자른 오렌지색 머리카락, 아직은 여자들 중에서도 관료들에게밖에 허락되지 않는 바지를 당당하게 입은 그녀는 마치 후궁의 세력 다툼보다는 전쟁의 회의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후궁에 배당되는 예산은 품위유지비도 있으니 상당한 액수에요. 어제 이미 마담 미라벨의 의상실에서 옷을 잔뜩 주문했다고 한 걸 보면 꽤 들뜬 건 확실하죠.”

 

 별로 끼어들 생각은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자신의 긴 은발을 만지작거리던 1후궁 페넬로페는 어제 시녀들이 수집해온 정보를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옷을 잔뜩 주문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세실리아는 마담 미라벨이라는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마담 미라벨? 확실한가요?”

 

 마담 미라벨은 아동복 제작의 1인자로 꼽히는 디자이너다. 그녀가 성인용 옷도 출시하기 시작했다면 문화계 전반의 유행을 주도하는 플라티니 가의 딸인 세실리아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대체 후궁이 아동복을 주문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세실리아가 골똘히 생각하던 중 침묵을 지키던 비올레타가 종이를 한 장 시녀에게 받아 그녀에게 건넸다.

 

 “아버님께 부탁해서 그 공주에 대한 정보를 좀 알아봐달라고 했어요. 왕궁에서 거의 나온 적이 없어서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정말 기본적인 인적 사항은 알 수 있었죠.”

 

 비올레타의 말대로 자료에는 정말 기본적인 사항밖에 없었다. 이름은 레나테 미레이유 에드나, 후궁 소생, 외모는 허니 블론드 계열의 금발과 청록색 눈동자.

 

 그리고 제국력 1515년 4월 11일 출생.

 

 “···1515년?”

 

 지금은 1529년 5월이다. 혹시 자신이 계산을 실수한 건가 다시 세어본 세실리아는 다섯 번을 반복해도 나오는 똑같은 숫자에 종이를 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궁금해서 세실리아의 옆에서 내용을 본 안젤라도 놀라서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1515년 출생이면, 올해로 14살이잖아요! 에드나 왕국은 14살부터 성인인가요?”

 “그럴 리가. 그곳도 제국과 마찬가지로 18살부터 성인이에요.”

 “14살이라니, 어쩜 그런 어린아이를...”

 

 파네스 제국의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은 6살부터 6년 동안 기초학교에 다닌다. 그리고 보통은 12살부터 3년 동안 중등 아카데미에서 조금 더 심화된 교육을 받고, 15살이 되면 4년 동안 공부할 고등 아카데미에 들어가거나 도제로 들어가 직업교육을 받는다.

 

 즉, 14살은 아직 중등 아카데미에 다녀야 할 정도로, 성인은커녕 청소년이라고 쳐야 할 나이이다. 사회에 만혼이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하여 귀족들도 10대에는 결혼보다는 약혼 상태로 있는 경우가 늘어난 지금 14살이 결혼을 한다면 무슨 시대착오적인 짓이냐고 욕을 먹을 것이다. 애초에 법률상 18세 이상이 아니면 결혼할 수 없으니 서류 통과도 안 된다.

 

 “100년 전에야 평균 수명이 길지 않았으니 14살에 결혼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노인이 늘고 출산율이 줄기 시작한 사회에서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녀가 황제 폐하의 후궁으로 들어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게 아니더라도 윤리적으로 용납 못합니다! 어디 결혼할 여자가 없어서 그런 어린애랑 결혼을 합니까? 설마 폐하는 그런 취향이었던 겁니까?”

 

 비올레타의 지적에 이어 분노한 조세핀이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깜짝 놀란 안젤라가 세실리아의 뒤로 숨는 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페넬로페가 더 커다란 폭탄을 떨어뜨렸다.

 

 “다들 잊고 있는 모양인데, 14살이면 마담 미라벨에게 주문할 필요가 없어요. 프리지아 궁의 시녀가 원래 주문을 넣으려고 한 의상실은 마담 시몬의 의상실이었는데 갑자기 마담 미라벨에게로 바꾸었다더군요. 그럼 실제로는 나이보다 더 어린 외모일 가능성이 커요.”

 

 

 

 

 

 한편 그때, 궁의 이름대로 만개한 붉은 달리아가 가득한 달리아 궁 정원에는 해외파 후궁들이 모여 있었다. 아셀린 왕국의 공주인 6후궁 헬레나, 샤펠 공국의 공녀인 7후궁 이사벨라, 트리스탄 왕국의 공주 8후궁 수잔나, 바이잔 왕국의 공주인 9후궁 레오나는 각자 나라는 달랐지만 이 제국에서는 외국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일단은 한 집단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같은 제국민끼리도 서로 의욕이 다른데 출신국도 다른 그들이 같기는 힘들었기에 분위기는 국내파보다 더 느슨했다.

 

 “세헤라자데 님은 오늘도 오지 않으셨군요. 그렇게 초대했건만.”

 

 정원의 달리아만큼 진한 색의 굽이치는 붉은 머리카락을 살짝 귀 뒤로 넘긴 6후궁 헬레나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자 마치 예법 교과서에 나올 듯한 우아한 동작으로 찻잔을 들던 7후궁 이사벨라는 사파이어처럼 새파란 눈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을 정도의 어조로 대답했다.

 

 “그 분이 누구의 초대에도 응하지 않는 것은 몇 달 동안 우리 모두 겪었지요. 하지만 오지 않을 것을 안다 해도 같은 후궁으로서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니 아쉽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수잔나 님은 와주셨잖아요. 평소엔 세헤라자데 님만큼이나 안 나오시면서.”

 

 발랄한 말투로 말한 건 9후궁 레오나였다. 바이잔 특유의 올리브빛 피부 위로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그대로 풀어놓은 그녀의 활기찬 분위기는 그 옆에서 조용히 간식으로 나온 티푸드를 먹고 있던 8후궁 수잔나의 정적인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오늘 간식으로, 티라미수 케이크를 내온다고 했으니까요.”

 

 내내 말 한 마디 없이 어깨 위로 땋아 늘어뜨린 푸른 머리카락을 피해서 요령 좋게 케이크를 먹던 그녀가 한 대답에 레오나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린 이사벨라는 한숨을 쉬며 헬레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럼, 오늘은 무슨 일로 저희를 초대하셨는지 여쭤도 괜찮을까요?”

 

 이사벨라의 물음에 대답한 건 헬레나가 아니라 웃음을 멈추려고 애쓰는 중인 레오나였다. 여전히 다 사라지지 않은 웃음기가 밴 목소리로 레오나는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그야 당연히 11번째 후궁이 들어왔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겠어요? 그걸 위해서 일단 제게 가진 정보를 풀라고 할 거고. 맞죠?”

 “부정하지는 않겠어요. 관습법상 황제의 후궁은 11명까지 들여야 하니 새로 들어올 것은 예상했지만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레오나 님만큼 금방 알아낼 수는 없으니까요.”

 

 레오나의 조국인 바이잔 왕국은 해상무역의 강자일 뿐만 아니라 정보 길드가 시작된 곳이라고 할 만큼 정보력이 탁월하다. 물론 모든 왕족이 그런 강한 정보력을 가진 건 아니기에 레오나도 보통 왕족 수준의 정보력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이 후궁에서 가장 소식이 빠른 사람이기는 했다.

 

 “뭐, 저도 새로 들어올 후궁이 어떤 사람일까는 궁금하긴 하니까요. 그동안 모은 정보에 어제 하녀들 사이에서 돈 소문도 덤으로 수집해서 최신 정보를 가져왔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레오나가 살짝 헛기침을 했다. 예법에 까다로운 이사벨라가 노려보았으나 천성이 자유롭고 국풍 역시 자유분방한 바이잔 출신인 레오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페이스대로 말을 시작했다.

 

 “우선 11후궁이 에드나 왕국에서 온 공주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겠죠? 이름은 레나테 미레이유 에드나, 에드나 국왕의 두 번째 공주로 올해 나이는 14살이에요. 목격증언에 따르면 짧은 금발에 청록색 눈, 그리고 10살은 될까 싶은 동안이라더군요.”

 “뭐라구요?!!!”

 

 헬레나는 깜짝 놀라서 찻잔의 찻물을 튀길 뻔했다. 이사벨라도 목소리만 내지 않았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잔나로 말하자면 들고 있던 포크로 케이크를 콱 찍어 뭉개버렸다.

 

 세 사람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레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찻잔을 다시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녀도 처음에 들었을 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사실이냐고 일곱 번을 물었다. 보고한 사람 역시 열두 번은 확인했다고 하니 스무 번 가까이 그들이 똑같은 실수를 한 게 아니라면, 새로 들어온 후궁은 황제가 상대가 아니었어도 어느 나라에서도 결혼 못할 미성년자였다.

 

 “세상에... 폐하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죠? 16살이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는데 14살이라뇨? 그것도 외견은 10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니!”

 “혹시 모르죠. 폐하께서 저희를 가까이하지 않으신 건 저희가 취향 범위 밖이라 그런 거고, 사실은 15살 이하의 소녀가 아니면 흥분하지 않는 이상성욕자일 수도 있잖아요?”

 “레오나 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말은 함부로 하시는 게 아니죠. 자칫하면 폐하를 모욕했다는 죄로 끌려갈 수 있어요.”

 

 이사벨라가 체면도 반쯤 잊고 분노하자 레오나가 신랄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를 달래듯 말한 헬레나는 수잔나를 살폈다. 거의 표정 변화가 없는 새하얀 얼굴에는 드물게도 분노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수잔나 님? 수잔나 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트리스탄은 결혼을 일찍 하지만, 그렇다 해도 15살 이하는 결혼할 수 없어요. 하물며 외견은 10살이라니, 그런 소녀를 부인으로 맞는 남자가 제정신이라면 제국은 미쳤어요.”

 

 얼음 같은 냉기가 서린 건 말뿐만이 아니었다. 케이크를 짓뭉개다 못해 문지르는 그녀의 포크를 쳐다본 헬레나는 모두의 의견을 모으듯 이야기를 진행했다.

 

 “저 또한 이런 지나친 조혼에는 비록 후궁의 몸이기에 동의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없기는 하지만 찬성할 수는 없어요. 폐하께 이에 대해 탄원을 하고, 만약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황태후 마마께라도 말씀드리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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