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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검명무명
작가 : 자우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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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강호에 발을 디뎠을 때, 세인들을 그를 검광이라 했다.
그가 무명검으로 독보천하 할 때, 세인들은 그를 검귀라 불렀다.
그가 홀연히 강호를 떠날 때, 세인들은 그를 검신, 진정한 천하제일인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흘렀다.

 
9 화
작성일 : 16-07-07 10:47     조회 : 400     추천 : 0     분량 : 7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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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세상에 발을 내딛다.(1)

 

 

 

 “이런 망할 것이!”

 퍼퍽, 퍽!

 사람 모인 곳에서 대뜸 거친 욕설이 터지고, 한바탕의 큰 소란이 일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여러 사람이 훤한 대로를 오가다가 소란에 모여들었다.

 감숙성은 중원의 구석진 곳이었다. 가장 북방의 구석인지라, 치안이 불안하고, 연이은 이민족의 침탈이 잦은 곳이기도 했다.

 장성을 넘어서, 대명의 실질적인 영토는 이곳부터였다. 양운정은 백호의 신분을 보장하는 철패가 있기에 다른 마찰 없이 장성을 통과했다. 온갖 곳에 모여드는 무수한 인파를 헤치며 걸음을 재촉하는 데, 문득 욕설과 구타하는 소리가 양운정의 귀를 잡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모여든 여러 구경꾼의 발아래에서 커다란 누더기가 한껏 웅크린 채, 쏟아지는 발길질과 매질을 감당하고 있었다. 다시 살피자, 누더기를 걸친 작은 아이였다. 이제 한 열이나 되었을까. 시커멓게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꼴인데, 그 작은 아이를 덩치 좋은 중년 사내가 마구 구타하고 있었다.

 보기 흉한 꼴이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데, 양운정은 문득 아이의 깡마른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노예인 모양이었다. 이곳 감숙성에서는 이민족의 노예들이 자주는 아니어도 심심치 않게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특이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양운정은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어쩐지 아이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아이는 사내에게 그토록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눈빛이 달라지지 않았다. 웅크리고 있으면서도, 사이로 사내를 노려보는 눈초리는 새파란 독기로 번들거렸다. 절대 굴복하지 않는 눈이다.

 저 눈은.

 양운정의 기억을 더듬을 새, 중년 사내가 잠시 손을 멈추고 헐떡거렸다.

 “흐엑, 흐엑. 이런 독한 몽골의 종자 같으니.”

 한참이나 쥐어 패도, 비명 한번 아니 지르는 아이가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급기야 몽둥이를 내던지고는 커다란 박도 한 자루를 덥석 꺼내 들었다.

 “오냐, 네 녀석의 팔을 잘라버려서, 혼쭐을 내주마!”

 사내는 숨이 딸려, 헉헉거리면서도 박도를 크게 치켜들었다. 새파란 칼날이 누런 햇빛을 받아서 번쩍거렸다. 아이는 그래도 눈앞의 칼날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마주 노려보았다. 자를 테면, 잘라보라는 듯이 오히려 벌떡 일어났다. 앙상한 몸이 흔들거렸지만, 노려보는 눈초리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이런 썩을 것이!”

 카앙!

 욕설을 터뜨리며 크게 휘둘렀다. 그런데 울리는 것은 날카로운 쇳소리였고, 박도를 휘두른 손은 거센 반발력에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저린 손목을 부여잡고 앞을 막아선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양운정이었다. 그가 검을 들어 사내의 박도를 간단히 막아 세운 것이다.

 “이, 이런 망할! 넌 또 뭐야? 뭔데 남의 일에 참견 질이냐!”

 사내는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그런데 양운정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아이, 당신 노예인가?”

 “그래! 왜!”

 “이 아이는 이 년 전 몰살당한 몽골 청랑족의 아이 같은데, 어떻게 노예로 삼았지?”

 사내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싸늘한 추궁에 멀뚱거리다가, 겨우 되물었다.

 “...예?”

 “북로군 백호다. 어떤 연유로 이 아이를 노예로 삼았는가? 당장 고하라.”

 양운정은 철패를 꺼내어 보이고는 사내를 재차 추궁했다. 사내는 좋던 기세를 다 잃고 납작 엎드렸다.

 “아이코, 나리. 백호 나리. 저 이것은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라, 전후 노비들은 일괄적으로 관에서 처리하게 되어있는데, 어찌 자네 같은 자가 청랑족 아이를 노예로 삼아, 사유화하는가?”

 “히익! 자, 잘못 했습니다요. 잘못 했습니다요.”

 힘주어 말하며 한 걸음 다가서자, 압박에 못 이겨 사내는 아주 납작 엎드렸다.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털어놓았다.

 그는 몽골족 포로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중에 뒤로 낙오된 무리 중에서 아이를 납치했다고 했다. 양운정은 사내의 변명을 듣고, 짐짓 엄숙한 어조로 그를 꾸짖었다.

 “이 아이는 국가의 재산이라 할 수 있는데, 네놈이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도대체 네놈은 뭐하는 놈이냐!”

 “히익! 잘못했습니다. 나리, 살려만 주십쇼.”

 “뭐하는 놈이냐고 물었다. 국가의 재산을 훔치고, 또 저렇게 버젓이 흉한 칼을 들고 다니니. 네놈 혹시 현상범 같은 것 아니냐?”

 “헤에? 아이구,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상인입니다.”

 “상인이란 놈이 칼을 들고 다녀?”

 “헤헤, 그저, 그저 호신용입지요. 제대로 써본 적도 없습니다요.”

 “그만 가보도록.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요.”

 사내는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는 허겁지겁 도망쳤다. 박도마저 버려두고는 사람들 사이로 급하게 사라졌다. 와중에도 양운정은 사내의 입가에 득의한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제 변명이 통했다고 안도하는 모양새였다. 보아하니 비적 무리 중 하나가 분명했다. 아이 역시 호송 도중에 비적에게 당했을 터. 고개를 돌리자, 아이는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매질에도, 칼의 위협에도 이를 악물고 버티던 아이는 최후의 선택으로 혼절한 모양이었다. 아이의 몸을 안아 들었다. 양운정의 어깨 근처에도 닿지 못하는 작은 아이였지만, 그래도 너무 가벼웠다. 깡마른 팔, 다리와 시커먼 얼굴은 잔뜩 야위어서 광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양운정은 아이를 안아 들고, 일단 객잔으로 향했다.

 객잔에 들기가 무섭게 방을 잡고, 목욕물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가 깰 때까지 몸을 씻었다. 근 몇 년 만의 목욕인지라 한참이 걸려서야 개운하게 목욕통에서 나왔다. 양운정은 몸을 말리며, 점소이에게 다시 목욕물을 주문하며, 은 부스러기를 쥐어주었다. 일단, 아이도 씻겨야 했다. 점소이는 손에 쥔 은 조각에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져서는 잽싸게 목욕물을 준비했다.

 양운정은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말리고 객방의 침상에 쓰러져 누운 아이를 살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살피건대 어딘가 부러지거나, 크게 잘못된 것은 없었다. 혼절한 김에 깊이 잠든 것이었다. 양운정은 아이를 안아 들려다가, 고약한 냄새에 그만 손을 거두었다. 그는 곧 아이의 뒷덜미 잡아올렸다. 흡사 새끼를 옮기는 어미 호랑이처럼 아이를 들어다가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목욕통 속에 처박았다. 첨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갑작스러운 물벼락에 아이는 놀라 깨었다.

 “꺄악!”

 매질에도 신음성 한 번 흘리지 않던 아이가 화들짝 놀라서 물통을 뛰쳐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양운정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씻길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아이를 붙잡아다가 서둘러 손을 썼다. 넝마자락을 대충 찢어서 던지고, 손에 쥔 거친 천으로 아이의 야윈 등판을 문질러 때를 벗겨 냈다.

 “꺅!”

 아이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양운정의 꿀밤이었다.

 딱!

 가볍게 때렸지만, 소리가 크게도 울렸다.

 “얌전히 있어! 내가 널 잡아먹느냐! 아이고, 때 좀 봐라!”

 양운정의 손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시커먼 때가 주욱 주욱 밀려 나왔다. 아이는 다시 첨벙거리며 발버둥 쳤지만, 여지없이 꿀밤이 떨어졌다.

 “우우….”

 아이는 결국 쪼그려 앉은 채 머리를 부여잡고 울상이었다. 양운정은 그 모습에 실소하며, 아이의 손을 잡아 다시 때를 밀었다. 아이의 검붉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런데 양운정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이런, 네 녀석 여자였더냐?”

 그는 한참 때를 밀다가, 다른 손으로 가슴을 한껏 가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아이의 성별을 눈치 챘다. 그러나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되레 실소하며 아이에게 천을 쥐어주었다.

 “꼴에 여자라고. 알았다. 나머지 손에 닿는 부분은 직접 하려무나. 깨끗이 안 씻으면 밥 없다.”

 양운정은 목욕통을 놓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점소이를 불러다가 음식을 비롯해 몇 가지 심부름을 시켰다.

 양운정은 탁자에 앉아 이제부터의 계획을 잠시 고민했다. 중원으로 향할 참인데, 목욕통의 아이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문득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음식과 심부름시켰던 물건이 들어왔다. 그것은 여아의 옷과 자신의 입을 몇 벌의 옷이었다. 음식은 탁자 위에 놓고 옷을 들고는 욕실로 향했다. 문득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독기를 품고 있더라도, 아이는 아이였다. 어느새 물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는 모습에 피식 실소가 새어나왔다. 아이는 해맑게 웃다가, 양운정이 들어서자 화들짝 놀라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큰 눈동자만 물 밖으로 내밀고 끔뻑거리는 데,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녀석 하고는 다 씻었으면 이 옷을 입도록 해라. 어디 보자, 깨끗이 씻었느냐?”

 아이는 말없이 양운정을 노려보았다.

 “손.”

 “....”

 딱!

 “우우!”

 “손.”

 꿀밤 한 대에 아이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팔을 살짝 문지르니, 시커먼 때가 다시 올올이 일어났다.

 “...”

 “...”

 양운정은 말없이 아이를 노려보았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이 녀석! 씻으라고 했더니 물장난이나 쳐!”

 양운정은 다시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는 싫다는 아이를 꾸짖으며 박박 때를 문질렀다. 이후, 무려 한시진이나 걸려서 아이는 겨우 목욕통에서 나왔다.

 양운정은 당연히 펄펄했지만, 아이는 오랜 목욕으로 완전히 탈진해서 비실비실 떨리는 두 다리로 겨우 걸었다. 그래도 멀끔하게 씻고, 새 옷을 입은 소녀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살짝 가무잡잡한 피부에는 티 하나 없었고, 맑고 깊은 두 개의 큰 눈과 오뚝한 코, 작고 붉은 입술. 삼단 같은 검은 머리는 비록 푸석푸석하였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서 등 뒤로 넘겼다.

 “이제 사람 같구나. 먹어라, 식었지만, 먹을 만할 것이다.”

 양운정이 탁자 위의 음식을 가리키자, 아이는 주저주저하면서도 정신없이 음식을 집어 먹었다. 교자와 소면이었는데, 아이는 손으로 음식을 집고 입으로는 씹으며 눈으로는 계속 양운정을 살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고 불쌍했다.

 “안 뺏어 먹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먹어라.”

 “끄읍.”

 소녀는 목이 메는지 캑캑거렸다. 양운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탁자에 놓여있는 다기에서 차를 따라 소녀에게 내밀었다.

 소녀는 머뭇거리면서도 잽싸게 양운정의 손에서 잔을 빼앗아 들이켰다.

 “후아아.”

 살았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몰아쉬는 소녀의 모습에 양운정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러한 감정은 또 처음이었다. 아이의 눈을 보았을 때, 양운정은 그 눈으로부터 철홀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렇기에 이끌리듯 나섰다.

 지금에는 마치 딸이나 귀여운 여동생 같았다.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니, 낯설었지만, 싫을 것은 없었다.

 아이는 양운정이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어색한 모양인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양운정이 주문한 음식은 일단 양이 상당했다. 성인 장정 두엇이 먹을 만한 양인데, 그것을 소녀 혼자서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침상에 드러누워 만족한 듯 배를 쓰다듬는 모습이라니. 양운정은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는 그러고 있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물었다. 얼굴에는 경계보다, 의아함이 가득했다.

 “아저씨는 왜 날 구했어요?”

 “응?”

 “왜 날 구했느냐고요. 저한테 뭘 원해요?”

 “음, 아저씨로구나.”

 육신의 나이는 올해로 스물다섯이다. 아이는 주린 까닭에 다 자라지 못해 어려 보였지만, 열 서넛에 가까웠다. 그래도 아저씨라니. 서운한 일이다. 양운정은 잠시 침울했지만, 곧 헛기침을 흘리고 물었다.

 “너, 철홀이라는 이름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마치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물은 말이다. 그런데 소녀의 반응은 격렬했다. 침상에서 튀어 오르듯이 벌떡 일어나, 독기가 새파랗게 어린 눈초리로 양운정을 노려보았다.

 “당신 뭐야. 어떻게 아버지를 아는 거지!”

 ‘아버지라. 그렇군.’

 양운정은 차분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앉아라. 네 녀석을 어떻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래 너를 돌봐주고자 한다.”

 “그게 무슨?”

 “이년 전이지. 그때에 나는 철홀, 네 아버지의 은혜로 살았다. 그러니까. 보은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 네가 길가에서 흉한 일을 당할 적에 본 눈초리가 그와 너무 닮았기에 나섰던 것인데. 설마 진짜로 그의 딸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양운정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아이는 그런 모습에 잠시 적의를 거두었지만, 머뭇거림을 지우지는 못했다. 경계하는 심정은 여전했다. 어리다고 하지만,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무슨 은혜를 받았다는 거예요?”

 “이 년 전, 네 아버지는 나와의 대결에 응해주었지. 덕분에 임무를 달성할 수 있었다.”

 “대결? 임무?”

 “...내가 네 아버지를 죽였다.”

 “...!”

 

 한바탕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했다. 객방 안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탁자니, 의자니 하는 것들은 구석으로 나가떨어졌고, 덩달아 식기 따위는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렇게 만든 당사자는 이불보가 갈가리 찢겨 있는 침상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돌아누운 아이의 눈두덩은 하도 울어서 벌겋게 부어올랐다. 양운정은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불과 서너 각 전의 일이었다. 아이는 양운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광했다. 당장에라도 죽일 듯이 난동부리는 데, 양운정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에게 의자, 꽃병, 접시 등등.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욕설과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게 악을 써대던 아이는 제풀에 지쳐서 풀썩 주저앉았다. 작은 몸을 한껏 웅크리고서 눈물과 함께 원통함을 쥐어짰다.

 “나쁜 놈! 나쁜 놈! 흐으! 흐으으아!”

 양운정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들썩거리는 야윈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으으으...”

 아이는 흐느끼다 못해, 숨이 끊길 듯이 위태했다. 이제는 더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 양운정은 불현듯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구석에 둔 검이 절로 뽑혀 나오더니,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스르릉하는 날붙이의 소리에 아이는 흠칫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때에 양운정은 한손으로 검신의 중간을 잡고, 검 끝은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검 자루를 내밀었다.

 “잡아라. 검을 잡아.”

 양운정의 말에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검을 붙잡았다.

 “내 너에게 해원(解寃)의 기회를 주마. 기꺼이 죽어줄 터인즉. 찔러라.”

 주춤할 새, 날카로운 검 끝이 옷자락을 파고들어, 가슴팍에 닿았다. 섬뜩한 느낌에 아이의 손이 떨렸다.

 “아...”

 “괜찮다. 찔러라. 용케 죽지 않는다면, 너를 평생 돌보겠다.”

 “그런 말이.”

 소녀는 떠듬거리다가 그만 말을 잃고 양운정의 조용한 눈과 검이 파고든 가슴을 번갈아 보았다.

 “찌르거라.”

 양운정은 따뜻한 미소를 그린 채 말했다. 흐린 웃음을 머금은 두 눈가에서는 다른 걱정보다 그녀에 대한 염려를 느낄 수 있었다.

 소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영민했다. 그래도 청랑족이 융숭할 때에 일족 제일의 기재라고도 했다. 양운정의 속내를 헤아리기가 무섭게, 슬프고도 기쁜, 상반된 두 감정이 소녀의 심중을 뒤흔들었다. 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리 영민하다고 해도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소녀는 검을 놓치고 눈물을 쏟았다. 양운정은 행여 검 날에 아이가 상할까 소녀를 안아주었다. 아이는 얼굴을 묻은 가슴팍이 축축하게 젖어들 때까지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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