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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막내 후궁의 자립기
작가 : 오렌지사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8.5.2

[성장물]/[육아물]/[로코물]/[동안 여주]/[순진 여주]

여자의 결혼 적령기는 과연 언제일까.


평민들은 대충 2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결혼하지만 귀족은 어린 나이에 미리 약혼을 해두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왕족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레나테 공주의 나이가 이제 열넷이니 파네스 제국 황제 폐하의 후궁으로 가도록 하라는 국왕 전하의 명이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벌써 결혼하는 건 이른 거 아닐까. 올해 갓 14살이 된 레나테는 시종의 전언을 듣고 멍하니 생각했다.


원래 연재했던 막내 후궁의 자립기 리메이크작입니다. 표지는 레이에린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1장
작성일 : 18-05-02 19:29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8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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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레나테 본인은 그저 태평했다. 침대에서 좀 뛰다가 무릎이 아파서 그만두고 목욕을 하러 들어가자 나탈리가 따라와서 머리도 감겨 주고 다친 무릎을 피해서 따뜻한 물도 끼얹어서 씻겨주었다. 별궁에선 돈이 없어서 뜨거운 물은 거의 못 쓰고 항상 찬물에 씻었는데, 하고 중얼거리자 나탈리가 뭐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따뜻한 목욕물에 꾸벅꾸벅 졸던 레나테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목욕이 끝나자 이번에는 엘라가 불렀다는 마담 미라벨이라는 디자이너가 와서 치수를 쟀다. 달랑 불편한 드레스 한 벌만 입히고 다른 건 하나도 챙겨보내지 않은 에드나 왕국 때문에 옷이 하나도 없는 레나테에겐 감격스럽게도 미라벨이 가져온 옷이나 앞으로 지어줄 옷들은 전부 비단이나 그에 준하는 고급 재료였고, 시녀들의 말에 따르면 제국 수도에서 최신 유행하는 디자인도 드레스보다는 원피스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11후궁님께선 아직 성장이 더딘 편이시니 리본이나 프릴이 달린 옷이 잘 어울릴 듯하군요. 워낙 인형 같이 단정하게 생기셔서 잘 어울리실 거에요.”

 “그거 좋겠네요. 레나테 님, 원하시는 디자인은 다 말씀해주세요. 며칠이면 다 완성될 거에요.”

 

 엘라가 권하자 레나테는 디자인 카탈로그를 열심히 읽었다. 긴 드레스는 불편하지만 리본이나 프릴, 레이스는 레나테도 달고 싶었다. 그동안 입어온 옷은 장식도 별로 없고 유행도 다 지난 원피스뿐이었기에 동화책에서 본 귀여운 색감의 옷이나 밖에 나갔을 때 귀족 여자들이 입고 있던 화려한 장식이 달린 옷도 입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옷 가격이 비싸질 텐데, 레나테는 고민에 빠졌다. 후궁에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서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레나테의 옷을 샀다가 오늘 저녁 먹을 돈도 안 남으면 큰일이다. 별궁에서도 식비 때문에 옷을 살 수가 없어서 레베카가 옛날에 입던 옷을 고쳐서 레나테에게 입힌 적도 있었는데, 엘라나 나탈리가 옛날 옷을 아직 갖고 있을까?

 

 “공주님, 갖고 싶은 만큼 다 주문하셔도 괜찮아요. 예산은 충분하답니다.”

 

 레나테가 뭘 고민하는지 알아차린 레베카가 귀에 대고 말하자 레나테는 정말이냐는 눈으로 레베카를 쳐다봤다. 아까 엘라가 의상실을 부르겠다고 하자 예산과 드레스 가격을 물어본 레베카는 활짝 웃으면서 원하는 만큼 지르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그럼... 소매는 레이스에 가슴에는 리본 달린 거. 프릴도 잔뜩 달아줘. 치마도 되게 풍성했으면 좋겠어. 아, 머리에도 예쁜 머리띠 같은 거 쓰고 싶어. 반짝반짝거리는 것도 많이 있으면 좋겠어.”

 

 어린아이다운 주문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미소를 지었다. 마담 미라벨은 일류이긴 해도 아동복 전문 디자이너이다 보니 황궁에 공주가 없는 지금 주로 귀족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황궁에 어린 왕자나 공주가 있다면 미라벨이 나서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남은 황족은 전부 성인이었다. 그래도 황제가 후사를 본다면 몇 년 안에는 오겠거니 싶었던 황궁에, 설마 후궁의 옷을 맞추기 위해서 올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꽤 즐거웠다.

 

 “네, 전부 달아드릴게요. 원래는 그렇게 화려하게 장식하면 얼굴이 옷에 져버릴 텐데, 11후궁님께는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정말? 유모, 나 새 옷 엄청 생긴대!”

 

 레나테가 좋아서 활짝 웃자 레베카도 엘라도 미라벨도 미라벨이 데려온 조수들도 전부 흐뭇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인형 같은 미소녀가 좋아서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사실 말이 11후궁이지 겨우 10살로밖에 안 보이는 여자아이다 보니 후궁이 아니라 공주가 더 어울렸다.

 

 사실 원래 엘라는 14살이라는 말을 듣고 황실 디자이너에게 그 정도 나이의 소녀들이 입는 디자인을 준비하게 시키려 했지만 레나테를 실물로 보자 급히 디자이너에게 연락을 넣어 취소하고 미라벨을 소개받았다. 레나테의 작고 어린 외모에 또래 소녀들이 입는 옷을 가져다 대봤자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미라벨은 일류 디자이너답게 엘라의 요구 이상으로 일을 잘 처리해 주었다. 디자인북은 물론이고 레나테의 사이즈와 제일 비슷한 사이즈의 옷들도 미리 여러 벌 준비해서 들고 왔다. 그 중 레나테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고 엘라와 레베카도 어울린다고 인정한 건 청록색 원단에 소매는 흰 레이스, 밑단은 삼단 프릴로 장식된 원피스였다. 레나테의 눈동자 색과도 잘 어울리고 너무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은 상큼한 색이 일품이었다. 거기에 리본이 달린 분홍색 케이프까지 두르니 정말로 인형처럼 귀여워서 다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외에도 잠옷, 외출복, 여름옷, 겨울옷, 파티복, 실내복, 공식 석상에서 입을 옷 등 여러 옷을 한 벌도 아니고 5벌씩 맞추자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그리고 구두 역시 레나테가 굽 높은 건 못 신다 보니 굽이 낮은 걸로만 골라왔는데도 디자인이 많아서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결국 미라벨이 돌아간 건 그녀가 오고 나서 4시간이 지난 뒤였다. 레나테가 도착한 게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였고 그 뒤 목욕도 하고 옷도 맞추고 나자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 식당 쪽으로 가려고 일어나는 엘라에게 레나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엘라.”

 “네, 왜 그러세요, 레나테 님?”

 “나 옷 많이 주문했는데 식비 모자라진 않아?”

 

 원래 높은 신분의 사람은 모자란 티를 내면 안 된다고 듣기는 했지만 엘라라면 괜찮겠지 싶어서 물어보자 엘라와 나탈리의 얼굴에 잠깐 안쓰러워하는 기색이 지나갔다.

 

 “괜찮아요, 레나테 님. 후궁에 배당된 예산은 액수가 크니까 레나테 님 옷 백 벌을 사도 끄떡없답니다. 그리고 후궁에는 궁마다 요리사가 있고 식비도 넉넉하게 책정해서 절대로 굶거나 그럴 일은 없어요.”

 “주방장의 말로는 오늘 저녁은 오리구이와 허브 바닷가재 샐러드라고 해요. 레나테 님께서 처음 오신 날이니 장기인 요리를 선보인다고 하더군요.”

 “오리구이? 소스 바른 거? 그리고 바닷가재?”

 “네. 비가라드 소스를 바른 오리구이에요. 샐러드는 바닷가재 살을 발라서 함께 곁들여 먹는 거고요.”

 “우와, 맛있겠다!”

 

 엘라의 말에 레나테는 매우 기뻤다. 별궁에서는 돈이 없어서 생일에도 기껏해야 닭고기밖에 못 먹었건만, 역시 후궁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입궁 기념으로 주는 게 무려 오리고기에 바닷가재라니 감격스럽다.

 

 “나 오리랑 바닷가재 한 번도 안 먹어봤어. 맛있어?”

 “네. 그리고 저희 주방장도 황실 요리 콘테스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요리사랍니다. 분명히 아주 맛있게 만들었을 거에요.”

 “그럼 많이 가져와줄 수 있어? 유모랑 엘라랑 나탈리도 먹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저희도 먹을 거랍니다. 저희는 레나테 님께서 식사를 하시고 나면 따로 먹을 거에요.”

 

 어느 새 시녀들의 말투는 후궁을 모시는 말투에서 어린 공주를 대하는 말투로 변해 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레베카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레나테는 신이 나서 식당으로 종종거리며 법도에 어긋나기 일보 직전의 스피드로 걸어갔고, 유모와 시녀들은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레나테는 매우 행복했다. 저녁으로 나온 오리구이는 쫄깃했고 바닷가재 샐러드는 상큼한 소스 맛과 함께 입안에서 녹는 것 같았다. 게다가 디저트로 사과 타르트까지 나오자 레나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식이라는 것을 해보고 배가 아파서 레베카가 한참을 배를 문질러주었다. 저 맛있는 걸 더 못 먹는 건가 싶어 울먹이자 엘라가 내일 아침은 오믈렛과 크로아상이라고 말해서 달래주었다.

 

 양껏 먹고 배가 부르자 이제는 심심해졌다. 별궁에 있을 때 레나테는 책을 읽거나 정원에서 놀곤 했다. 사실 별궁 밖이 더 궁금할 때도 많았지만 함부로 나가봤자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기에 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레나테는 후궁이니 프리지아 궁 밖에는 나가도 큰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좋아, 가보자!”

 

 생각이 들자 결심은 빨랐다. 레나테는 바로 벌떡 일어나 하얀 케이프를 어깨에 둘렀다. 고국에서 지내던 별궁에서는 레베카 혼자 일을 다 해야 했다 보니 레나테는 항상 혼자 놀곤 했다. 아무리 단기간에 집중교육을 받고 제국에 왔다지만 14년간 몸에 배인 습관이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엘라와 나탈리가 옷을 정리하고 레베카가 씻으러 간 사이 레나테는 잠깐 도서관을 찾아보고 오겠다고 쪽지를 한 장 남기고 밖으로 나섰다.

 

 

 

 

 “여긴 어디지...”

 

 기세 좋게 나오기는 했지만 후궁을 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레나테는 오늘 여기에 처음 왔고 지금은 저녁을 먹은 뒤라 밤에 접어들어 어둑어둑했다. 처음 여기에 들어올 때 왔던 길을 도로 걸으면서 출구가 어디일까 하고 찾아보려고 하다 보니 어느 새 모르는 곳으로 들어와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을 보니 후궁의 다른 궁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들지만 어느 궁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음번에는 엘라한테 지도라도 보여달라고 해야겠다고 후회하면서 레나테는 돌아온 길을 다시 더듬어 가보려고 했지만 워낙 어두워서 여기저기에 마력석으로 불빛을 밝혀놓았는데도 안 보였다.

 

 -휘이잉~

 

 조심조심 앞을 살피며 걸으려던 레나테의 귓가에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뭘까 하고 급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어둠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유령인 걸까. 레나테는 겁에 질려서 케이프 자락을 꽉 쥐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에서 유령은 어린아이를 잡아간다고 했다. 레나테는 14살이지만 외모는 아직 어린아이이니 유령이 착각해서 잡아갈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한 순간 스륵, 하는 천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책에서 본 유령은 흰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설마 나를 잡아가려고 하는 건가, 레나테는 기겁해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고 했다. 바닥에 삐죽 튀어나온 돌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는.

 

 “으, 흐으, 흐어어엉~!!”

 

 넘어지는 바람에 다친 무릎이 또 쓸리면서 느낀 통증과 유령에 대한 공포에 레나테가 울음을 터뜨렸다. 유령이 잡아가면 그 다음에 가게 되는 곳은 저승일 것이다. 레나테는 오늘 저녁도 과식했고 뜨거운 물에서 목욕도 했고 예쁘고 비싼 옷도 엄청나게 샀으니 보나마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흐, 흐윽, 잘못했어요! 다신 과식 안 하고 옷 많이 안 살 테니까 지옥에 잡아가지 말아주세요~!”

 “···지옥?”

 

 두 손을 들어 머리를 감싸고 웅크린 레나테의 애원에 돌아온 건 유령의 음침한 음성이 아니라 고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설마 처녀귀신인 건가 하고 레나테가 움찔하자 천소리가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곧 레나테의 어깨에 따뜻한 온기가 내려앉았다.

 

 “너 괜찮니? 넘어진 것 같은데,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

 “저런, 많이 놀랐나 보네. 일단 우리 궁으로 들어오렴. 이본느, 가서 따뜻한 우유라도 좀 준비해두라고 해줘.”

 “하지만 세헤라자데 님, 아무리 어린아이라지만 이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건...”

 “어린아이잖아. 게다가 넘어졌는걸. 다친 데가 없는지부터 봐야지.”

 “···알겠습니다.”

 

 이본느라 불린 목소리의 여자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유령이 아니었나 보다 싶어 레나테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때마침 구름에 가려진 달이 보이면서 마력석의 흰 빛과 함께 레나테의 앞에 서 있던 세헤라자데라 불린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일어설 수 있겠니? 많이 아파?”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세헤라자데의 얼굴을 보자 레나테는 울음이 쏙 들어갔다. 세헤라자데는 정말 굉장한 미인이었다. 선이 가는 얼굴에 담긴 호박색 눈동자는 따뜻한 햇살을 닮았고, 갈색 머리카락 사이에 얽혀 흘러내린 하얀 꽃넝쿨에서는 부드러운 향기가 났다. 레나테와 달리 보기 좋게 날씬한 몸을 감싼 엷은 소매 없는 분홍빛 드레스는 다리를 살짝 드러내어 하늘하늘하고 가벼워 보였고, 하얗고 가는 팔에 감긴 투명한 숄과 손목에 감긴 백합 장식, 드레스에 흘러내리는 꽃줄기는 싱그러웠다. 고국의 왕비나 비앙카 공주도 나름 미인이라고 할 외모이지만 세헤라자데는 꼭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이나 꽃의 여신 같았다.

 

 “난 10후궁 세헤라자데란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입고 있는 옷을 보니 귀족인 것 같은데.”

 “시, 10후궁이요?”

 

 10후궁이라면 레나테와 똑같은 후궁이었다. 설마 다른 후궁과 이렇게 만날 줄이야. 애초에 다른 후궁을 만나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던 레나테는 그냥 배운 대로 인사를 하기로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오늘 프리지아 궁에 온 11후궁 레나테에요.”

 “···11후궁?”

 

 레나테의 말에 세헤라자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넘어져서 훌쩍거리는 어린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던 소녀가 11후궁이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정말로, 11후궁?”

 “네. 제가 에드나 왕국의 공주 레나테에요. 오늘부터 11후궁이 되었고요.”

 “···일단 궁으로 들어오도록 해요. 레나테 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 네. 10후궁님.”

 “세헤라자데라고 불러주세요. 원래 후궁들끼리는 서로 이름을 부른답니다.”

 

 11후궁이라는 걸 알자 말투를 바꾸긴 했지만 그래도 이름을 불러주는 세헤라자데에게 레나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긋 웃은 세헤라자데는 레나테가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었다. 다친 무릎이 욱신거렸지만 다행히 잔디밭이라 그런가 피가 나는 느낌은 없었다.

 

 

 

 

 궁으로 들어온 세헤라자데는 우선 레나테의 상처부터 보았다. 붕대를 풀고 본 다리에는 낮에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아직 있었지만 더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넘어지기 전에 다쳤군요. 어떻게 다친 거에요?”

 “그... 넘어졌어요. 구두가 너무 불편해서.”

 “구두가요? 새로 맞춘 건가요?”

 “그것보단 굽이 너무 높아서 제대로 못 걸었어요. 그래서 여기 와서 새로 바꿨는데 이제는 편해요. 안 아파요.”

 

 레나테가 새 구두를 보여주자 세헤라자데는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가 곧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백합 궁에는 무슨 일인가요? 시녀의 전갈은 받지 못했는데.”

 “아, 그게... 오려고 한 건 아니고, 길을 헤매다가...”

 

 레나테는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사실을 털어놓았다. 도서관에 가고 싶어서 혼자서 나온 것, 길을 헤매다가 세헤라자데의 천소리를 유령의 소리로 잘못 들은 것, 유령이 혹시 잡아가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을 먹어서 운 것까지.

 

 사실을 들은 세헤라자데는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가 살짝 접히자 청순한 얼굴이 더욱 고와 보였다.

 

 “후훗, 유령이라... 그러고 보니 밤의 정원은 바람소리 때문에 스산해 보이기도 하니까요. 어린아이 눈에는 무서워 보이기도 하겠네요.”

 “유령만 안 나오면 안 무서워요. 저 원래 유령한테 잡혀갈 만큼 나쁜 짓 한 적 없거든요. 오늘은 조금... 과식도 하고 옷도 많이 주문하긴 했지만.”

 “과식?”

 “네. 바닷가재 샐러드가 엄청 맛있었거든요. 그리고 오리구이도요! 저 오리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닭고기랑은 맛이 전혀 달랐어요. 쫄깃쫄깃하고 향긋해서 한 마리 다 먹었는데도 또 먹고 싶었어요. 참, 바닷가재도 살이 굉장히 맛있었어요! 샐러드도 야채가 엄청 많아서 다 먹느라 한참 걸렸고요.”

 

 오늘 저녁식사 메뉴에 대해서 재잘재잘 얘기하는 레나테의 말을 세헤라자데는 웃으면서 들어주었다. 바닷가재살을 처음 먹어봤다는 것에 대해서는 세헤라자데도 자신도 고향에 바다가 없어서 해물은 잘 못 먹었다고 말해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사과 타르트가 맛있었다고 하자 세헤라자데는 여기 백합 궁 요리사가 만든 케이크도 맛있다고 슬쩍 가르쳐주었다.

 

 “궁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다들 요리 콘테스트에서 우승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에요. 특히 백합 궁의 요리사는 플루라 요리를 잘 만들죠. 특히 자허토르테는 제가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해요.”

 “자허... 테? 처음 들어봐요. 무슨 요리인가요?”

 “살구잼을 바른 초콜릿 케이크에요.”

 “초콜릿!”

 

 레나테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걸 보고 세헤라자데는 기분이 좋아진 듯 다음에 티타임에 초대할 테니 와서 케이크도 먹고 가라고 권해주었다. 차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지만 케이크는 먹고 싶었던 레나테는 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티타임에 놀러오도록 해요. 이본느, 주방장에게 자허토르테를 준비해달라고 전해주겠니?”

 “알겠습니다, 세헤라자데 님.”

 

 레나테가 해맑게 웃자 세헤라자데도 따라서 웃었다. 뒤에 서 있던 이본느도 레나테의 미소를 보자 경계가 누그러진 듯 약간 미소지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차가 있다면 말해요. 준비해둘게요.”

 “아, 저 차는 마셔본 적 없어요. 우유라면 먹을 수 있어요.”

 “그래요? 아직 차를 마실 나이는 아닌가? 그러고 보니 레나테 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19살인데.”

 “아, 저는 14살이에요. 지난달에 생일이 지났거든요.”

 

 레나테의 나이를 듣자 세헤라자데도 이본느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엘라와 똑같은 반응에 레나테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세헤라자데의 당혹스러운 표정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14살... 혹시 동안일까 생각했는데 이건...”

 

 레나테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얼굴을 찌푸렸다. 나이에 비해 여러모로 미성숙한 레나테로서는 지금 세헤라자데의 안에서 황제가 어떤 이미지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알아봤자 레나테가 신경을 쓸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레나테 님, 후궁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들어오신 건가요?”

 “···? 황제 폐하의 여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가요? 각 나라의 친선을 위해서, 그리고 후사를 얻기 위해서.”

 “네. 그러면 그 후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요?”

 “남자랑 여자가 한 침대에 들어가서 자고 나면 운이 좋으면 아기가 생기는 거 아니에요?”

 

 레나테의 대답에 세헤라자데가 이마를 짚었다. 이본느도 당장 쓰러지고 싶은 걸 겨우 붙잡았다. 이 어린 소녀는 외모만큼이나 순진하고 성에 대해 무지했다. 그런 어린 소녀를 후궁으로 들여오다니 황제는 과연 제정신일까 싶었다.

 

 “폐하, 설마 사실은 어린 소녀가 취향이신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이만 들었을 뿐, 직접 만나보지는 않으셔서 아무 관심 없이 허락만 하신 것일 수도...”

 

 세헤라자데와 이본느가 소근거렸지만 레나테는 그냥 자신에게 내온 따뜻한 우유를 마실 뿐이었다. 레나테는 철이 안 든 것은 아니지만 아직 처세술이나 주위에 대한 관심은 바닥에 가까웠기에, 자신을 보는 두 사람이 자신이나 황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그저 우유가 따뜻해서 잠이 왔기에, 입고 있는 옷은 부드럽고 앉은 의자의 쿠션도 푹신했기에, 그리고 평소 자는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레나테는 어느 새 세헤라자데와 이본느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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