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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왕총아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7.6.4

스무 살의 꽃같은 나이에 백련교의 난을 이끈 불세출의 여걸 왕총아!
동시대 전쟁 영웅 나폴레옹을 능가하는 천재적인 전략으로 불과 2만의 병력으로 열배가 넘는 청나라 관군을 연전연파하고 서안으로 진격하는데......
여자 제갈공명으로 해도 과언이 아닌 불세출의 여걸 왕총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다!

 
화신을 탄핵하다
작성일 : 18-02-13 21:00     조회 : 562     추천 : 0     분량 : 6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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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총아는 반가운 목소리로 화효공주에게 인사했다.

 

  "공주마마, 잘 주무셨사옵니까?"

 

  "나는 잘 잤네. 자네도 잘 잤는가?"

 

  "소녀도 잘 잤사옵니다."

 

  물러가라 말했음에도 화란이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자 화효공주가 화란을 향해 물러가라 손짓했다.

 

  "화란아, 물러가보란 내 말을 못 들은게냐?"

 

  화효공주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화란은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소녀, 이만 물러가겠사오나, 공주마마께서 다른 볼 일이 생기시면, 언제든 소녀가 왕부인을 안내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물러나면서도 여지를 둔 것이다.

 

  화란이 물러가자 화효공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평소엔 내 말에 고분고분했던 화란이 오늘따라 어째서......"

 

  화효공주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는 순간, 왕총아는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 화란이 내가 사양했음에도 자신이 안내해주겠다 고집부리고, 화효공주가 물러가라 해도 물러가지 않고 있었던 것은 필시 화신의 집에 내가 보면 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거야!'

 

  왕총아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자 화효공주에게 말했다.

 

  "공주마마, 소녀의 청을 하나 들어주시겠사옵니까?"

 

  화효공주가 허락하지 않을까봐 궁리 끝에 먼저 말한 것이다.

 

  화효공주는 별 생각없이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게.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인데, 못 들어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 집의 곳간을 모두 구경시켜 주시겠사옵니까?"

 

  왕총아가 전혀 예상치 못한 청을 하자 화효공주가 의외라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끄고 되물었다.

 

  "우리 집 곳간을 모두 구경시켜달라고?"

 

  왕총아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옵니다."

 

  "자네는 우리 집 곳간이 수백 개나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왕총아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우뚱했다.

 

  "곳간이 수백 개나 됩니까?"

 

  "그렇다네."

 

  왕총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생각하고 있었다.

 

  '화효공주는 체면 때문이라도 자신의 입으로 약속한 것을 뒤업지 못할 거야. 하지만, 곳간이 수백 개나 되니 어느 곳간부터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까?' 그래, 수상한 곳간부터 차례대로 보면 틀림없이 뇌물을 쌓아둔 곳간이 나오겠지.'

 

  왕총아가 생각하느라 침묵하는 사이에 화효공주가 물었다.

 

  "설마 수백 개나 되는 곳간을 모두 보여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이 집 곳간엔 어떤 것이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보고 싶습니다."

 

  화효공주는 어의가 없는 듯 침묵하다 왕총아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구경이야 시켜줄 순 있지만......"

 

  여기까지 말한 후 잠시 뜸을 들인 화효공주는 못 마땅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자네가 무슨 의도로 구경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군."

 

  화효공주의 얼굴이 갈수록 못 마땅한 기색이 역력해지자 왕총아가 해명하듯 말했다.

 

  "나쁜 의도는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말을 하고서 왕총아는 생각했다.

 

  '화신의 집에 곳간이 수백 개나 되는 것부터가 수상쩍다. 화효공주와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확인해봐야겠구나!'

 

  이때 화효공주가 날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면 이게 좋은 의도란 말인가? 자네 혹시 나를 난처하게 만드려고 작정한 것이 아닌가?"

 

  "절대 아니옵니다."

 

  "허나, 자네가 지금 하려는 일은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일세.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화효공주가 못 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묻자 왕총아는 갑자기 털썩 무릎 꿇었다.

 

  "오해이십니다. 소녀가 이 집 곳간을 모두 보여달라 청한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옵니다. 부디, 소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시옵소서."

 

  왕총아가 호소하듯 말하자 화효공주가 해명이나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들을 테니, 어서 말해보게나."

 

  화효공주의 말은 이전보다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왕총아는 화효공주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면 끝장이란 생각에 눈물로 호소했다.

 

  "공주마마의 시아버님인 화대인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천문학적인 재물을 늘여온 천하제일의 탐관오리이며, 오늘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옵니다. 소녀의 말을 믿지 못하신다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물어보소서."

 

  화효공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만약 소녀의 말에 한치라도 거짓이 있다면, 마땅히 죄를 받겠사옵니다."

 

  왕총아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에 화효공주는 화가 누그러진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자네의 의심을 풀어주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네. 자네의 말대로 지금 밖으로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하나 붙잡고 한번 물어보세."

 

  왕총아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내 신분이 드러나면 안 되니, 잠시만 기다려보게."

 

  화효공주는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사내의 옷차림으로 변복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사내의 옷차림으로 변복한 화효공주를 보자 왕총아는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미공자로 변복하셨군요."

 

  머리에 갓까지 쓴 화효공주의 모습은 그야말로 남중일색의 미공자였다.

 

  "이제 나가보세."

 

  화효공주는 왕총아와 함께 화신의 집 밖으로 나가자 때마침 길을 지나가는 백성 하나에게 물었다.

 

  "군기대신 화대인이 천하제일의 탐관오리라는 소문이 있다던데, 사실이오?"

 

  한인으로 보이는 백성은 천하의 둘도 없는 미공자로 보이는 화효공주가 나쁜 사람 같지 않아 솔직히 말했다.

 

  "화신이 천하제일의 탐관오리란 것은 온 천하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인데, 당신은 정말 모르고 묻는 것이오?"

 

  순간, 화효공주는 충격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백성이 가버리자 왕총아가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공주마마, 괜찮으시옵니까?"

 

  겨우 정신을 차린 화효공주는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듯 지나가는 백성들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사람 말만 믿을 순 없는 일이니, 저 사람한테도 물어보세."

 

  "백 사람한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왕총아가 말리려 했지만, 화효공주는 얼른 뛰어가 지나가던 백성들 중 한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소?"

 

  "물어보시오."

 

  "군기대신 화신이 천하제일의 탐관오리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오?"

 

  "허허..."

 

  사내는 어의가 없다는 듯 실소하더니 화효공주를 가리키며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여보게들, 이 사람 좀 보게나. 나더러 군기대신 화신이 천하제일의 탐관오리라는 소문이 사실이냐 물어보네. 생긴 건 멀쩡한 사람이 산에서 내려왔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네 그려."

 

  사내의 말을 듣자 일행들이 의심쩍은 눈길로 화효공주를 바라보더니 화신의 집을 가리키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차림세를 보니 선비같은데, 이 사람이 화신의 집 앞에 있는 걸 보면, 혹시 화신에게 붙어 사는 사람이 아닐까?"

 

  "화신에게 붙어 사는 사람이라면 우리를 고소할지도 모르니, 어서 가세!"

 

  백성들이 도망쳐버리자 화효공주는 온몸에 맥이 풀려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공주마마, 일어나소서."

 

  왕총아가 일으켜 세우자 화효공주는 왕총아에게 기댄 채 원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진작 알려주지 않고 이제서야 알려주었는가?"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화효공주를 보자 가슴이 아팠지만, 왕총아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작정하고 말했다.

 

  "소녀가 진작에 알려드렸더라도 믿으셨겠습니까? 지금 소녀는 소녀의 상공을 살리기 위해 공주마마께 말씀드린 것이니, 부디, 헤아려 주시옵소서."

 

  화효공주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네의 상공을 살리기 위해 내게 말했다니, 그럼, 내 시아버님이 제림을 모함한 장본인이란 말인가?"

 

  왕총아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상공은 황자 저하의 신임받던 관리였는데, 공주마마의 시아버님이 아니면 누가 이 일을 꾸밀 수 있겠사옵니까?"

 

  화효공주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시아버님이 탐관오리라는 말은 백성들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이라 부인하지 않겠네만, 시아버님이 제림을 모함했다는 말은 믿을 수 없네."

 

  '공주마마께서 내 말을 믿어주시지 않으면 사부님을 살리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절박한 심정에 왕총아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이전에 공주마마의 시아버님이 소녀와 공주마마의 시숙부를 강제로 혼인시키려 했던 일을 잊으셨사옵니까? 그때는 공주마마의 시숙부님과 소녀를 강제로 혼인시키려 하더니, 지금은 소녀의 상공을 모함해 죽이고 소녀와 혼인하려 꾸민 일이 틀림없사옵니다. 부디, 소녀의 말을 믿어주소서."

 

  왕총아의 말을 듣자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화효공주의 뇌리를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아버님께서 시녀들을 뽑을 때 예쁜 시녀들만 뽑고, 종종 이상야릇한 눈길로 시녀들을 쳐다보곤 하셨는데, 난 어째서 그동안 의심 한번 안 해본 것일까?'

 

  이때서야 화신의 호색함을 깨달은 화효공주는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아! 시어머님이 너무 불쌍하시구나!"

 

  화효공주는 화신을 하늘처럼 믿는 풍제문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이때 왕총아가 간곡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공주마마, 공주마마의 시어머님도 불쌍하시지만, 지금 소녀의 상공께서 죽게 생겼으니, 부디, 소녀의 상공을 살려주시옵소서."

 

  화효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제림을 살리고 보세."

 

  왕총아는 이제는 제림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감사를 표시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화효공주는 왕총아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나서도 제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감사는 제림이 풀려나면 하게나."

 

  왕총아는 화효공주를 떠보기 위해 물었다.

 

  "공주마마께서도 소녀의 상공을 구할 수 있는 좋은 방도가 없으시옵니까?"

 

  화효공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가 이미 해볼 건 다 해보았으나, 제림을 구하지 못한 걸 자네도 알지 않는가?"

 

  "소녀에게 소녀의 상공을 구할 방도가 있긴 합니다만, 말씀드리기가 황송하여......"

 

  왕총아가 말을 멈추자 화효공주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떤 방도인가?"

 

  왕총아의 입에서 화효공주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공주마마의 시아버님을 파면시키신다면, 소녀의 상공을 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화효공주가 역정을 내며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자네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나더러 내 집안을 풍비박산내란 말인가?"

 

  "이는 공주마마의 집안을 풍비박산내는 일이 아니라 공주마마의 집안을 구하는 일이옵니다."

 

  총명한 화효공주는 왕총아의 말이 일 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내 시아버님께서 파면당하신다면, 내 집안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고개를 끄덕인 왕총아가 말을 이었다.

 

  "화대인이 지금 파면된다면, 필시 황제 폐하께서 무마하시기 위해 나서실 터이니, 공주마마의 집안을 구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왕총아의 논리정연한 말을 듣자 화효공주가 손뼉을 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과연 정말 그렇군!"

 

  그러고는 왕총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자네의 말대로 지금 시아버님께서 파면당하신다면, 아바마마께서 나서셔서 무마해주실 터이니, 자네 남편도, 시아버님의 목숨도, 내 집안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니, 이야말로 일석삼조네."

 

  왕총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화효공주는 곧바로 화림을 불렀다.

 

  "시숙부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화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주마마의 말씀 한마디면, 형님께서 공주마마의 명을 받드실 터인데, 어찌 형님께 부탁하지 않으시고, 저한테 부탁하시는 것이옵니까?"

 

  "이는 오직 시숙부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화효공주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화림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분부를 내려주시옵소서."

 

  화효공주는 뭔가 작심한 듯 한숨을 내쉬더니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시숙부님께서 시아버님을 탄핵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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